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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583화 (584/898)

〈 583화 〉 583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수호 교관님께서 저희 아가씨를 따로 담당해주셨으면 합니다.”

“…제가요?”

어제와 완전 다른 이야기였다.

어제는 거리를 둬달라고 했던 이소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반대로 달라붙어서 전담해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마과 7반이 아닌 다른 빈 교실을 배정해서 전담 지도해주셨으면 합니다.”

“저 혼자요?”

“네.”

일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서지은이 부탁했을 것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어제 이소현과 섹스를 한 것이 큰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아무리 서지은이 부탁했다고 하더라도 나한테만 교육을 맡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보조 교관이다.

마법적인 재능부터 시작해서, 실력이나, 교관으로서의 자질까지 전부 성수아에게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소현과 교장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은 지금 두 사람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싶었다.

이소현은 나와의 대화를 끝마치고, 교장에게 대충 넘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오늘부터 아가씨의 전담 교관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서가에서 그렇게 원한다면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럼….”

이소현은 나를 살짝 노려본 뒤, 몸을 획 돌려서 교장실을 나갔다.

나는 당황한 채 교장에게 물었다.

“교장님. 제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끙… 곤란한 건 이해하지만, 한동안만 맡아주세요. 저희가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지라….”

교장은 내부 사정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돌려서 대충 설명해줬다.

서가는 교단의 재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재벌이고, 영사관은 재정에 큰 축을 담당하는 교단과 연결된 서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처지라고 밝혔다.

말도 안 되는 개입이 들어온다면 국가 기관의 입장으로 거절하겠지만, 이처럼 개인적인 부탁의 범주를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이야기였다.

교장 덕분에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서가랑 교단이랑 연결되어 있다고?’

마침 서가와 교단, 둘 다 알아보는 중이었는데 다행이었다.

한쪽을 알아내다 보면 한쪽의 문제가 또 드러나겠지.

교장은 내가 침묵하자,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 등을 툭툭 두드려줬다.

“서가에서도 문제를 인지하고 맡기는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마세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임의로 해결하고, 부득이하게 사건이 생기더라도… 제가 어떻게든 나서서 도와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후 수업이 있기 전에 제가 모두 준비해 놓겠습니다. 이제부터 오후 수업은 서지은 생도만 맡아주시면 되겠습니다.”

결국 내가 단독으로 서지은의 교육을 담당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교장과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교장실을 나오며 한숨을 쉬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내가 투덜거리자, 옆에서 까칠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숨 쉬시는 걸 보니, 이야기가 잘 됐나 보네요.”

“…아직 안 가셨나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남았어요.”

“가면서 이야기할까요?”

“…그러죠.”

이소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소현은 나와 같이 영사관 정문으로 향하면서 입을 열었다.

“아가씨께서 단호하게 부탁하셨어요. 부디 사건, 사고가 나지 않게, 각별한 주의 부탁드립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서지은이 강하게 밀어붙여서 이 상황이 성사된 모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어제도 말했지만, 저는 서지은 생도에게 이상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 말을 믿을게요. 만약에 아가씨에게 흉계를 꾸미다가 걸리면….”

이소현은 까칠함을 넘는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며 내게 경고하듯 입을 열었다.

“서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이건 제가 하는 경고가 아니라, 서가의 대리자로서 하는 경고예요.”

“하하….”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나를 노려보는 이소현의….

물컹.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명심할게요.”

“크읏! 미, 미쳤어요!?”

찰싹!

이소현은 엉덩이를 잡던 내 손을 찰싹 쳐냈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있는지 황급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이미 아무도 없던 것을 확인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보는 것도 아니고….”

“내, 내가 당신 같은 사람이랑… 흐읏!?”

“먼저 유혹해 놓고 너무 매정한 거 아니에요?”

“그, 그건….”

이소현이 책임감 하나는 훌륭한 것이 느껴졌다.

대부분 여자라면 여기에서 자기 잘못을 피하고자 역정을 내며 내 책임으로 몰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소현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음에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았다.

나는 이소현의 엉덩이에서 손을 떼고는 흐뭇하게 웃었다.

“오늘은 그쪽이 부탁했으니, 나중에 내 부탁도 들어주세요.”

“하아… 아가씨에게 이상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최대한 들어줄게요.”

“하하, 명심할게요.”

이미 시호를 통해서 괜찮은 여자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 말을 통해서 진심을 전달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소현을 주차장까지 배웅한 뒤, 교관으로서의 일과를 시작했다.

..

..

조용한 교실 한복판에서 나긋한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목소리의 주인은 생도복을 입고, 다소곳하게 서 있는 서지은이었다.

‘일단 본인이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는 거네.’

생각해보면 이런 상황까지 와서 내빼는 것도 의미 없는 행동이긴 하지.

기과 수업을 마친 나는 교장에게 다시 불려가서 내부 사정을 듣게 되었다.

성수아에게는 당분간 보조 교관 없이 수업을 진행해달라는 말과 서지은이 당분간 수업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통보한 상태라고 했다.

나는 당분간 교장의 명령으로 다른 직책을 맡고, 서지은은 한동안 휴식을 취한다는 식이었다.

덕분에 나는 마과 수업 시간임에도 성수아 없이 서지은과 단독으로 다른 교실에서 마주한 상황.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교관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다만 한가지 확실히 알아둬야 한다.”

“…?”

“내가 가진 능력이 너의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보장은 없다.”

서지은은 내 말을 듣자마자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해결되지 않는다고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어요.”

만약 이 일로 인해서 생기는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겠다고 다짐했다.

그야 내가 서지은을 맡는 동안 다칠 일은 전혀 없겠지만….

“그래, 마음가짐은 생도 같아서 다행이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던 날카로운 눈매로 서지은을 노려보듯 보며 목소리를 냈다.

