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4화 〉 554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
* * *
이게 신경끈… 여기에 데이터가 저장된다고 했지?
강한철은 이민수의 말에 화면을 끄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신경끈?”
강한철도 이미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애초에 강한나가 관리하는 신경계 연구소에서 개발 중인 물품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한철이 신경 쓰는 건 어디까지나 고민태였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다.
신경끈도 고민태가 죽으면 어차피 쓸모없어지는 물건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화면 속 이민수의 말을 듣자, 강한철의 마음속에 있던 신경끈에 대한 가치가 미친 듯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 신경끈에 아까 한나 씨가 빨던 감각이 데이터로 들어있다는 거지? 신기하네.
“!?”
강한철은 간간이 강한나에게 신경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강한나는 자기가 만든 물건에 대한 자부심을 품었지만, 강한철은 그런 자부심을 가졌던 강한나를 매번 질타하곤 했다.
그녀가 만든 물건은 그저 고민태가 원하는 미래를 밝혀주는 물품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강한철은 처음으로 강한나에게 질타했던 사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만약… 지금 저 녀석이 착용했던 신경끈의 데이터를 구할 수 있다면….”
네트워크 안에서도 성욕을 발산할 수 있게 된다.
심지어 그저 찌질하게 팔을 흔들며 발산하는 게 아닌, 진짜 감각을 전해 받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진짜 섹스.
그것도 상대가 강한나.
그동안 육체에 머물 때마다 느꼈던 마약 같은 유혹이….
<영상 중에="" 신경끈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강한철의 정신체마저 유혹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가 쪽지를 보내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띠링!
<아, 실수로="" 그="" 장면이="" 들어갔나="" 보네.="" 별거="" 아니야.="" 그냥="" 연구소에서="" 대여해준="" 거="" 실험해보는="" 거지.=""/>
즉답으로 연락이 왔다.
“웬일이야! 빠르잖아?”
강한철은 연구소 안에 있는 이민수가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신경끈 안에 들어있는 데이터에 관심이 있을 뿐….
<혹시 괜찮다면="" 그="" 안에="" 있는="" 데이터…="" 저한테="" 넘겨주실="" 수="" 있나요?="" 돈은="" 원하는="" 대로="" 드릴게요.=""/>
강한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답장을 기다렸다.
하지만 도착한 답장은 강한철의 기대감을 산산이 무너뜨려 버렸다.
<에이, 안되지.="" 이거="" 연구소에서="" 빌린="" 거라="" 함부로="" 그런="" 거="" 보내주면="" 내가="" 좆됨.=""/>
“이런 쓰레기 같은 새끼가! 여자 영상이나 몰래 찍어서 뿌리는 주제에!”
강한철은 이민수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외쳤지만, 그에게 보내는 쪽지에는 밑도 끝도 없을 정도로 내려앉은 저 자세로 문장을 완성해서 보냈다.
<그저 흥미가="" 생겨서="" 그래요.="" 절대=""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거나="" 알려주지="" 않을게요.="" 원하는="" 액수만="" 적어주시면="" 대로="" 드릴게요.=""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강한철은 계속 튕기는 이민수의 쪽지에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그를 설득하기 위해 비굴하게 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장 10분을 넘게 비굴하게 굴던 강한철에게 도착한 쪽지에는….
<후우… 절대="" 다른="" 곳에="" 유출하면="" 안="" 됨.="" 알았음?=""/>
이민수의 허락이 담겨 있었다.
“됐다!!!”
강한철은 이민수의 허락과 동시에 천국행 티켓을 얻은 망자처럼 기쁨에 몸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광란의 춤을 추던 강한철에게 쪽지가 도착했다.
<생각보다 용량이="" 커서="" 좀="" 기다려야="" 할="" 듯.=""/>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강한철은 비굴하게 굴며 답장을 보낸 다음 바로 허니룸 사이트를 해킹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10억에 달하는 사이버 머니를 이민수에게 보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강한철은 설레는 기대를 안고 쪽지를 기다렸다.
이민수가 보내는 데이터만큼 그의 반응 또한 궁금한 것이었다.
이 정도 금액이라면 분명 환호를 지르며 자신을 추켜세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만 도착한 답장을 읽은 강한철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10억?="" 아까="" 그렇게="" 큰소리치더니,="" 꼴랑="" 10억…?=""/>
“이런 씨발 새끼가….”
강한철은 기대했던 것과 사뭇 다른 반응에 실망감을 느끼며 답장을 보냈다.
<10억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내일="" 바로="" 넣어드리겠습니다.=""/>
<뭐… 좋아.="" 이런="" 병신="" 같은="" 사이트에="" 그런="" 큰돈을="" 넣고="" 다니는="" 병신은="" 없을="" 테니까.=""/>
으드득!
“이… 씨… 발 새끼….”
강한철은 병신 취급을 받았다는 생각에 뇌가 터질 것처럼 분노가 쏟아져 들어왔지만,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신경끈 데이터.
강한철은 처음 이민수에게 저화질 영상을 받았을 때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고화질의 영상을 받으며 또 다른 신세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일단 받자. 받고 나면….”
증오심이 담긴 복수심보다 정신체에 스멀스멀 퍼져 드는 쾌락을 느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강한철은….
<보냈어. 용량="" 존나="" 많아서="" 전송="" 오래="" 걸렸네.=""/>
쪽지와 함께 도착한 첨부 파일을 열어서 신세계를 맛보기 시작했다.
