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5)
나는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여성에게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는 내 인사에 오히려 고개를 절레거린 뒤, 내게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저희가 감사해야죠.”
키는 160 후반에 갈색의 긴 생머리를 하고 있는 여자.
복장은 유흥 업소에서 입을 것 같은 옷이 아닌, 레드 카펫을 거닐 법한 현대식의 청순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겉으로 보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순수함을 품은 것 같은 그녀의 직업은….
“제가 운영하는 업소에 저런 황금 거위를 맡겨 주셨는데, 오히려 제가 큰절을 해드려야죠.”
이 매춘 업소를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이 여자를 보고 있자면 세상이 참 재미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서른 살 정도 되어 보였지만, 순수한 모습만 따지자면 비올라와 견줄 정도로 순백이 깃든 듯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 매춘 업소를 쥐락펴락하는 사장이라니….
사장은 내가 뚫어지게 쳐다보자, 마치 진짜 향기를 퍼트리는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머? 왜 그렇게 보시나요? 혹시 보상을 더 원하시는 건가요?”
“아,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얼버무리려고 하자, 사장은 내 말을 무시하고는 앉아 있는 내 어깨에 손바닥을 슬며시 올리며 목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흐응… 포인트만 받고 넘어가시기에는… 저희 쪽에 너무 큰 물건을 줘서 저희가 부담스럽네요.”
“하하하….”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장은 내 상의 안에 손가락을 넣으며 속삭였다.
“제가 좀 더 보상을 드리고 싶은데….”
잠깐이지만, 흔들렸다.
나는 딱히 매춘부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고….
그런데 이 여자는 내 속에 있던 남심을 계속 간질거리며 흔들 정도로 매력이 있었다.
젊은 여자에게 느껴지지 않는 매혹의 향으로 나를 유혹했다.
내가 지금 무방비 상태로 이곳에 방문했다면 이 여자의 유혹에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한여름, 잘 부탁드립니다.”
민하연과 이미 한번 섹스하고, 심지어 기절한 상태이지만 민하연이 침실에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아직 머릿속에 머물고 계신 현자 덕분에 거절할 수 있었다.
내가 일어서서 인사를 건네자, 여자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럼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최대한 포인트를 많이 내는 고객분들 위주로 받을게요.”
어떤 손님을 받았는지까지는 나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다.
내가 일일이 그런 것을 정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내가 이 여자와 계약했을 당시에 기본적인 조건을 몇 가지 달아놓은 상태였었다.
“포인트를 많이 주면서 소프트한 취향이고, 성별은 무조건 여자여야 한다… 맞죠?”
“네. 그것만 지켜 주시면 누구든 상관없어요.”
이런 걸 보면 나도 참 착하다.
남자에게 후장이 따이는 상황은 만들지 않아 줬잖아.
‘뭐, 못생긴 여자나, 아줌마 상대하는 건 내 알 바 아니고….’
일단 여기서 내가 할 일은 끝났다.
“그럼 밤마다 한여름 씨가 이곳에 방문하시면 성수호 씨가 제시한 조건에 맞는 최상의 손님을 받게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로써 한여름은 낮에는 도박을 하고, 밤에는 몸을 팔게 되었다.
비록 도박보다 큰 포인트를 벌 수는 없겠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욕구 불만도 해결해주고… 난 노예 주인으로서 최고인 거 같아.’
[….]
나는 나르시시즘을 느끼며 사장실을 나오려고 했다.
그 순간….
“혹시….”
“…?”
업소 사장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내게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원하시면 언제든 들러주세요. 당신을 위한 맞춤 서비스를 준비해드릴 테니까.”
“…알겠습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사장실을 나왔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여름이라는 인물이 탐나는 건 업소 사장으로서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한여름은 남자인 내가 봐도 존나 잘생긴 새끼인 건 분명했으니까.
그런데 한여름을 넘겨줬다고 저렇게 끈덕지게 달라붙을 이유가 될 수 있나 싶었다.
그런데 내 의문을 아르모니아가 해소해줬다.
[이미 수호 님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정보?’
[수호 님께서 콜로세움 우승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아하….’
아르모니아의 말대로라면 저 여자가 내게 달라붙는 이유가 납득이 갔다.