“내가 사용하는 능력은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말 것.”

“…명심할게요. 아니, 저희 부모님을 걸고 맹세할게요.”

“좋아.”

서지은이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어서 그런지 그녀가 내건 맹세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서지은을 담당해야 하는 건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

물을 쏟았다고 허둥지둥하는 것보다는 빨리 해결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다.

“그럼 일단 방침부터 정하자.”

“방침… 이요?”

“그래. 나는 너를 가르칠 능력은 없어. 하지만 네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커버할 능력은 있지. 그리고 너는….”

나는 담담하게 서지은의 앞에 서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내 지도가 없어도 성장할 수 있는 재능이 있지.”

내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하자, 서지은이 내 모습에 움찔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희미하게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저… 성수호 교관님.”

“응?”

설마 내가 어깨에 손 올렸다고 기분 나쁜 건 아니겠지?

나는 괜한 불안감을 품으며 조심스럽게 서지은의 어깨에서 손을 슬며시 떼자, 서지은이 힘없이 내게 묻기 시작했다.

“저는 그 정도의 재능이 없어요.”

다행히 내 스킨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이라기에는 서지은의 행동에 문제가 있었다.

‘거참 재능충이 저런 말 하니까 웃기네.’

­[마법력 LV 20], [항마력 LV 14], [영(?)속성 LV 14]­

서지은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기질이다.

심지어 저 기질 말고도 다양하게 마법적 능력을 품고 있는 것이 서지은이었다.

영사관에서 2년간 허탕을 쳤음에도 얻어낸 재능이다.

다른 마과 생도들은 2년 내내 미친 듯이 고생해도 도달할까, 말까 하는 위치.

그런 위치에 이미 도달했음에도 저렇게 겸손을 떠는 것이다.

나는 떼어내려는 손을 다시 서지은의 어깨에 올리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는 재능이 있다. 그런 말 하지 마.”

“…제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아시나요?”

…지금까지 자존심 다 털어내듯 말하던 녀석이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자존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지은이 왜 이런 반응을 하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

자존감 부족.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무기력하게 서 있는 서지은을 보면서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믿고 있으니까.”

“…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서지은을 내려다보며 확신에 가득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교관으로서 내가 가르치는 널 믿을 뿐이야.”

“아….”

서지은은 옅게 탄식을 내보낸 뒤, 아까 보여줬던 나긋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이상한 고집으로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합니다.”

“신경 쓰지 마라. 그것도 내가 할 일이니까.”

나는 그렇게 말한 뒤, 서지은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내며 자세를 잡고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시작하자.”

서지은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아가씨의 모습을 벗어던지고, 생도의 자세를 하고는 외쳤다.

“네!”

그렇게 나와 서지은의 개인 수업이 시작되었다.

..

..

서지은은 교실 바닥에 누운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하아….”

“괜찮니?”

“하아, 하아… 네. 괜찮아요….”

지금까지 내가 봐온 서지은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단정하게 자란 검은색 긴 머리카락, 그리고 단정한 생도복, 그리고 단정한 표정, 그리고 단정한 몸짓, 그리고 단정한 말투까지….

서지은은 과거든 현대에든 어느 시대에 살았더라도 누구라도 그녀가 평범한 신분이 아니라는 것을 대번에 눈치챌 정도로 기품이 흐르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과격한 훈련을 마친 평범한 생도처럼 풀어헤친 머리카락과 너저분한 생도복을 입은 채 지쳐서 쓰러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잡아라.”

“하아, 하아… 감사합니다.”

서지은은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렇게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꺄읏!”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휘청거리며 본능적으로 내 쪽으로 쓰러져버렸다.

나는 쓰러질뻔한 서지은을 지탱하며 물었다.

“괜찮니?”

“괘, 괜찮아요! 죄, 죄송합니다. 지금 다시 일어… 흐읏!”

서지은은 다시 자세를 바로잡으려고 애썼지만, 내 품에서 도통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웃으며 물었다.

“너무 과하게 능력을 발휘했어. 마나 탈진인가 보네.”

“죄, 죄송합니다. 그게….”

서지은은 내 품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히고 다리를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다.

몸에 힘을 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양이었다.

“잠깐만 얌전히 있어라.”

“흐읏….”

나는 안간힘을 쓰는 서지은을 의자 쪽으로 데리고 가서 앉혔다.

서지은은 내 품에서 빠져나갔음에도 얼굴을 붉히고, 연신 사과를 내뱉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몸을 가누지 못해서….”

“사과하지 말아라.”

“…네?”

나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끼고 말했다.

“부축한 생도에게 사과받는 게 교관의 일은 아니니까.”

“아… 죄, 죄송… 아니, 그….”

오늘 하루 동안 서지은의 숨겨진 본 모습을 다 끄집어내서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물쭈물하는 서지은을 보면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수업은 어땠니?”

“아….”

수업 평가를 받아야 할 차례.

사실 이미 서지은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지친 이유.

서지은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저는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재능이 있었어요. 당연한 듯이 마법을 써오던 저는… 아버지가 사라지고, 영사관에 오면서 마법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어요.”

그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마법 자체는 사용할 수 있었지만, 사용할 때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세 폭주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해체술을 사용했고, 서지은은 내 해체술에 안도하며 쉴새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즉, 나아진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겉보기에만 그런 것일 뿐.

“처음 마법을 썼을 때의 기억… 다 까먹은 지 오래였어요. 하지만 오늘….”

보이지 않는 서지은의 자존감은 넘쳐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서지은은 비틀거리는 다리로 간신히 일어나서 손을 공손하게 모으며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성수호 교관님 덕분에 그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어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허리를 숙인 서지은의 아래쪽에는 물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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