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639화 (639/898)

위그드라실 (5)

한여름이 처음 3층에 왔을 때, 느꼈던 감정은 절망이나 굴욕이 아니었다.

‘여, 여기가 어디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뿐이었다.

분명 2층 던전에 들어가서 손혜은이 거울에 붙잡힌 것까지는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눈을 뜨니, 웬 숲에 덩그러니 놓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한여름의 굴욕을 즐기는 채널의 존재들에 의해서 이해를 주입받을 수 있었다.

└야, 정신 차려.

└하아… 이번에는 좀 죽여주지….

└이 새끼, 이상하게 목숨줄은 기네.

채널의 존재들은 한여름에게 사정을 대충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뒤늦게 거울에 갇히고… 성수호에게 농락당하고… 심지어 억지로 3층으로 올라왔다는 사실을….

그 이후, 한여름의 행동은?

‘씨발!!!’

비명을 지르며 절망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자살한 그에게 돌아온 건 회귀가 아닌, 5시간 같은 5분이라는 고통의 시간뿐이었다.

그리고 그 5분 후에 돌아온 보답은….

‘아냐!! 아니라고!!!’

회귀 지점이 변경되었다는 사실 뿐이었다.

소설과 게임 속에서 회귀자가 불행하다는 말을 볼 때마다 비웃어대던 한여름이었다.

언제나 누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회귀자들.

회귀를 이용해서 쾌락과 탐욕을 즐겨도 모자랄 판에 멍청하게 희생하며 지옥을 맛보는 주인공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3층에 올라온 한여름은 뒤늦게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쾌락도, 희생도 없는 회귀로 진짜 지옥을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몇십 번의 자살을 겪고 나니 힘이 빠졌고, 힘이 빠진 타이밍에 성수호와 멤버들이 나타났다.

한심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성수호.

그리고 그 옆에서 자연스럽게 붙어 있는 민하연과 한봄.

차라리 회귀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진작에 모든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여름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회귀만 있으면… 분명 올 거야.’

그리고 그렇게 희망과 굴욕이 지저분하게 섞인 감정을 품으며 성수호의 뒤를 조용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유희 도시, 텃세, 그리고 한가을….

한여름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가을을 보자마자 바로 고개를 돌려서 자기 옆에 있던 남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성수호는….

‘이 원숭이 같은 새끼가!’

사냥감이 나타났다고 기뻐하는 듯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이후에 한가을과 어떻게든 대화를 진행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심지어 한가을은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한여름만 빼고 대화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한여름은 파티원들이 보는 앞에서 냉대받자, 참지 못하고 가게를 뛰쳐나갔다.

그렇게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머리를 식히고, 가게로 돌아가니….

‘뭐, 뭐야? 다들 어디 갔어?’

가게는 닫혀 있었고, 내부에는 이미 아무도 없어 보였다.

한여름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채널의 존재들이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버림 받은 거 같은데?

└한여름. 너는 다음 시즌뿐만 아니라, 전 시즌 내내 유명한 인물로 남을 거 같다. 별자리 하나 만들어주리?

└ㅋㅋㅋㅋㅋㅋㅋ

한여름은 채널 존재들의 조롱에 머리카락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한여름이 분노하며 외쳐봤자, 그들에게 더 큰 보상밖에 되지 않았다.

한여름을 응원하던 녀석들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직 한여름이라는 비극의 주인공을 보며 즐기는 제4의 벽 너머의 존재들 뿐이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던 한여름은 자기 손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금색 머리카락이 한 움큼 쥐어져 있었다.

└탈모 조심해라…. 신도 대머리는 해결 못했어.

└갑자기 왜 숙연해지는데? ㅋㅋㅋㅋ

다들 웃고 떠드는 와중에 한 명이 한여름의 눈을 솔깃하게 만드는 채팅을 썼다.

└야. 너 운 좋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거기 가보지 그래.

└아, 여기 그거 있었지?

거기?

채팅을 무시하려는 한여름의 눈에 들어온 단어는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한여름은 대답해준 채팅에 대꾸도 하지 않고 그대로 달려서 채널의 존재가 말해준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소를 찾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기… 여기야!”

