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4화 〉 584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성수호 교관님 덕분에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어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허리를 숙인 서지은을 보면서 멋쩍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누가 보면 내가 모두 다 해결해준 줄 알겠다.”
아까 그 열의를 보며 어느 정도 감동은 할 줄 알았지만, 설마 저렇게까지 눈물을 흘릴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말대로 지금 상황은 해결과는 전혀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다.
서지은의 입장에서야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나아지겠다고 생각하겠지. 아니… 나아지려나?’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애초에 기질창에도 나와 있지 않은 상태 이상이니….]
‘도대체 뭐가 문제지?’
서지은의 마나의 흐름은 분명 내 눈에 띄었다.
그건 다른 마법사들 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에 성수아만 하더라도 마법적 재능 자체는 나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니까.
하지만 그 마나의 흐름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형식으로 뻗어나갔다.
의지대로 일자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닌, 마치 방사하는 느낌으로….
[안심하고 마법을 계속 쓰다 보면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그런 부분에서는 내가 성수아보다 훨씬 낫긴 하겠네.’
원인을 알 수 없었지만, 이왕 맡은 일이니 이런 식으로 개인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나도 얘가 마음에 드니까.’
처음에는 귀찮음이 추가된 느낌이었지만, 막상 서지은의 모습을 보니 그런 귀찮음이 싹 가셨다.
똑같은 장소에서 가르치더라도 전혀 다른 효율을 내는 것이 교육이다.
가르치는 사람 하나가 아무리 뛰어나도 가르침 받는 자들의 형태에 따라 배움의 질도 달라진다.
틱틱거리는 의지 박약아를 가르치는 것과 열정을 품고, 최선을 다하는 녀석을 가르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처럼….
‘뭐, 내가 가르칠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서 아쉽긴 하지만.’
서지은은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눈물을 닦아내고는 허리를 세워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그래. 일단 슬슬 집에 갈 시간이지?”
창밖에는 노랗게 타오르던 태양이 어느새 붉은색 기운을 풍기며 사그라들 준비를 마친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즉, 하교 시간이라는 의미였다.
영사관은 기숙사 생활을 강제화하지만, 서지은만은 예외였다.
재력과 더불어서 마나 제어 불능 때문에라도 본가에서 등하교를 하는 처지였다.
서지은은 손을 쥐락펴락하더니, 내심 아쉬운 목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슬슬 가봐야 할 거 같아요.”
“그럼 가자. 차 타는 곳까지는 바래다줄게.”
“…네.”
나는 서지은의 미소가 담긴 대답을 들으며 그녀와 같이 교실을 나섰다.
서지은과 큰 대화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교문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 갈게요.”
“아, 그러고 보니까 집사 분께서 마중 오시지?”
“네… 그… 세형 씨는 절대 나쁜 분이 아니세요.”
서지은은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내가 집사와 기 싸움을 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는 것 같았다.
화해를 주도하는 건 어렵더라도 최소한 상대방의 심성을 대변함으로써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건 실패가 됐지만….
‘평생을 같이 지낸 얘도 모를 정도면 진짜 난놈일세.’
기절호라는 놈과 내가 친해지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사기꾼 같은 놈을 어떻게 좋아하겠는가.
[회장도 속았을 가능성도 큽니다.]
‘그 정도라면 난 놈을 넘어서, 우주로 쏘아진 놈이고….’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부분은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나도 생도의 보호자랑 싸울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배려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보자.”
“네.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서지은을 배웅한 뒤, 나는 곧장 곪은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
..
솨아아악! 사악! 쏴아아악!
서지은의 발밑에 있던 그림자들이 무수하게 뻗어나가며 칼날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오….”
볼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자연 속성 계통의 마법이야 원체 많이 봐와서 감흥이 줄어들었지만, 서지은의 그림자 마법을 보고 있자면 처음 마법을 눈앞에서 봤을 때의 감동이 물씬 밀려 들어왔다.
