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0화 〉 580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내 등 뒤에서 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수호 교관님. 안녕하세요.”
“….”
심장이 덜컥 내려앉다 못해 장기 속으로 파묻히는 느낌이었다.
내게 교관님 소리를 하는 여자가 몇이나 있을까?
일단 확실한 사실은 내게 ‘교관님’이라는 존칭을 듣는 곳은 딱 한군데뿐이었다.
영사관.
그리고 그 영사관 안에서 내게 존댓말을 하는 존재는 무수히 많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나한테 반말을 하는 사람이 없네.
성수아와 초서현… 심지어 교장조차 나한테 예의상 존댓말을 해주고 있으니까.
도저히 목소리의 주인을 추릴 수 없었다.
차라리 남자 목소리였다면 전혀 거리낌 없이 뒤를 돌아서 인사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자다.
만약 뒤를 돌았는데, 내 눈앞에 초서현이나 성수아가 있다면?
나는 심장을 터트릴 기세로 파고드는 불꽃 심지가 마치 지구로 돌진하는 소행성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치는 순간이었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일단 초서현과 성수아는 아닙니다.]
‘엥?’
아르모니아의 말에 맥이 풀렸고.
“혹시… 성수호 교관님이 아니신가요?”
나는 힘이 쫙 풀린 상태로 나를 향해 되묻는 여자를 향해 몸을 돌려서 확인했다.
내 등 뒤에 서 있던 여자는….
“다행히 맞았네요.”
“…서지은 생도?”
내가 담당하는 마과 생도였다.
나는 속에서 사골처럼 우려낸 안도를 크게 내뱉었다.
‘와… 진짜 식겁했네.’
[애초에 지금 혼자 계신 상황입니다. 너무 긴장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굳이 과한 반응을 할 필요는 없었다.
여자와 같이 데이트하는 장면 같은 것만 포착되지 않는다면 변명 거리는 무수히 늘어놓을 수 있으니까.
나는 표정을 풀며 서지은을 보며 인사를 건넸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 여기는 무슨 일이야? 그리고….”
나는 본능적으로 서지은의 옆에 서 있는 여자에게 눈길이 갔다.
외모는 20대 후반, 키는 160 중반, 검은색 단발에 안경을 끼고, 검은색의 세련된 양복을 입은 여자.
미인형에 속하는 여자이지만, 이 여자를 보자마자 기질창을 보지 않아도 성격이 어림짐작이 갔다.
‘크… 딱 봐도 까칠해 보이네.’
까칠함과 깐깐함, 도도함이 섞여 보이는 커리어우먼 상이었다.
[기질창을 띄워드리겠습니다.]
=====
이소현
[성실함], [철두철미], [논리적], [완고함], [고지식], [충성심], [과도한 경계심]….
=====
‘크으… 역시 내 눈은 정확해.’
관상은 역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의아한 눈으로 이소현을 바라보자, 서지은이 곧바로 옅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저희 어머니의 비서분이세요.”
“이소현입니다.”
이소현은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영사관에서 서지은 생도의 보조 교관을 담당하고 있는 성수호입니다.”
“아가씨에게 말씀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미 시간이 지난 일이지만, 아가씨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제가 할 일이었으니까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무적인 분위기로 꽁꽁 감싸져 있는 여자였다.
애초에 공석인 서가의 회장과 회장의 부인 자리를 대리로 맡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뭐야? 그런데 왜 이렇게 젊어?’
이소현의 외모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서른이 안 되어 보였다.
[35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 관리를 잘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 진짜 관리 잘했나 보네.’
심지어 35살의 나이조차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나이에 대기업 회장과 부인의 대리를 맡고 있다고? 대단하네….’
강한나와 다른 분야이긴 하지만, 나름 강한나와 비슷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여자였다.
나는 이소현에 대한 체크를 마치고, 서지은에게 정식으로 물었다.
“그런데 서지은 생도는 여기 무슨 일이야?”
“잠깐 병원에 들렀다가 돌아가려는데, 마침 근처라서 이곳에서 조식을 먹으려고요.”
“아, 그렇구나.”
