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2화 〉 562화 동서냉전
* * *
나는 강한나와 같이 시호와 베아트리체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점차 가까워질수록 걱정은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시호는 공중에 살며시 뜬 채 베아트리체를 내려다봤고, 베아트리체는 평소답지 않게 수인처럼 몸을 낮추고 시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딱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으으….”
“크으….”
서로 으르렁거리며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강한나와 그렇게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자마자 바로 물었다.
“두 사람 왜 그래? 무슨 일이 있어?”
혹시 내가 보는 것이 착각한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은….
“이 유령 누구냐냥!?”
“오빠! 이 괭이는 뭐죠!?”
두 사람의 외침과 함께 산산이 무너져내렸다.
..
..
일단 서로 말다툼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머리끄덩이를 붙잡는 식의 싸움까지는 번지지는 않았다.
‘아, 시호는 애초에 영혼이라 머리끄덩이 잡는 것도 못하겠네.’
시호와 베아트리체가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게 불가능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두 사람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싸운 거야?”
“….”
“….”
침묵.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텐데 침묵이라….
하지만 나는 오히려 두 사람의 침묵을 보며 안도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가볍게 틀어져서 싸운 거겠네.’
만약 상대방이 큰 실례를 했거나, 진짜 화나는 일이 있었다면 바로 고자질로 자신의 입지를 올리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즉, 지금은 내가 쉽사리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가만히 두고만 볼 수도 없었다.
실밥 하나 풀린 거라고 가볍게 여기다가 다음 날 아홉 바늘을 꿰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두 사람에게 각자 한 명씩 달라붙어서 화해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시호.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베아베아체~ 왜 그러는 거예요?”
시호에게는 강한나가 붙고, 베아트리체에게는 비올라가 붙어서 화해를 주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두 사람은….
“….”
“….”
함구한 채 쉽사리 사건의 내막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있었다.
일단 두 사람도 눈치를 보는 것을 보니, 가벼운 사안 같아 보이는데….
‘레나는 그동안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자고 있고, 아르모니아는 일 처리 하느라 바쁜 거 같고….’
결국 내가 나서서 뭔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유치원생처럼 눈치를 보던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시호였다.
“얘… 얘가 나는 오빠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했어….”
그리고 그녀의 말에 항변하듯 베아트리체가 소리쳤다.
“너, 너야말로 내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했지 않냥!”
일단 싸움의 발단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다투던 주제까지는 알 수 있었다.
서로 누가 더 도움이 되냐.
그것도 대상이….
“너! 빙의할 수 있어!? 어!”
“너야말로 꿈속에 들어갈 수 있어?”
내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함선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내게….
내가 두 사람을 보며 침묵하고 있자, 다시 비올라가 베아트리체를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제가 볼 때는 베아베아체가 더 대단하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문제는 비올라의 발언이었다.
“…그건 그냥 넘겨 듣기 힘든 이야기네요.”
강한나가 비올라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포화 속에 발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꿈에 들어가는 능력… 좋긴 하지만, 결국 우리 임무는 여자의 마음을 홀리는 거잖아요? 빙의가 훨씬 대단한 능력이죠.”
“맞아! 맞아! 내가 여자 몸에 들어가기만 하면 오빠가 하는 일은 순식간에 해결할 수 있을걸?”
강한나의 합세로 득의양양해진 시호가 으스대며 가슴을 쭉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비올라의 정식 합세….
“그런 식으로 여자의 마음을 얻으면 뭐가 남죠? 그리고 그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두 분이 더 잘 아시잖아요.”
“마, 맞다냥!”
비올라의 말에 득의양양해진 베아트리체.
그리고 이어지는 반격.
“결과가 중요해요. 결과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죠.”
“그 말에 반대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저를 포함해서 여기 있는 분들이 전부 수호 씨와 어떻게 연결됐는지 생각해보면 마냥 수긍할 수는 없어요.”
진짜 진귀한 광경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비올라가 진지하게 논리를 내세우며 강한나와 논쟁을 펼치고 있었다.
‘역시 레나랑 베아트리체를 데려오길 잘했네.’
새삼 비올라가 성장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흐뭇하게 비올라를 바라보자, 강한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마치 분위기 파악을 하라는 듯이….
“크흠….”
“….”