한여름을 위그드라실 처음으로 희망이 담긴 목소리를 외치며 카지노 안으로 들어갔다.

***

<잭팟! 잭팟입니다! 이번 소환 시즌 첫 잭팟이 터졌습니다!!!>

내 불안한 생각이 적중하지 않길 빌었다.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며 카지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한가을의 외침.

“잠깐만요! 야! 거기서!”

누가 보면 소매치기인 줄 알겠네….

지금 당장 한가을에게 신경 써줄 상황이 아니었다.

무슨 상황인지 직접 가서 확인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니까.

그 넓은 카지노에서 잭팟이 터진 장소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잭팟이 터진 장소를 마치 안내하듯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렇게 사람이 몰린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바로 민하연과 한봄을 찾기 시작했다.

‘아… 드럽게 많네.’

카지노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몰려온 탓에 외모가 특출난 두 사람을 찾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가서 간신히 민하연과 한봄을 찾을 수 있었다.

“수호야.”

“아저씨.”

두 사람이 씁쓸한 얼굴로 나를 맞이해줬고….

“벌써 소식 듣고 왔냐? 귀 하나는 진짜 밝은 놈이네.”

한여름이 슬롯머신 앞에 다리를 꼬고 자신만만하게 앉아서 나를 맞이해줬다.

..

..

잭팟 당첨금은 3,000만 포인트.

분명 어마어마한 수치의 포인트였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물가를 자랑하는 카지노에서 터진 잭팟치고는 작은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심지어 게꼬수의 말에 의하면 저 슬롯머신의 잭팟은….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캬… 시즌 중에 안 터지는 경우도 있다던데. 이걸 직접 보네.

소환 시즌당 평균 한 번 정도 터트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잭팟이 고작 3천만 포인트뿐이라….

한여름이라면 또 잭팟을 터트리면 되니까 딱히 신경 쓰지는 않겠지.

그만큼의 운이 있는 녀석이니까.

하지만 그의 잭팟 행운은 회귀 한 회차에 1번이 한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아냐고?

주변에서 한껏 슬롯머신을 하던 녀석들이 자리를 뜨면서 하는 말로 알 수 있었다.

“에이 씨발! 내가 당첨될 줄 알았는데!”

“한동안 다들 슬롯머신은 쳐다보지도 않겠네.”

“지금 잭팟 터지면 몇 포인트도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잖아….”

잭팟 정산금이 0원이 된 시점에서 한여름이 또 잭팟을 터트려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산금이 적은 이유도 대충 알 수 있었다.

[슬롯머신 자체가 적은 포인트를 써서 돌릴 수 있는 구조라서 그런 거네요.]

이 미친 물가를 자랑하는 도시의 카지노도 슬롯머신만큼은 적은 포인트로 즐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즉, 하루 생계비를 제외하고 남은 잔돈을 이용해서 즐기는 곳이 바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슬롯머신이라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잭팟 정산금이 적었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진 건 아니었다.

‘저 새끼 바로 본격적으로 카지노 게임 땡기러 가네.’

아까까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던 한여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한여름이 밥도 먹지 않고 카지노를 돌아다니며 따낸 금액은….

‘3천만 포인트….’

잭팟 포인트를 말하는 게 아니다.

잭팟 이후, 한여름이 한 시간 동안 카지노에서 따낸 순수 포인트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0층에서 한여름을 봐왔기 때문에 운이 좋다는 건 대충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나태함을 지워줄 정도로 작은 위기감을 불어 넣어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하지만 지금 한여름의 모습은….

‘진짜 날아다니는구만….’

내 눈에 지금까지 만난 녀석 중에 제일 위험한 녀석으로 변질하여 있었다.

민하연과 한봄이 내게 다가와서 속삭이기 시작했다.

“수호야. 어떡하지?”

“아저씨, 이대로 가면 1억도 우습게 돌파할 거예요….”

한봄의 말대로 이 정도 속도라면 4천만 포인트도 우습게 거둬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가만히 지켜보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디까지 뽑아낼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

이곳은 그저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드는 도박장이 아니다.

