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7화 〉 587화 영웅 사관 학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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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다가오는 자의 기질창이 주인에 맞춰서 점점 확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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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석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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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육체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기질창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마법 계통 능력자가 아니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170 후반 정도 되는 키임에도 덩치가 꽤 큰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기질창 안에는….
[창술 LV 34], [투창 LV 29], [격투술 LV 19]
맨손 격투에도 어느 정도 소실이 있다는 정보가 들어 있었지만, 그의 주특기가 창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저는 자기 주특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 검을 겨누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내가 말하는 것과 동시에 주변에 있던 사용인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 그건 내 주위를 돌던 혼령인 연호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소리지? 자기 주특기가 뭔지 모르다니? 돌진형 근육을 지닌 것을 보면 무투가가 맞는 것 같은데….)
이런 것을 보면 기질창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름 한 실력을 갖춘 연호도 외형만 봐서는 상대방의 재능을 완벽하게 간파할 수 없는 것을 보면….
나는 연호에게 대답하지 않고 홍문석이라는 남자의 말을 기다렸다.
순간이지만, 홍문석의 눈이 요동치는 것이 보였다.
홍문석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기철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그의 능력보다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과시 욕구], [매정함], [이기주의], [막무가내]….
저택에서 사용인으로 일하는 인간 치고는 생각보다 경박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뭐, 사람이 모두 겉과 속이 같으라는 법은 없지만….
‘애초에 기철호에 비하면 그냥 평범한 인간 수준이네.’
내가 그렇게 홍문석에 대해 평가를 하는 중에도 침묵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깬 사람은 다름 아닌 서지은이었다.
“저… 교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이분께서 주특기를 모르다뇨?”
“말 그대로다. 분명 무기를 쓰는 자임에도 주먹으로 나를 상대하겠다고 하니, 나도 맞춰서 무기를 뺀 것뿐이다.”
서지은은 평소와 다르게 미간을 찌푸린 뒤, 불편을 품은 표정으로 홍문석을 바라봤다.
“…그 말이 사실인가요?”
“그, 그게….”
홍문석이 당황하며 기철호의 눈치를 보자, 기철호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그리 시켰습니다.”
다들 기철호에게 시선이 갔고, 서지은은 그런 기철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세형 씨가 시키셨다고요?”
“네.”
“어째서 그런….”
기철호는 서지은의 의문에도 차분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매듭지었다.
“이분의 실력을 확인하는 자리라 적당한 핸디캡을 넣었습니다.”
일단 지금 상황이 저 덩치의 단독 소행은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런데 또 의문이었다.
기철호는 나를 짓누르려고 하는 인간이다.
왜 이런 핸디캡을 넣었을까 싶었다.
다른 인간이라면 정말 동정의 여지를 베푸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저 인간은 절대 그런 인간이 아니다.
‘딱 봐도 뭔가 숨겨 놓은 함정이 있는 거 같은데….’
내가 그렇게 의문을 품는 순간이었다.
탁!
기철호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더니, 다른 사용인들에게 신호를 줬다.
기철호의 손가락이 튕기는 소리에 사용인들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아까까지 나를 손님으로 대우해주던 사용인들이 내게 적의를 드러내며 나를 바라봤다.
나는 갑자기 몰려든 사용인들을 경계하며 기철호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죠? 설마 1대1 검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대일로 바꾸신 건가요?”
“그건 당신의 답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기철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표정을 굳힌 채 목소리를 깔며 물어왔다.
“저희 가문 사람의 능력을 어떻게 아신 건지 묻고 싶습니다.”
“세형 씨! 갑자기 교관님에게 무슨….”
“아가씨. 이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저택에 있는 사용인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건 이 자의 신분을 의심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제야 이 상황이 이해가 갔다.
저택 내부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공간이다.
물리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서 정보까지….
그런데 내가 그의 능력을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니 저택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쯧… 일이 이런 식으로 꼬이네. 일단 일이 꼬이기 전에 빨리 설명해야겠네.’
나는 당황하는 서지은과 경계하는 기철호, 그리고 중립을 지킨 채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소현을 보며 설명했다.
“제 특기입니다.”
“…네?”
“사람을 보면 주특기와 더불어서 주무기를 대충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제 특기죠.”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을 믿으라는 소리입니까?”
기철호는 나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말은 서지은과 이소현도 쉽사리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나는 사용인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천천히 읊었다.
“궁술, 검술, 이분도 검술, 이분은 단도술….”
나는 서지은과 이소현, 기철호를 빼고 모든 사용인을 지목하며 주특기를 읊었다.
그리고 주특기를 읊으면서 부가 설명도 덧붙였다.
“이분은 주특기가 단도술인데, 궁술도 좀 하시는 분이시군요. 그리고 이분은 검술…. 역시 어디를 가나 검술을 쓰시는 분이 많군요.”
내가 그렇게 설명을 읊으면서 사람 수를 줄여갈 때마다 기철호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서지은과 이소현은 놀란 표정으로 서로 바라봤고….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나는 기철호에게 손을 내밀어서 그를 지목했다.
기철호는 갑자기 자기를 지목하는 나를 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능력이….”
“숨기는 능력이 뛰어나시군요. 아마 암기 쪽이 전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기철호의 금이 갔던 얼굴이 갑자기 깨지듯 와락 구겨졌다.
나는 그런 그를 보며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좀 애매모호하네요. 보아하니 재능은 있는데, 무기를 다루지는 않은 것 같네요… 아마 훈련하시면 큰 성과를 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기철호는 내 말을 듣자마자 표정을 굳히고 눈동자를 굴려서 주변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구겨진 표정을 본 사람이 있을까 하는 걱정을 하듯….
