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3화 〉 573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장황한 설명이 담긴 통지서였지만, 훑어보니 내용을 요약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진급을 원할 시, 국내 영웅 협회에서 주관하는 시험에 응시라는 내용이었다.
통지서라고 쓰여 있긴 했지만, 딱히 응시하지 않더라도 불이익은 없어 보였다.
애초에 영웅한테 강제성을 부여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겠지만….
그런데 신기했다.
‘…중급 시험? 초서현이 중하급 영웅이었다고?’
이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초서현은 교관으로서의 책임감도 뛰어나고, 실력도 절대 중하급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약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몰래 엿보면서 아르모니아에게 물었다.
‘아르모니아, 영웅 등급에 대해서 아는 정보 있어?’
지금까지 등급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초서현이 초기에 자주 말하는 등수조차 딱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이유는 내가 능력은 있지만, 정식 영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식 영웅이 될 생각도 없고….
[설명해드리겠….]
그렇게 아르모니아의 설명을 들으려는 순간….
“으악! 뭐, 뭐예요! 어, 언제 왔어요!”
“아. 조금 전에 왔어요.”
“까, 깜짝이야….”
초서현은 심장이 터질 듯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통지서를 후다닥 책상 서랍에 넣어 버렸다.
나는 이미 내용을 전부 훑어봤지만, 못 본 척하며 제대로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 흥.”
초서현은 코웃음을 치며 입술을 삐죽 내밀며 딴 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삐친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책상에 앉아 있는 초서현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주말에 바빠서….”
초서현의 삐쭉 내밀던 입술이 내가 다가가는 것과 동시에 쏙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전부 입 안으로 넣으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다음부터는 최소한 연락은 해요. 걱정했잖아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삐침은 오래 가지 않았고, 그 이후 나와 초서현은 수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
영웅 등급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국내 영웅 협회에서 부여하는 국내 등급과 세계 능력자 규제 기구에서 부여하는 등수 제도이다.
세계 능력자 규제 기구에서 평가하는 등수는 실적만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한국의 경우에는 최대 10000등까지 산정하고, 그 뒤는 따로 등수를 매기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만약 10000등 이후에도 등수를 매기게 되면 어설프게 실적을 쌓은 능력자들도 죄다 평가해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싶었다.
전 세계에 있는 능력자들의 능력을 일일이 검토할 시간까지는 없겠지….
[다만 본인이 실적을 제출하면 평가는 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랑 다르게 등수 하나하나가 소중한 사람도 있겠지.’
[그리고 아까 궁금해하셨던 국내 영웅 협회의 등급입니다.]
최상급, 상급, 중상급, 중급, 중하급, 하급.
그리고… 격외와 논외.
[논외는 하급 이하로 분류되는 영웅입니다. 아무리 영사관을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해도 최초 등급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논외로 분류되는 것 같습니다.]
‘아하… 그럼 나는 논외겠네. 그럼 격외는?’
[격외는… 협회에서 최상급 이상으로 분류한 영웅입니다.]
참고로 초강현이 그 분류에 속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격외는 애초에 시험을 보거나 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설명해줬다.
[애초에 중상급만 가더라도 딱히 시험을 볼 필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부터는 영웅 협회도 세계 능력자 규제 기구처럼 실적으로 측정하는 듯합니다.]
‘굳이 그렇게 등급과 등수 제도를 나눌 필요가 있나?’
[두 단체의 성격이 확실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엥?’
[한쪽은 규제와 통합, 한쪽은 자율과 이윤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세계 능력자 규제 기구.
이곳은 세계에 퍼진 영웅들이 서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감시하고, 제재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제재와 감시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리가 없다는 사실.
[국가의 최고 인재인 영웅. 그들을 규제하려고 하면 국가의 손해가 이뤄지기 때문에 각 나라에는 영웅 협회가 따로 설립해서 영웅을 보고하다 보니, 세계 능력자 규제 기구의 규제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현재 세계 능력자 규제 기구는 말만 번지르르한 집단이지, 실상은 등수를 매기는 기구로 전락했다고 한다.
당연한 일이었다.
능력자를 규제하고자 일반인들이 만든 단체.
그런 단체라고 해도 능력자를 포섭했겠지만….
‘뭐, 그런 곳에 있는 녀석들이라면 돈도 제대로 못 벌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녀석들이 태반이겠지.’
