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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576화 (577/898)

〈 576화 〉 576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혼령 상태로 유유히 에브리카 본사 꼭대기로 향하자 통신으로 강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령의 시간…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사기 스킬 같아요.]

나도 그 생각에 동감이다.

­[영혼 감지]­ 능력이 없는 존재들에게 절대 감지 되지 않는 상태.

위그드라실처럼 특수한 장소가 아니라면 이 스킬은 진짜 사기다.

대부분 인간은 죽은 자를 보지 못하니까.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예리엘과 회장처럼.

“몸은 괜찮니?”

침대에 누워있는 회장은 전혀 괜찮지 않은 모습으로 예리엘을 힘들게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크흐… 하아….”

“….”

예리엘의 침묵을 바라보던 회장은 다시 고개를 천장으로 향하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미안, 누나…. 누나한테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또 그 소리구나.”

예리엘은 앙증맞은 손으로 노인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야말로 미안해. 매번 이런 모습으로 찾아와서….”

“그게 누나 잘못인가… 아버지 잘못이지….”

아버지?

[그러고 보니 너무 자연스럽게 호칭을 주고받아서 신경 쓰지 못했네요. 친남매인 걸까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일단 좀 더 확인해보죠.’

하지만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예리엘은 회장의 말을 잘라버렸다.

“그 인간… 이야기는 하지 말자.”

“…미안.”

회장의 대답과 함께 다시 침실에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거 같아서 온 거였는데….

사실 내가 이렇게 염탐하는 건 그저 두 사람 사이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저번 습격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까 기대해서 왔는데….’

에브리카 본사의 던전화와 테러리스트.

당시에는 다급하게 괴한들의 꿈속을 휘젓느라 정확한 정보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심지어 문주아를 포함한 간부들은 잘 도망쳤다고 했으니….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원하는 정보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회장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회장은 갈등하는 모습을 보이며 침묵을 유지할 뿐이었다.

“….”

예리엘은 그런 회장의 모습에도 답답한 표정 하나 짓지 않고 그저 기다려줄 뿐이었다.

[내가 너무 급한 성격이라 그런가 답답하네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라 여유가 넘치는 건지….]

‘….’

사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려고 하기에 저렇게 고민을 하는 걸까.

그렇게 10분가량의 침묵이 흘렀을 때였다.

회장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누가 나를 찾아왔어.”

“…누구?”

회장은 그동안 흐릿했던 눈빛에 총기를 담으며 강렬한 인상으로 예리엘을 보며 목소리를 냈다.

“그들이….”

“…?”

“그들이… 유미를 살려주겠다고 말했어.”

..

..

회장이 한 말의 내용을 대충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어떤 단체에서 회장에게 몰래 접선했고, 에브리카의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한 인간을 소생시켜주겠다는 제안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소생해주겠다고 지목한 존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혼령 상태로 날아가는 내 머릿속에 아르모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유미… 성전의 전 주인공입니다.]

‘뭐가 뭔지….’

온유미.

성전의 전 주인공이자, 이미 죽은 지 몇십 년이나 지난 인물.

지금 상황과 전혀 상관도 없어 보이는 인물의 이름이 회장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회장이 입에 담은 그 인물은 예리엘에게도 각별한 사이처럼 느껴졌다.

(…설마 그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을 믿는 건 아니지?)

예리엘이 경악한 표정과 함께 분노에 차오른 모습을 보여준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화는 예리엘의 마지막 대사로 종료되었다.

회장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회장에게 접근한 녀석들의 정체를 듣지는 못했네.’

회장 본인도 그것만큼은 쉽게 입에서 꺼내지 못하는 것 같았고.

하지만 그런데도 대충 짐작이 가는 단체가 있었다.

예리엘이 비서와 의료진을 부른 뒤, 추측할 수 있는 녀석들의 단체 이름을 중얼거렸으니까.

(교단…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진짜 어디 하나 끼지 않는 곳이 없는 녀석들이었다.

예리엘도 그러니까 짐작할 수 있는 거겠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교단에 침투할 방법이 없어서 교단에 대한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혼령 상태로 원래 육체에 거의 도착할 때쯤 통신으로 말했다.

‘한나 씨.’

[네?]

‘시호랑 같이 와서 도와줄 수 있어요?’

혼령 상태의 시호와 그녀를 서포터해줄 강한나.

