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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 사관 학교 (5)
기철호의 목소리가 진동처럼 떨리며 그의 입 밖으로 나왔고….
“오, 오세현….”
기철호의 대답을 들은 강한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밝게 웃으며 외쳤다.
“땡!”
“끄이아아아악!!”
강한나는 단검으로 기철호의 손등을 찌르고, 빼고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귀찮아졌는지 찌른 채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차례 돌리다가 출혈이 심해진다 싶으면….
치이이익!
“히끄아아아악!! 그만!! 그만!!!”
단검을 꽃은 채 그의 손등에 포션을 부어버렸다.
강한나는 기철호의 손등과 같이 결합해가는 단검을 보면서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설마 첫 문제부터 이렇게 고난일 줄은 몰랐네요. 머리는 똑똑한 분 같은데 퀴즈는 영 재능이 없나 봐요?”
“흐아… 흐아아….”
기철호는 손등에 꽂힌 단검을 보며 침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침을 질질 흘리다가 결국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기, 기철호….”
“오, 드디어 정답이 나왔네요.”
“!?”
기철호는 동공이 튀어나올 듯이 눈꺼풀을 들어 올려서 강한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칼날이 돌아가는 끔찍한 경험을 할 줄 알았던 그는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강한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런 그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 다음 문제로 넘어갔다.
“두 번째 문제는… 이 시설의 패스워드랍니다. 자, 정답을 알려주시겠어요?”
“….”
기철호는 침과 눈물을 흘리면서도 눈에 힘을 주며 비밀번호를 말했다.
“………다.”
“….”
기철호의 말에 강한나는 낮게 깔린 표정으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또다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기철호가 허둥지둥 외쳤다.
“지, 진짜야! 진짜라…! 끄아아아악!!!!”
강한나가 그의 팔등에 꽂힌 단검을 다시 빙글빙글 돌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두 번째 문제는 몇 번 만에 풀려나~”
“지, 진짜라고!!! 끄아아악! 씨발!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 뒤에도 기철호의 비명을 쉴새 없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수십 번의 오답 끝에….
“………다.”
“정답~”
“마, 말도 안 돼.”
기철호는 속에서 우러나오는 의문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내뱉기 시작했다.
“내, 내가 거짓말하는지 어떻게 아는 거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평생을 거짓말을 재능처럼 구사하며 살아온 기철호였다.
거짓말이 능수능란한 그가 하는 말 중에 정확하게 정답을 캐치해내는 여자.
사람의 속마음을 읽는다는 생각 말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강한나는 기철호에 의문에 답해주지 않고, 그저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며 흥얼거릴 뿐이었다.
“다~ 보여요. 제 눈에는 말이죠.”
“마, 말도 안 돼….”
강한나의 말은 기철호에게 오히려 답답한 의문과 암울한 미래만을 주입할 뿐이었다.
기철호는 그런 모든 것을 품은 채 입을 열었다.
“모, 목적이 도대체 뭐야! 그리고 너희는 어디 소속이지?”
명쾌한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혹시 모를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훗날 복수를 위한….
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오지 않았다.
강한나는 기철호의 말을 무시하고 손을 쥐었다 펴면서 인상을 찡그린 채 레나에게 말했다.
“후우… 저 슬슬 손 아픈데 교대해줄래요?”
“….”
레나는 차분한 표정으로 기철호에게 다가왔다.
기철호는 살짝 안도할 수밖에 없었다.
‘저 사이코패스 년만 아니면 돼…. 일단 대화가 되는 것 같으니까 어떻게든….’
기철호가 어떻게든 레나를 말로 구슬려보려고 머리를 굴리는 순간이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
기철호의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지었고, 레나는 그런 그에게 살기를 띤 눈빛으로 바꾸면서 분노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도구를 들어 올렸다.
레나가 들고 있는 도구는….
“예전 마족 고문 기술자에게 들었던 방식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펜치였다.
레나의 손에 잡혀 있는 펜치가 천천히 기철호의 손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주인님을 귀찮게 한 벌… 평생 기억할 수 있게 낙인찍어 드리겠습니다.”
“자, 잠깐만… 그, 그만…! 그만! 므캬아아아악!!!”
