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그드라실 (5)
전날, 한가을의 안내를 받아서 구경했던 콜로세움에서 결투에 도움이 되는 것을 몇 가지 배웠다.
첫째.
콜로세움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
아니, 문제가 없다는 수준이 아니라, 권장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알아낸 좋은 정보는….
“케에에게!”
아까까지 까불거리던 건달 녀석이 입을 틀어막은 채 뒤로 나자빠져 버렸다.
나는 뻗은 손을 다시 거둬들이며 멀찍이 서 있는 심판을 바라봤다.
아까까지 무표정이던 심판은 놀란 표정으로 뒤로 나자빠져서 괴기한 목소리를 흘리는 건달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끼에에에게!”
“내 조언이 마음에 들었냐?”
나는 바닥에 나뒹군 건달을 바라보는 심판을 보면서 물었다.
“포기 선언 못하면 계속 진행 맞죠?”
“그… 그게….”
아까까지 하품을 흘리며 여유만만이던 심판은 나를 보며 눈동자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항복 선언이 없으면… 경기는 중간에 멈추지 못한다.”
“알겠습니다.”
내가 알아낸 두 번째 정보.
그건 바로 둘 중에 한쪽이 죽거나, 포기 선언을 해야지 경기가 종료된다는 사실이었다.
어제 피떡이 되도록 맞은 도전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분명 몸짓으로 항복 의사를 보내고 있음에도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해서 죽을 때까지 말을 내뱉지 못했다.
결국 온몸에 주먹질을 당한 뒤, 죽고 나서야 경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펼치는 D 등급 결투도 어제 봤던 결투와 규칙이 다르지 않았다.
제한 시간 빼고….
‘10분은 좀 짧지만… 어쩔 수 없지.’
건달의 능력은 고작 해봐야 단검술 하나.
항마력도 없던 녀석은….
“케에에에엑!!”
입 안에 들어간 화염구 덕분에 입안이 전부 녹아내려서 제대로 대사를 못 내뱉었다.
천천히 다가가자, 바닥에 쓰러진 채 뒤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케에엑! 하… 하….”
녀석은 괴로움을 버텨내며 어떻게 해서든 항복 선언을 입 밖으로 내뱉으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는 안 되지.
“어이쿠!”
파치치칙!
나는 전격을 쏘아서 녀석의 입에 맞춰버렸다.
“푸케엑!”
화염구로 녹아내렸던 입 안에 뭉쳐 있던 핏덩이들이 내 새하얀 전격에 주변으로 터져나갔다.
“케에엑!”
입을 틀어막고 켁켁 거리는 녀석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 뒤, 내려다보며 녀석의 상태를 확인했다.
건달이 들고 있던 단검은 녀석의 손을 벗어나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녀석이 할 수 있는 행위라고는 입을 틀어막고 나를 향해 애원하듯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케엑! 케엑!”
나는 애원하듯 바라보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야, 뭐라고?”
“케엑! 케엑!”
나는 나를 향해 케엑 거리는 녀석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외쳤다.
“말을 똑바로 해야지 알아듣지!”
파지지지직!
“케에에엑!!”
입에 전격을 맞은 건달은 또다시 사방에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입을 중점적으로 전격을 쏘아댔다.
“응!?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제대로 해야! 내가 알아들을 거 아냐!”
파지직!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케엑! 커억! 푸크흐으윽!”
이미 입 부분은 사람의 입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뭉개진 상태였었다.
녀석은 도저히 못 버티겠다는 식으로 심판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케에엑!”
나는 그렇게 심판을 보며 달려드는 녀석을 향해 외치며 다시 마법을 난사했다.
“사람이 이야기하면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해야 할 거 아냐!”
나는 심판에게 달려드는 건달의 눈에 전격을 지져버렸다.
“푸크으으윽!”
녀석은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이번에는 눈을 부여잡으며 뒹굴기 시작했다.
녀석의 모습에 우리를 지켜보던 적은 관객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실력 좋은데!”
“오늘 저녁까지 계속 이겨서 출전하면 너한테 포인트 걸겠어!”
인원은 얼마 없지만, 막상 이렇게 응원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승부욕이 이런 곳에서도 생겨나네.’
나는 그렇게 속으로 흥얼거리며 바닥에 쓰러진 채 아등바등하는 건달 녀석의 상태를 확인했다.
“케으윽!”
입에 이어서 두 눈까지 잃은 녀석….
나는 녀석의 귀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인벤토리에서 천천히 활과 화살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직 8분 남았으니까 기대해.”