두 여자가 온다면 내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교단에 대해서 꽤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괜찮아요. 아니, 해야겠죠?]

‘부탁할게요.’

[한나 씨와 시호 씨와 회의해서 오늘 내로 계획을 짠 뒤 출격시키겠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은 어떤 식으로 진행할 것인지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때마침 내가 육체를 두고 온 캡슐실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내 몸은 벤치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하지만 내가 [유령의 시간]으로 자리를 떠났을 때와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정말 피곤하셨나 보네….”

성수아가 벤치에 앉은 채 나를 무릎베개를 해준 채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런 성수아의 모성애가 담긴 모습을 본 두 여자는….

[음흉한 여자….]

[기분 나빠….]

‘….’

논의를 멈추고 다시 불신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성수아의 뒷담화를 까기 시작했다.

..

..

원래 육체로 돌아온 이후, 성수아와 같이 영사관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회장의 초대를 받아서 대화를 나눈 뒤, 남은 시간 동안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계획도 결국 한 사람 앞에서 무너졌다.

그리고 그 계획을 무너뜨린 사람은 내 옆에 앉아서 내게 계속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일주일만의 어떻게 실력이 그렇게까지 늘었어요?”

“하하… 아마 테러리스트랑 싸울 때, 늘었나 봅니다.”

“재능이네. 재능.”

“하하….”

그렇게 질문을 하다가 조용해지면….

“사탕 좀요.”

“여기 있습니다.”

나는 바로 봉지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서 예리엘에게 건네줬다.

그리고 그렇게 건네주면서 주변을 훑어봤다.

어둡다.

당장 비가 쏟아질 것처럼 우중충한 하늘 덕분에 차 안도 서서히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위기 깨져서 그런지, 얼굴에 그늘이 가득하네요.]

강한나의 말처럼 성수아의 얼굴에도 먹구름이 가득한 기분이었다.

아냐, 주변이 어두우니까 어두워 보이는 거겠지….

나는 점점 그늘이 져가는 성수아를 보면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얻어타는 처지라면 당연히 조수석에 앉아야겠지만….

“성수아 교관님, 뒷좌석에 타서 죄송합니다.”

운전석에는 성수아가 운전하고 있었고, 나는 얼떨결에 예리엘과 같이 뒷좌석에 앉게 되었다.

“아, 아니에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신경 쓰지 않고 싶어도 표정이 너무 어둡거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예리엘의 상태를 확인했다.

“오물, 오물….”

“….”

아까까지 회장과 무거운 대화를 나누던 당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다시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게 눈치 없어 보이는 예리엘의 모습을 신경 쓰다 보니 어느새 밖에는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악!

폭우라는 표현을 써도 될 정도로 엄청난 양이 쏟아져 내렸다.

차 안이 어두워지면서 그동안 조용했던 성수아가 갑자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 예리엘 님.”

“우물, 우물… 응?”

“저번에 묻는다는 것을 깜박했는데…. 혹시 마법이 해제되는 현상에 대해서 아시나요?”

“…뭐?”

성수아는 예리엘에게 에브리카 습격 당시 경험했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마나가 흩어지면서 마법이 해제되었어요.”

“…자세히 말해보렴.”

쉣….

성수아가 말하는 마법이 해제된 이유.

모를 수가 없었다.

‘아… 그냥 급한 상황이라 대충 넘어갈 줄 알았는데.’

내가 한 것이니까….

레나에게 납치당하는 모습을 연출하려고 할 때, 갑자기 성수아가 공격 마법을 퍼붓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해체술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성수아는 당시에 경험했던 마법이 해제되는 현상을 예리엘에게 낱낱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수아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런 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너무 재능이 있어서 문제가 되는 상황….

“….”

주변이 어두워져서 예리엘의 표정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까 회장과 대화를 나눴을 때처럼 굳어지는 게 보였다.

그렇게 성수아의 말을 전부 들은 예리엘은….

“그거… 혹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했니?”

“아뇨. 그나마 알고 있는 건 성수호 교관님뿐이세요.”

“….”

어두운 차 안에 예리엘의 눈동자가 노랗게 빛나며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압도당할 정도로 매서운 눈이었다.

혹시나 내가 쓴 해체술을 알아챈 건가 싶었지만….

“그때 당신을 납치했던 녀석들… 어떻게 됐어요?”

