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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웅 사관 학교 (5)
사용인들이 내게 무기를 겨눠도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아까 괴생물체로 변한 홍문석조차 이기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소한 서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기질창을 통해 봤을 때, 저택을 배신할만한 자는 따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호의 말을 듣자마자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라. 저 자에게서… 그의 방에서 느껴졌던 어두운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다.)
“….”
영혼에게만 느껴지는 환청과 환각.
그런 영혼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괴생물체.
그 두 가지를 이뤄내는 불길한 존재가….
(저자의 방에서 느껴졌던 기운에 비하면 약하지만, 정신을 오염시키는 원흉을 지금 소지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기철호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사용인들이 아닌, 기철호를 경계하며 세 사람의 실랑이를 바라봤다.
“교관님께서 이 사건을 저질렀을 리가 없잖아요! 어서 무기를….”
“저자는 어제 방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기철호는 나를 비릿하게 노려보며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저희 저택에서 제공한, 손님용 객실을 이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
이제야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전날, 기철호가 왜 그렇게 나를 몰아세웠는지….
[어떻게든 당신을 저택에 머물게 할 심산이었던 거네요. 그래야 이런 계획이 가능하니까.]
강한나의 말대로 저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원흉으로 나로 지목하려는 속셈이고….
그럼 중요한 건 다음이다.
‘저를 잡아내려는 목적인 걸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을 노리는 것 같아요.]
‘…?’
다른 사람을 노리다니?
[이런 계획을 갑자기 세우진 않았을 거예요.]
내가 그렇게 의문을 가지는 사이에 기철호는 서지은의 옆에 있던 이소현에게 다가갔다.
강한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예전부터 그런 계획을 꾸몄다면 자신에게 제일 방해되는 내부인이 거슬렸다는 이야기고요.]
기철호는 이소현을 앞에 두고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소현 씨와 성수호 교관께서 같이 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기철호의 말과 함께 강한나가 마침표를 찍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계해야 할 외부인이 등장했다면 내부인과 엮어서 잘라내기 편해지는 거죠.]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런 그림을 그려낸 기철호의 의도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평소에 침착함을 잘 유지하던 이소현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서지은의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현 씨. 세형 씨의 말이 뭔 소리인지….”
“말씀 그대로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기철호는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나와 이소현을 번갈아 보면서 말했다.
“두 사람은 밤새 같은 침실에 있었습니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기철호가 한 말의 의도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하나는 나와 이소현과의 불건전한 관계.
나머지 하나는 지금 일어난 사건과의 연관성.
일단 어떤 경우에도 후자로 저울이 기울어져서는 안 된다.
이소현의 입지뿐만 아니라, 둘 다 범죄자의 처지로 전락하는 셈이니까.
다행히 서지은은 기철호의 말을 후자로 연관 짓지는 않았다.
“소, 소현 씨. 교, 교관님이랑 왜 같이….”
“그, 그게….”
그렇다고 해서 전자가 좋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전자도 이소현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족쇄가 될 테니까.
아무리 회장 대리인의 신분이라고 해도 이소현도 결국 저택의 사용인일 뿐이다.
그런 사용인이 외간 남자와 저택에서 뒹굴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는 순간 신용도가 급락하게 될 것이다.
나는 당황한 이소현을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너를 돌봐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해왔다.”
“다, 단둘이요?”
“그래. 그리고….”
나는 이소현을 바라보며 쓰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번 일에 대해 사과를 하더구나.”
“사과라뇨?”
나는 호텔에서 만났던 일 이후에 관해서 이야기해줬다.
당연히 회장 집무실에서 섹스했다는 미친 소리를 하지는 않았다.
“호텔에서 네가 떠나고 난 뒤에 나를 개인적으로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 그때 했던 말에 대한 사과를 해왔다.”
“아….”
“그렇게 사과를 마치고, 그 이후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서지은은 잠깐이지만, 섭섭한 표정으로 이소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지은은 섭섭한 표정을 금세 걷어내고 허탈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현 씨… 왜 그랬어요.”
“죄송합니다. 그 당시에는 저분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아서….”
“후우.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일단….”
서지은은 미간에 희미하게 주름을 패어낸 기철호를 보며 말했다.
“세형 씨. 일단 오해는 풀렸죠? 지금 교관님을….”
“아가씨.”
“네?”
