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595화 (596/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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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 사관 학교 (5)

기철호가 단말마 같은 쉰 목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끄에엑….”

고작 손에 힘을 줬을 뿐인데, 그 악력을 버티지 못하고 기절한 것이다.

통쾌하거나, 시원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장면.

나는 그런 기철호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거렸다.

“아, 짜증 나네.”

잡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는 이런 녀석에게 휘둘렸다는 사실에 더 분노가 차오를 뿐이었다.

나는 고꾸라진 기철호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퍽!

죽은 듯이 바닥에 누워있는 기철호를 보면서 손을 털었다.

그렇게 기철호의 흔적이 묻은 손을 털어내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자,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일단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생각보다 일이 커지긴 했지만, 원흉인 기철호를 잡았으니 해결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선택해야 했다.

기철호의 처분.

‘죽여서 데리고 가야 하나 아니면 살려서 데리고 가야 하나….’

살려서 데리고 간다면 이소현이 알아서 잘 처리해줄 것이다.

기철호가 서가에서 저질렀던 비리들도 다 뽑아낼 것이고….

하지만 상대는 기철호다.

일단 목숨만 부지한다면 정·재계의 거물과 연줄이 있을 테니 어떻게든 기사회생할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살려둔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려줄 이유가 없네.’

그렇게 죽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통신으로 강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리는 게 현명할 거 같아요.]

‘…?’

의외였다.

내가 아는 강한나는 불안감이 담긴 씨앗이 발아하기 전에 땅속에 있는 씨앗을 파내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가 기철호를 살리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분명 그만큼 이유가 있다고 판단하고 물었다.

‘살려서 보내면 귀찮아질 거 같은데….’

[살린 다음에 왜 보내요?]

‘…?’

[저 인간을 가둬두기 좋은 장소가 이미 눈앞에 있는데.]

‘오….’

기철호는 이미 제압한 상황.

아직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이 비밀 통로는 기철호만 아는 장소일 것이다.

[호텔도 마음에 들지만, 슬슬 지겨워요. 그곳에서 지내면서 그 인간이 숨겨 놓은 정보를 찾는 것도 재미있을 거 같네요.]

그런 그를 서가에 넘기지 말고 이곳에서 산채로 정보를 빼내자는 것이 강한나의 조언이었다.

분명 좋은 방법이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도 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호텔에서 지내다가 여기서 지내면 좀….’

[걱정도 팔자네요. 편하게 하자고 임무에 나서는 게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리고….]

‘…?’

그리고 그녀가 한마디를 남겼다.

[나도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이에요. 저 기철호라는 사람이랑 같이 대화나 나누면서 기분이나 풀어야겠어요.]

‘하하….’

일단 확실한 사실은 기철호의 남은 인생은 지옥의 유황길을 걷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삶을 계속 만들어주지 위해서는 우리 쪽도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이 시설은 기철호가 만든 시설이다.

우리가 모르는 함정이나, 또 다른 비밀 통로가 존재할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하아… 진짜 들어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지. 레나.”

내 부름에 반응한 레나가 방 안으로 들어오며 대답했다.

“네. 주인님.”

“나 이놈 꿈속에 들어갔다 올게. 문제 생기면 바로 깨워줘.”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나는 바닥에 고꾸라진 기철호를 보며 침몽을 시전했다.

..

..

“후우….”

침몽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필요한 정보는 어디까지나 이 비밀 장소에 대한 정보뿐이었다.

지금 당장 기철호의 인생사 같은 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내가 일어났을 때 내 주변에는 레나뿐만 아니라, 강한나도 있었다.

일어난 나를 보며 강한나가 물었다.

“괜찮은 정보 알아냈어요?”

“네. 일단 이 시설은 기철호 말고는 아무도 몰라요.”

대부분 사람이라면 당연한 이야기를 왜 하냐는 듯이 묻겠지만, 강한나는 역시나 눈치가 빨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신처로 훌륭한 장소라는 의미네요.”

“네. 그리고 출입문은 아까 제가 들어왔던 곳 하나뿐이에요.”

이 장소는 아까 기철호와 서주호가 서 있던 그림이 좌우로 갈라지면서 비밀 통로의 입구가 드러나는 형식이었다.

