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9화 〉 589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내가 먼저 서지은에게 달려드는 그림자 칼날을 막아냈다.
‘빙의술을 풀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검을 들고 그녀의 주변을 돌아다니는 그림자들을 주시하며 서지은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집중해. 보는 눈이 많아서 모두 다 해제할 수가 없어.”
“네!”
서지은은 조용히 외치며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지은이 눈을 감는 순간….
사사삭! 사악! 파아아앗!
마치 빈틈을 발견한 듯 그녀의 주변에 있던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서지은과 나를 감싸며 난도질하기 위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카앙! 파캉! 카카캉!
나는 무수한 그림자들을 검으로 막아내며 한둘씩 해체술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사용인들도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아아앗! 샤아악! 샤아아아악!
“머, 멈추지 않아요!”
주변에 있던 사용인이 달려들어도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형태로 그림자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거대하게 퍼져나가는 그림자들은 흡사 해수면을 암흑으로 물들게 하는 크라켄 같은 모양이었다.
“이쪽은 내가 어떻게든 맡을 테니까 계속 집중해!”
“네, 네!”
서지은은 양손을 꽉 움켜쥔 채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사태는 더 악화되었다.
그림자 숫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었다.
‘미치겠네.’
지금까지 내가 서지은을 돌봐줬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늘어나는 그림자는 외부에서 달려드는 사용자들조차 함부로 덤벼들 수 없을 정도로 위협적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들에게 신경을 쓰고 있는 그림자 숫자가 많아서 내가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상대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재능이 있는 애가 맞긴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은 아닐 텐데.’
서지은은 이미 능력만 따지면 영웅급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나 제어 불능이 없고, 상성만 맞으면 사용인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사사삭! 카앙! 카캉! 사사삭! 쏴아악!
“빨리! 아가씨를 구해!”
사용인들과 싸워서 이기는 수준이 아닌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크읏!”
“빈틈이!”
무기가 없는 사용인들은 재빠르게 무기를 챙기기 위해 몇몇이 떠난 상황.
마법 특기가 있는 네댓 명의 사용인들이 서지은의 그림자 마법을 제압하기 위해 마법을 난사했다.
두 남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뭣들 하는 거야!”
“빨리 아가씨를 구하세요!”
기철호와 이소현이 사용인들에게 서지은을 구하라고 닦달했다.
영웅급 능력을 지닌 사용인들이 생도인 서지은의 그림자 마법을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한 빈틈을 노리자.’
나는 괜한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해체술을 사용하지 않고, 서지은에게 달려드는 그림자를 검을 열심히 쳐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진정이….’
하지만 내 희망적인 생각과 다르게 상황이 좋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서지은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끄읏….”
서지은의 얼굴은 어느새 새파랗게 물들어서는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나 제어 불능.
지금까지 내가 본 현상은 서지은이 방출하지는 마나를 제어하지 못하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 서지은의 모습을 보자면 그저 마나 제어를 못 하는 수준을 넘어 보였다.
[마나 탈진 증세입니다. 강제로 마나가 추출되는 것 같습니다.]
‘….’
마나 탈진 정도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만약에 마나 탈진이 걸렸음에도 마나가 계속 사용된다면?
그때는 진짜 목숨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내가 직접 다른 인간의 마나를 강제로 뽑아본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 해체술로 인한 실리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들키는 것만 따지다가는 일이 꼬이겠다. 일단 구하고 보자!’
나는 그렇게 판단한 뒤, 나와 서지은 쪽으로 달려드는 그림자들 위주로 해체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강한나는 대충 상황을 듣고는 내게 조언하기 시작했다.
[수면을 걸어서 기절시키면 되지 않을까요?]
나름 괜찮은 방법 같았다.
하지만 기각했다.
‘지금 마나가 강제로 추출되는 상황이에요! 만약 재웠는데, 그대로 유지되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강제로 뽑혀 나오는 마나가 잠이 든다고 멈춘다는 보장이 없었다.
