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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 학교 슈트라 (4)
일단 영혼들에게 적의나 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맙소사….)
(얼마 만이야?)
(다시는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적의나 살의는커녕 경계심조차 느껴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영혼들을 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아르모니아에게 통신으로 말했다.
‘기질창 좀 보여줘.’
[알겠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과 함께 주변에 있는 영혼들 머리에 기질창이 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질창을 보고 나서 이 영혼들의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넬로 슈타트펠트, 로이 슈타트펠트, 하인츠 슈타트펠트….
‘루나의 선조들이네.’
묘지에 있으니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제로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사람이 죽으면 그 안에 있는 영혼은 자연스럽게 사후 세계로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들만 유독 사후 세계로 가지 못하고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내가 의문을 가지며 주변을 둘러보자….
(저 친구 우리가 보이는 건가?)
(에이, 설마….)
(진짜 보는 거 같은데?)
처음에는 그저 남녀가 같이 있는 모습에 호기심을 보였다면 지금은 내 시선을 신경 쓰며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대화부터 걸어보자.’
영혼들에게 살의는커녕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들은 루나의 선조들이다.
기질창을 봐서 이미 알고 있지만, 겉으로 봐도 악한 인물들로 보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이불 밖으로 나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흐응….”
루나가 잠결에 내 손목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루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은 뒤 손목에서 풀고 이불을 덮어줬다.
‘차단 마법 없이 영혼이랑 대화하다가 들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루나한테 그런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루나를 놓고 방의 빈공간으로 이동했다.
원체 넓은 공간이라 굳이 방 바깥으로 나갈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적당히 잡은 자리에서 바로 차음마법을 펼쳤다.
그 순간이었다.
영혼들은 내 마법을 보자마자 능글맞은 표정을 싹 지운 뒤, 기겁하는 표정으로 바꾸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어!? 뭐야? 마법진이 그냥 튀어나오네?)
(저 친구가 한 건가?)
(요새 저런 기술도 개발됐어?)
마법사 가문이라 그런지 마법에 관한 주제에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갑자기 엄청 시끄러워졌네….’
나는 바로 그들의 대화를 자르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우리를 보던 게 진짜였네?)
“네. 볼 수도 있고, 말도 들을 수 있어요.”
처음에는 다들 내가 영혼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 했다.
하지만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도 잠깐이었다.
(아까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야, 우리 중에 마지막으로 여기에 온 애가 누구였더라?)
(접니다.)
(아, 네가 마지막으로 왔었냐? 너 세상 살 때, 저런 기술이 있었어?)
(저도 처음 봅니다. 저런 게 가능하다니….)
그들은 이제 나와 루나는 전혀 관심도 없어 보였다.
오로지 내가 시전한 마법진 구사에만 정신이 팔린 상황이었다.
‘루나가 가문의 피를 제대로 물려받았네….’
그들의 모습과 행동은 루나와 달랐지만, 분위기가 루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처음 나한테 마법진 구사를 알려달라고 달라붙던 루나의 모습과….
나는 그들에게 적당히 해명했다.
“이건 저만 쓸 수 있는 기술이에요. 다른 마법사들은 못 씁니다.”
(그게 말이 되나…?)
(저 정도 능력이 있으면 다른 나라에서 잡아가려고 난리를 쳤을 텐데….)
(나라뿐이겠어? 슈트라에서 직접 나섰을걸?)
(이 친구, 정복 입을 것을 보니 슈트라 학생 같네.)
정복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나마 한 노파가 호들갑 떠는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내게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두 사람은 무슨 일이길래 여기서 자는 건가?)
(딱 봐도 자네는 관계가 없어 보이고… 저기 처자가 우리 가문 사람인가?)
이곳에 있는 영혼들의 시선이 루나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이 영혼들의 절반 이상이 은색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다.
즉, 루나의 혈통이라는 의미였다.
영혼들도 머리카락만 보고 대충 자신들의 혈육임을 직감한 것이었다.
“네. 루나 슈타트펠트입니다.”
(뭐? 저 애가 루나라고?)
(저 애가 저렇게 컸다고? 벌써?)
(어이구… 나 젊었을 때 모습이랑 똑 닮았네.)
(에이, 당신이랑 머리카락 말고는 닮은 곳이 어디 있다고… 끄악!)
