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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 학교 슈트라 (4)
차분하게 흘러내리는 무수한 은색 머리카락.
그런 머리카락과 함께 하늘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루나가 서 있었다.
그런 루나를 보자마자 카린은 바로 미소를 거둔 뒤 내게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마치 내게 볼일을 다 봤다는 듯이 말하고는 카린은 루나 쪽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지나치기 전에 루나에게 간단한 눈인사하고는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렇게 떠나간 카린을 보면서 또다시 감탄했다.
‘와… 눈치가 장난 아니네.’
루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털어내고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수호 씨. 찾고 있었어요.”
의외였다.
다른 것 다 제쳐두고서라도 바로 카린과 같이 있던 것에 관해서 물어볼 줄 알았는데….
나는 굳이 설레발치지 않고, 루나에게 물었다.
“응. 잠깐 어디 들렀다가 돌아가는 중이었어. 무슨 일로 찾았어?”
루나는 그런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혹시 저한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그럼 가능하지. 어디 가려고?”
내가 묻자 루나는 쓰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부모님께 가려는데… 수호 씨랑 같이 가고 싶어서요.”
..
..
나와 루나는 저녁쯤 아틀러 성 뒤편에 자리 잡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어가긴 했지만, 노을 덕분에 산을 오르는 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오르는 길은 석조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등산 느낌도 들지 않았고….
심지어 경사가 완만한 편이라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크게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특히 루나에게는….
“후우… 후우….”
“괜찮아?”
“네, 괜찮아요.”
루나는 다시 자세를 잡고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정복 입고 올라서 다행이네.’
아무리 완만하고, 계단이 잘 설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산은 산이다.
이런 곳을 드레스를 입고 올랐다면 지금 오른 계단의 반도 못 올라온 상태였을 것이다.
그렇게 계단을 오르던 루나는 흐트러진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어렸을 때는 몸이 작았어도 그렇게 쉽게 오르던 길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더 힘드네요.”
“그만큼 인생의 무게가 느껴져서 그런 거 아닐까?”
나름대로 위로 차원에서 건넨 말이었다.
지금 우리가 오르는 계단 끝에는 슈타트펠트 가문 묘지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죽음이란 먼 곳에 있는 자일수록 가볍게 느껴지기 마련이고,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 무게를 실감하게 되는 법이니까.
무덤에서 미끄럼틀을 타고 노는 애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루나는 그런 내 위로에 오히려 입술을 삐쭉 내밀며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제가 무거워졌다는 말인가요?”
“….”
도대체 어떻게 들으면 저 말을 이렇게 해석하는 거지?
내가 얼탱이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통신으로 강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서 굳이 무게라는 말을 왜 넣어요?]
‘….’
그래, 다 내 잘못이다.
나는 속으로 한탄하며 루나에게 말했다.
“그럴 리가 있어? 너만큼 가벼운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다고….”
“흥….”
내 상식에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상황에 그저 휘둘릴 내가 아니다.
나는 계단을 오르던 루나를 멈춰 세운 뒤, 그녀를 강제로 등에 업기 시작했다.
“읏챠.”
“꺅! 뭐, 뭐 하시는 거예요!?”
“안 무거운 거 증명하려고 하잖아.”
“자, 잠깐만요! 오르는 길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꺄악!”
나는 루나의 말을 끊고 그대로 달리듯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
..
쿵!
나는 마지막 계단에 발을 크게 찍으며 루나를 천천히 내려줬다.
“헤엑… 헤엑….”
그리고 상체를 숙인 채 숨을 미친 듯이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헤엑… 헤엑… 거, 거봐… 가볍다고… 했잖아….”
“괜찮으세요?”
루나는 정복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소리가 시작됐다.
“왜 그랬어요. 위험하게….”
“헤엑… 헤엑… 증명한 거야. 증명… 무겁지 않다는 거 증명했잖아… 헤엑….”
“…푸웃.”
루나는 실웃음을 내뱉고는 계속 내 땀을 계속 닦아줬다.
그렇게 루나의 손길을 받으며 숨을 고르다 보니,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영사관에서 뛰어다닌 게 헛고생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진정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둡네.”
아까까지 깔려 있던 노을빛이 전부 사라지고, 어느새 어둠만이 짙게 깔려 있었다.
루나는 어두운 주변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내일 아침에 올 걸 그랬어요.”
확실히 묘지에 들리기 좋은 시간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곳이 내가 사는 묘지처럼 무덤이 중구난방 즐비한 장소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와 루나의 눈앞에는 웅장한 석조 건물이 하나 세워져 있었다.
석조 건물은 어둠에 싸여 있는 탓에 외형이 전부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관리가 잘 된 신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늘 오고 싶어서 부른 거잖아. 괜찮아.”
