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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574화 (575/898)

〈 574화 〉 574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거절할게요.”

“….”

거절할 가능성은 어느정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저런 다부진 표정으로 단칼에 거절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뿐….

‘허… 설마 내 실력이 미덥지 않아서 그런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수호 님은 성수아도 인정했습니다. 초서현이 수호 님의 실력을 인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 왜 거절하는 거지?’

내가 멍한 표정으로 침묵하며 초서현의 심리를 파악하려고 하자, 초서현이 쓰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럴 거 같아서 일부러 숨긴 거예요.”

“네?”

“이렇게 나설 거 같아서 숨겼다고요.”

“아… 혹시 제 실력이 문제인가요?”

“….”

초서현은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을 짓더니, 식기를 자리에 놓은 채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핀 후….

꽈악….

“아야!”

자리에 앉아 있는 내 옆에서 서서 내 볼을 손가락으로 힘껏 꼬집기 시작했다.

통증이 느껴지지만, 뽑혀 나갈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닌….

그리고 약 올리는 듯한 강한나의 한마디.

[딸한테 볼 꼬집히는 아빠의 모습이네요.]

‘….’

그렇게 한차례 내 볼을 꼬집던 초서현은 손가락에 힘을 풀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 실력도 몰라볼 정도로 눈이 형편없는 줄 알아요?”

“그럼 왜…?”

“…점심 먹고 나서 바로 가야 해요?”

“아뇨. 당장 급한 일은 없어요.”

초서현은 한차례 한숨을 쉬고는 식판을 들면서 내게 말했다.

“그럼 잠깐 산책이나 좀 해요.”

..

..

나는 같이 교정을 걷고 있는 초서현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횟수가 한 해에 한 번으로 정해져 있다고요?”

“네.”

영웅 진급 시험은 능력이 된다고 해서 무조건 볼 수 있는 그런 시험이 아니다.

영사관을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해도 최하급 시험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진급 시험을 봐야 하는 것이 규정이었다.

거기에 예외는 없었다.

“등수의 경우에는 한 해 만에 최정상을 찍을 수 있는 반면에 등급의 경우에는 진급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차례대로 진급 시험을 치러야 해요.”

“그런데 그거랑 횟수랑 무슨 상관인 거죠?”

“…무분별한 진급을 막기 위해서예요.”

하급, 중하급.

이 두 가지 진급 시험은 기본적으로 혼자 치르는 시험이라고 했다.

대인전도 거의 없고, 덕분에 초서현도 어렵지 않게 진급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중급 시험부터는 파트너 지참이 필수 요소라는 것.

그렇다는 이야기는 최상급 영웅을 기용해서 시험을 편하게 클리어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규정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시험 규정상, 상위 등급의 영웅을 파트너로 데리고 갈 수 없어요.”

“아….”

이해가 갔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치였다.

길드의 입장에서는 소속한 영웅들의 등급이 높을수록 길드의 인지도를 올리기 쉬워질 것이다.

한 명의 최상급 영웅을 밑천 다 끌어모아서 고용한 뒤, 그걸 토대로 다른 영웅들의 등급을 올리게 되면?

인지도가 오르면서 유망주들을 대거 영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망주들을 대거 영입하면 그만큼 돈이 굴러들어오게 될 것이고, 그걸로 또 인지도를 올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편법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단 초강현이 왜 초서현을 도와주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거랑 나, 그리고 횟수랑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런데 저는 등급이 없으니까, 도와줄 수 있지 않나요?”

“…아까 시험 볼 수 있는 횟수가 한 번이라고 했죠?”

“네. 그럼 중급 시험 도와주고, 제 시험을 따로 보면 되잖아요?”

나는 어차피 중급 시험을 진짜 보러 가는 게 아닌, 초서현을 도울 생각으로 제안한 것이었다.

“…참고로 통합이에요.”

“네?”

“한 해에 볼 수 있는 진급 시험 1회는 전 등급 시험 통합이라고요. 만약 중급 시험에 파트너로 참여했다면 그 해에 볼 수 있는 중하급, 하급 시험도 치를 수 없게 된다고요.”

아… 이제야, 초서현이 왜 내 제안을 거절했는지 알 수 있었다.

초서현은….

“올해는 당신도 시험을 봐야 하잖아요. 내 걱정하지 말고 당신 시험이나 신경 써요.”