갑자기 영혼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뭐, 아무리 시끄러워도 영혼의 소리.
나는 그런 난타전을 벌이는 부부 영혼을 놓고 이야기를 진행했다.
“한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무슨 부탁?)
“혹시 루나의 부모님도 여기에 계시나요?”
내가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목적.
단 하나였다.
루나의 부모님.
지금 루나를 알아보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이 중에는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계속 생활하던 영혼들이라면 분명 루나의 부모님의 영혼도 불러줄 수 있다고 믿은 것이었다.
그런데 영혼들은 내 말을 듣자마자 내 예상과는 다르게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뭐지? 갑자기 조용하네.’
영혼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두 명의 영혼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근엄한 표정의 은발 노년 남성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백발의 노년 여성이었다.
나이가 꽤 많아 보였음에도 건장한 외형에서 풍기는 기품이 예술이었다.
하지만 감탄과 별개로 그 둘이 해준 말은 나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아쉽게도 위르겐 슈타트펠트… 내 아들은 이곳에 없다네.)
..
..
묘비 앞에 심어져 있는 은색 꽃에 물을 주던 루나가 내게 물었다.
“혹시 잘 못 주무셨어요?”
“응?”
“피곤하신 거 같아서요. 피곤하면 더 주무셔도 돼요.”
“아, 아냐. 내가 뭐 도와줄 거 없나 싶어서….”
내 머쓱한 말에 루나는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 주는 게 전부라 괜찮아요.”
“그럼 내가 물 떠올게.”
“…고마워요.”
나는 루나가 꽃에 물을 주는 동안 물통을 들고 물을 긷기 위해 묘지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면서도 표정을 풀지 못했다.
내 표정이 굳은 이유는 단순했다.
(어이구, 어린 나이에 기특도 하네.)
(내 자식은 나 죽을 때 빼고는 들르지도 않던데. 저 아이가 내 자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아, 아버지! 그때는 진짜 바빴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바쁘다고 뒷산도 못 들르는 게 말이 되냐!)
영혼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나도 모르게 귀를 후벼팠다.
‘아… 시끄러….’
원래 시끄러운 인간들이었는지, 아니면 죽고 나서 시끄러운 인간이 된 건지 알 수는 없었다.
어쩌면 오래간만에 방문한 손님 때문에 흥겨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고….
나는 영혼들의 수다를 흘려들으며 어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여기에 없으면 어디에 있는 거지?’
루나의 조부의 말을 듣고 루나의 부모님이 이 묘지에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루나의 부모님은 [영혼 소환술]로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이야기는 여기에 있는 영혼들처럼 이승 어딘가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호숫가 근처에 도달하자….
(아, 이 이상은 넘어갈 수가 없네.)
시끄럽게 떠들던 영혼들이 나를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나는 호숫가에서 물을 뜨며 나를 멀뚱히 지켜보는 영혼들에게 물었다.
“멀리는 못 나가나 보네요?”
(응. 우리는 묘지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어.)
이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루나의 부모님도 지금 어딘가에 묶여 있다는 이야기네.’
그리고 예상되는 곳이 하나 있었다.
[아틀러에서 들려오던 소리… 어쩌면 두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좋아. 돌아가면 바로 확인해보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통에 물을 긷고 묘지 건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도….
(그런데 당신은 어디 출신인가?)
(내가 살아생전… 아니, 죽고 나서도 검은 머리 인간은 처음 보네….)
“….”
내 귀를 괴롭히는 혼령들의 수다는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귀를 괴롭히는 것과 별개로 몇몇 가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영혼들은 생각보다 오래된 세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제일 오래된 인물은 루나의 증조부 정도였다.
거기다 슈타트펠트 가문의 혈족이라면 직계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묻힐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듯 보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많은 거겠지만….
나는 그런 유령들을 보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떠올랐다.
“한번 보고 뵙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누구 말인가?)
“초대 가주님이요.”
클라우디아 슈타트펠트.
학장과 친분이 있다길래, 직접 만나서 학장이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묻고 싶었는데….
내 대답에 반응한 건 다름 아닌 루나의 조부모였다.
(그분은 우리가 여기에 왔을 때도 이미 계시지 않았네.)