서지은과 비서의 모습을 보자니 이런 곳에서 식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자연스러워 보였다.
역시 부잣집 따님이라는 건가….
나는 그런 자연스러운 서지은을 보면서 쓰게 웃었다.
“그래, 만나서 반가웠다. 아침 맛있게 먹고. 오늘 푹 쉬고, 내일 보자.”
내가 그렇게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순간이었다.
서지은은 말로서 나를 붙잡았다.
“혹시 바쁘신가요?”
“…?”
나는 서지은의 다소곳한 목소리에 몸을 멈췄다.
그리고 그런 서지은을 바라보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번에 도와준 것에 대한 대접을 지금 해도 괜찮을까요?”
..
..
나는 호텔 레스토랑에 서지은과 비서와 같이 앉은 채 감탄했다.
“아, 여기가 서가에서 운영하는 호텔이었구나. 진짜 대단하네.”
“네….”
그저 유명한 호텔인 줄 알았는데, 설마 서가에서 운영하는 호텔일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서지은과 비서와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칭찬을 늘어놓았다.
“레스토랑도 예약이 필수 같던데 서슴없이 들어와서 깜짝 놀랐어.”
“그… 그 정도는 아니에요. 우연히 자리가 비어서….”
서지은은 자의로 나를 식사에 초대했지만, 막상 과도한 칭찬을 들으니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호텔에 대한 칭찬을 늘어놔도 그저 쑥스러워하며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서지은은 내 칭찬 세례에 부담스러웠는지 내게 되려 질문으로 응수하기 시작했다.
“성수호 교관님께서는 무슨 용무로 호텔에 계셨던 건가요?”
“아….”
나는 재빠르게 마련해 놨던 변명거리를 조심스럽게 내뱉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이랑 약속이 있었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있다면서 약속을 취소했어. 그런데 마침 근처에 호텔이 있어서 구경할 겸 들어왔지.”
“아….”
변명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서지은과 나 사이에 더 깊이 질문하는 것도 실례가 된다.
서지은 정도 되는 아이라면 그 정도 눈치는 있을 것이고….
아마 송아라가 여기에 있었다면 눈치 없이 질문했을 거 같긴 하지만….
내가 그렇게 안도하는 순간이었다.
“성수호 교관님.”
“응?”
“아라는… 잘 지내나요?”
…아라? 송아라?
예기치 못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순간 말도 안 되지만, 내 속마음을 읽었나 싶었다.
[송아라와 서지은은 입학 초기부터 경쟁 구도가 잡혔던 생도입니다. 신경 쓰는 건 당연할 것입니다.]
‘아, 맞다. 라이벌 같은 관계라고 했지….’
예전에 들었던 내용이라 까먹고 있었다.
뭐랄까… 서지은, 얘는 내가 뭔가 놀랄 만한 타이밍에 놀랄 만한 주제를 꺼내서 당황하게 한단 말이지.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언제나 열심히 하고 있지.”
“…그렇군요.”
서지은은 대답과 함께 입술을 살포시 깨물며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송아라에게 향하는 질투인지, 그저 자신에게 향하는 한탄인지 속마음은 본인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마침 침묵이 흐르는 타이밍에 애피타이저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테이블에 놓이는 요리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난 다른 건 몰라도 여자랑 먹을 복은 타고난 거 같아.’
가는 곳마다 개고생하지만, 대신 만나는 미녀와 먹는 음식만큼은 내 기준치 이상으로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서지은은 아까 송아라의 이야기로 잠시 침체하였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견학할 때 있었던 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교관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마침 지나가는 참이라 정말 다행이었지.”
이번에는 내 칭찬으로 나를 뻘쭘하게 만들 모양인가 보다.
서지은은 옅게 미소를 지으며 마과 견학할 때 있었던 사건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역시 규수 집 따님이라 그런지 신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조차 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메인, 그리고 디저트까지 먹을 때까지도 서지은의 입은 쉬지 않았다.
수업 때 입 한번 움직이지 않던 애가 갑자기 쉴새 없이 입을 여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애가 이렇게 말이 많은 스타일이었나?’