“…고마워요.”
루나가 억지를 부린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간곡히 바라는 눈빛을 보내온 것도 사실이었다.
내가 그녀의 부탁을 받은 것도 그런 것 때문이고….
[카린이란 여자에 관해서 물을까 봐 다급하게 받은 게 아니고요?]
‘….’
정곡 찌르지 마라….
나는 강한나의 정곡을 회피하며 루나와 같이 건물로 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둠에 잠겼던 대리석 길이….
팟… 팟… 팟….
나와 루나가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근처에 있는 마나석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얀 빛을 내뿜는 마나석의 인도를 받으며 건물로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석조 건물 내부에는….
“와….”
양옆으로 길게 세워져 있는 묘비석들이 우리를 반겨줬다.
나는 감탄했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입을 막으며 사과했다.
“미안.”
“뭐가 미안해요?”
“뭐랄까… 무덤에 들른 건데 나도 모르게 감탄을 해버려서….”
루나는 내 말에 오히려 의문에 허탈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그만큼 거부감이 없다는 증거잖아요.”
“그런가?”
“저도 어렸을 때는 이곳에 방문할 때마다 수호 씨처럼 감탄했었어요.”
루나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이끌고 천천히 건물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걷는 내내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돌로 만들어진 묘비석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혀 음산하거나, 기분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근엄하고, 웅장한 느낌만 들 뿐….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묘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옆으로 진열된 다른 묘비들과 다르게 정면에 세워져 있는 거대한 석조 묘비석.
묘비석에는 묘비의 주인 이름이 적혀 있었다.
<클라우디아 슈타트펠트>
그 밑에 탄생 연도와 사망 연도가 적혀 있었고, 그 더 밑에는 업적이 무수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이미 죽은 지 300년이 넘은 인물이었다.
이름과 사망 연도를 보고 나서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아… 학장이 전에 말했던 친구인가 보네.’
학장이 루나의 슈타트펠트라는 성을 듣자마자 거론했던 인물이었다.
학장의 눈물을 마지막으로 빼냈던 인물이라고 했던가….
루나는 클라우디아 슈타트펠트의 묘비석을 앞에 두고 고개를 숙여서 묵례를 올렸다.
나도 옆에서 루나에게 맞춰서 묵례를 올렸다.
그렇게 묵례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 루나가 고개를 들면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가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루나와 같이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역시 죽은 사람들이 안치된 곳이란 그런지 루나도 나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루나를 따라서 이동하다 보니 어떤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예요.”
루나가 안내해준 방은 지금까지 지낸 객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크기는 컸지만, 내부에 설치된 가구가 전혀 없는 공간이었다.
유일하게 비치된 건 이부자리가 전부였다.
루나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내게 말했다.
“그… 이 정도일 줄 몰랐어요. 만약 내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갈까요?”
루나의 말대로 상태가 좋은 방 같지는 않았다.
벌레가 돌아다니거나 이끼가 낀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위그드라실에 있는 지하 수로에서도 잠을 자던 나다.
나는 루나의 미안한 표정을 뒤로 하고 방에 들어가면서 밝은 톤으로 목소리를 냈다.
“조용하고 좋네.”
거짓은 아니었다.
조그마한 마나석이 방 곳곳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는 덕분에 분위기는 꽤 살아 있었다.
나는 방에 비치된 유일한 물품인 이부자리를 확인했다.
“일단 이건 깨끗하게 씻어 놓는 게 좋겠다.”
대충 봐도 꽤 오래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이부자리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꽤 고급 재질로 만들어 놔서 그런지 손상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는 점이었다.
잘 씻어낸다면 누워서 자는 것도 문제가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즉시 마법을 시전해서 먼지와 떼를 씻어내 버렸다.
루나가 그런 나를 보며 힘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오는 거였는데….”
나와 루나가 이곳에 들른 이유는 그저 묘비에 인사를 건네고 돌아가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런 말 하지 마. 하루도 아니고, 몇 날 며칠을 너 혼자 여기에 재우는 건 내가 사양하고 싶으니까.”
“고마워요….”
우리는 이곳에서 사흘간 지낼 예정으로 방문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묘지를 방문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루나는 묘지 건물에 마련된 방에서 사흘간 지내야 한다고 이야기해 온 것이었다.
이유는 과거 슈타트펠트 가문의 관행 때문이었다.
“혹시 다른 가문도 이런 관행이 있어?”
“아뇨. 없어요. 저희 가문에서 하던 관행이에요. 혹시… 불편하세요?”
“아니. 그럴 리가… 내가 살던 곳에서도 비슷한 게 있어서 신기했을 뿐이야.”