들어오는 방법은 단 하나.

기철호의 인증이 필요했다.

그 외에 무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이 장소는 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강한나는 내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거기다 외부에서 감지도 불가능하고… 은신처로 딱 알맞네요.”

이제부터 영사관으로 올 때마다 강한나가 이곳에서 지내기로 결정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강한나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방에 있던 컴퓨터를 두드리며 내게 말했다.

“저 인간, 출입은 생체 비밀번호를 썼는데, 막상 내부 시설의 통제는 전부 일반 패스워드를 사용했어요.”

생체 비밀번호를 이용했다면 기철호의 신체 일부를 뽑거나 잘라내서라도 이용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패스워드는 그게 불가능했다.

“혹시 몰라서 억지로 풀지는 않았어요. 대개 이런 장소는 비밀번호를 몇 차례 틀리는 것만으로도 기록 소거를 시키는 기능이 있으니까요.”

나는 그런 강한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잘했어요. 한나 씨 말대로 기록 소거뿐만 아니라, 시설 붕괴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알아낸 비밀번호 알려줄게요.”

“언제나 생각해도 꿈속에 들어가는 건 사기네요.”

강한나가 피식 웃으며 내가 알아낸 비밀번호를 타이핑했다.

그리고 그 비밀번호는 당연하게도 잘 맞아떨어졌다.

강한나는 키보드를 몇 차례 두드리고는 내게 말했다.

“방을 나간 다음에 안쪽으로 진입하다 보면 세 갈래 길이 나올 거예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서지은이 있는 장소가 있어요. 가서 데리고 가세요.”

나는 강한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바닥에 기절해 있는 기철호를 보며 물었다.

“맡겨도 괜찮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레나 씨도 있으니까.”

하긴 레나가 있다면 큰 걱정은 없을 것이다.

“레나. 잘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나는 레나의 미소가 담긴 대답을 들으며 서지은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

..

서지은이 있는 장소는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내가 도착한 장소는 지금까지 봐왔던 장소와 다른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침실… 아니, 병실 같네.”

이곳까지 오면서 봤던 장소가 비밀 연구소에 가까웠다면 이곳은 1인 병실에 가까웠다.

서지은은 그런 1인 병실과 같은 공간에 있는 침실에 곤히 누워있었다.

다만 곤히 누워있는 것치고는 표정이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으으….”

서지은은 뒤척일 때마다 간간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서지은을 등 뒤에 조심스럽게 엎었다.

나름 조심스럽게 업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감지한 서지은이 희미하게 눈을 뜨고 경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누… 누구…?”

“나다. 교관.”

서지은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경계심을 지우고는 등 뒤에 업힌 채 나를 꼭 끌어안기 시작했다.

“아… 성수호… 교관님….”

힘없이 중얼거리는 서지은을 향해 말했다.

“모두 끝났으니까. 이제 쉬어라.”

“…네.”

서지은은 내 말과 함께 끌어안은 채 곤히 잠들기 시작했다.

참 의아한 상황이었다.

내 말 한마디에 바로 수긍하고 저렇게 잠들 줄 몰랐으니까….

“뭐, 그만큼 힘들었겠지.”

나는 그렇게 판단하며 서지은을 업은 채 이 장소를 빠져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이동하다 보니 레나와 강한나가 있는 장소를 지나칠 수 있었다.

내가 자연스럽게 지나가려고 하자, 강한나가 나를 붙잡고 종이를 건넸다.

“이거 받아 가세요.”

“이게 뭐예요?”

“기철호가 숨겨 놓은 장부랑 일지예요.”

그 짧은 시간에 정보를 전부 훑어본 다음, 필요한 부분만 추려서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정말이지… 대단한 여자다.

“출구는 당신이 도착하면 열어둘게요.”

“바깥쪽 마무리 지으면 바로 워프로 올게요.”

“아뇨. 오지 마세요.”

“…?”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강한나가 레나와 눈빛 교환을 하더니,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곳이 될 거 같으니까 당분간은 오지 마세요.”

“허….”

“나중에 전부 정리되면 그때 정식으로 초대할게요.”

나는 쓰러져 있는 기철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촤르르르!

출구에 도착했고, 출구가 열리면서 환한 빛이 나를 맞이해줬다.