[골목길 같은 곳이 아닌 이런 곳에서 터를 잡고 업소를 운영하는 여자입니다. 정보력이 뛰어날 것입니다.]
무엇보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업소를 운영하는 여자라면 정보력 이상으로 상황판단력도 좋겠지….
막상 이렇게 생각하니, 기질창을 보고 싶어졌지만….
‘나중에 다시 만나면 기질창이나 한번 보자.’
지금 당장 다시 만나러 가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또 가면 그만이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호텔로 향했다.
도착한 호텔 방에는….
“흐으….”
민하연이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잠들어 있었다.
아직도 눈가리개와 귀마개가 민하연의 모든 정보 신호를 차단하고 있었었다.
“후우… 한 번 더 해볼까?”
나는 그런 민하연의 모습에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내가 옷을 벗기 시작하자, 강한나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여름 쪽 해결하면 바로 복귀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려고 했는데….’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사지가 묶인 민하연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흐응!? 누, 누구!? 아… 수, 수호구나….”
나는 안절부절못하며 신음을 흘리는 민하연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며 흥얼거렸다.
‘이걸 보고 그냥 넘어가면 고자죠.’
[….]
그렇게 나는 민하연과 제대로 섹스를 한 뒤, 함선으로 복귀했다.
..
..
함선에 복귀하고 나서 우리는 바로 간부 회의를 진행했다.
“이렇게 모으게 된 이유는 다음 임무지를 주제로 회의하기 위함입니다.”
넷이 모여서 토론한 주제는 다음 행선지에 관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굳이 행선지에 관한 회의를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 위그드라실, 영사관, 슈트라 순으로 임무를 나가는 게 정석이었고, 위그드라실 다음 행선지는 자연스럽게 영사관이 돼야 했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임무지에 관한 회의를 하느냐?
그건 바로 위험도 때문이었다.
제일 먼저 의견을 낸 건 강한나였다.
“영사관 쪽은 한동안 미루는 게 좋을 거 같아요.”
“….”
사실 아르모니아와 단둘이 있을 때도 나왔던 이야기였다.
영사관 특성상 내 능력보다 뛰어난 녀석들이 많다 보니 돌발 상황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도 한동안 다른 곳에서 힘을 기르는 게 어떠냐는 식으로 말이 나온 것이었었다.
그럼에도 계속 강행하며 영사관에 간 이유는 단순했다.
“위험하다고 무작정 피하는 것도 좋지는 않을 거 같은데….”
안정 지향도 마냥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르모니아도 내 생각을 이해해서 그런지 딱히 제지하지 않았고….
하지만 강한나의 참여로 상황이 변했다.
“안전 지향이 좋지 않다는 건 저도 동의해요. 하지만 위험도가 높은 곳을 서슴없이 가는 것도 저는 동의할 수 없어요.”
강한나의 의견에 옆에 앉아 있던 레나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인님.”
레나도 합세해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저를 포함해서 비올라 씨와 베아트리체 씨가 합세한다면 어떠한 위기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레나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서글픈 눈으로 남은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의 대응이 늦어서 주인님 목숨이 위험해지게 되면 저희 모두 절망할 것입니다.”
“….”
나를 향해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는 레나의 시선이 부담된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하자.”
“그럼 이제부터 한동안 영사관에는 들르지 않는 것으로 조디악 측에 설명해 놓겠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영사관에 들르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간부 회의를 마친 뒤, 강한나와 레나가 집무실을 나갔고, 나와 아르모니아가 남아서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정리를 시작했다.
“일단 이번에 오른 레벨이 오른 스킬은 아쉽게도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빙의술]이었다.
고작 해봐야 레벨 2에서 3으로 오른 수준이었지만, 딱히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전설 스킬이라 쉽게 오르는 녀석도 아니고….
“하연이랑 다른 애들 스킬 레벨 올려준 다음에 내 스킬 레벨도 올려야겠네.”
한여름 덕분에 전설 레벨은 큰 걱정이 없었다.
비록 포인트로는 내 직업 전용 스킬 레벨만 올릴 수 있어서 아쉽지만 그게 어디인가….
다음 주제는 에넬이었다.
“100만 에넬을 받았습니다.”
“와… 이번에는 좀 많네?”