까드득! 으드득!
기철호의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옆에 있던 강한나가 고개를 절레거리며 중얼거렸다.
“나도 화나긴 했지만, 진짜 화났었나 보네.”
“끼아아아악!! 그만! 그만! 하카아아악!!”
기철호가 비명과 함께 몸을 흔들자 바닥에 고정된 침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강한나는 걱정되듯이 레나에게 외쳤다.
“죽으면 곤란하니까 꼭 포션 써가면서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레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다시 펜치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지금 기철호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었다.
“이캬아아아악!!! 캬아아아악!!”
비명뿐이었다.
***
이소현은 내가 건네준 장부와 일지를 전부 읽기도 전에 거부감을 느꼈는지 식탁에 내팽개쳤다.
“하아, 이게 무슨….”
그리고는 두통이 몰려오듯 양쪽 관자놀이를 오른손 엄지와 중지로 지그시 누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차례 누르고 나서야 진정이 됐는지 손을 식탁에 올려놓고 내게 물었다.
“이거… 정말 이세형 씨의 장부가 맞나요? 아니… 맞겠네요.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
이소현은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바로 깨달았다.
이소현은 유능한 인재이고, 장부를 대충 봐도 거짓인지 진실인지는 어느 정도 판별할 능력도 있으니까.
참고로 장부와 일지에는 어디까지나 서가의 운영에 관한 것만 포함되어 있었다.
괴생명체의 실험과 서지은의 마나 폭주에 관한 내용은 일절 포함하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쉬는 이소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도 부랴부랴 챙겨서 도망치려는 걸 잡아서 뺏은 거예요.”
“세형 씨는… 도망쳤고요?”
“네. 서지은 생도를 챙기는 게 우선이라 결국 놓쳤습니다.”
내가 이소현에게 장부와 일지를 건네주기 전에 했던 말은 요약하자면.
기철호가 서지은을 납치한 뒤, 방해꾼인 나와 이소현을 제거하려고 어디선가 괴생물체를 데리고 왔다.
다행히 내가 먼저 방에 도달해서 그의 행위를 저지했지만, 서지은을 지키느라 도주까지는 막지 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서지은은 구했지만, 기철호는 놓쳤다가 핵심이었다.
“정말 잘해주셨어요. 어느 무엇보다 아가씨의 신변이 중요하니까요.”
이소현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찜찜한 감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저택의 중심을 담당하던 기둥이 알고 보니 저택 자체를 건져 올리려고 했던 낚싯바늘이었던 셈이다.
그런 인간이 잡히지 않고 도주했으니 걱정할만했다.
‘뭐, 잡아 놓고 있으니 걱정은 없겠지.’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이소현은 피가 말리겠지만….
“일단 이 장부랑 일지는 제가 가지고 갈게요. 그리고….”
이소현은 바로 옆에 누워있는 서지은을 보면서 내게 말했다.
“오늘 하루만 아가씨를 부탁드릴게요.”
“그러죠. 어차피 출근은 내일이니까.”
“…쉬는 날인데 미안해요.”
쉬는 날 초대해서 이런 사건에 휘말린 내게 내심 미안한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이런 일에 휘말릴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서지은 생도는 내 담당이고, 이소현 씨는… 당연히 도와야 하는 관계잖아요. 도울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죠.”
이소현은 내 말을 듣고 평소에 보여주던 깐깐하고, 매서운 눈빛을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오늘 도와줬던 일은 전부 외상으로 달아두세요. 잊지 않고 갚을 테니까.”
“전부 머릿속에 기억해 놓을 테니까 나중에 딴말하지 마세요.”
“후후… 그럼 가볼게요. 지금 수습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그렇게 이소현이 나와 서지은만 놓고 방을 나갔다.
나는 이소현이 방을 나가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서지은의 방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지은의 방만큼 큰 규모와 화려함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방에 걸려 있는 액자에 담긴 사진을 보면서 방의 주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커다란 사진을 정면에 놓고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회장의 방이구나.”
서주호.
서지은의 친부이자, 서가의 회장이었던 자.
몇 년 전에 불현듯 실종되고 지금까지 찾지 못한 인물.
