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6화 〉 566화 동서냉전
* * *
어두운 방 안에 여자의 잠결을 담은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흐냐….”
“…잘나네.”
강한나는 이불을 살며시 걷어내며 수면등을 켰다.
수면등을 켜고,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자는 시호가 눈에 들어왔다.
허공에서 자기 때문에 굳이 침대에서 잘 필요가 없는 시호였지만, 지금은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성수호의 배려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배려 덕분에 강한나에게 큰 피해를 보고 있었다.
“소리 때문인가… 잠이 안 오네.”
강한나는 언제나 1인실만 고집한 이력이 있었다.
고민태의 연구 부지에 들어가기 전에는 기숙사 생활은 고사하고 타인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곳에서 지내지 못할 정도로 결벽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혼자만 지냈고, 성수호 이후로 처음으로 누군가 옆에서 자는 것을 경험한 것이었다.
“옆에 시호가 있어서 잠이 안 오는 건가?”
강한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난 뒤, 시호를 놓고 생활실을 나왔다.
하늘색 파자마 차림의 강한나는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철저하게 자기 내면을 파악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던 그녀는 금세 불면증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옆에서 자고 있던 시호 때문이 아니었다.
“아냐. 불편한 것보다 긴장한 게 더 큰 거 같아.”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감정들….
처음 내디딘 미지의 장소.
그런 장소에서 펼쳐진 기 싸움.
그리고 알게 된 불편한 진실.
그 진실로 인한 죄책감.
“졸려 죽겠는데…. 잠이 안 오네.”
심지어 강한나는 이틀째 잠을 못 자는 상황이었다.
첫날은 긴장감 때문이었다면 지금은 죄책감까지 옆에서 잠이 들지 못하게 거드는 상황.
“후우… 어쩌지?”
강한나는 잠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지내던 연구 부지였다면 그냥 일어나서 주변을 산책하면 그만일 일이었다.
그러다 보면 알아서 다시 긴장이 풀리면서 잠이 왔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보이는 건 함선 복도뿐이었다.
“이곳도 구경하는 재미가 존재하긴 했지만…. 아! 화원이 있었지.”
강한나는 전날 아르모니아가 소개해줬던 화원을 떠올렸다.
광활한 크기의 화원은 아니었지만, 여러 명이 산책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화원.
강한나는 스쳐 지나가듯 소개를 받을 때 강하게 밀려들어 오는 꽃향기의 기억이 그녀의 뇌 속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래. 거기 가서 산책이나 하자.”
강한나는 강렬한 꽃향기가 자신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것이라 기대하며 파자마를 입은 채 화원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
..
화원의 꽃향기는 강한나의 정신마저 현혹할 만큼 강렬하게 그녀의 마음을 누그러뜨려 줬다.
강한나는 혼란스러운 정신이 향기에 차분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한편으로 그런 감정이 또렷하게 느껴지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품었다.
하지만 그런 느긋한 감정과 감사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런 씨….”
강한나는 커다란 풀숲에 숨어서 화원 중앙에서 보이는 가제보를 몰래 바라보며 짜증을 내뱉었다.
“기껏 자리 비켜줬더니, 하는 짓이….”
가제보 안에는 두 사람이 보였다.
넘실거리는 분홍색 머리카락의 레나와 그녀를 껴안고 키스를 하는 성수호.
“츄읍… 츄으읍… 주인님….”
먼발치에서 엿듣는 강한나의 귓속에도 들릴 정도로 매혹에 차오른 레나의 목소리.
그 레나의 목소리가….
“하아… 하아…. 짜증 나네.”
강한나의 느슨한 감정을 쇠사슬처럼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 쇠사슬에는 성욕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큰 존재도 있었다.
바로….
“기껏 물러섰더니….”
질투심이었다.
심지어 지금 레나의 모습이 강한나의 질투심을 한없이 들끓게 만들고 있었다.
“쓸데없이 거추장스럽게 입고….”
레나는 아까 입던 검은색과 흰색 조합의 메이드 복이 아닌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산호색의 중세풍 드레스.
그것도 그저 겉멋으로 적당히 치장한 레벨이 아닌 왕족의 품격을 담아낸 드레스였다.
“…정말 공주는 공주였나 보네.”
강한나가 초기에 레나를 경계했던 건 그저 유능함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 보자마자 압도적으로 밀고 들어오던 기품.
