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2화 〉 582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강한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주변을 훑어보더니,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네요. 그 고생을 했는데, 이 정도는 돼야지.”
우리가 들어온 방은 객실과 침실이 분리된 디럭스 스위트룸이었다.
객실에는 소파와 책상, 식탁 등등의 각종 가구가 비치되어 있었고.
침실에는 화려한 색이 넘실거리는 가구들과 벽, 그리고 도심을 배경으로 한 거대한 창문이 우리를 반겨줬다.
시호는 창밖에 펼쳐진 도심을 보며 감탄했고.
(오, 높다 높아.)
강한나는 객실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서 자세를 맞춰보기 시작했다.
“호텔 객실에 있는 책상들은 대부분 겉만 번지르르하던데… 여긴 괜찮네요.”
일단 다행히 시호와 강한나는 이곳이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네요. 더 좋은 곳으로 가도 괜찮았을 거 같은데.”
우리가 지금 있는 장소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유명한 호텔이다.
그런 만큼 디럭스 스위트룸도 훌륭하지만, 그것보다 더 화려한 방도 존재했다.
예전, 강한나가 고민태의 연구소에서 지내던 그런 시설 수준의 방이….
아까 나는 이소현과 몇 차례 더 관계를 가진 뒤, 쌓아 놓은 최면 게이지를 이용해서 이 호텔에서 최고의 숙소를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강한나의 제지로 막혔다.
강한나는 내 말에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절레거렸다.
“이 방도 충분하고, 적당한 게 최고예요. 특히 우리는 신분을 숨기는 처지잖아요. 그런 객실은 장시간 이용하면 티가 나기 마련이에요.”
“하긴….”
강한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나보다 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겠지.
이곳에서 얼마나 지내게 될지 정해지지 않은 만큼 조심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이소현이라는 여자는 철두철미한 성격 같으니까. 당신이 건 최면이 잘 먹혔다면 신분이 들킬 문제는 없겠네요.”
“만약 문제가 생기면 바로 말해줘요.”
“그러죠. 일단….”
강한나는 맥이 빠지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축 늘이며 입을 열었다.
“밥 좀 먹고 싶네요. 아침도 못 먹고 기다렸거든요?”
“하하….”
강한나의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나는 즉시 룸서비스를 시켰다.
원래는 호텔 레스토랑으로 갈까 했지만, 그것도 강한나는 거절했다.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한나와 같이 룸서비스를 같이 먹으며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제일 중요한 사실은 [빙의 의식]의 제한에 관한 것이었다.
이소현에게 빙의한 시호를 보면서 기대감에 흠뻑 취했었다.
시호를 이용한다면, 여자에 한정하는 것이지만 최면 이상의 효율을 낼 수 있게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심지어 나까지 [빙의 의식] 배워서 남자들도 빙의하게 된다며….
사실상 모든 임무를 날로 먹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강한나의 말을 듣고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시호의 [빙의 의식]은 이쪽 세계에서 꽤 제약이 많이 걸려요.”
“제약이요…?”
강한나는 내가 서지은과 이소현, 두 사람과 식사하는 사이에 심심한 나머지 호텔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호와 같이 [빙의 의식]을 시험해 본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알아낸 사실은….
“영웅… 아니, 영웅 지망생인 생도… 더 나아가서 능력이 숨겨진 어린아이조차 [빙의 의식]을 사용할 수 없었어요.”
능력이 출중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작더라도 재능을 일찍이 지닌 어린아이에게도 [빙의 의식]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시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는 그런 능력을 지닌 존재가 없어서 몰랐어….)
“그렇게 상심하지 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능력이니까.”
나는 만져지지 않는 시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를 위로해줬다.
사실 시호가 저렇게 시무룩할 필요는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능력이니까.
내가 시호를 쓰다듬듯이 행동하자, 강한나는 음식을 먹으면서 피식 웃었다.
“시호, 이제 슬슬 아까 그 여자한테 빙의했을 때 알아낸 정보를 알려줘.”
(응.)
시호는 아까 빙의했던 이소현의 기억 중에 인간관계 위주로 우리에게 정보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일단 확실한 사실은 이소현은 서지은에게 앙심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사실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행이네. 혹시 집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봤어?”
(응. 사이가 마냥 좋지는 않지만, 유능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어. 자기보다 일 처리는 한 수 위라고 생각할 정도야.)
“진짜 한 수 위는 맞나보네. 숨겨진 정체를 모르는 것을 보면….”
이소현도 이세현의 본명인 기철호(집사의 숨겨진 본명)까지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한나 씨. 교단을 조사하는 김에 서가도 같이 조사해주세요.”
“서가요?”
“네. 특히… 집사가 뭐 하는 녀석인지 철저하게 조사해주세요.”
“알았어요.”
나는 강한나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조사할 것을 부탁했다.
이쪽 분야에서 강한나는 나나 아르모니아보다 훨씬 뛰어날 테니까.
교단과 기철호… 이제 진짜 뭐 하는 녀석들인지 알아낼 차례였다.
그렇게 강한나와 시호의 임무 방향성을 정한 뒤, 식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다 먹고 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부터 부탁드릴게요.”
“어디 가시려고요?”
“이제 영사관으로 돌아가려고요. 내일은 월요일이라 다시 보조 교관 일을 해야 하거든요.”
“….”
강한나는 갑자기 불만이 한가득 토해낼 듯 노려보기 시작했다.
…왜 저러지?
싶은 순간이었다.
터벅, 터벅.