기철호는 고개를 저으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서지은의 명령을 거부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상 변명에 불과합니다. 두 사람이 불순한 의도를 지녔는지 순수한 의도를 지녔는지는… 일단 잡아낸 다음 알아내야 합니다.”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오실 거예요?”
“그게 저의 할 일입니다. 아가씨.”
표면상 기철호의 말에 문제는 전혀 없었다.
다만 녀석의 어두운 속내를 아는 내 입장에서는 그런 것에 응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 잡히면 정말 골치 아파질 거예요.]
‘네. 명심하죠.’
나는 옆에 떠다니는 연호를 힐끗 보며 눈치를 줬다.
(알았다.)
연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바로 내 몸에 들어왔다.
기질창에 뜬 검술 스킬을 확인한 뒤, 바로 주위를 둘러봤다.
거리를 두고 마법을 준비하는 사용인이 두 명.
그리고 나를 향해 무기의 날을 겨두고 있는 사용인이 네 명.
그중에 세 명이 검….
‘포위당하는 것만큼은 피해야겠는데….’
내 속마음을 읽은 듯이 사용인들은 서로 신호를 보내며 나를 포위하기 시작했다.
나는 검을 사선으로 들고 조심스럽게 뒤로 빼기 시작했다.
내 모습에 기철호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뒷걸음질 치는 것을 보니, 뭔가 찔리는 게 있는 모양입니다?”
정말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이었다.
저렇게 미소를 짓는 건 처음인데….
“아쉽지만, 그런 속사정은 없습니다. 다만….”
나는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당신에게 잡히면 없던 죄도 만들어질 것 같아서 잡히는 건 사양하고 싶네요.”
“…상황을 악화시키는군요.”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기철호라면 나를 잡는 순간 진짜 악인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나마 이곳에서 내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이소현과 서지은이었다.
하지만 이소현은….
“저분은 아무 잘못 없습니다! 지금 이상한 오해를….”
“시끄럽군요. 저자를 잡은 다음은 당신입니다.”
“큭….”
이미 기철호의 폭로 때문에 쉽사리 발언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서지은은….
“세형 씨… 지금 당장 그만두세요.”
“그 말씀은 들을 수 없습니다.”
“이게 무슨….”
험악한 분위기로 기철호를 제압해 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저는 아가씨를 위해서라면 아가씨의 불신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게 옳다고 판단했을 뿐입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제압만 하는 것입니다. 그야 반항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사용인들이 모두 서지은이 아닌 기철호의 말에 반응해서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수호 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저들은 기철호의 수족은 아니지만, 지금은 서지은의 명령보다 기철호의 명령을 듣는 쪽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 여자들도 그게 올바르다고 판단한 거겠지….’
충신의 모습은 달콤한 입발림이 아닌 쓰디쓴 입바름에서 나오는 법이다.
사용인들 입장에서는 기철호의 명령을 듣는 쪽이 서지은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겠지.
이쯤 되면 기철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한 녀석이네.’
내가 문제를 일으키든, 일으키지 않든 결국 자기 행동을 모두 합리화하는 능력을 지닌 녀석이니까.
진정한 사기꾼은 악마나 폭군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천사의 미소와 현자의 근엄한 얼굴을 한 자이다.
“지금이라도 협조해주시면 상황은 훨씬 더 나아질 것입니다.”
저기 나를 향해 미소를 짓는 기철호처럼….
나는 기철호의 말에 오히려 검을 세게 움켜쥐며 한 발자국 더 뒤로 물러섰다.
포위당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한다.
하지만 내 행동이 오히려 그들을 자극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파아앗!
“하아앗!”
날카로운 날을 지닌 창이 내 검을 향해 찔러오고 있었다.
다행히 살의나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처럼 여유를 부려주지는 않네!’
전날 사용인들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준 것을 후회했지만, 후회를 금세 뒤로 하고 재빠르게 날아오는 창을 검으로 비스듬히 쳐냈다.
창의 장점은 리치.
하지만 거기에 어울리는 단점도 존재했다.
카아앙!
“크읏!”
무기가 긴 만큼 악력이나 팔심이 다른 무기에 비해 배로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단점에 걸맞게 상대방이 짧은 범위 안에서 회피와 견제를 반복하면 상대방의 힘을 순식간에 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런 단점도 결국….
파아앗! 사아악! 파앗!
‘진짜 작정했네!’
여러 명이 붙게 되면 단점이라고 할 수 없었다.