“케에엑!”
나는 남은 시간 8분 동안 그전에 맛봤던 2분이 천국이었다는 사실을 녀석에게 깨닫게 해줬다.
..
..
나와 민하연은 몇 차례 경기를 치른 후, 휴식 시간에 다른 멤버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한봄은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보며 쓰게 웃었다.
“아… 그래서 아저씨가 그렇게 심하게 굴었던 거구나.”
한봄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의아해했다고 말했었다.
내가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그렇게 과격한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는 것이었다.
특히 첫 경기에서 나는 10분간 녀석에게 생지옥을 맛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처참하게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동료라고 해도 좀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고 나서 해명하자, 멤버들은 내 말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쌤통이네.”
“역시 사람은 속사정을 전부 알아야 한다니까?”
다들 웃으며 토너먼트전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두 사람은 이제 C등급 된 거야?”
“응.”
나와 민하연은 오전 일찍 D등급 소환사들과 치고받고 싸워서 C등급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C등급 소환사들의 경우에는 D등급과 다르게 나름 쾌적한 대기실에서 쉴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개인실 수준의 대우는 아니고, 어디까지나 아까보다 환경이 쾌적한 수준에 불과하긴 했었다.
개인실을 마련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A등급뿐이었다.
“뭐… 두 사람이라면 오늘 안에 A등급은 충분히 찍겠네.”
“다른 건 몰라도 A등급 찍으면 나중에 출전 때도 그만큼의 대우받아서 찍어놓으면 편하겠더라.”
콜로세움의 등급은 한번 찍어놓으면 평생은 아니지만, 한동안 계속 유지되는 시스템이었다.
거기다 등급을 찍어놓고, 유지되는 동안에는 아까처럼 D등급 전을 위해 오전 일찍 출전할 필요도 없었다.
만약 오늘 A등급을 찍어놓는다?
콜로세움에 와서 토너먼트전 신청서만 넣고, 저녁부터 치르는 A등급 전 시간에 맞춰서 오기만 하면 된다.
여차하면 아예 A등급 개인실에서 종일 휴식을 취하며 기다려도 되고….
그렇게 모여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C등급 전 시작합니다! 참가자는 대기실에 모여주세요!)
나는 그 말에 반응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C등급 전 시작하려나 보네.”
“우리는 다시 관객석으로 갈게! 이번에도 아저씨랑 언니한테 포인트 걸 테니까 꼭 이겨!”
한봄은 싱글벙글 웃으며 다른 멤버들을 데리고 관객석으로 돌아갔다.
멤버들이 떠난 것을 확인한 나와 민하연은 C등급 대기실로 향했다.
그렇게 대기실로 향하는 중에 민하연이 넌지시 나를 불렀다.
“수호야.”
“응?”
민하연이 한숨과 함께 나를 올려다보며 한마디를 건넸다.
“너무 흥분하는 것도 자제하는 게 좋을 거 같아.”
“흥분?”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민하연이 뒤에 한 말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아까처럼 얼간이라면 괜찮지만, 만약에라도… 너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놈이 있을 수 있잖아.”
그런 녀석을 상대로 흥분했다가 내가 위험에 처할까 봐 걱정된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흥분한 이유도 걱정하는 요인 중의 하나였다.
“나랑 봄이는 여기 오기 전에도 그런 놈들 수없이 만나왔었어.”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양궁 미녀로 유명한 민하연과 내 기준에서 최고의 미녀로 자리 잡은 한봄이다.
두 사람이 같이 길거리에 돌아다니면 숨을 쉬는 횟수보다 많은 남자의 시선을 받을 것이고, 몇 발자국 걷지도 못한 채 계속 남자들이 추근덕거렸을 것이다.
“봄이도 나랑 같은 생각일 거야. 여기서는 우리 기분보다는 네 안전을 신경 썼으면 좋겠어.”
“내 안전이라니… 내 실력 못 믿어?”
“아니… 너무 잘 믿어.”
민하연은 멈춰 선 뒤, 내 등을 껴안기 시작했다.
민하연의 앞으로 튀어나온 가슴이 내 등으로 세차게 밀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내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해도… 그런 실력을 지닌 네가 다치는 상황이 올까 봐 무서워.”
“….”
나를 믿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걱정이란 그런 존재다.
믿음이 계속 올라갈수록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도 끝없이 늘어나는 법이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껴안은 민하연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알았어. 주의할게.”
“…정말이지?”