강한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응? 왜요? 어!?”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바지를 벗겨서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바지를 벗기는 강한나를 내려다보며 당황한 기색으로 물었다.
“하, 한나 씨? 왜 그래요?”
“왜 그러냐고요?”
강한나는 그 말과 함께 내 속옷을 확 내려버렸다.
“자기는 다른 여자랑 실컷 즐겨 놓고, 나는 그냥 놓고 간다고?”
“아니, 그건….”
“하아… 진짜 더럽네.”
강한나는 내 얼굴이나, 행동을 지적하며 더럽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은 고간으로 향해 있었다.
이소현에게 한창 박아대던 내 자지.
그녀와 관계를 마무리하고 물티슈로 깨끗하게 닦아내긴 했지만, 결국 완벽하게 씻어낼 수는 없었다.
당시에는 나름 깨끗하게 닦았다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니 피와 애액이 군데군데 눌어붙어 있었다.
그런 상태가 좋지 않은 자지를….
“이런 더러운 상태로 내가 돌려보내 줄 거 같아요?”
결벽증이 있는 강한나가 맨손으로 잡아서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아프지는 않지만, 위협이 느껴지는 손길.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변명했다.
“더럽잖아요. 다음에 와서….”
“이 꼴로 돌려보내 줄 생각 없으니까. 빨리 옷 벗고 욕실로 가요.”
“끄응… 그래도 이런 모습은 좀….”
“자, 빨리요.”
“아야야야….”
강한나는 내 자지를 조심스럽게 잡은 채 나를 끌고 욕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다음 날 해가 뜨고 나서야 퀭한 눈으로 영사관에 돌아갈 수 있었다.
..
..
나는 강한나와 시호, 두 여자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자마자 바로 영사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영사관에 도착하자마자 타이밍 맞게 스마트워치로 문자가 도착했다.
대상자는….
‘교장?’
영사관의 교장이었다.
나는 교장의 호출을 받자마자 흐뭇하게 웃으며 교장실로 향했다.
아르모니아는 그런 내 모습이 의아한 듯했다.
[불편하지 않으십니까?]
직급만 따지고 보자면 교장이 나를 부르면 속이 쓰리고, 숨이 턱턱 막혀야 정상이었다.
나는 고작 해봐야 영사관 보조 교관이고, 교장은 영사관 최고 책임자이니까.
하지만 교장에게 가는 발걸음은 무겁기는커녕 오히려 오히려 스케이트를 타듯 시원하게 나아갔다.
‘불편하긴 한데… 그 양반이 부를 때는 좋은 일이 자주 생겨서 오히려 마음에 든단 말이지.’
그야 나도 입장이 있으니까 마음이 훨훨 날아갈 듯 편한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불편하지 않았다고 해서, 지금 부르는 용무 또한 불편하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나는 일단 괜히 지레짐작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장실에 도착해서는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그리고 들려오는 소리.
(들어오세요.)
나는 교장의 허락이 담긴 목소리를 들으며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교장실 안에서 마주한 건….
“아침부터 불러서 미안합니다. 마침 성수호 교관님을 뵙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
“아….”
내가 멍하니 인사를 하지 않고 바라보자, 검은 양복의 여자가 까칠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소현입니다.”
어제 내가 처녀막을 뚫어줬던 여자가 냉기가 서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오늘 장면은 교장실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식겁한 장면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소현이라니….
혹시라도 어제 나와 했던 섹스로 인해 수치심을 느껴서 억울하게 누명을 씌우려는 건가 싶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교장은 상석에 앉아서 이소현과 마주 앉아 있는 나를 보며 이소현을 소개해줬다.
“지금 이분은 이소현. 서지은 생도의 보호자 신분으로 온 분입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인사했다.
“만나 봬서 반갑습니다. 서지은 생도를 담당하고 있는 보조 교관 성수호입니다.”
“…이소현입니다.”
불만이 가득 차오른 표정이었다.
내가 너무 뻔뻔하게 나와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저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표정에 독기까지 담긴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퉁명스러운 불만뿐….
교장은 나와 이소현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성수호 교관님을 부른 이유는 서지은 생도의 향후 지도 방침 때문입니다.”
“지도 방침 말입니까?”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허울만 교관이라는 직책을 가졌을 뿐, 실제로 마과 7반의 교육과 지도는 온전히 성수아가 전담하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성수아를 부르지 않고 나만 불러서 지도 방침에 관해 이야기하다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자, 교장은 대충 눈치채고 즉시 이야기를 진행했다.
“지금 서지은 생도의 문제점은 성수호 교관님도 잘 아실 겁니다.”
“네.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런데 서지은 생도는 현재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생도들의 지도를 관망만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교장의 말대로 서지은은 수업에 참여는 하되, 정식으로 교육을 받고 있지는 않았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애초에 서지은, 본인이 자진해서 그런 환경을 조성한 것이니까.
“네, 현재 성수아 교관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대처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흠… 성수아 교관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꽤 힘들다는 거군요.”
교장의 말대로 마냥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입학 초기라면 모를까 서지은은 이제 올해를 마지막으로 영사관을 졸업해야 하는 처지였다.
2년 가까이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상태에서 마지막 1년마저 허탕 칠 수도 있는 상황.
나는 아까부터 느꼈던 의문을 질문에 담아서 건넸다.
“교장님. 이런 이야기는 성수아 교관님도 같이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교장의 말꼬리를 흐리며 이소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소현은 교장의 눈치를 보고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성수아 교관님은 일부러 부르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이소현은 얕게 한숨을 쉬면서 내게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성수호 교관님께서 저희 아가씨를 따로 담당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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