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8화 〉 568화 동서냉전
* * *
주방 안에 아르모니아의 한마디가 퍼졌다.
“즐거우셨습니까?”
“….”
나뿐만 아니라, 강한나와 레나… 더 나아가서 나머지 멤버들도 전부 일동 침묵했다.
평소라면 두 사람 이상만 있어도 소음이 퍼지는 주방에 모든 사람이 모여있음에도 마치 침묵에 걸린 듯 조용히 서로 눈치를 볼 뿐이었다.
아르모니아는 선 채 식탁에 앉아 있는 모든 사람을 무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고는 뭔가 생각하는 듯 표정을 짓더니, 우리를 다시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답이 없으시다면… 혹시 제 질문에 문제가 있었습니까?”
아르모니아의 질문의 요지는 간단했다.
어제 있었던 대결이 잘 마무리되었느냐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는 전혀 그렇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과정과 결말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시작이 문제다.
대결의 시작 자체가 싸움 때문이었으니까….
심지어 이들 입장에서 아르모니아는 동료이지만, 한편으로 다른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다.
총책임자.
그녀를 빼놓고 뭔 일을 벌였다는 사실에 다들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안이 가득 담긴 시선들은 전부….
“….”
나를 향해 있었다.
마치 나만이 아르모니아의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는 희망이라는 듯이….
참 아이러니했다.
다른 사람들은 긴장하고 있지만, 나 혼자만 멀뚱히 긴장을 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만이 이 사건의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말로 이끌기 위해서는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질문에 문제없었어. 다만 다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거 같네.”
“….”
아르모니아는 차분히 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질문을 해왔다.
“즐거우셨습니까?”
“음… 중간에 다소 어수선했지만….”
나는 식탁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을 쭉 훑어본 뒤, 다시 아르모니아를 쳐다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아르모니아에게 돌려서 한 문장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끝나고 나니까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거 같네.”
소란이 끝났다는 것을….
아르모니아는 침묵한 채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 일은 여기서 넘어가겠습니다.”
“휴우….”
유독 소리가 들리게 한숨을 쉰 건 강한나였다.
강한나는 아르모니아를 인정하고 그녀의 눈치를 보던 중이었다.
처음에는 나름 자신만만하게 다른 사람을 통제하며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레나의 등장으로 정작 본인조차 통제력을 잃는 모습을 보여줬다.
레나도 침묵하면서 안도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심 불안했을 것이다.
그녀도 사건의 중심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종료되더라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그래서… 두 분은 왜 다투신 겁니까?”
베아트리체와 시호의 다툼의 원인이었다.
아르모니아의 무감정한 질문에 시호와 베아트리체가 안절부절못하며 귀와 꼬리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날개까지 포함해서….
시호와 베아트리체는 각자 자신의 편에 서 있던 여자들에게 도움을 청하듯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시호는 강한나에게, 베아트리체는 레나와 비올라에게….
하지만 세 여자는….
“후우… 시호, 말해봐.”
“그래요. 베아베아체… 왜 싸운 거예요?”
“지금 말하지 않으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빨리 털어내고 이 상황을 마무리 지어달라는 듯이 보채기 시작했다.
세 여자의 보채는 모습에 결국 시호와 베아트리체는 백기를 들었다.
그리고 각자 입을 열었다.
“얘가… 자꾸 선배라고 부르라고 해서….”
“너, 너야말로 언니라고 부르라고 했지 않냥!”
다들 어처구니가 없어서 두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결국 싸운 이유가 나이 대접이 먼저냐, 선배 대접이 먼저냐는 꼰대 싸움이었던 셈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다시 자존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내 나이가 삼백이거든!”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냥! 내가 이래 봬도 마왕성에서 이성 장군을 했다냥!”
“그게 뭔데! 괭이야!”
“이 여우가…!”
역시나 다시 싸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사실 직감하고 있었다.
어제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싸우지 않은 건 강한나와 레나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었다.
원래 인간이란 윗사람의 눈치를 볼 때는 쉽사리 자존심을 드러내지 못하는 법이니까.
아… 얘들은 사람이 아니지.
혼령과 마족.
한편으로 웃겼다.