“보고서가 만족스러웠던 모양입니다.”
100만 에넬을 받아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에넬은….
“195만 에넬이 있습니다.”
거진 200만 에넬에 근접하는 수치였다.
우리는 여기서 슬슬 결정해야만 했다.
“좀 더 모을까?”
“….”
내 물음에 아르모니아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 채 고민하는 듯싶었다.
지금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건 스킬 레벨이 아니었다.
워프 기능이었다.
임무지에서 워프로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함선을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존재했다.
즉,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워프 횟수를 강제로 두 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직통 기능이 뚫린다면 워프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문제는….
“아직 100만 에넬이 더 필요합니다.”
그 기능을 뚫기 위해서는 300만 에넬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아르모니아의 말에 잠시 침묵했지만, 그럼에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100만 더 모으자.”
“…알겠습니다.”
아르모니아도 쉽게 결정을 못 내렸지만, 딱히 반박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현재 영사관을 제외하고는 레벨을 올려야 하는 강박감이 느껴지는 곳은 없었다.
조디악에게 두 차례 정도 에넬을 받으면 순조롭게 워프 스킬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르모니아와의 단독 회의를 마쳤다.
..
..
영사관을 패스하기로 하면서 다음 임무지는 자연스럽게 슈트라로 결정되었다.
저번 슈트라의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아틀러 성에 성불하지 못한 루나의 부모님을 만났다.
두 사람에게 슈타트펠트 가문의 역모 누명을 씌운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레빈으로 가서 누명을 씌운 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했다.
누명의 주역은 1왕자와 포츠 백작이었다.
이리스 공주도 어느 정도 죄가 있긴 했지만, 고의가 아니었으므로 적당한 선에서 용서해줬다.
그야, 그 용서를 눈물 하나로 퉁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이리스 공주를 제외한 1왕자와 포츠 백작 세력을 전부 잡은 뒤에 사형시켰고, 제프 포츠는… 아직 노예 국가로 향하는 중일 것이다.
그 뒤에 루나는 정식으로 슈타트펠트 가문의 복권과 슈타트펠트 백작 직위를 하사받았다.
다만, 레빈 국왕은 약식으로 치러진 것이 아쉬웠는지 루나가 슈트라로 돌아가기 전에 정식으로 공표해주겠다고 내게 말해줬다.
즉, 표면상으로 보면 루나와 관련된 모든 사건은 해결됐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단 하나만 빼고….
나는 워프를 이용해서 레빈에 도착한 뒤, 바로 루나를 찾아가서 대화를 나눴다.
“루나. 아틀러에 다시 가보지 않을래?”
“아틀러요?”
루나가 내 말에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가는 건 괜찮은데… 최근에 사건에 많이 휘말리셨잖아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좀 더 쉬고 가시는 게….”
오오… 루나가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하긴 루나의 입장에서는 내가 피곤해 보일만 했다.
레빈 성에서 반역 사건에 휘말리고, 포츠 백작과의 사건에도 휘말렸으니까….
하지만 그건 루나의 시선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였다.
‘위그드라실에서 여기로 오느라고 이틀간 쉬어서 오히려 심심한데….’
나는 지금 오히려 많이 쉬어서 답답한 상황이었다.
현재 레빈 왕궁과 포츠 백작령의 뒷수습은 카린과 2왕자가 도맡아서 해결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카린을 귀찮게 할만한 귀족들도 처리했고, 2왕자는 무조건 내 말에 복종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그야 여기에 남아서 태평하게 루나와 밤낮 구분 없이 데이트를 해도 좋긴 하겠지만….
“저번에 부랴부랴 갑자기 떠났잖아. 좀 아쉬워서….”
“그야 그렇지만….”
루나는 자신의 귀찮음이 아닌 내 몸을 걱정하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루나의 마음을 꺾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최후의 필살기를 담은 목소리로 루나의 귓속에 속삭였다.
“여기는 어수선하잖아. 아틀러는 아직 조용하니까. 둘이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쉬자.”
루나는 내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락했다.
“아… 그, 그럼 가죠.”
그렇게 루나의 허락이 떨어졌고, 우리는 다시 아틀러로 향할 준비를 했다.
드디어 마지막 문제를 해결할 차례였다.
‘가보… 이번에는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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