심지어 억지로 이야기를 꺼내는 느낌도 아니었다.
오히려 평소에 쌓아 놨던 하고 싶은 말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리고 서지은과 반대로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우리 둘의 대화를 바라보는 비서.
“….”
하지만 말없이 바라보는 것치고는 신기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서지은을 보면서….
[비서도 서지은의 모습이 신기한 것 같습니다.]
‘즉… 원래는 저런 애가 아니라 이거지.’
사실 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서지은이 정말 위험한 순간, 그녀를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해체술을 사용하는 모습을 서지은에게 보여줬다.
마나 제어 불능.
그때 당시에 사용했던 해체술을 본 뒤, 내가 그 정체불명의 괴현상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서지은의 기대와 달리 해체술은 그녀를 구해줄 구원의 동아줄 같은 게 아니었다.
‘해체술을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무엇보다 그거 배운다고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알려주기 싫은 게 아니다.
알려줄 수 없는 것이다.
서지은은 애초에 마법진의 개념조차 모르는 아이다.
그럼 마법진을 배운다면 해결할 수 있나?
그것도 아니다.
본인이 그 기술을 쓸 수 있다고 해서 그 정체불명의 마나 제어 불능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체술은 폭주를 제어하는 게 아닌, 폭주하는 마법을 잠깐이나마 잠재우는 용도일 뿐이다.
하지만 그걸 서지은은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더욱더 갈망하는 것입니다.]
‘하긴… 알면 애초에 저렇게 달라붙지도 않았겠지.’
알았다면 나 같은 보조 교관에게 저렇게 선의를 내비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어느새 디저트까지 전부 먹고 식사가 마무리되었다.
호텔 레스토랑은 나오자마자 서지은이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저희 집에 정식으로 초대할게요.”
“하하… 그렇게 신경 쓸 필요는 없는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뇨. 저를 구해주셨는데. 최대한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요.”
“하하….”
그동안 얌전히 바라만 보더니, 내가 너무 반응이 없으니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 같았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이야기겠지….
“그럼 내일 학교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그래도 눈치가 있는 아이라서 그런지 오늘은 이 정도 선에서 물러나는 듯싶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서지은과 비서와 헤어졌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통신으로 말했다.
‘후우… 내일부터는 서지은, 쟤도 귀찮게 달라붙을 거 같네.’
[왜요? 아주 귀여운 아이 같던데.]
강한나의 목소리였다.
그것도 평소의 목소리가 아닌 노기가 살짝 담긴 듯한 목소리.
[좋겠네요. 누구는 배 쫄쫄 굶으며 기다리는데, 누구는 어여쁜 여성분들과 우아한 만찬을 즐기고.]
‘여성은 무슨… 애죠.’
비서는 몰라도 서지은에게 여성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잘못한 건 또 인정해야겠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무시할 수 없는 처지라….’
[뭐, 신경 쓰지 마세요. 나중에 그만큼 보상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그거 아세요?]
‘어떤 거요?’
내가 의문을 가지며 통신으로 묻자, 이번에는 통신이 아닌 진짜 목소리가 내 뒤에서 들려왔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깐깐한 비서가 서 있었다.
그리고 통신으로 강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비서가 당신한테 관심이 있는 거 같네요.]
‘….’
이건 또 무슨 일인지….
..
..
이소현은 나를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아가씨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변동이 없는 목소리 톤.
사무적인 말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저 감사의 인사뿐이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런데….”
왜 호텔 회장 집무실에 들어와서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인가 싶었다.
그리고 서지은을 혼자 놓고 이렇게 오기까지 하다니….
내 의아함을 캐치한 이소현은 깐깐한 눈매로 나를 해명했다.
“아가씨는 호위하는 사람들과 갔으니 걱정이 없습니다. 그리고 업무를 위해서 어차피 들러야 하는 상황이고, 대화를 나누기 좋은 장소로 이곳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렇다면야… 무슨 일 때문에 부르신 거죠?”
“…바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소현은 아까와 같은 사무적인 표정을 지운 뒤,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내게 말했다.
“아가씨와 거리를 두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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