내가 뻘쭘하게 고개를 돌리자, 강한나가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그건 그쪽 말씀이 맞아요. 저도 충분히 공감하고요. 하지만….”
강한나는 팔짱을 살며시 끼며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그쪽보다 저희가 도움이 안 된다는 말은 도저히 넘길 수 없겠네요.”
그리고 강한나는 분위기를 몰아서 선전포고했다.
“누가 더 도움이 되는지 확인해보죠.”
..
..
출발선 앞에 선 선수 네 명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 한숨조차 혹시라도 네 명에게 들릴까 싶어서, 일부러 티가 나지 않게 조용히 내쉬었다.
‘이게 뭐 일인지….’
시호와 베아트리체가 다툼을 시작했다.
그나마 비올라와 강한나가 나서서 말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오히려 일이 커졌네.’
두 사람까지 합세하면서 상황이 더 커져 버린 것이었다.
네 사람이 이렇게 출발선을 만들어 놓고 서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대결.
여러 가지 분야로 대결을 펼쳐서 누가 진짜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해보자는 차원이었다.
다만 나는 강한나를 보면서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승부욕이 있다고 해도 이런 애들 놀이를 일일이 받아줄 줄은 몰랐는데….’
가령 비올라가 네크로필리아 게이처럼 극단적인 도발을 감행했다면 이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올라가 했던 말들이 신경을 건들 정도였던 건 또 아니었다.
강한나는 출발선에 선 상태로 입을 열었다.
“일단 첫 번째는 기동성이에요.”
NTL 코퍼레이션은 기본적으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런 상황에서 내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이동해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함선 내부뿐만 아니라, 임무지에 투여됐을 때 빠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
그게 바로 기동성의 중요함이었다.
“일단 팀전이지만, 1등 한 사람의 팀이 1점 획득하는 걸로 할게요.”
강한나의 설명은 합리적이었다.
괜히 등수에 따라 점수를 득점하는 식으로 진행하면 팀 내부에 불화가 생길 우려를 해서 정한 규칙이었다.
‘저렇게 우려하는 것을 보면 뭔가 생각은 있어 보이는데….’
그렇게 의문을 가지는 사이에 강한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신호 주세요.”
“네. 준비….”
나는 기다란 복도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세 사람과 나를 힐끗 보는 강한나를 보면서 외쳤다.
“출발!”
“냐아아아앗!!”
파아아아앗!!
시작과 동시에 선두를 취한 사람은 엄청난 기세로 달려간 베아트리체였다.
묘족이라 그런지 평범한 인간에 비해서 월등한 신체를 가지고 있어서 시작과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반응속도도 결국 육체에 한계가 존재했다.
슈아아앗!
연기와 같은 혼령이 순식간에 베아트리체를 제치고 앞으로 나갔다.
“뭐, 뭐냐앙!”
시호가 베아트리체를 제치면서 순식간에 선두를 넘겨받았다.
시호는 선두가 되는 것과 동시에 호쾌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열심히 뛰어와라. 괭이야!”
시호는 물리적인 제약이 전혀 없어서 그런지 뒤를 보면서도 전혀 속도가 줄어든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무엇보다 혼령 상태로 꽤 오랜 기간을 지내와서 그런지 장애물에 부딪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시호였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뒤로 날아가며 여유를 부리려는 순간….
파아아아앗!!
“뭐, 뭐야!”
“에테르! 대단해!”
뒤늦게 출발한 비올라가 그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에테르… 방어할 때와 이동할 때의 순발력이 다르게 작용하나 보네.’
번개 같은 레나의 공격을 정확하게 방어하던 에테르가 비올라를 데리고 이동할 때는 느린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동을 시작할 때만 그랬다.
이동을 시작하고 나서는 점차 가속도를 붙이며 시호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시호의 경우에는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형태라면 에테르는 물리법칙 안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는 존재였다.
점차 자신을 추격해오는 비올라의 모습에 시호는 경악하며 자세를 바로잡고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오지 마!!”
“에테르! 좀 만 더 빨리!!”
“으앙! 너무 빠르다냥!”
그렇게 함선 복도를 쏜살같이 날아가던 세 사람은….
“와, 빠르네.”
