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0화 〉 570화 영웅 사관 학교 (5)
* * *
‘와, 이름 한번이 안 나오네.’
딱히 기대한 건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얼굴이나 이름이 많이 알려져서 좋을 게 전혀 없으니까.
그런데 한편으로 영웅 대접이 어떤지 궁금한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성수아의 이름은 TV에 나오는 자막과 발언마다 끼워져 있을 정도로 무수하게 나열되어 흘러나오고 있었다.
뉴스뿐만 아니라, 각종 토론과 예능에서도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었다.
‘얼굴이 비공개라서 그나마 다행이네.’
다행히 TV에는 성수아의 얼굴이 나오지는 않았다.
영웅들의 사진은 인터넷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중죄라는 말이 떠올렸다.
‘밖에서 데이트할 때는 영웅 관계자만 조심하면 되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방에 있는 스마트 워치를 착용한 뒤, 메시지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시지는….
“허… 뭐 이렇게 많이 왔냐.”
메시지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부재중 전화가 알람으로 띄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양의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의 주인들은….
<초서현 :="" 왜="" 연락이="" 안="" 돼요.="" 설마="" 몸="" 좋아요?=""/>
<성수아 :="" 전화가="" 안="" 돼서="" 메시지로="" 보내요.="" 혹시="" 어제="" 다치신="" 건="" 아니시죠?=""/>
대부분 초서현과 성수아였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초서현은 나와 이틀 정도 연락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성수아의 경우에는 어제 첫 섹스를 했으니까.
둘 다 나와 통화하고 싶어 할만한 상황이었다.
‘일단 답장이라도 간단하게 보내야 하나…. 응? 뭐야?’
그런데 예상외의 인물에게 온 문자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교장 :="" 점심="" 식사="" 후,="" 교장실로=""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
..
나는 일단 초서현에게 연락해서 간단하게 사과한 뒤, 변명했다.
전날 사정이 있어서 외출했고, 바빠서 연락을 못 했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어제 있었던 일을 전부 설명해줄까 싶었지만, 그 생각은 바로 접어버렸다.
‘언론에 내 이름도 나오지 않았는데. 굳이 내 입으로 말해서 걱정시킬 필요는 없겠지.’
무엇보다 언론에서는 성수아를 하늘이 내린 성녀처럼 추대하는 중이다.
초서현에게 성수아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굳이 내 입으로 말할 필요는 없겠지.
그렇다면 성수아에게는?
일단 간단하게 연락은 해 둔 상황이었다.
문자로.
초서현에 비해서 차가운 태도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그럴만한 사정도 있었다.
‘아, 저기 계시네.’
어차피 그녀도 나와 같이 교장실에 호출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교장실로 향했고, 교장실 앞에 서 있는 한 여인을 만날 수 있었다.
“어머, 성수호 교관님.”
성수아였다.
그것도 예쁘게 치장한….
“연락 늦게 받아서 죄송합니다. 어제 기숙사에 가자마자 깊이 잠들어서….”
“후후, 괜찮아요. 피곤하시면 그럴 수 있죠. 오히려….”
성수아는 예쁘게 치장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서 속삭이듯 말했다.
“어제 정말 피곤하셨을 텐데, 피곤하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하하….”
내 어색한 웃음에 성수아는 얼굴에 홍조를 띠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성수아와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자, 통신으로 한 여자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실실거리긴….]
‘….’
[아,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나왔네요. 하던 거 계속하세요.]
웃던 것에서 더 크게 웃으라는 소리인가? 조커처럼?
나는 강한나의 투정을 대충 넘기며 성수아와 이야기를 진행했다.
“그런데 먼저 들어가시지 않고 여기서 기다리신 건가요?”
“네. 이제 같이 들어가죠.”
나는 그렇게 성수아와 같이 교장실에 문을 두드렸다.
문을 두드리자마자 내부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그렇게 들어간 교장실에는….
“주말에 호출해서 미안합니다.”
키가 180 중반 정도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덩치의 교장과….
“걱정했는데, 신수가 훤하네.”
우리를 보며 옅은 미소를 짓는 예리엘이 같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런 예리엘의 모습에 당황한 듯한 강한나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들려왔다.
[저 아이가 탑의 수장이라는 거죠?]
‘네. 생긴 건 어린아이지만, 나이는 꽤 있는 모양이에요.’
[흐음… 설마 저 애도 표적이에요?]
‘….’
아니, 사람을 뭐로 보고….
내가 강한나의 통신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짓자, 교장실 안에 있던 예리엘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어머? 설마 내가 있다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래요?”
“아,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분이 계셔서 당황했습니다.”