이쪽 세계는 능력자들에 의해서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힘이 자본을 끌어모으는 세상.
처음에는 나름 진정성을 가지고 설립됐겠지만, 지금은 아마 각 나라의 자본을 받으며 그저 영웅들을 옹호하는 집단으로 변했을 것이다.
‘뭐, 등수 매기는 단체라고 알면 되겠고…. 그런데 기구랑 다르게 협회에서는 시험을 치르는 이유가 뭐야?’
[영웅 협회에서 제일 중요하게 보는 건 던전을 답파하는 실력 이상의 대인전에 뛰어난 인물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하….’
이제 알겠다.
초서현이 통지서를 보며 한숨을 쉬고, 아직 중하급 등급이었는지….
초서현의 능력은 분명 뛰어나지만,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대인전 시험이 문제였겠네.’
바로 대인전.
과거 학대 트라우마 때문에 대인전에서 온전히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초서현이었다.
심지어 실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생도들과의 대련에서도 긴장하기 시작하면 실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도 했다.
시험을 아예 응시하지 않았던가, 시험에 응시하더라도 떨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괴인 문제 때문인가?’
[괴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응? 무슨 문제?’
[바로 타국의 능력자입니다.]
‘아… 여기도 전쟁이 있긴 하겠지.’
개인이 대형 화기를 압살하는 영웅들….
그럴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1순위로 뽑히는 건 당연히 영웅들일 것이다.
‘진짜 전쟁영웅이 되는 거겠네.’
[다행히 현재 전쟁의 위협은 없습니다. 다만 협회는 국가의 자금을 받아서 운영되는 만큼 타국의 경쟁인 요소를 더욱 신경 쓰는 것 같습니다.]
‘돈벌이는 길드에서 알아서 할 테니까….’
복잡한 사연은 이제 대충 정리해도 될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초서현의 시험인데….
나는 저 멀리서 생도들을 지시하고 있는 초서현을 바라봤다.
확실히 평소와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표정을 굳힌 채 생도들을 철저하게 몰아세우며 훈련을 지시하던 그녀였지만….
‘멍한 느낌이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눈빛과 말투에 힘이 없었다.
멍하니 대련을 바라보다가 간혹 생도들이 물어보면 대답하는 수준뿐이었다.
시험 통지서가 신경 쓰이긴 하는 모양이었다. 나와도 떨어져 있을 것을 보면….
그렇게 초서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10분간 휴식!”
초서현이 생도들을 보며 휴식을 선언하고, 팔짱을 낀 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초서현에게 일단 말이라도 걸어봐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쌤.”
“응?”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내 귓바퀴를 타고 쏙 들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초서현 쌤 몸 안 좋나요?”
송아라였다.
나는 일단 모르는 척하며 고개를 저었다.
“글쎄 오늘 아침에는 괜찮으셨어. 아마 가르치는 데에 생각할 게 많아서 고민하시는 거겠지.”
“아하… 몸은 괜찮으셔서 다행이네요.”
송아라가 걱정하는 표정을 풀고 초서현을 바라보자, 마침 그녀와 대련하던 여자 생도가 와서 넌지시 말을 던졌다.
“아! 아마 진급 시험 때문인가 보네.”
“아… 그 시기네.”
송아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옆에 둔 채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초서현 쌤. 작년에 결국 시험 안 봤지?”
“응. 그냥 교관이라서 넘긴 거라고 했잖아.”
두 사람의 대화에 점점 생도들이 몰려들며 저마다 할 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 나 그거 이야기 들은 거 있는데.”
그리고 그중의 한 명이 정확한 정답을 도출해냈다.
“파트너가 없어서 넘긴 거라는 이야기가 있더라.”
생도의 말을 듣고는 아까 통지서에 언뜻 봤던 내용을 상기하며 통신으로 물었다.
‘파트너 이야기가 있긴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 꼭 필요한가?’
[필수 항목이었습니다. 같이 중하급 진급 시험에 참여하는 자도 괜찮고, 능력만 구사할 수 있다면 영웅 출신이 아니어도 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의외로 규정이 빡빡해 보이지는 않았다.
무조건 비슷한 등급의 영웅이랑 한 팀을 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초서현 교관님이면… 길드나 기과 교관님들한테 부탁하면 다 들어줄 텐데.”