한 번에 세 가지 형태의 검날이 날아오고, 마법이 내 쪽을 향해 한꺼번에 날아왔다.
일단 마법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마법을 쓰는 두 사용인은 무기를 사용하는 사용인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을 우려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를 위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약한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무기를 든 사용인들은 달랐다.
“하아아앗!”
그녀들은 내 손에 든 무기를 떨어뜨리는 것에 전력을 다했다.
과전압이 방출되는 듯한 위압감이 그녀들의 무기에서 느껴졌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레벨 10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확인해보자!’
내 검술 레벨은 40, 심지어 마법도 무장한 상태이다.
그에 비해 사용인들의 레벨은 20 후반에서 30 초반.
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카앙! 채애앵! 사사삭! 파캉!
세 가지 형태로 날아오던 검을 모두 쳐낸 뒤, 나는 오히려 사용인들에게 후속타를 날려냈다.
“크읏!”
“무, 무슨!”
“하읏!”
세 사람은 예상치 못하게 튕겨 나간 자신들의 검과 함께 베어지는 내 검을 피해 황급히 뒤로 빠져버렸다.
하지만 당황한 것과 별개로 즉각 반응하며 다시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영사관 출신이라 그런지 반응은 좋네.’
어제 싸웠던 홍문석같이 멍한 반응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대는 바로 접어버렸다.
애초에 홍문석도 내 실력을 미리 알았으면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캉! 사삭! 챙! 파카아앙!
나는 다시금 들어오는 공격을 반격하며 기철호의 반응을 살펴봤다.
아까 뒷걸음질 치던 내 모습에 만족하던 기철호는 어느새 불만이 그득그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오히려 당황하며 기철호를 질타하던 서지은과 이소현이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전투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기철호가 불만이 담긴 목소리로 사용인들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지금 한 명을 처치하는 게 맞나!? 적당히 상대하지 말고 진심으로 상대해!”
“알겠습니다!”
사용인들은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것을 깨닫고 진형까지 바꾸며 내게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맹공과 함께 서지은이 기철호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세형 씨! 지금 당장 멈추세요! 만약 문제가 있다면 제가 책임지겠어요!”
“책임보다 안전이 중요합니다.”
“크읏! 정말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서지은은 단호한 기철호에게 질색하며 몸을 돌려서 공방이 펼쳐지는 우리에게 다가오며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제가 나서겠어요.”
“….”
서지은의 발언과 함께 사용인들의 움직임과 무기가 전부 멈췄다.
다들 서지은에게 시선이 쏠렸다.
서지은이 사용인들을 노려보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멈추세요. 지금이라도 멈춘다면 지금 일은 불문에 부치겠어요.”
“….”
사용인들은 기철호의 눈치를 보며 무기를 쉽사리 내리지 못했다.
기철호가 침묵하자, 이소현이 그에게 다가가서 설득을 시도했다.
“저와 성수호 교관님을 의심하시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저택 내부의 사건부터 해결하는 게 순서입니다. 이대로는 아가씨의 신변에 진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기철호는 의외로 바로 수긍했다.
‘벌써?’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또 뭔 짓을 벌일 것 같은데….’
기철호의 말과 함께 모든 사용인이 일제히 무기를 든 팔을 내렸다.
그런 모습에 안도한 서지은이 내게 다가와서 서글픈 눈으로 사과를 해왔다.
“교관님… 처음부터 막지 못해서 죄송해요.”
“네가 뭐가 죄송할 게 있냐. 다친 곳은 없고?”
“네? 제가 왜 다쳐요? 저는 지금 싸우지 않았는데…?”
“방이 난장판이 되어서 걱정했다. 다치지 않았으면 다행이네.”
“아….”
애초에 이곳에 들른 이유가 서지은이 걱정되어서 온 것이었다.
걱정하는 게 정상이겠지.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오빠!!!)
나는 갑자기 들려온 비명을 향해 고개를 돌려서 바라봤다.
시호였다.
역시 영혼이라 그런지 출발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도착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를 본 게 마냥 기뻐서 큰 소리로 부르는 줄 알았다.
하지만 표정이 전혀 기뻐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마치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을 앞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위기를 앞둔 것 같은 표정의 시호가 기철호를 지목하며 소리쳤다.
(오빠!!! 저 녀석이 이소현한테 이상한 주사를 놓으려고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