예리엘은 내 말을 듣고는 표정을 풀며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 거기서 서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앉아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 불렀으니까.”
나와 성수아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두 사람의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먼저 입을 연 건 다름 아닌 교장이었다.
“성수아 교관님의 활약은 잘 들었습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그 이후 교장은 성수아에 대한 칭찬으로 대화를 이끌어나갔다.
교장의 칭찬은 언론에서 나온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칭찬의 주체가 영사관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살짝 다른 점이었다.
“교관 복무 중이라면 기피하셨을 법도 한데, 나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최근에 실추된 영사관의 위신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야,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하하하! 이런 건 좀 다른 사람들도 보고 배웠으면 좋겠군요. 뭐…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하하….”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성수아를 향하던 교장의 극찬은 한 사람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바로 예리엘이었다.
“칭찬은 아무리 늘어놔봤자, 결국 말밖에 남지 않죠. 나중에 뭐라도 해주세요.”
“하하하! 제 전성기 시절보다 훨씬 잘나가는 친구라 뭔가 해줄 수 있나 싶군요.”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요? 여기서 교장의 과거 전적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하하… 예전 일이죠. 예전….”
나는 교장이 뭐하던 사람인지 모르는데….
예리엘이 저렇게 말하는 것과 성수아의 표정을 보면 교장도 현역 시절에는 꽤 잘나간 모양이었다.
‘하긴 그런 사람이니까 이런 곳에서 교장직을 맡은 거겠지.’
교장이 아무리 예리엘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해도 적지 않은 나이를 가진 건 사실이었다.
워낙 덩치가 커서 40대 중반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50이 넘은 노인에 가까운 인간이었으니까.
‘웃통 까고, 수염만 좀 더 길었다면 영락없는 바바리안 같이 보였을 텐데. 아, 키가 좀 더 크고….’
내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우리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나였다.
에브리카 습격 사건에 대해서 언론을 포함해서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마치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하지만 처음으로 그 사건과 나를 연결해서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생겼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예리엘이 작은 몸을 일으켜 세운 뒤, 내게 고개를 숙이며 우아하게 입을 열었다.
“성수호 교관. 탑과 에브리카를 대표해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려요. 정말 고마워요.”
“굳이 그렇게 고개를 숙이실 필요는….”
“당신이 도와준 일은 그만큼 저를 숙이게 할 만큼 고결한 일이었어요. 다시 한번 고마워요.”
예리엘은 작은 얼굴을 다시 들어 올려서 소파에 차분하게 앉았다.
그런 상태로 다소곳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진행했다.
“오늘 두 사람을 여기에 부른 이유를 설명할게.”
내게는 기본적으로 존댓말을 해주지만, 성수아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런지 대충 격식 없이 진행하려는 모양이었다.
일단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한 후일담을 시작했다.
“일단 테러리스트 녀석들은 대부분 잡아들였어. 에브리카도 재빠르게 대처하는 중이고.”
언론에서 이미 나온 내용이었다.
다만 예리엘이 말해주는 내용은 언론보다 더 세세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었다.
잡아낸 테러리스트의 숫자, 피해자의 규모와 보상, 그리고 건물의 복구 작업 등등….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궁금해하는 사실은 알 수 없었다.
“아쉽게도 무리를 지휘하던 녀석들은 잡아내지 못했어. 탈출로가 막혔다는 것을 알고 다른 루트로 도망친 모양이야….”
나는 예리엘의 말을 듣고 나서 한 여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내게 강간당하고, 심지어 내게 미친 성벽을 작성 당한 여자.
‘문주아… 그 괴랄한 성벽을 달고, 잘도 도망쳤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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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아(종속 1단계)*
성벽 : 증오로 인한 복수심이 피어오를 때마다 종속의 주인을 향한 성욕으로 변한다. (모든 성욕은 종속의 주인에게만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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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마주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심히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예리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설명한 뒤, 진짜 부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리엘은 나를 바라보며 나긋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뉴스 봤어요?”
“네. 그날 사건 이야기로 가득하더군요.”
“후후… 본인도 관계된 일인데, 너무 남 일처럼 이야기하네요.”
“죄송합니다. 그런 건 아니고… 어차피 저한테는 관심도 없던데요.”
뉴스에서 내 이름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가 영웅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에요.”
“…네?”
“아무도 당신의 이름을 모르니까, 관심을 줄 수 없는 거예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냥 영웅이 아니라서 관심을 주지 않는 게 아닌가?
내 그런 의문을 예리엘이 해소해줬다.