내 실력이 의심되어서가 아니라, 내 시험을 위해 거절한 것이었다.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올려다보는 초서현.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통신으로 강한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가 작은 것 치고는 생각이 깊네요.]

‘….’

그 말 당사자한테 하면 바로 난도질당할 거 같은데….

나는 강한나의 말에 몸을 오소소 떨면서 초서현에게 말했다.

“저는 어차피 올해에 영웅 시험을 볼 생각이 없는데요?”

초서현은 내 말에 바로 인상을 찌푸리면서 팔을 들어 올렸다.

“…잠깐 귀 좀 이리 줘봐요.”

“싫어요.”

“할 말 있어서 그러니까, 얼굴 내려봐요!”

뻥 치고 있네. 또 귀 잡아당길 거면서….

초서현은 이미 손짓과 표정에서부터 내 귀를 잡아당길 의사를 팍팍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속마음을 간파하며 절대 귀를 내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꽈아아악!

“끄아아악!”

내 귀에 손이 닿지 않으니, 대신해서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비틀기 시작했다.

차라리 귀를 내어줬으면 이렇게 아프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저 정도 강도로 귀를 당겼으면 진짜 뽑혔겠네요.]

강한나의 조언 같지 않은 조언을 듣고, 귀를 내어주지 않은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내 옆구리를 꼬집던 초서현은 손을 놓고 한숨을 푹 쉬면서 입을 열었다.

“꼭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사람을 화나게 만들어….”

나는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면 초서현을 보면서 옆구리를 매만졌다.

“아으…. 아니, 저는 딱히 하급 시험을 볼 생각이 없어서….”

“….”

초서현은 옆구리를 매만지던 나를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내 앞길을 막아서며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그 실력으로 왜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던 거예요?”

“어, 그게….”

나는 진실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충 둘러댔다.

영사관에 갈 당시에는 그 정도 실력이 아니었고, 한번 기회를 놓치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끊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연히 영사관 보조 교관 채용이 있길래 별생각 없이 이력서를 넣고 시험을 봤는데 합격했다는 식이었다.

문제 될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였다.

영웅이 아니라면 애초에 능력을 함부로 남발할 일이 없는 것이 이쪽 세계니까.

하지만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초서현은 평범하게 듣지 않았다.

“그럼 욕심도 없어요?”

“아….”

사실 없다.

진짜 없다.

나는 임무를 마치면 여기를 떠나야 하는 몸이니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니, 했다가는 오히려 난리가 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가 인생을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살면서 한가지 깨달은 건 있었어요.”

“….”

“너무 급하게 가지 말자는 거죠. 빠른 선택이 필요한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적당히 여유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후우….”

초서현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이해했어요.”

일단 다행히 내 상황을 이해해줬고, 쓸데없는 오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제일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래도 내 진급 시험을 내가 알아서 해결할 거니까. 당신은 이번 시험이나 신경 써요.”

“아니, 저는 굳이 시험을 급하게 볼 필요가….”

“아 쫌! 어린 게 자꾸 말대꾸를….”

말을 안 들으니, 나이로 밀어붙이네….

그런 와중에 강한나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푸웃! 어리데….]

‘….’

강한나는 초서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계속 중간에 추임새를 넣는 것을 보면….

당사자가 들었다면 바로 단검 한 쌍을 꺼내 들고 기쁜 듯이 휘둘렀을 텐데.

여하튼….

초서현은 일단 자신의 미래보다 내 미래를 더 신경 쓰고 싶은 듯 보였다.

초서현의 말대로 등급 시험을 1년에 한 번만 치르는 것이라면 진급하는 쪽이 임무를 위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초서현과 성수아, 초강현의 교관 복무는 올해까지이다.

만약 임무가 더 길어져서 해를 넘기게 된다면 세 사람 모두 이곳에서 볼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나도 올해를 넘기게 되면 탑에 입단해야 하는 처지였다.

미리 등급을 올려두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내가 여기에 남아 있는다는 보장 또한 없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초서현에게 말했다.

“그럼 일단 합이라도 맞춰보는 건 어때요?”

“합이요?”

“네. 예전에 VR에서 궁술 훈련한 것처럼 이번에는 같이 합을 맞춰보는 거죠.”

초서현은 VR 안에서 상황극 했던 것을 떠올린 건지 상기된 얼굴로 실실 웃기 시작했다.

“아… 그건 좋네요.”

초서현이나 나나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서로 합을 맞춰놓으면 진급 시험뿐만 아니라, 수업에서도 분명 도움이 될 테니까.