하지만 내 감동을 끌어낸 그림자들은….
싸아아악! 파아아앗!
“흐읏!”
1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주인인 서지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눈앞에 둔 것처럼….
나는 그 즉시 손을 뻗어서 해체술을 펼쳤다.
파앗! 스르륵….
해체술과 동시에 무수하게 뻗어나갔던 서지은의 그림자들이 퍼져나간 다음, 그녀의 발밑에 자연스럽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괜찮니?”
“…네, 괜찮아요.”
서지은은 쓰게 미소를 지으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서지은의 마음속에 있는 열정은 마그마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마그마가 들끓는 장소라도 비가 지속해서 내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안감이 담겨 있는 차가운 비가….
‘이런 상태로 한 달을 넘기면 다시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겠네.’
현재 서지은은 얼마 전에 내게 보여주는 모습과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 내 앞에서 요조숙녀처럼 굴던 서지은은….
“성수호 교관님. 오늘은 좀 오래 버틴 거 같지 않나요?”
“이번에는 1분이나 넘겼네.”
여타 생도들과 비슷하게 활기가 담겨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변한 건 성격뿐만이 아니었다.
[마법력 LV 22], [영(?)속성 LV 17]
일주일 사이에 마법력이 20에서 22로, 영속성이 14에서 17로 급상승한 것이었다.
미친 듯한 성장이라는 표현을 써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야 지금 보이는 성장은 그동안 쌓여 왔던 능력을 기반해서 올라가는 중이라 어느 순간 멈추기는 하겠지만….
“정말 대단하다. 그림자 마법도 대단하고.”
내 입에서는 칭찬 말고는 딱히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또 막상 칭찬하면 서지은은 시무룩한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렸다.
“…다행이네요.”
나는 시무룩한 서지은을 보면서 위로했다.
“자신감을 가져라.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어쩌면 해결책 자체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
위로해줬더니, 왜 갑자기 머리 위에 물음표를 세워?
나는 그런 물음표를 세운 서지은을 보면서 말했다.
“오늘은 이만하자. 슬슬 하교 시간이네.”
창밖에 태양이 또 한차례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태양이 저물면 다시 주말이 시작한다.
‘벌써 금요일이네. 이번 주말에는 뭘 할까나….’
아직 정해 놓은 것도 없는데, 주말이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다.
주말에는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았다.
만약 성수아와 약속을 잡았는데, 초서현이 만나자고 하면 한쪽 약속을 깨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였다.
‘아, 윤지아한테도 계속 연락이 오는데. 간만에 윤지아랑 만날까.’
그렇게 행복에 겨운 선택을 고르고 있을 때였다.
“그… 성수호 교관님.”
“응?”
서지은이 훈련으로 인한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흐트러진 복장을 정리하고 내 앞에서 서서 쭈뼛쭈뼛하기 시작했다.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쉽사리 꺼내지를 못하는 듯 보였다.
나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러니?”
“그… 혹시….”
“…?”
계속 말을 흐리던 서지은은 크게 한숨을 쉬며 결정한 듯 내게 말했다.
“혹시 괜찮으시면 이번 주말에 교관님을 저희 집으로 초대해도 될까요?”
..
..
나는 서가의 저택 부지를 통해 저택으로 향하면서 통신으로 강한나의 말을 들었다.
[마침 잘됐네요. 슬슬 알아낸 정보를 정리해서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뭔가 알아낸 게 있나요?’
[있긴 한데… 좀 애매해요.]
의외였다.
시호를 이용한다면 금세 이것저것 알아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단 시호가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존재했어요.]
‘…시호가 못 들어간다고요?’
[네. 고민태의 연구 부지에 있던 중앙 시설처럼.]
참고로 고민태 연구 부지 중앙 시설에는 여의주가 있었다.
그 여의주의 영향 때문에 혼령 상태인 시호조차도 그 장소에는 들어가지 못했으니까.