“에브리카 본사와 탑, 그리고 내가 직접 나서서 당신의 신분을 감췄어요. 아니, 그 장소에 없는 것으로 했죠.”
“…네?”
의문을 표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예리엘 님… 어째서 그런 짓을….”
성수아도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대신해서 묻고 있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굳이 왜 그런 짓을?
나와 성수아의 당황한 표정을 보던 예리엘은 오히려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성수호 교관은 유명해지고 싶어요?”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무슨 길거리 캐스팅할 때 나오는 멘트 같은데?
내 의문에 예리엘은 피식 웃더니, 이야기를 진행했다.
“언론에서 성수호 교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분명 엄청난 관심을 받겠죠. 수많은 길드에서 엄청난 조건을 제시하면서 성수호 교관을 영입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거예요.”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예리엘의 말을 끊고 질문을 한 건 내가 아닌 성수아였다.
당사자인 내가 아닌 그녀가 이렇게 나선 이유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성수아와 나는 이제 그저 얼굴을 알고 지내는 동료 사이가 아니다.
서로 살을 맞대고 체온을 느끼며 연인의 경험을 나눈 사이였다.
그녀의 입장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잘되길 바랄 것이다.
그건 역으로 나도 마찬가지였고.
예리엘은 성수아의 강단이 느껴지는 질문을 듣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인기가 많으면 좋겠지.”
“그럼 왜 막으신….”
“그것도 결국 한순간이야.”
“…네?”
성수아의 의아한 표정에 예리엘은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수아. 너는 영사관을 졸업한 입장이라 잘 모르겠지만, 만약 이대로 성수호 교관의 이름이 언론에 실리면… 성수호 교관을 노리는 건 길드뿐만이 아닐 거야.”
“그게 무슨….”
“길드가 접선하기 전에 각종 그늘에서 활동하는 녀석들이 밑밥과 그물을 던져댈 거야”
“아….”
영사관.
그저 영웅 새내기들을 가르치는 일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보호.
능력은 있지만, 아직 세상 경험이 적은 새내기들이 혹시라도 위험한 길에 들어서지 않게 막아주는 역할도 하는 기관이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영사관은 입학할 때, 순수한 재능과 성적만을 보고 입학을 허가한다.
아무리 거금과 인맥을 동원해도 입학만큼은 절대 뒷거래가 불가능한 곳이 영사관이었다.
그리고 입학한 학생들은 교육받는 학생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천만 원가량의 돈을 받는다.
보호와 복지, 그리고 금전.
이 세 가지의 막대한 혜택을 주며 생도들을 졸업과 동시에 길드로 잘 이끄는 것.
그게 바로 영사관의 존재 의의였다.
하지만 입학조차 못 한 존재는…?
“갑자기 언론에 띄워진 인물 중에 결말이 좋은 사람은 의외로 적어. 더 큰 이익에 눈이 멀어서 그쪽으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성수호 교관님은 절대 그런 분이….”
“성수호 교관이 올바른 사람이라는 건 나도 잘 알아. 어디까지나 걱정 때문이지.”
예리엘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불렀다.
“성수호 교관.”
“네.”
“혹시라도 당신의 심성을 폄하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줘요. 그만큼 당신의 안전을 위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거니까.”
“알겠습니다.”
이제 대충 알 수 있었다.
예리엘이 나의 신분을 감춰준 이유를….
어차피 나는 영웅 신분도 아니고, 적당히 넘어가도 그녀에게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를 신경 써준 것을 보면 예리엘의 심성도 대충 어떤지 짐작할 수 있었다.
[괜찮은 꼬마… 아니, 여자네요.]
‘네. 제가 몇 번 도와줘서 그런지 도움이 많이 되는 여자예요.’
[혹시라도 반하지 마세요.]
‘….’
강한나… 아르모니아와 다른 식으로 사람을 흔드는 매력이 있는 여자였다.
다만 너무 흔들어서 탈이지만….
내가 그렇게 얼탱이 없는 표정을 짓자, 강한나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뭐가요?’
[이런 설명 하나 때문에 이런 자리를 마련할 이유가 없어 보여서요.]
강한나의 말대로 이상한 자리였다.
본인이 언론 통제를 했다면 개인적으로 만나서 해명해줬어도 충분했다.
성수아까지 같은 자리에 있는 건 그러려니 하더라도 교장까지 같이 있는 자리에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었다.
제대로 통제할 거라면 교장에게도 비밀로 하는 게 좋을 테니까.
다행히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성수호 교관.”
“네.”
예리엘은 나를 보며 아까와 다르게 표정을 굳히고 단도직입적으로 제안을 해왔다.
“혹시… 탑에 입단하실 생각 없으신가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