상황이 악화할 우려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판단하며 열심히 그림자를 쳐내면서 해체술을 펼쳤다.
하지만 내가 해체술을 펼칠 때마다 그림자는 새로 생성되며 다시 나… 아니, 서지은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거 사태가 좀 심각해지는데?’
해체술은 만능 같아 보이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마법진 자체는 순식간에 그려낼 수 있지만, 그 마법진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마나의 흐름을 보고 연산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점점 연산에서 내가 밀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미치겠군. 이게 진짜배기 재능이라는 건가.’
서서히 서지은의 그림자들이 내 방어의 범주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외부의 지원도 그만큼 늘었다는 사실이었다.
“최대한 집중해서 파고들어!”
“아가씨의 안전이 우선이야!”
각종 무기류를 들고 온 사용인들이 그림자를 뚫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지은의 그림자 마법이 희귀함과 강력함을 지녔다고 해도 영웅급 능력자 열댓 명의 공격까지 막아낼 도리는 없어 보였다.
아니, 애초에 그 정도도 대단한 것이지만….
그렇게 그림자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드는 순간이었다.
“흐으읏….”
비틀거리던 서지은의 몸이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심해!”
파아아앗!
그림자 하나가 마치 마지막 발악을 하듯 자기 주인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
불행한 인간은 이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제일 불행한 사람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 자신을 지목하곤 한다.
타인의 불행은 간접 체험으로 느끼는 수준이지만, 자신의 불행은 직접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지은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영웅이자,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기업인이었던 아버지가 실종.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의 아내인 어머니는 식물인간이 되고.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사관에 입학하자마자 자신의 특기였던 마법마저 쓸 수 없게 되었다.
마치 세상이 그녀를 궁지로 모는 것 같았다.
분명 이성적으로는 자신보다 더 불행한 자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머리와 가슴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들이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다그칠지 모르지만,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불행을 제일 크게 느끼는 법이니까.
하루하루를 지옥에서 맨발로 걷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매일 지옥을 걷는 기분을 느꼈던 서지은에게….
(처음 보는데, 신기한 능력이네.)
(어?)
처음으로 밝은 빛과 함께 동아줄이 내려온 것이었다.
정식 교관인 성수아조차 경계하던 그림자 마법을 마치 칠판에 매직을 지우듯 가볍게 지우던 남자.
(내가 할 일은 생도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거다. 그 치부를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려고 교관을 하는 게 아니야.)
이 남자라면 자신을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희망은 성수호와 같이 수업하면서 점점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몸을 가누지 못해서….)
(사과하지 말아라.)
(…네?)
(부축한 생도에게 사과받는 게 교관의 일은 아니니까.)
보조 교관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책임감.
그리고 두 사람만의 비밀 교습.
그런 달콤한 관계가 서지은을 점점 그에게 빠져들게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계하고 있었다.
자신의 위치가 위치인 만큼 엄한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서지은도 알고 있었다.
그렇게 경계하던 서지은에게….
(위험해!! 크읏!)
(교, 교관… 님….)
성수호 교관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림자 칼날을 대신 맞아주며 그녀를 지켜준 것이다.
그게 서지은이 쓰러지면서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
..
“흐으…?”
신음을 내뱉는 서지은의 목소리에 반응하듯 그녀의 근처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소현 씨?”
서지은은 이소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며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봤다.
“방…?”
익숙하다 못해 지긋지긋한 장소가 자신을 반겨 주고 있었다.
안락한 장소가 되어야 하는 자신의 방.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방을 보고 있자면 속박당하는 느낌이 들면서 그녀의 목을 옥죄어왔다.
당연히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가 실종되고, 어머니가 식물인간이 된 뒤, 능력까지 폭주한 상태가 되고 나서 자신을 지켜준다는 명목으로 갇히는 장소.
“후우….”