사람이 아닌 녀석들이 사람들 사이에 껴서 사람들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었다.
‘어쩌면 사람이 아닌 녀석들끼리라서 더욱더 으르렁거리는 걸 수도 있겠네.’
일단 싸운 원인은 알게 되었다.
“이제 그만. 여기에 선배도 없고, 나이도 없어. 더 이상 그런 걸로 싸우지 마.”
“으….”
“흐….”
일단 서로 잘못한 건 이해하고는 있지만, 인정하지는 못하는 분위기였다.
진짜 인정하기 싫은 게 아닌 자존심 때문으로 보였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거리며 일어섰다.
“시호, 베아트리체. 일단 나와봐.”
“으으… 네.”
“히이… 나 잘못한 거 없는데냥….”
나는 다른 멤버들을 주방에 두고, 두 사람을 데리고 함선 복도로 나와서 거리를 벌려서 떨어뜨렸다.
일단 시작은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 여기는 마왕성이 아니라, 함선이야.”
“아, 안다냥….”
“알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한 거야? 선배 대접이라니….”
사실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베아트리체는 이성 장군이다 뭐 다 했지만, 이곳에 오자마자 비올라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가족처럼 살갑게 대했으니까.
심지어 사후 세계에 있던 부모를 만나기 전에도….
“베아트리체. 만약 그렇게 선배 대접을 받고 싶다고 말하면… 마왕성에 있을 때처럼 혼자가 될 수 있어.”
“그… 그건….”
베아트리체는 마왕성에서 언제나 혼자였다.
그녀가 장난을 많이 쳐서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런 유치한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서큐버스와 묘족이 섞인 유례없는 혼종.
그게 베아트리체를 진짜 혼자로 만든 요소일 것이다.
뭐, 꼰대짓도 한몫은 했겠지만….
나는 그런 사실을 부각하며 베아트리체에게 위기감을 더해준 것이었다.
“위아래를 정하면서 놀리고, 장난치면… 너는 즐거울지 몰라도 다들 널 오히려 싫어하게 될 거야. 그래도 괜찮아?”
“…그건 싫다냥.”
베아트리체는 혼자였던 기억을 되살리며 떠올리는 건지 한동안 조용하더니, 금세 작은 귀를 파닥거리며 내게 말했다.
“네가 말하는 대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냥.”
“좋아. 말 잘 들어서 귀엽네.”
“헤헤….”
나는 베아트리체의 파닥거리는 귀와 함께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녀를 뒤로하고 시호에게 향했다.
시호는 혼령 상태로 내가 다가가자 흠칫 놀라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시호.”
“으… 응…. 오빠….”
시호는 내 부름에 반응만 할 뿐, 시선은 전혀 주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어제 아르모니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호 님은 시호 씨가 보였음에도 모르는 척하지 않으셨습니까? 시호 씨는 그런 상황에서 혼잣말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지금 굉장히 창피해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대결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잊었지만, 지금 시호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아르모니아가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시호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나는 창피함에 고개를 돌린 시호에게 다가가서 그녀에게 사과했다.
“시호. 미안해.”
“응? 오, 오빠가 갑자기 왜 미안해?”
나는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그동안 모른 척해서 기분 나빴지? 정말 미안해….”
“엥! 아, 아냐! 내가 왜 기분이 나빠! 그, 그냥 차, 창피해서 그런 것뿐이야!”
시호는 혼령 상태로 내 주위를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도리어 내게 사과하기 시작했다.
“나야말로 미안해! 그, 그냥… 쟤가 선배다 뭐라고 하니까 나도 모르게 반발심이 생겨서….”
생소한 장소에 오자마자 창피함에 몸서리치는 와중에 잘난척하는 고양이가 나타났다.
심지어 왠지 모르게 적대심이 샘솟는 그런 고양이가….
그 순간 방어 기제가 발동하면서 그나마 베아트리체보다 우위에 있는 것을 끄집어낸 것이다.
바로 나이….
나는 안절부절못하는 시호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독여줬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래도 여기에 살면 나이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야 해. 그래야지, 내가 시호를 동생처럼 바라볼 수 있잖아?”
“아! 그, 그렇지! 헤헤….”
