마법 학교 슈트라 (5)
그렇게 루나를 설득해서 아틀러로 향하기로 했다.
전에 포츠 백작을 쫓는 것처럼 급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일까지 차근차근 준비한 다음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동하기로 결정하는 것과 동시에 재미있는 소식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공작님께서 레빈에 도착하셨어요.”
바로 카이 브란트루프가 레빈에 왔다는 사실이었다.
레빈 왕궁에 반역의 피바람이 몰아치고, 포츠 백작과 전란의 분위기에 휩싸였던 레빈.
이미 피바람은 전부 환기가 됐고, 분위기는 경고만 요란하게 울린 채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 모든 일이 카이 브란트루프가 없던 상황에 생겨나고 해결된 일이었다.
카린의 말에 따르면 카이 브란트루프는 왕가로부터 엄청난 질타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 위험한 상황에 중앙 정치의 중추였던 공작이 자리를 완전히 비웠다는 사실.
카이의 빈자리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그 때문에 왕가에 대한 충성심을 의심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카이 공작이 자리를 비운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하지만 왕가가 그런 우연을 이해해줄까?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공작님께서는 한동안… 아니, 꽤 오랜 시간 곤욕을 치르실 거예요.”
그를 지지하던 귀족들이 대거 참수된 상황.
권력이 약화 되는 것을 넘어서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태연하게 내게 보고하는 카린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괜찮겠어요? 아버지잖아요.”
“훗….”
카린은 테이블에 있던 찻잔을 들어 입맞춤한 뒤, 다시 테이블에 내려다 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저는, 공작님… 아니, 아버지를 사랑해요. 하지만… 아버지는 루이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쏟아부으셨죠.”
처음에는 루이스에게 잘해준 것에 대한 보복심리 때문인가 싶었다.
원래 자식들이란, 부모의 사랑을 더 받고, 덜 받는 것에 꽤 민감해하는 편이니까.
하지만 카린이 품은 카이 공작에 대한 심리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저의 목표는 루이스의 몰락이에요. 하필 아버지가 그 루이스의 뒷배를 봐주고 계시니, 어쩔 수 없이 끌어 내렸을 뿐이에요.”
카린의 1순위 목표는 슈트라의 입학이 아니었다.
슈트라의 입학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진짜 목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카린의 1순위 목표는….
“이 가문을 이어받기 위해서라면… 아버지께 칼을 들이미는 것도 서슴없이 할 수 있어요.”
바로 브란트루프 가문이었다.
살벌한 말이었지만, 나는 카린의 말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얼마나 가문에 집착하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일단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카이 공작이 질책을 피하는 건 불가피하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는 레빈을 쥐락펴락하는 공작이었지만, 지금 그는 그런 힘이 없는 상태였다.
왕가의 눈총을 받는 상황이다.
자신을 두둔해줄 귀족들도 전부 듀라한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도와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네.’
카이 브란트루프의 입지가 약화되는 건 나로서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루이스가 의지하는 인물을 꼽자면 크게 두 명이 있었다.
안나와 카이.
안나는 내 수중에 들어온 상황이었기에 제어가 쉬운 편이었다.
그에 비해서 그동안 카이 공작에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협박하기에는 딱히 빈틈이 안 보였고, 그냥 죽이자니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 상황으로 이제 공작의 미래는 내 손으로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되었다.
2왕자에게 명령해서 외부에서 압박하고, 카린을 이용해서 내부에서 압박하면 그도 어쩔 도리는 없을 것이다.
‘카이 공작… 그 양반도 참 안타깝네.’
[왜요? 동정하세요?]
‘네.’
내가 갑자기 왜 카이 공작을 동정하느냐… 그건….
‘자기 아들 뒷바라지하다가 이 꼴이 난 거니까요.’
루이스를 가문의 자랑이라고 여기저기에 소문내고 다녔던 카이 브란트루프.
그는 자기 아들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뒷방 노인 신세가 되게 생긴 것이다.