“아… 그 이후에 저만 덩그러니 놓고, 다른 테러리스트를 처치하더니 사라졌습니다.”

“….”

다행히 성수아의 마법 해제 현상은 내가 아닌 나를 데리고 갔던 레나와 베아트리체 때문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두 여자는 성수아에게 모습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은 상황.

훗날 성수아와 직접 대면하더라도 정체를 들키지는 않을 것이다.

아… 베아트리체는 괴인 취급당하겠지만….

예리엘이 눈빛을 날카롭게 노란 광채를 내며 침묵하자 성수아가 운전에 집중하면서 사과를 시작했다.

“혹시… 늦게 말씀드린 거라면 죄송합니다. 저도 당시에 경황이 없어서….”

“아냐. 오히려 그런 일을 겪고도 무사히 넘겨서 천만다행이네. 하지만….”

“…?”

예리엘은 나와 성수아를 노란 광채가 빛나는 눈으로 번갈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만약 다음에 또다시 그런 상황이 생기면 꼭 내게 말해줘.”

“…네.”

“알겠습니다.”

예리엘은 그 이후로 어떠한 말도 없이 차 밖에서 쏟아지는 비와 번개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지나니….

“…사탕이요.”

“네….”

표정 하자 바꾸지 않고 다시 사탕을 보채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중충한 빗소리와 달콤한 사탕 향을 품던 차가 어느새 영사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아까까지 쏟아지던 빗물과 내리치던 천둥 번개가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사라지고, 해가 쨍쨍히 비추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린 예리엘은 표정을 평소처럼 느긋한 표정으로 성수아에게 말했다.

“태워줘서 고마워. 원래는 예정에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들를 일이 생겨서 민폐를 끼쳤네.”

“하하… 마침 가는 길이 같아서 다행이네요.”

성수아는 입으로 다행이라고 했지만, 표정은 다행이라는 의미와 완전히 멀어 보였다.

그런 성수아를 보며 예리엘이 피식 웃고는 입을 열었다.

“부탁할 게 있어.”

또 무슨 부탁인가 싶었지만, 나는 그 순간 장난기가 발동해서 예리엘에게 사탕을 건네줬다.

“사탕 드릴까요?”

“내가 무슨 애예요?”

“…죄송합니다.”

찌릿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는 예리엘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찌릿한 표정과 별개로 분위기는 많이 풀어진 듯싶었다.

나를 앙증맞게 노려보던 예리엘은 눈을 거둔 뒤,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사람… 아마 오늘 안으로 VR 헤드기어가 배송될 거야.”

나와 성수아는 예리엘의 말을 듣자마자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예리엘에게 말했다.

“VR… 헤드기어요?”

“그거 저희도 있는데….”

성수아나 나나 이미 있어서 굳이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필요 없는 것을 떠나서 갑자기 우리에게 그런 물품이 배송될 것이라는 게 의문이었다.

그 말은 이미 보내고 있다는 소리와 다를 게 없으니까.

그리고 그 의문은 예리엘이 빠르게 캐치해서 대답했다.

“지금 보내는 건 이번에 새로 제작된 VR 캡슐… 그것의 하위 호환 같은 거야.”

그 말인즉슨….

“설마… 마나 인식이 된다는 건가요?”

“맞아. 전에 썼던 마나 인식과 관련된 기능을 넣어놨다고 그러더라. 당연히 캡슐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마나 인식 기능을 VR 헤드기어에 넣어 놨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그걸 왜 저희에게…?”

“두 사람은 캡슐도 시험해줬잖아. 배송이 가는 VR 헤드기어도 시제품이야. 관리자 권한이 부여된 제품이라 측정 프로그램도 따로 넣어뒀대.”

지금 당장은 나와 성수아가 제일 먼저 특혜를 받게 됐지만, 차후에 탑이나 영사관 마과 교관들에게도 대여해준다는 모양이었다.

체험용이 아닌 측정용.

초기 모델인 만큼 실측 데이터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여해준다는 것이었다.

예리엘은 설명을 전부 끝마친 뒤, 몸을 돌려서 교장실로 향하며 고개를 슬며시 돌리며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네?”

“네.”

예리엘은 우리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는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정말 고마워.”

“…?”

“덕분에 동생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어. 그럼….”

예리엘은 그 말만 남기로 교장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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