이미 저 끝에 작은 모습으로 줄어들며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강한나는 출발선에서 얌전히 세 사람이 사라진 함선 복도를 보면서 감탄사를 흘렸다.
“보면 볼수록 대단하네요. 이런 거대한 함선이 있다니….”
강한나가 고민태의 연구 부지에 매료되었던 것에는 기술력도 있었지만, 규모도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었다.
거대한 함선.
강한나가 살던 세계에서는 우주에 사람 하나 보낼 때도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완전히 깡그리 무시할 정도의 기술력과 규모.
그게 강한나를 다시 한번 매료시킨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일단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하지 않으세요?”
“어차피 결과는 정해졌잖아요. 설마 제가 저 정도로 괴물인 줄 아세요?”
“괴물이라니….”
아마 비유였겠지만, 당사자들이 들으면 꽤 상처받을 법한 단어였다.
하지만 정작 강한나는 그 단어를 딱히 부정적으로 사용한 건 아닌 듯 보였다.
“저는 오히려 괴물이었으면 좋겠네요. 솔직히 베아트리체? 그분은 어느 정도 빠른 줄 알았지만… 비올라 씨가 저런 능력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하하… 비올라도 최근에 좋은 능력을 얻은 거거든요.”
“그래요… 그건 나중에 천천히 알아가면서 들으면 되겠네요.”
강한나는 피식 웃으며 저 멀리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복도 끝 쪽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나서지 않은 거 잘하셨어요.”
“하하… 다행이네요.”
“일부러 나서지 않은 거 맞죠?”
“네.”
강한나와 비올라가 나서 준 덕분에 가만히 있었던 것도 있지만, 사실 나서지 않은 더 큰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관계 정립.
“이렇게 다퉜다는 건 분명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거겠죠. 그럼 빨리 싸우게 만드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작게 싸우는 것을 어설프게 말리게 되면 나중에 점점 더 큰 싸움으로 번질 것이다.
그렇게 싸우기 전에 미리 관계를 정립하는 쪽이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상하관계로 정립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설프게 참는 것보다는 그쪽이 낫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기 싸움에서 지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해주면 된다.
그게 함선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이니까.
“…잘했어요.”
강한나는 나를 힐끗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저도 지금 싸우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아하… 그래서 판을 벌인 거고요?”
“네. 뭐, 솔직히… 승부욕이 좀 생긴 것도 있고요.”
등수에 따라 점수제로 하지 않은 건 팀원 간의 불화를 없앨 목적이라고 했지만, 결국 본인이 승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팀전이라고 판단해서 넣은 모양이었다.
역시 영특한 여자였다.
“그래도 설마 한 발자국도 뛰지 않고 여기서 대기할 줄은 몰랐네요.”
“효율이죠. 도움은 몸만 쓰는 게 아니잖아요? 여기서 체력을 보충해 놓는 게 팀… 시호를 돕는 일이 되는 거죠.”
“하하….”
강한나는 시호에게 모든 바톤을 넘긴 뒤, 함선 주변을 둘러보며 묻기 질문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레나 드 페르온? 그분은 아직 안 일어나신 건가요?”
“네. 레나는 저번 임무에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일부러 깨우지 않았어요.”
레나는 저번 단기 임무에서 내 눈에 보이지 않게 열심히 활동해줬다.
강한철의 감시와 선거의 판도를 바꾸기 위한 암약.
감시당하고 있는 나를 대신에서 열심히 돌아다녀 준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피곤할 거라고 판단한 나는 레나에게 휴식을 취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고 있음에도 강한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메이드 복을 하고, 나름 철저한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나태한 여자였네요.”
“네? 아니에요. 내가 일부러 휴식을 취하게….”
“그렇다고 해도 별로예요. 저는 잠으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요.”
“아, 그건 이유가….”
내가 그렇게 강한나에게 레나의 과거를 이야기해주려는 찰나였다.
저 복도 끝에서 시호가 흐느적 날라오면서 우리를 향해 외쳤다.
“크헥… 하, 한나야… 이겼어!”
“일단 첫판은 저희 승리네요. 다음으로 넘어가죠.”
강한나는 승리에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시호 쪽으로 걸어갔다.
첫 번째 대결의 승자가 등장하면서 레나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을 뺏겨 버렸다.
“뭐… 이따 시간 날 때, 이야기해주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강한나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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