“후우… 끝이다.”

서지은은 업고 서가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

“끄으읏….”

기철호는 눈을 뜨자마자 격심한 두통과 함께 신음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뭐, 뭐야!?”

사방으로 묶여있는 자기 모습을 보자마자, 기절하기 전의 일을 번뜩 떠올릴 수 있었다.

‘주, 죽여 버리겠어! 감히 내가 내민 손을 그런 식으로…!’

기철호는 평생을 살면서 악수를 쉽사리 내미는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신이 내린 손을 별 볼 일 없다는 듯이 으스러뜨린 남자.

기철호는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굴욕을 떠올리며 자기 몸 상태를 확인했다.

‘사지가 묶여있긴 하지만… 일단 손은 회복된 상태군.’

상대방은 기철호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부상을 치료해줬다.

나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부정적인 부분도 존재했다.

‘나를 서가에 넘기지 않고, 여기에 묶어 놨어… 분명 뭔가 더 빼먹으려는 수작인 거 같은데.’

그렇게 성수호를 기다리며 머리를 굴리고 있자, 어두운 방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쾅!

다만 주변이 어둠에 둘러싸여서 문이 열린 건지 그저 물건이 떨어진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터벅, 터벅, 터벅.

하지만 발걸음 소리로 누군가가 이 방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둘.

기철호는 성수호의 얼굴이 빨리 드러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드디어 일어났네요.”

“….”

어둠을 뚫고 빛줄기 안에 얼굴을 내민 건 다름 아닌 두 여자였다.

‘저 분홍 머리 여자는 아까 갑자기 나타난 여자고… 그리고… 이 붉은 머리 여자는 또 누구지?’

기철호는 나름 기억력이 좋은 편에 속했다.

그럼에도 그의 머릿속에 두 여자의 모습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여자들을 까먹을 리가 없어. 분명 처음 보는 여자들이다.’

기철호는 그렇게 확신하며 대화를 위해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지?”

“…역시 분위기 파악은 빠르시네요.”

매서운 눈빛을 하고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가 우아한 발걸음과 함께 기철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 쪽에서 질문할게요. 잘 대답하세요.”

“…그러지.”

기철호는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보다 뒤에 침묵하며 서 있는 분홍 머리카락의 여자에게 더 관심이 쏠렸다.

성수호와 같이 무수히 쏟아지던 괴생물체를 무 썰듯이 베어낸 여자.

비록 혼자서 모든 괴생물체를 처치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력만 따지면 기철호의 목을 두부 베듯이 썰어낼 수 있는 여자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기철호의 시선은 어느새 강한나가 아닌 레나에게 꽂혀 있었다.

그런 기철호의 모습에 강한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름부터 알려주세요.”

기철호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이세형.”

“어머?”

“…?”

붉은 머리의 여자는 기철호에게 다가오더니, 표독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는 날카로운 단도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철호도 익히 봐왔던 단도였다.

혹시 몰라서 이곳에 비치해놨던 서가의 무기였다.

시선을 단도에 두던 여자가 입을 열었다.

“처음부터 거짓말을 지껄이시네요?”

“무, 무슨…?”

기철호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강한나의 손에 들려있던 단도가 기철호의 손등을 뚫고 들어갔다.

콰직!

“끄아아아악! 흐아아아악!!”

묶여있던 손을 단도가 꿰뚫었다.

한참을 비명으로 방을 꽉 채우던 기철호는 침을 흘리며 목놓아 외치기 시작했다.

“왜!? 마, 말했잖아!! 이세형이라고!!”

“후우….”

“끄아아아악!!”

여자는 단도를 쑥 빼내고는 기철호의 뚫린 손에 붉은색 포션을 붓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붉은색 연기와 함께 기철호의 상처가 금세 회복되어 갔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자….

“이름.”

“하아, 하아… 무, 무슨 소리야! 이세형이라고! 내 이름은 이세…!”

콰직!

“끄아아아악!! 씨발!!! 왜!!! 캬아아악!!”

처음으로 욕설이 담긴 기철호의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여자는 다시 단도를 빼낸 뒤 포션을 부으며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즐거운 퀴즈 시간이에요. 오답을 말할 때마다 벌칙을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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