하지만 이미 늦었다.
모두 다 그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나는 당혹감을 드러낸 기철호를 보며 속으로 낄낄 웃었다.
‘이제야 좀 볼만한 표정이 나오네.’
하지만 당혹감도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이었다.
기철호는 다시 탈바꿈한 평안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 즉시 사용인들이 다시 제자리도 돌아갔고, 기철호는 나를 보며 무뚝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 말이 사실이라고 믿겠습니다. …또다시 무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이해합니다. 입장상 당연한 절차였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쉽게 이해해줬다.
그 표정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은 치렀으니까.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던 연호가 처음으로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영적 세계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는데, 재미있는 녀석에게 불려와서 다행이군.)
일단 지금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중요한 일이 끝난 건 아니었다.
기철호는 홍문석이라는 사용인을 힐끗 본 채 눈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 친구에게는 정식으로 무기를 쥐여주겠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다.
..
..
나와 홍문석은 대략 5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상태였다.
기철호는 나와 홍문석 사이에 서서 대결 방식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전투 시간은 따로 없습니다. 한쪽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제지에 들어가겠습니다. 그 전에 패배를 선언하셔도 됩니다.”
모범적인 설명이었다.
애초에 이득을 취하는 대결이 아닌 그저 검증을 위한 대결인 만큼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강제성이 부여된 것도 아니었다.
홍문석이 나를 곤죽으로 만들고 나서 중재를 할 생각일 가능성도 크니까….
나는 검을 들고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홍문석을 바라봤다.
창을 꼬나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중급… 잘 치면 중상급 영웅 수준….’
던전화 되었던 에브리카 안에서 만났던 문주아에 비하면 약하겠지만, 그 당시 싸웠던 괴한들보다는 강해 보였다.
심지어 지금은 그때처럼 수면이나 마기 트랩 같은 편법을 쓸 수도 없는 상황.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나는 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주며 근처를 맴돌던 연호를 힐끗 바라봤다.
(알았다.)
내 눈빛을 찰떡같이 알아본 연호가 내게 다가왔고, 나는 바로 빙의술을 개시했다.
그렇게 내 몸속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자, 시작!”
“크아아앗!”
기철호의 외침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홍문석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내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흡사 곰이 돌진하는 듯한 기백이 느껴졌다.
마치 단번에 기선 제압을 해서 눕히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저렇게 화가 난 표정을 짓는 건 아까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아까 쪽을 당한 것도 크겠지.’
명령 하나 받고 돌진하는 것치고는 사심이 가득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도 마냥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일단 마법은 쓰지 말자!’
나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며 검을 들고 돌진하는 진로를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이동시켰다.
그렇게 이동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미쳤네. 내 몸이 아닌 거 같은데?’
과장이 아닌 진심으로 감탄사가 나왔다.
그저 연호라는 영혼을 몸속에 받아들였을 뿐인데, 그가 생전에 체득한 몸놀림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소통 불가. 이게 제일 큰 단점이네.’
빙의술로 내 몸에 들어온 연호의 능력을 내 것처럼 쓸 수 있지만, 그와 소통은 불가능했다.
소통까지 가능했다면 체득한 본능이 아닌, 중요한 상황에 대처법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수호 님. 전투 중입니다.]
‘아! 생각보다 스킬이 쩔어서 나도 모르게 여유를 부렸네!’
내가 몸을 움직이며 이동하자, 돌진하던 홍문석이 내게 방향을 틀어서 돌진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공격 범주에 들어서는 순간….
파아앗!
“크아아앗!”
창을 횡으로 휘두르며 내게 공격을 가했다.
첫 공격으로 한가지 확인할 수 있었다.
‘….’
창의 최고의 장점은 리치다.
그리고 그런 리치를 이용해서 무수히 찔러 대면서 상대방을 압박하고, 제압하는 인류 최대의 무기이다.
그런데 그런 무기를 가지고 저렇게 크게 휘두르며 빈틈을 크게 내어준다?
‘얕잡아 보고 있네.’
그것 말고는 도저히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한 방에 크게 힘을 쏟아서 곤죽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그리고 그런 의도를 알아챈 이상….
‘봐줄 이유는 없지.’
나는 무지막지한 풍압을 일으키며 휘둘러 오는 창을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궁금했다.
과연 빙의술로 얻어낸 검술 LV 45가 어느 정도인지.
검술로 피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고, 심지어 손기술까지 더해지면 검을 이용해서 창의 궤도를 틀어서 오히려 내가 파고들어서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얼마큼 강해졌는지 시험해 보자고!’
나는 풍압을 일으키며 그어오는 창을 향해 칼로 있는 힘껏 휘둘렀다.
그리고 내가 휘두른 검과 홍문석이 휘두른 창이 부딪히는 순간….
카앙!
저택 훈련실 안에 뇌를 찌를 듯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파캉!
나와 동떨어져 있는 장소에 날카로운 쇠가 바닥에 꽂히는 소리가 둔탁하게 퍼져나갔다.
나는 쇠가 떨어진 장소를 보지 않고, 상대를 보며 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내 검과…
마치 칼에 잘린 듯한 빨대 같은 홍문석의 창.
“이… 이게 무슨….”
홍문석은 무게와 부피가 반으로 줄어든 창의 모습에 혼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고.
나는 그런 홍문석의 앞에 서서 아직 날이 새파랗게 벼려져 있는 검을 살펴보며 감탄했다.
“역시 서가의 무기라 그런지 상태가 좋네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