[저택 자체에는 들어갈 수 있지만… 이세형… 아니, 기철호 그 인간의 방에는 들어가지 못했어요.]
‘…뭔가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죠.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교단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에요.]
기철호의 방과 교단의 일부 구역들.
그저 벽과 같은 진로를 방해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했다.
[일부 구역 근처에 다가가면 환청 증세가 나타나고, 무리해서 들어가려고 하면 마치 정신에 누가 침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어요.]
영혼조차 들어가지 못하는 구역.
그게 교단의 시설뿐만 아니라, 기철호의 방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는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면서 강한나의 말을 계속 들었다.
[만약 환청 증세가 나타나면 위치만 파악하라고 일러뒀어요.]
‘잘했어요. 시호에는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꼭 말해주세요.’
[이미 그렇게 말한 상황이지만, 당신 말이라면 더 잘 듣겠죠. 꼭 당부해 놓을게요.]
나만큼 시호를 아끼는 강한나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그 부분은 철저하게 잘 진행할 것이다.
[시호는 일단 쉬는 중이에요.]
‘…함선으로 복귀해야 할 정도예요?’
[그건 아니에요. 아르모니아 씨를 통해서 기질창을 확인해본 결과, 한동안 쉬면 나아질 거라고 했어요.]
‘아르모니아, 만약 상태가 좋지 않다고 판단되면 무조건 복귀시켜. 알았지?’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르모니아가 잘해줄 것이다.
나만큼 직원을 챙겨주는 인물이 아르모니아니까.
그 이후에 강한나에게 좀 더 세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기철호라는 인간… 저 이상으로 철두철미한 성격을 지닌 건지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어요. 어제까지는요.]
‘…어제요?’
어제까지는? 그럼 오늘은 찾았다는 말이 된다.
[네, 딱 한 번이지만… 어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걸 시호가 들었대요.]
시호는 어제저녁, 서지은이 기철호에게 성수호를 초대한다는 사실을 통보한 것을 엿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지은의 통보를 들은 기철호는 복도를 걷던 중, 혼잣말로 속삭인 것을 시호가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캐치한 내용을 내게 조용히 읊어줬다.
[…당신이 왔으니 마침 계획을 실행하기 알맞은 타이밍이라고 했어요.]
‘….’
나는 서가의 저택 입구를 눈앞에 두고 표정을 단단히 굳혔다.
‘일단 이쪽 일 마무리하면 호텔로 갈게요.’
[…무리하지 마세요.]
무리하지 말라라….
서가의 저택은 예전에도 들른 적이 있었다.
성수아와 같이.
하지만 지금은 혼자다.
예전에 저택에 들렀을 때는 그저 거대한 정원과 화려한 저택의 모습에 감탄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괴물의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네.’
마치 아름다운 초롱불에 이끌려 아귀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귀와 같은 서가의 저택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어서 오세요. 성수호 교관님.”
한껏 꾸며낸 모습의 서지은이 나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서지은은 거창하지 않지만, 격식과 캐쥬얼을 동시에 담아낸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발목이 보이는 하늘색 치마 밑으로 베이지색 단화를 신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서지은을 보면서 감탄했다.
‘저번에 봤을 때는 검은 단색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뭐랄까 처음 저택에 왔을 때는 우중충한 속마음을 표현하던 검은색 복장이라면.
오늘은 최근 바뀐 성격에 맞춰서 발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내가 서지은의 복장을 멍하니 보자, 서지은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불렀다.
“교관님?”
“아, 미안. 평소랑 복장이 달라서 놀랐네. 복장이 밝아서 마음에 든다.”
“아… 가, 감사합니다.”
서지은은 내 칭찬에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뒤편에는 두 명의 남녀가 서 있었다.
한 명은 서가의 비서, 이소현.
“어서 오십시오….”
그녀는 나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지긋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어서 오십시오.”
사람 좋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환하게 미소를 짓는 집사 기철호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