영웅의 마법 능력과 회장의 경영 능력을 동시에 지녔던 인물.
그런 자가 갑자기 물방울이 공기 중에 증발하듯 사라진 것이었다.
흔적도 없이….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자, 아르모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기철호의 꿈에서 더 자세히 알아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긴… 그 녀석도 연관이 있을 거 같긴 해.’
아니. 있을 거 같은 게 아닌,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강한나와 레나가 친히 돌봐주고(?) 있으니, 침몽을 하는 건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 당장 이 장소를 떠날 수도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서지은에게 다가갔다.
서지은은 아침부터 입고 있던 파자마 차림으로 곤히 자고 있었다.
애초에 옷을 갈아입을 시간 따위는 없을 테니까….
나는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다봤다.
‘진짜 안타깝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이.
그런 아이가 세상에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불행을 연이어 겪고 있었다.
아버지의 실종, 어머니의 병상, 재능의 부재,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큰 불행은….
‘기철호의 배신… 말해줘야 하나?’
일평생을 믿어왔던 자의 배신.
과연 서지은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일단 이 이야기는 이소현이랑 대화를 나누면서 결정해야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외부인인 내가 이래저래 끼어들었다가 오히려 혼란만 줄 수도 있다.
그렇게 고민을 정리하는 순간이었다.
“흐읏….”
“응? 일어났구나. 괜찮니?”
나는 바로 의자에서 일어나서 서지은의 상태를 확인했다.
일단 안색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성수호 교관님? 여기는…?”
“저택이다. 일단 모두 해결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아….”
서지은은 그제야 안도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그런 서지은을 제지하며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누워서 쉬어라.”
“…네.”
서지은은 내 말을 듣고 온순하게 굴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서지은이 그렇게 침대에 눕자 고요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불편해서 그런가?’
불편하다는 이유라면 내가 나가주는 것도 하나의 정답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다른 사람을 불러주마.”
“네? 자, 잠시만요.”
“응?”
서지은은 이불을 잡고 한참을 꿈틀거리더니, 얼굴을 붉히며 내게 부탁했다.
“같이 계셔주면 안 될까요? 불안해서….”
“아, 그래.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네. 미안하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다시 의자에 앉아서 서지은을 바라봤다.
서지은은 그런 내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살짝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아가씨가 아니라 영락없는 애 같았다.
일단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거 같아서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침묵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침묵하고 있을 때, 서지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세형 씨는… 어떻게 됐나요?”
“….”
나는 눈을 뜨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일단 이 이야기는 이소현과 합의하지 않으면 쉽게 거론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내 의도를 무색하게 만들 듯, 서지은이 거침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제 옆에는 안 계시겠네요.”
“서지은 생도… 그건 나중에….”
나는 어떻게든 진정시키는 쪽으로 대화를 유도했지만, 서지은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사실 예전부터 느끼고 있었어요.”
“…뭘?”
“세형 씨가 저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요….”
“….”
아마 자세히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어림짐작 이해했을 뿐….
“그런데 저는… 그분을 내치지 못했어요.”
이소현이 옆에 있긴 했지만, 만약 기철호를 강제로 내치게 된다면 언젠가 진짜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외로운 사람은 자기가 속는 줄 알면서도 사람을 쉽게 내치지 못하는 법이니까.
서지은은 어느새 눈물을 이불 위에 뚝뚝 흘리며 내게 말했다.
“교관님… 저… 더 이상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서지은의 눈물에 우아함 따위는 없었다.
그저 애처로움이 잔뜩 담긴 채 어린애처럼 울먹일 뿐이었다.
나는 그런 서지은에게 다가가서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나한테 있어서 너는 첫 제자다. 졸업할 때까지는 절대 혼자 두지 않으마.”
“흐윽!”
“응?”
서지은은 어깨에 올려져 있는 내 팔을 끌어당기며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나는 그런 서지은의 울음을 받아주며 그녀를 다독여줬다.
하지만 포옹은 오래가지 않았다.
철컥.
“혹시 몰라서 오늘 저녁 식사 일정을…. 하아, 이게 무슨….”
이소현이 나와 서지은의 포옹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