“다행이네요. 가끔 다른 귀족들은 우리 가문의 관행이 섬뜩하다는 이야기도 했거든요. 무덤 옆에서 잔다고 하니까….”
슈타트펠트 가문은 가문의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자식과 자식의 배우자가 사흘간 이곳에 머물며 죽은 인물을 애도하는 기간을 갖는 것이었다.
애도 기간 자체는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내가 살던 세계도 죽은 자를 안치하고 사흘간 장례식을 치르니까.
하지만 애도 기간을 갖는 시기가 의아할 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애도 기간을 갖고 싶었던 거야?”
루나의 부모님은 죽은 지 꽤 오래됐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 와서 이렇게 애도 기간을 갖는 이유는….
“…그때 해드리지 못한 걸 지금이라도 해드리고 싶었어요.”
관행과 상관없이 못다 한 효를 지금이라도 행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루나는 가문이 몰락한 뒤 이곳에 들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나마 과거 전쟁 영웅의 가문이라는 명성 덕분에 두 부모님도 이곳에 안치되어 있다고 설명해줬다.
하지만 외부에서 보는 눈이 있어서 쉽사리 고향을 방문하지 못했고, 몰락한 이후 첫 방문을 한 것이었다.
나는 서글픈 눈빛을 한 루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 생각했어. 그런 응어리는 무작정 빨리 풀어낼 필요는 없지만, 쌓아 놓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
“…고마워요.”
“아까 부모님은 뵙지 않아도 됐을까?”
처음 이곳에 오자마자 다른 묘는 보지 않고, 바로 초대 가주의 묘비석으로 향했던 루나였다.
“원래 형식상으로는 첫 방문은 초대 가주님에게 인사를 드리는 거예요. 그다음 날은 다른 선조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마지막 날 저희 부모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식으로 진행하는 거예요.”
“그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을 전부 기억하다니… 진짜 똑똑하긴 하네.
나는 그런 루나에게 살짝 걱정되는 표정으로 묻기 시작했다.
“나야 불러줘서 고맙긴 한데… 내가 여기에 있어도 될까?”
관행상 이곳에 들어와서 지내는 건 죽은 사람의 자식이나, 자식의 배우자뿐이라고 했으니까.
죽은 사람의 부모도 당연히 들어올 수 있긴 하지만… 애초에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말도 꺼내지 않은 듯싶었다.
내 걱정을 들은 루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저랑 이곳에 올 정도의 관계는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에이, 설마….”
루나의 표정에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아까 무게 이야기할 때는 정색해놓고는….
“걱정일 뿐이지. 여기 계신 분들이야 너는 반기겠지만, 나를 반기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
루나는 표정을 굳힌 뒤, 살며시 나를 끌어안고는 말했다.
“저희 부모님이라면 분명 반겨 주실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남자를 들인 건데 반길까 싶었지만, 루나의 생각은 달랐다.
“저를 혼자 놓고 가셔서 지금까지 걱정하셨을 거예요.”
“아….”
하긴 온 가족이 전부 죽어버리는 바람에 딸 혼자 남겨놓고 갔으니….
죽은 사람들 처지에서는 이쪽이 그나마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루나는 이해한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는 갑자기 꼭 끌어안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치 주변에 누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내 귀에 보드라운 입술을 가져다 댄 다음 나조차 잘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오늘은 안되는 거 아시죠?”
“하하….”
아무리 나라고 해도 스릴과 예의의 선은 확실히 지킨다.
이런 곳에서 그런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돌아가면 그때는 쌓인 만큼 풀 테니까 기대해.”
“후후… 좋아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
루나는 내 품에 안겨서 그대로 나를 이불로 끌고 갔다.
그렇게 루나는 나와 같이 이불에 눕자마자 나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이렇게 끌어안고 있는 건 괜찮아요.”
“…오늘 밤은 잠이 잘 올 거 같네.”
나와 루나는 서로 옷을 입은 채 꽁냥꽁냥 거리다 어느 순간 조용히 잠에 빠지기 시작했다.
..
..
스르륵….
주변을 돌아다니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내 귀를 자극해왔다.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깨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소리였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소리니까.
‘아르모니아. 들려?’
[네. 지금 저희 쪽에도 포착됐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
나는 질문하자마자 아르모니아가 말하는 문제가 뭔지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스르르~ 스르르르륵! 스르륵!
저번에는 한 줄기가 흐르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봇물이 터진 듯한 수준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나를 껴안고 있는 루나를 살며시 놓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주변을 보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예상한 것과 다른데?’
영혼 한두 명의 레벨이 아니었다.
수십 명의 영혼이….
(맙소사….)
(얼마 만이야?)
(다시는 아무도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나와 루나를 에워싸고 구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