그렇게 카이 공작에 대한 동정심과 함께 한 명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루이스도 왔어요?”
너무 존재감이 없어서 지금까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루이스는 마지막에 음경 골절된 상태에서 내가 몰래 먹인 흥분제 덕분에 회복 시기가 늦춰진 것만 기억이 났다.
카린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직 아틀러에 남아 있다고 하네요.”
루이스에게 먹인 흥분제 때문은 아니었다.
흥분제는 일주일간 뇌를 정액에 절여놓을 정도로 강하지만, 설명에 후유증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없었다.
문제는, 휴식을 취해야 낫는 음경 골절이 그 흥분제 덕분에 회복 기간을 대거 늘려 버렸다는 사실이다.
거기다 안나 앞에서 사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멘탈도 좀 나간 것 같고….
“회복은 어느 정도 됐고, 레빈에 올 수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왜 거기 남은 거죠?”
“…아버지께서 일부러 루이스를 그곳에 놓고 오셨어요.”
이쯤 되니 대충 사정이 이해가 갔다.
카이도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레빈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 듣고 부랴부랴 이동했을 것이다.
반역과 전쟁 이야기가 갑자기 들려오니, 함부로 루이스를 데리고 가는 것도 좋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일단 카린 덕분에 모든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카이 공작은 절벽 위에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고, 루이스는 그런 아버지의 사정을 잘 모르고 태평하게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카린은 차를 한 모금 더 마시고는 내게 말했다.
“아틀러로 가신다고 들었어요.”
“네. 저번에 부랴부랴 오느라 구경을 마저 못했거든요. 무엇보다 학장님도 아직 거기에 계시고….”
내 말을 들은 카린은 나를 보며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색 입술을 움직였다.
“저도 따라가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카린의 말대로 그녀는 한동안 정말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수습이란 초기에 고생할수록 나중에 고생하지 않는 법이다.
“대신 알렉산더 왕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아틀러로 향하는 길은 불편함이 없게 해드릴게요.”
“그냥 이동을 위해 마차만 간단하게 준비해줘도 되는데….”
“아뇨. 그건 저희 쪽에서 힘들어요.”
“…?”
힘들게 있나? 그냥 간단하게 준비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당신은 왕가의 은인이에요. 그리고 루나 슈타트펠트는 아직 약식이지만, 백작 작위를 하사받았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나와 루나는 그저 슈트라 학생의 신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분이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왕가의 은인이 되었고, 루나는 슈타트펠트 백작이 되었다.
그런 두 사람이 이동하는데, 왕가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는 게 카린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는 건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요.”
“이유요?”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을 기다리자, 카린은 그런 나를 보며 살짝 무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루이스에게 재미있는 경험을 시켜주기 위해서죠.”
..
..
다음 날, 우리를 기다리는 건 엄청난 숫자의 병사와 화려한 마차였다.
전에 학장과 같이 아틀러로 향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를 포함한 루나도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왕가에서 배려해 준 것이라 선뜻 거절할 수 없었다.
“조심히 갔다 오세요.”
“네. 갔다 올게요.”
나는 카린의 배웅을 받으며 루나와 같이 아틀러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동하는 인물은 나와 루나, 그리고… 소냐 부부였다.
나는 같은 마차에 탑승한 두 사람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제대로 쉬시지도 못하시고….”
사실 소냐와 칼에게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내가 괜히 사건을 계속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한 곳에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까.
하지만 칼은 그런 죄책감을 가진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거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는 오히려 이런 진귀한 사건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칼은 워낙 부지런한 성격이라 그런지 레빈 왕국의 혼란을 직접 경험했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리고 소냐는….
“저희한테 미안해할 거 없어요. 대신… 수호 학생은 안전에 좀 신경 쓰세요. 옆에서 보는 저희가 더 걱정되니까.”
“하하…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내 사과를 들은 소냐는 미소를 짓다가, 황급히 내 눈을 피해서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봤다면 자연스러운 행동 같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가 느끼고 있을 것이다.