과거와 다르게, 현재는 서로 좋아하는 관계라서 시간을 내어주는 것 자체를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일단 초서현의 마음이 풀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정식으로 제안했다.

“그럼 오늘 저녁부터 같이 훈련해볼까요?”

“좋아요.”

나는 그렇게 초서현과 저녁마다 만나서 가상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

..

어느새 시간이 흘러서 주말이 다가왔다.

일주일간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오전에 기과 수업, 오후에 마과 수업, 저녁에 초서현과 VR 실에서 대련하고, 밤에는 성수아와 VR 게임을 했다.

그리고 그런 단조로운 생활을 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와… 이쪽 세계는 최면술이 쥐약이네.’

나는 수업 시간뿐만 아니라, 주변에 만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만나면서 최면 게이지 쌓기를 연습했다.

특히 중점적으로 진행한 건 바로 초서현관 성수아였다.

제일 눈을 마주하기 쉬운 여자들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주일 동안 10%도 못 채웠다는 게 말이 되나?’

일주일 동안 초서현과 성수아의 최면 게이지를 10%도 채우지 못했다.

처음에는 뭔가 착오가 있어서 그런가 싶었지만….

[그만큼 두 여자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증거입니다.]

착오가 아니었다.

­[최면 세뇌]­ 스킬은 상대방의 능력에 따라 차오르는 게이지의 속도도 결정된다.

심지어 생도조차 일주일간 열심히 채워서 100%를 간신히 만들었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두 사람은 예외였고….

‘거기다 송아라, 서지은… 두 녀석은 50%도 못 채웠고. 재능충은 역시 달라.’

송아라가 48%, 서지은이 36%.

심지어 재능만 있고, 능력도 못 쓰는 서지은은 40%도 넘기지 못했다.

[항마력이 꽤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하긴… 초서현은 그래도 9%라도 채웠지. 성수아는 6%가 고작이었으니까.’

일주일 동안 6%.

성수아는 최성비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냥 눈만 바라보면 땡이니까 어려운 거야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마냥 그렇지 않았다.

‘게이지 채우는 거에 신경 쓰면서 바라보는 것도 일이네.’

게이지를 채울 때는 그저 눈만 바라보는 게 아닌, 내가 목적을 가지고 시선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다.

무리에 파묻혀서 연설자를 바라보는 건 쉽지만, 단둘이 시선을 마주할 때 의식하는 건 난도가 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게이지를 채우다 보면 레벨이 오를 것이고, 훗날 효율이 더 올라갈 것입니다.]

‘하긴….’

두 사람에게 최면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걸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옆자리에 앉아서 운전하는 성수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네? 갑자기 무슨 소리를…?”

“매번 얻어타서….”

나는 지금 성수아의 차, 조수석에 타고 그녀와 같이 에브리카 본사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녀와 같이 외출을 나오는 건 언제나 좋지만, 매번 이렇게 차를 얻어타니 마음이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또 그 소리…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성수아의 잔소리를 들으며 에브리카 본사로 향했다.

본사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건 본사의 인물이 아닌 예리엘이었다.

“일주일만이네.”

“어머, 벌써 오셨네요?”

“원래 늙은이는 주말에 할 일이 없거든.”

“하하….”

예리엘의 황당한 농담을 들으며 우리는 같이 에브리카 본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성수아는 본사 건물을 들어가자마자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성수아는 입 밖으로 감탄사를 내보냈다.

“역시 에브리카… 그 난장판을 벌써 복구했네요.”

던전화가 되어서 개판이었던 건물 내부는 어느새 새 건물처럼 꾸며져 있었다.

예리엘은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손님은 아직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

예리엘의 말대로 건물 내부에는 직원 말고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기다렸습니다. 예리엘 님.”

40대쯤 되어 보이는 비서 복장의 여자 한 명과 검은 복장의 경호원들이 우리를 맞이해줬다.

“복구하느라 고생했겠네.”

“괜찮습니다. 제 할 일이니까요. 그럼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우리 셋은 비서와 경호원의 안내를 받아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 비서가 지문, 안구 인식을 거친 뒤, 버튼이 아닌 목소리로 도착지를 명령했다.

“회장님 실로 이동하도록.”

허스키한 음성 안내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가던 엘리베이터는….

띵.

도착했다는 알람음과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쇠가 갈리는 듯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이야. 누나.”

앉아 있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노인이 휠체어를 탄 채 우리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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