명색이 카지노라는 이름을 달고 운영하는 도시의 주요 수입처이다.

그런 곳에서 한 유저가 무제한으로 돈을 뽑아 먹는다?

분명 한도가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내 말과 동시에 검증이 되었다.

한여름이 신나게 블랙잭을 하는 사이에 그의 양옆에 몇몇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직위가 제일 높아 보이는 노인이 한여름에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재미있게 즐기셨습니까?”

“아… 설마 벌써? 나 아직 3천만 포인트밖에 안 됐는데?”

한여름의 태연한 모습을 보니, 이런 일을 자주 겪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여름의 짜증이 서린 표정에도 노인은 미소를 잃지 않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좀 더 좋은 시설로 안내해드리고자 할 뿐입니다.”

“…좋은 시설?”

한여름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노인이 소켓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한여름에게 건넸다.

붉은색 카드.

“VIP 카드입니다.”

노인의 말에 한여름이 솔깃하며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 카드를 소지한 자는 카지노에 있는 호텔과 레스토랑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고, VIP 고객 전용 카지노를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단….

“대신 이 카드를 소지하시면 더 이상 일반 카지노는 이용할 수 없으십니다.”

“흐응… 싫다면?”

“아쉽지만, 저희의 제안은 딱 한 번 이루어지고, 무엇보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위협적인 표정을 지으며 한여름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둘러싼 모습을 확인한 노인이 입을 열었다.

“카드가 없어도 이용을 못 하시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쯧… 알았어!”

한여름은 노인에게 카드를 획 낚아채더니, 카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영구 귀속에… 파기랑 드롭 불가….”

즉, 한번 소지하면 어떤 식으로든 떼어낼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노인은 한여름이 카드를 소지한 것을 확인한 뒤, 미소를 지으며 팔을 옆으로 뻗으며 입을 열었다.

“VIP 회원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한여름이 자신만만하게 일어서더니, 나와 멤버들을 힐끗 본 뒤에 노인에게 말했다.

“아, 내 동료들도 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민하연, 한봄과는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짜 대단한 놈이네….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저러는 걸 보면….’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지, 한여름 입장에서는 지금이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할 것이다.

회귀와 운을 완벽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소.

자신의 입지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

여기서 어떻게 해서든 나와 두 사람을 떨어뜨리고 싶겠지.

한여름의 말에 노인은 미소를 잃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VIP 고객 전용 카지노는 VIP 고객님의 지인도 동행할 수 있습니다.”

노인의 말을 들은 한여름은 흡족하게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

한여름은 성수호 일행이 서 있는 곳까지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하연아. 한봄. 가자.”

“….”

한여름의 말에 민하연과 한봄은 바로 성수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단번에 마음을 돌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위그드라실에서 아무리 포인트가 중요하다고 해도 그만큼 실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한여름이었다.

심지어 성수호는 케르베로스를 상대하며 자신의 실력을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왜 당연하다는 듯이 저 새끼 눈치를 보는 건데!’

민하연과 한봄은 자신들의 의사보다 성수호의 의사가 더 중요하다는 듯이 성수호의 눈치를 보는 것이었다.

그렇기 성수호의 눈치를 보던 두 사람은….

“아니. 나는 별 관심 없어.”

“애초에 내가 카지노 가는 거 봤냐? 너나 잘 놀아라.”

“….”

한여름의 제안을 당연하다는 듯이 튕겨내 버렸다.

두 사람의 행동에 순간 흥분이 차오르던 한여름은 눈을 감고 차분하게 진정하기 시작했다.

‘흥분해봤자 의미 없어. 이제 회차부터는 한번 한번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진행해야 해.’

회귀는 분명 사기다.

하지만 한여름의 회귀에는 한가지 결점이 존재했다.

바로 회귀 지점이 변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무식하게 회귀를 이용한 끝에 한여름은 벌을 받았다.

그 벌은 지금도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한여름은 최대한 진정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번이 성수호를 망가뜨릴… 아니,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어.’

그렇게 생각한 한여름은 팔짱을 낀 채 성수호를 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때? 너는? 같이 가볼래?”

한여름의 제안을 받은 성수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겠네.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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