나는 나를 뒤에서 껴안고 있던 민하연의 팔을 풀고 정면으로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내가 뭣 하러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알았어.”
민하연은 평소와 다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와 같이 C등급 대기실로 향했다.
나는 분명 민하연과 약속했다.
‘이번에는 최대한 참아봐야지.’
하지만 그 약속은….
“오오! 상등품인데!?”
“….”
C등급 대기실을 들어가자마자 모래성처럼 서서히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
..
“케흐으윽!”
나는 쓰러져서 바둥거리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한마디를 흘렸다.
“왜 그래? 하연이 마음에 들려면 이 정도는 버텨야지.”
“커억! 케엑!”
녀석은 아까 건달과 마찬가지로 입 안이 녹아내렸는지 항복 선언도 못한 채 도망칠 뿐이었다.
‘C등급이라 그런지 D등급보다는 좀 낫네.’
[그렇습니까? 제 기준에서는 둘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하긴 삼자가 보면 이 상황은 아까와 별 다를 바 없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까 녀석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도망치잖아. 그것만으로도 낫다고 할 수 있지.’
[….]
나는 그렇게 도망치는 녀석을 보며 대략적인 평가를 마친 다음 녀석의 다리에 화살을 쐈다.
파앗! 콰직!
“흐케에엑!”
녀석은 다리에 화살을 맞고는 바닥에 쓰러졌고, 처음 화염볼 사탕을 맛볼 때처럼 감동하기 시작했다.
다리에도 미각세포가 분포되어 있나 싶을 정도로 좋아하고 있었다.
나는 쓰러져서 바둥거리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너 아까 뭐라고 했더라?”
“케에엑!”
남자는 내가 뒤에 내뱉을 말은 모조리 부정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피 튀긴다. 이 녀석아….
나는 미간을 좁히며 녀석이 아까 민하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읊어줬다.
“너한테 붙으면 마지막 층까지 안전하게 올려다 준다고 했지?”
“케에엑! 케으윽!”
“거기다 하연이한테 좆같은 소리도 했고?”
“케으으윽!!”
녀석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피를 내뿜었다.
아씨 더럽게 시리….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녀석에게 말했다.
“내가 볼 때는 네 안전부터 신경 써야겠는데? 어떻게 생각해?”
“케에엑!”
남자는 고개를 미친 듯이 흔들며 내 말에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을 해왔다.
문제는….
“아니! 씨발 피 좀 적당히 튀겨!”
나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의 입에 화살 하나를 쏘아 넣었다.
파앗! 콰직!
그리고 녀석은 단말마를 내뱉으며….
“커어억!”
“아… 실수.”
내가 쏜 화살이 입 안에 박힌 채 사망해버렸다.
..
..
민하연은 나와 같이 B등급 대기실에 들어오며 투덜거렸다.
“하아… 약속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사실 약속 자체는 잘 지킨 편이라고 자신했다.
분명 대기실 안에서 트러블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저 민하연에게 추근덕대던 녀석과 싸우게 되어서 교육을 시켜줬을 뿐이었다.
하지만 민하연의 기준에는 D등급 소환사와 싸웠을 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어차피 실력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야 그렇지만….”
민하연은 내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기보다는 정말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나는 그렇게 걱정하는 민하연에게 쓰게 미소를 지어준 뒤, 주변을 둘러봤다.
B등급 대기실.
D등급, C등급 대기실과 다르게 2인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민하연은 대기실을 둘러보면서 투덜거리던 표정을 지우고는 감탄하기 시작했다.
“와… 대우가 확 달라졌네.”
나도 그 부분이 신기했다.
등급 하나 올랐을 뿐인데, 갑자기 대우가 완전히 뒤바뀐 느낌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가지 깨달을 수 있었다.
“B등급부터는 실력 좀 있는 녀석들이 나오겠지?”
민하연은 지금까지 전설 직업 능력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승승장구한 상황이었다.
써도 문제는 없겠지만, 나와 다르게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히든카드를 최대한 숨기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나는 걱정하는 민하연의 어깨를 양손으로 감싸며 실실 웃었다.
“하연이, 네 실력이면 A등급도 무난하게 이길 거야. 내가 볼 때는 그 지배자 녀석도 이길 것 같고.”
“….”
민하연은 고개를 슬며시 돌려서 등 뒤에서 감싸고 있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강해진 건 누구 덕분일까?”
민하연은 그렇게 말한 뒤, 한마디 덧붙였다.
“B등급 결투는… 한 시간 뒤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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