서지은은 답답한 마음에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대고 크게 한숨을 쉬는 순간이었다.
번뜩 잠에서 깨기 전에 봤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아! 성수호 교관님! 어, 어떻게 됐어요!?”
“….”
서지은의 다급함이 담긴 목소리에 이소현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행동이 서지은의 심장을 멈춰 세우며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마, 말씀해주세요! 다, 다치신 건….”
서지은은 심장을 움켜쥐며 천천히 이소현이 바라보는 장소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
성수호가 의자에 앉은 채 등에 기대로 곯아떨어진 상태였었다.
“서, 성수호 교관님…?”
“아까 그 사건이 있고 나서 저기에서 계속 앉아서 자고 있었습니다.”
“휴우….”
서지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소현은 탄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아가씨를 구해줬다고 해도 아가씨 방에 들어오다니….”
서지은의 방에 발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현재는 집사와 비서, 그리고 그녀를 보좌해주는 여자 사용인이 전부였다.
성수호는 공식적으로 아버지와 집사를 포함해서 서지은의 방에 들어오는 세 번째 남자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서지은에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다행이다….”
성수호가 안전하다는 사실에 인도할 뿐이었다.
서지은은 폐를 끌어낸 안도의 한숨을 내 쉰 뒤, 이소현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묻기 시작했다.
“자세히 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아가씨께서 기절하신 뒤에도 마법은 계속 폭주했지만, 기절하신 영향 때문인지 금세 사라졌습니다. 다만….”
“…?”
“예전에 사라지는 모습과 좀 달라 보이긴 했습니다. 사라지는 모습이라기보다는 퍼져나가는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아….”
서지은은 그 말을 듣고 어떤 상황인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교관님께서 해결해주신 거구나….’
마나 폭주가 잠잠해 방식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예전처럼 진정되면서 그림자 자체가 사라지는 형식.
그리고 두 번째는 성수호가 그림자를 사방으로 터트리며 잠재우는 방식이었다.
“아가씨께서도 다치지 않았고, 주변에 사용인 중에서도 다친 이가 없었습니다.”
서지은은 안도하는 것과 동시에 의자에 앉아서 자는 성수호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수호 교관님은요?”
서지은이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자기에게 날아오던 그림자 칼날을 팔로 막아낸 성수호.
절대 얕은 상처로 끝날 공격이 아니었다.
이소현은 입술을 살며시 깨운 뒤, 대답했다.
“…상처를 입었지만, 의료진을 불러서 바로 치료했습니다.”
“분명 많이 다치셨을 텐데….”
서지은은 그 기억을 왜곡하지 않고 똑바로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그림자를 막기 위해 팔을 뻗었던 성수호를….
그리고 마지막 그 장면에 성수호의 팔은 분명 자신의 그림자에 꿰뚫려 있었다.
이소현은 차분히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치셨습니다. 하지만….”
“…?”
이소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는 성수호를 나지막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성수호 교관은 아가씨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걱정하실 거라면서….”
“….”
서지은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하기 시작했다.
분명 죄책감을 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이 초대한 일 때문에 성수호가 크게 다친 것이니까.
하지만 그럼에서 서지은은….
‘성수호 교관님… 진짜 좋은 분이시네.’
고개를 숙인 채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그녀는 최대한 이소현에게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은 뒤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지금 몇 시인가요?”
“저녁 9시입니다.”
“그럼 성수호 교관님은…?”
“제 임의로 오늘은 저택에서 자고 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만약 불편하시다면 바로 영사관으로 보낼 차량을 준비시켜놓겠습니다.”
서지은은 이소현의 말에 불쾌한 표정을 짓기는커녕 오히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잘했어요.”
“그럼 지금 깨워서 객실로 보내겠습니다.”
“그….”
“…?”
서지은은 이소현에게 손을 뻗어서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
“너, 너무 피곤하신 모양인데. 나중에 일어나시면 그때 가시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