삼백 살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보면 영락없는 애 같았다.
다행히 시호도 풀어졌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자, 그럼 둘이 화해해.”
“…미안하다냥.”
“…나도 미안.”
입으로만 화해할 뿐, 눈과 표정은 전혀 화해하지 않고 있었다.
한번 풀어진 자존심은 타인이 묶어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도 이게 어디냐.’
이 정도면 충분했다.
완벽하게 화해하는 건 결국 본인들이 계속 마주하며 풀어야 할 숙제였다.
그렇게 시호와 베아트리체를 일시(?)적으로 화해시킨 뒤 다시 식당으로 들어갔다.
아르모니아의 눈치를 살피던 멤버들은 우리가 돌아오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해한 것을 직감해서 안도한 건지 그저 숨 막히는 이 장소에 내가 나타나서 안도를 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쪽은 해결했어.”
“…알겠습니다.”
아르모니아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시호와 베아트리체의 상태를 보고는 적당히 넘어가도 괜찮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싸움의 시작이 봉합되면서 어제 있었던 사건이 전부 마무리되었다.
아니… 마무리된 줄 알았다.
“수호 님과 두 분은 제 집무실에 방문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르모니아가 말한 두 분이란….
“저랑 레나 씨요?”
“저와 한나 씨 말씀이십니까?”
레나와 강한나였다.
..
..
아르모니아의 집무실에는 언제나 나 혼자만 방문했었다.
오늘은 그런 아르모니아 집무실에 타인이 처음으로 방문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레나와 강한나.
두 여자는 혹시라도 대표로 꾸중을 들을까 싶어서 그런지 아까부터 긴장을 쉽사리 놓지 못하고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누가 보면 중죄라도 지은 줄 알겠네….’
[함선 내에 분란을 일으켰으니, 중죄는 맞습니다.]
‘…바로 옆에서 통신할 필요는 없잖아.’
[통신 대화가 들린 건 오히려 제 쪽이었습니다.]
‘…미안.’
이것 또한 결국 내 잘못….
내가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속으로 궁시렁거렸다.
그와 동시에 아르모니아가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두 분을 이곳에 부른 건 체계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체계요?”
이번에 함선 식구가 늘었다.
딱 두 명.
고작 두 명이 늘어난 것으로 인해 생각보다 함선이 북적거린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존재하기 마련.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어제와 같은 사건이다.
“저희 함선은 아직 식구를 더 늘릴 계획은 없지만, 이번처럼 더 늘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미리 대비해 놓으려고 두 분을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분대를 나누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레나… 역시 군을 통솔한 공녀다운 단어 선택과 결론 도출이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정확했다.
“맞습니다. 서쪽 생활실을 레나 씨가, 동쪽 생활실을 강한나 씨가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생활실 관리뿐만 아니라, 그쪽에 배정된 인원의 불편, 건의, 사건, 사고를 담당하는 책임자로 배정한 것이다.
왕조로 치자면 좌의정, 우의정 같은 느낌이랄까나?
“만약 원치 않으시면 다른 사람에게 맡기겠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는 하겠습니다.”
레나는 군말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비올라와 베아트리체를 잘 관리해주던 레나였다.
책임감이 좀 더 무거워진 것을 제외하면 크게 바뀐 건 없을 것이다.
다음은 강한나….
“시호한테 이 일을 맡길 수는 없고, 무엇보다….”
강한나는 레나를 승부욕이 차오른 눈빛으로 바라보며 흥얼거렸다.
“이런 승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강한나와 레나의 눈싸움과 함께 아르모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두 분이 승낙하셨으니 해주셔야 할 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잠시만요.”
“…?”
강한나는 아르모니아가 이야기를 진행하려는 순간, 그녀의 말을 끊고 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 유심히 나를 바라보더니, 아르모니아에게 제안하듯이 입을 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한가지 규칙은 정하고 시작했으면 해요.”
“규칙 말씀입니까?”
“네. 바로 저분이요”
“…나요?”
갑자기 나는 왜? 설마 다른 일 시키려고 하나 싶을 때였다.
“사람이 나뉘었으니… 저분의 시간도 정확히 반으로 할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