하인의 상징인 메이드 복을 입은 채 느껴지는 고고한 자태
그런 모습이 강한나의 경계심을 순식간에 증폭시킨 것이었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더 이상 기선 제압할 수 있는 타이밍을 못 잴 것 같다는 두려움.
그리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레나의 모습을 보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진짜 공주 같네.”
가볍게 파자마를 입고 산책하는 강한나와 화려한 드레스로 성수호를 홀리는 레나.
만약 이 상태로 레나를 앞에 뒀다면 강한나는 분명 위압감에 짓눌려서 아까처럼 당당하게 나서지 못했을 것이었다.
“갈까…? 아냐, 이런 식으로 그냥 가는 건 짜증 나서 싫은데….”
강한나는 질투심과 두려움을 응축시킨 채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그냥 떠나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격대로 나섰다가는 자칫 속 좁은 여자로 자리 잡을 것 같았다.
그렇게 속앓이를 하며 끙끙 앓는 강한나의 귓속에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갔다.
“…언제 오셨어요?”
“꺄아아악!”
쾅!
놀라 까무러치듯 뒤로 나자빠진 강한나는 꽃밭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으으….”
“괜찮아요?”
“괘, 괜찮아요!”
무수한 꽃 덕분에 통증은 완화할 수 있었지만, 그 완화된 통증 덕분에 창피함을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다.
강한나는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성수호가 내민 손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잡을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 성수호의 옆에 서 있는 레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 한 톨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한 드레스.
화원에 내리쬐는 인공조명의 부족함을 대신해서 채워주는 광채.
진짜 왕족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강한나는….
‘이런 씨… 괜히 와서는….’
꽃밭에 구르며 흙과 먼지로 뒤덮인 파자마.
당장 풀숲에 숨어야 할 것 같은 창피한 자세.
지금 당장 도움을 줘야 할 것 같은 처량한 신세를 담아낸 여인의 모습이었다.
“한나 씨?”
강한나는 성수호가 내민 손을 새빨개진 얼굴로 바라보더니, 그의 손을 잡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눈을 피하며 변명했다.
“…일부러 훔쳐본 거 아니에요. 산책하다가 우연히 봤을 뿐이지.”
강한나는 그렇게 말한 뒤, 빠르게 화원을 떠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비참했다.
비참한 마음을 품으며 그렇게 경보로 화원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화원 문을 앞두고 뭔가가 하늘에서 강한나의 앞길을 막는 무언가가 내리꽂아졌다.
탓!
“꺅!”
눈을 감으며 놀란 강한나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앞에 떨어진 존재를 확인했다.
강한나의 앞에는….
“….”
“무, 무슨 일이에요! 깜짝 놀랐잖아요.”
레나가 우아한 포즈로 서 있었다.
강한나는 화가 나는 것과 동시에 감탄했다.
‘저런 복장을 하고, 그런 점프를 한 거라고?’
하지만 감탄도 잠시였다.
‘얼굴도 예쁘고, 몸도 좋고, 능력도 뛰어나고… 세상 진짜 불공평하네.’
다시 질투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한나는 현실을 직시하며 레나에게 다시 물었다.
“지금 뭐 하세요? 저 나갈 거예요. 비키….”
“아까 말씀하셨죠?”
“…네?”
강한나가 의문의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자 레나가 천천히 강한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읏… 복장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엄청난 위압감이 강한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강한나는 레나가 내뿜는 위압감에 뒷걸음질조차 치지 못하고 몸을 살며시 떨며 다가오는 레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레나가 강한나의 코앞까지 도착한 순간이었다.
“후회를 남길 짓을 하지 말라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레나가….
툭, 툭, 툭!
흙이 잔뜩 묻은 강한나의 파자마를 살며시 털어줬다.
“자, 잠깐만요. 그렇게 터시면 흙이….”
흙 한 톨조차 허락하면 안 될 것 같은 레나의 드레스에 강한나의 파자마에 묻어 있던 흙이 묻기 시작했다.
레나는 강한나의 파자마에 묻었던 흙을 전부 털어낸 뒤, 안절부절하고 있는 강한나를 보며 차분히 말했다.
“여기서 떠나시면… 어쩌면 진짜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
레나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강한나는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리듯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자존심 때문에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레나의 의도대로 행동하면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자존감이 정말 꺾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둘이… 좋은 시간 보내세요.”
강한나는 자신을 바라보던 레나를 놓고 지나쳤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온몸으로 바랬다.
자신을 잡아달라고….