소냐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는 사실을….
‘저번에 방에서 혼자 자위하던데….’
영혼 상태로 여기저기 구경 다니다가 소냐의 자위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저번에는 바빠서 신경을 써주지 못했지만, 이제는 여유가 꽤 되는 상황이었다.
‘가보 찾고 나서 바로 상대해줘야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칼과 루나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가는 길은 평탄하기 그지없었다.
저번처럼 포츠 백작을 쫓는 것이 아니다 보니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관광하듯 천천히 이동했다.
그렇게 닷새 간 병사와 시종들의 도움을 받아서 편하게 아틀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틀러의 분위기는 우리가 알던 분위기와 사뭇 달라져 있었다.
전에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시선은 전부 학장에서 쏠려 있었다.
신화 속 인물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시선은….
(저분이 새로운 아틀러의 영주인가…?)
(슈타트펠트라는 단어를 다시 듣게 될 줄이야….)
(빨리 저 분에게 접근할 방법을 모색하세.)
전부 루나에게 쏠려 있었다.
아틀러는 포츠 백작령만큼은 아니지만, 레빈과 북부를 잇는 주요 교역 도시였다.
그만큼 상인들이 넘쳐 나는 곳이었고, 그만큼 정보가 빠르게 퍼져나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인 중에는 루나에게 접근하려다가 병사들에게 제지당하는 녀석도 상당수 있었다.
‘카린이 병사들을 붙여주지 않았으면 귀찮을 뻔했네.’
우리는 병사들 덕분에 무수한 상인들 무리를 뚫고 간신히 아틀러 성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환영받았다.
“소식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슈타트펠트 백작님.”
“감사합니다. 자작님.”
우리를 반긴 건 전에 도적에게서 구해준 자작과….
“루나… 큰일이 많았다고 들었어. 축하해.”
억지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반기는 루이스였다.
루나는 그런 루이스의 모습에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안나 님과 카린 님 덕분이었어.”
“아…. 도,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네.”
생각해보면 루나는 루이스를 좀 귀찮다 정도로 생각하지, 아직 친구의 관계는 잘 유지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엄마랑 누나 신음이 마음에 들었지? 나중에 루나의 교성도 들려주마. 기대해.’
나는 관대한 마음가짐을 지닌 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루이스가 루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갑자기 나를 힐끗 쳐다봤다.
눈동자에서 마치 용암이 터져 나올 것처럼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저 녀석은 지금 나와 루나의 관계보다 나와 안나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중일 것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엄마가 내게 다리를 벌리고 교성을 내뱉으며 오히려 내게 사랑을 속삭였다.
루이스는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다시 표정을 바꾸고 루나에게 말했다.
“루나. 괜찮다면… 잠깐 단둘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둘이?”
루나는 루이스의 단둘이라는 표현에 흠칫 놀라더니, 고개를 돌려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마치 내 허락받듯이….
루이스는 루나의 행동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닦달하기 시작했다.
“루나? 왜 저 녀석 눈치를….”
루나는 내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루이스에게 되레 물었다.
“혹시 급한 일이야?”
“아… 급한 건 아니지만….”
“그럼 나중으로 미뤄도 될까? 먼 거리를 오느라…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할 것 같아서….”
루이스는 루나의 거절에 씁쓸하게 웃으며 수긍했다.
“아… 하, 하긴 그럴 수 있겠네.”
평소의 모습과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내가 아는 루이스는, 거절하는 루나의 모습을 못 마땅해하면서 귀찮게 구는 녀석이었으니까.
“객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안부 인사가 끝난 것을 확인한 시종들이 한 명씩 맡아서 방을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
“…?”
아까까지 루나 앞에서 쩔쩔매던 루이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경멸을 담아낸 표정으로 나를 보는 루이스가 서 있었다.
루이스는 주변에 사람들이 분주한 것을 확인한 뒤, 내게 본론을 이야기했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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