“아니면 고용해도 되고. 우리 언니는 시험 때 괜한 분란 일어나는 거 꺼려서 고용했다고 하던데.”
생도들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니 정말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었다.
‘애초에 초강현 있으면 모두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그냥 초강현이 파트너만 해준다고 하면 알아서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데?
[내부 사정은 본인만이 알 것 같습니다.]
‘….’
뭐, 초강현 문제는 일단 넘어가기로 하고….
일단 초서현이 왜 저렇게 고민하는지 알 수 있었다.
‘대인전과 파트너.’
중급 시험에서 만나는 영웅들이라면 실력 분포도가 넓어서 대진운이 좋다면 순수한 중하급 수준의 영웅이 걸릴 가능성도 클 것이다.
초서현의 실력이라면 순수한 중하급 영웅이라면 단순에 제압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대인전에 취약한 초서현에게는 그런 대진운이 오히려 역으로 안 좋게 작용할 가능성이 컸다.
실력 차이가 드러남에도 패배를 하게 되면 더 큰 좌절감을 맛볼 가능성이 크니까….
심지어 파트너까지 동행했는데, 자기 때문에 파트너까지 시험에 탈락할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진급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나?’
[국내 길드라면 재계약이나, 길드를 옮길 때.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올리긴 해야 한다는 거구나.’
초서현이 저렇게 고민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언젠가 거쳐 가야 하는 미래이지만, 그걸 마주하기에는 두려운 것이다.
자칫 혼자만의 피해를 넘어서서 동료의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
초서현이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생도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듣는 중에 초서현이 문뜩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다시 훈련 시작!”
수업을 다시 진행되었지만, 멍한 표정과 힘없는 말투는 달라지지 않았다.
..
..
통지서가 날아왔다고 해서 바로 시험을 보는 건 아니었다.
진급 시험 기간은 영사관의 여름 방학.
아직 몇 달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애초에 파트너를 구해야 하는 진급 시험인데, 협회가 기한을 빡빡하게 굴었다가는 되려 영웅들에게 한 소리 들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리는 것도 좋지 않아 보였다.
아무리 돈으로 섭외하더라도 합을 맞추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나는 기과 수업을 마치고, 초서현과 같이 점심을 먹었다.
나는 에브리카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서 넌지시 던지듯 이야기를 건넸다.
“저번 주말에 에브리카 본사 난리 난 거 아세요?”
“아, 뉴스로 봤어요. 나도 놀랐어요. 거기가 그렇게 털릴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다행히 그 사건과 나를 연결하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애초에 아무런 단서도 없는데, 나를 연결하는 것 자체가 웃기기도 하지만….
그런데 초서현은 뚱한 표정으로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수아. 걔는 어디 안 끼는 데가 없더라고요. 다들 엄청나게 추켜세우던데….”
질투심.
초서현은 그동안 성수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주된 목적은 초강현이지만, 환경적인 부러움도 들어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른 학창 생활을 보냈으니….
그런 찰나에 성수아가 언론에서 극찬받으니 질투심이 피어오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질투심에 나는 도리어 안타까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과거에 그런 일만 없었으면 초서현도 한 이름 날렸을 텐데.’
초서현이 제대로 된 교관만 만났더라면 분명 성수아 못지않은 실력자가 됐을 것이다.
수석으로 입학했으니….
하지만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 제대로 된 기반을 못 잡고 오히려 트라우마만 심어져 버렸다.
나는 그런 초서현을 보면서 한가지 결심을 했다.
‘어쩔 수 없네.’
[…?]
나는 식사를 끄적이며 투덜거리던 초서현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던졌다.
“초서현 교관님.”
“네?”
“진급 시험 있죠?”
“…하아, 역시 봤구나.”
초서현은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네. 여름 방학에 시험이 잡혔어요. 그런데… 크게 신경 쓸 건 없어요. 어차피 등급은 별 관심 없으니까.”
관심이 없긴… 아까부터 심란한 티를 팍팍 내면서….
나는 그렇게 심란한 표정을 짓는 초서현에게 안쓰러운 표정으로 제안을 했다.
“초서현 교관님.”
“네?”
“제가… 파트너가 되어줄까요?”
내 질문과 같은 제안에 초서현은 놀란 토끼 눈으로 뭉뚝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를 상기된 얼굴로 쳐다보던 초서현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거절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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