하지만 레나는 그녀가 화원 출구의 바로 앞에 도달하는 순간까지도 한마디로 그녀에게 건네지 않았다.
강한나는 앙다문 입으로 화원을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강한나의 귓속으로 레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왔다.
“…쟁이.”
“………뭐라고요?”
강한나는 순간 자기가 잘 못 들은 건가 싶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 보인 레나는….
“죄송합니다. 말이 실수로 헛나와 버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보세요. 뭐라고 했죠?”
강한나의 매서운 눈빛에도 레나는 전혀 거리낌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레나는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강한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승부에서 도망치는 겁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무슨 승부가….”
레나는 입가를 꿈틀거리는 강한나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당신께서 이곳을 떠나면 결국 주인님과 남게 되는 건 제가 됩니다. 정말… 그걸 원하십니까?”
강한나는 레나의 도발이 담긴 대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어설펐다.
전쟁까지 치른 여자가 내뱉은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설픈 도발이었다.
하지만 이런 레나의 모습을 보면서 강한나는 레나가 어떤 여자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 여자라는 거겠지.’
도발이나 쓸데없는 잔기술이 아닌 정직하게 승부를 보던 여자.
그런 여자가 속에도 없던 마음을 끄집어내서 강한나를 도발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설픈 도발이….
“저 남자 곁에 마지막에 남는 건… 당신이 아니라 나일 텐데요?”
강한나의 승부욕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츄륵… 츄릅… 쮸읍….”
“하읍, 츄읍, 쪽!”
레나와 강한나의 펠라를 동시에 받으며 깨달을 수 있었다.
‘크읏! 결과만 좋으면 됐지.’
[….]
결과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과정 중시의 인간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결과 중시의 인간이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가제보 벤치에 앉은 채 레나와 강한나의 펠라를 받았다.
여기서도 두 사람의 성격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레나는 내 고환을 입술로 자극하며 내 사정감을 부추겼고.
강한나는 내 자지를 혀로 핥으며 간혹 나오는 쿠퍼액을 훔치며 맛보고 있었다.
봉사와 봉사.
내 쾌락을 위한 봉사와 내 자지의 청결을 위한 봉사.
그 두 가지가 모두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다.
사실 내가 펠라를 시킬 때만 하더라도 강한나는 극명한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이유는 바로 레나.
강한나의 삐뚤어진 결벽증은 오로지 나에게만 통용되는 이야기였다.
레나와 같이 혀를 놀리며 펠라를 하라는 명령.
아무리 나를 사랑하더라도 강한나는 바로 혐오감을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혐오감을 오히려 역 이용한 것이 바로 레나였다.
레나는 즉시 나와 키스를 한 뒤, 내 자지를 핥으며 강한나를 도발한 것이었다.
주인님의 타액이 묻은 자지… 제가 혼자 차지할 수 있다면 오히려 영광입니다.
크윽!
레나의 도발과 함께 파자마 차림의 강한나는 바로 무릎을 꿇고 내 자지를 핥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내 타액으로 인해 흥분한 모습처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나는 내 남자가… 더러워지는 꼴은 못 보겠네요.
오히려 레나의 타액을 씻어내기 위한 행위로 이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펠라를 받던 나는….
“크읏! 싼다!”
“흐읏!”
“꺄앗!”
갑자기 밀려 나온 사정감을 참지 못하고 두 여자의 얼굴로 정액을 뿌리기 시작했다.
내 정액을 한껏 얼굴로 받아낸 두 사람은 각자 한마디씩 감상평을 남기기 시작했다.
“주인님의 냄새… 너무 좋습니다.”
“하아… 진짜 짜증 날 정도로… 냄새가 좋긴 하네요.”
그렇게 사정을 받아낸 두 여자는 천천히 일어나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응.”
레나가 치마를 걷어 올리고….
“하아… 절대 지지 않을 테니까.”
강한나가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다짐하며 파자마 바지와 속옷을 동시에 벗기 시작했다.
하의를 전부 벗어낸 강한나가 새빨개진 얼굴로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대결 내용… 알죠?”
“네, 그럼요.”
나는 실실 웃으며 하의를 홀딱 벗은 강한나와 치마를 들어 올리고 고간을 보여주는 레나를 차분히 감상했다.
강한나의 깔끔한 민둥산과 레나의 분홍색의 풍성한 숲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두 여자의 보지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섹스하고, 먼저 지치는 쪽이 패배라는 거죠?”
그렇게 두 사람의 마지막 대결이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