“…영혼도 수명이 있긴 있나 보네요.”
묘지기가 말했다.
영혼의 수명은 이승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이라고.
그래서 의문이었다.
‘학장이 남아 있다면 당연히 아직도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내 의문이 담긴 표정에 루나의 조부모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대답했다.
(그건 확실하지 않네.)
“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우리도 과거 선조분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루나의 조부모는 주변 영혼들의 눈치를 보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초대 가주님께서는 처음부터 계시지 않았다고 하더군.)
만약 저 말이 사실이었다면….
‘클라우디아 슈타트펠트는 처음부터 이 묘지에 안치되지 않았다?’
[아니면 이자들과 다르게 처음부터 사후 세계로 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나는 물을 잠시 내려놓고 [영혼 소환술]을 시전해서 클라우디아 슈타트펠트를 찾아봤다.
결과는….
‘역시 없어….’
비슷한 이름만 나올 뿐, 정확히 일치한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이쪽 사후 세계는 위그드라실과 다르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확신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굳이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지. 그냥 얼굴이나 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클라우디아 슈타트펠트에 관한 생각을 지우고 물을 가지고 루나에게 돌아갔다.
..
..
드디어 삼 일째가 되었다.
지내는 것 자체는 큰 불편함은 없었다.
영혼들도 생각은 있는지 자는 동안에는 시끄럽게 떠들지는 않았다.
거기다 루나가 옆에 같이 잠들어서 그런지 잘 잘 수 있었다.
그렇게 자고 난 뒤, 기상하자마자 루나와 같이 마지막 묘비로 향했다.
루나와 나는 나란히 서 있는 두 개의 묘비석을 앞에 두고 지긋이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묘비석이라….’
루나는 분명히 이 안에 자신의 부모님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바라보는 중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무도 없는 상황.
이번에는 영혼들도 눈치가 있는지 멀리서 나와 루나를 바라보며 내 귀에 들리지 않게 서로 속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영혼들을 신경 쓰지 않고 홀로 생각했다.
‘아틀러에 도착하면 바로 찾아봐야겠다. 그런데… 없으면 어떡하지?’
만약 아틀러 성을 돌아다니는 존재가 루나의 부모님이 아니라면?
골치 아픈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루나의 부모님을 찾기 위해 온 지역을 돌아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나는 서글픈 눈으로 묘비석을 바라보는 루나에게 말했다.
“물 떠올게.”
“…네.”
루나는 말을 길게 나눌 감정의 여유가 없어 보였다.
나는 어제처럼 호숫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물을 긷는 동안 영혼들은 어제와 다르게 떠들지 않고 서로 속닥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통에 물을 담고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루나의 조부모가 내 앞에 서서 내게 말을 걸었다.
(지금 슈타트펠트 가문에 남은 아이가 저 아이뿐이라고 말한 게 사실인가?)
영혼들은 내가 말해주기도 전에 이미 슈타트펠트 가문이 멸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틀러 뒷산에 있는 묘지이다 보니 아틀러에 주민이 간혹 왔기 때문에 상황을 대충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까지는 그들도 모르는 상황.
“네.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이 묻는 말에 알고 있는 선에서 모두 대답해줬다.
슈타트펠트의 멸문부터 루나가 지금까지 거쳐온 삶의 이야기까지….
죽은 자들이라 큰 문제는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 루나의 선조들이다.
최대한 예의를 차려주는 것이 루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대답해줬다.
조부는 내 말을 듣고는 주변에 있는 영혼들을 둘러보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혼들은 조부에게 마치 허락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분들을 대표로… 자네에게 하고 싶은 부탁이 있네.)
영혼들이 할 수 있는 부탁이야 뻔하다고 생각했다.
루나와 루나의 부모님.
루나에게 잘해달라는 것이나, 아니면 루나의 부모님을 찾아서 데리고 와달라는 이야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이었다.
(아틀러 성안에 숨겨진 장소가 있네.)
“…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이다.
갑자기 무슨 숨겨진 장소?
루나의 조부모는 내 의문이 담긴 표정을 바로 이해하고는 진짜 부탁을 해왔다.
(그 장소에 슈타트펠트 가보가 있네. 부디… 그것을 찾아서 저 아이에게 건네주었으면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