***
신경끈에 있는 데이터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쪽지가 왔다.
<이거 중간에="" 끊긴="" 거="" 같은데="" 나머지="" 부분은="" 없나요?=""/>
강한철의 쪽지를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일단 데이터는 잘 확인했나 보네.’
나는 강한철이 원하는 대로 신경끈에 있던 데이터를 전송해줬다.
분명 데이터는 전부 전송해줬다.
하지만 그 데이터에는 제일 중요한 소스가 하나 빠져 있었다.
그건 바로….
<마지막 부분이="" 뭔가="" 더="" 있지="" 않나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만="" 확인하고="" 전송해주세요!!=""/>
사정 감각이 저장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참고로 사정 감각이 담긴 데이터를 보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없어서 못 보낸 것이었다.
나는 신경끈을 착용한 상태로 강한나의 입술을 속옷 밖으로 느끼며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사정은 하지 않은 채 신경끈을 떼어내 버린 것이었다.
마지막 그 부분, 제일 중요한 사정에 관한 데이터는 신경끈에 애초에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보내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보며 비릿하게 웃는 순간에도 강한철을 미친 듯이 쪽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쪽지를 보내는 것을 보니까. 역시 효과가 있나 보네.’
강한철은 네트워크가 아닌 현실에서만 자위에 몰두하던 녀석이었다.
이유는 내가 몰래 숨겨 놓은 도촬 카메라로 알 수 있었다.
강한철은 네트워크 안에서 성욕을 제대로 느낄 수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신경끈의 데이터, 즉 생동감 있는 감각이 담긴 데이터가 있다면?
‘이제 굳이 현실로 나오지 않아도 성욕에 미쳐 살 수 있는 몸이 되는 거지.’
나는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며 답장을 보냈다.
<데이터는 정확히="" 보낸="" 거야.=""/>
<그, 그렇군요…="" 알았습니다.="" 혹시라도="" 나중에="" 또="" 데이터를="" 부탁드립니다!="" 돈은…="" 말씀해주시면=""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오호… 그런데="" 그거="" 데이터="" 암호화="" 같은="" 거="" 되어="" 있는="" 아니야?=""/>
<제가 좀…="" 프로그램을="" 잘="" 다뤄서….=""/>
<ㅋㅋㅋ 대단하네.="" 너드라는="" 건가?="" 나는="" 그런="" 쪽은="" 관심="" 없어서.="" 하여튼="" 또="" 생기면="" 보내줄게.="" 돈은="" 알아서="" 준비해="" 놔?="" 알았지?=""/>
아까까지 칼같이 답장이 오던 쪽지는 대략 10초간의 침묵 후에 도착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걸로 알 수 있었다.
이 새끼 너드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이다.
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우며 낄낄 웃었다.
‘기분 나쁘면 거래 끊든가.’
이걸로 강한철 쪽은 한동안 신경끈 데이터에 푹 빠져 살게 될 것이다.
사실 걱정되는 건 강한철 쪽이 아니었다.
오히려 네크로필리아 게이 쪽이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오나홀과 신경끈이 그의 소유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문제는 단둘이 직접 만나면서 해결할 수 있었다.
“크흐흐… 이곳에 있는 동안 마음껏 쓰세요.”
“괜찮나요?”
“네. 오히려 계속 이용해준다니 저야말로 감사할 따름이죠!”
네크로필리아 게이는 자료수집 또한 목적으로 내게 빌려준 것이라며 오히려 고맙다고 말한 것이었다.
덕분에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강한나를 떼놓고 이렇게 네크로필리아 게이와 단둘이 만난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
“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하나 더 빌릴 수 있을까요?”
“오호? 혹시 연구원 중에 마음에 드는 분이 계셨습니까? 직급이 낮으면 제가 강제로 신경끈을 붙여 드릴 수 있습니다만?”
뭐래, 이 미친놈이….
네크로필리아 게이는 내가 오나홀을 하나 더 받고 싶다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긴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 여성기 말고 남성기도 빌릴 수 있을까요?”
“으호? 설마… 그런 쪽에 취향이…?”
와, 씨발.
예전에 자경단원이 나를 보던 눈빛과는 차원이 다른 광기가 느껴졌다.
이상한 오해를 사기 전에 나는 재빠르게 해명했다.
“이런 좋은 물건을 빌려주셨잖아요. 이왕이면 남성기도 시험해서 데이터를 남기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하…. 그거참… 고맙군요.”
뻥치지 마. 표정에서 아쉬움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구만….
“여기 있습니다. 가지고 가세요. 혹시라도… 다른 쪽에 관심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해주….”
“감사합니다!”
나는 네크로필리아 게이가 넘겨준 박스를 빼앗듯 낚아챈 뒤 기숙사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와… 씨발, 존나 무서웠어.’
[….]
달리는 도중에 미친 듯이 흘린 땀 덕분에 온몸에 돋아난 소름을 전부 씻어 낼 수 있었다.
내가 그렇게 기숙사에 와서 상자를 살피자, 아르모니아가 통신으로 물어왔다.
[그런데 굳이 남성기를 빌린 이유가 있으십니까?]
아르모니아의 의문이 이해가 갔다.
어차피 강한철에게 보낼 데이터는 내 감각을 신경끈에 담아서 보내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거기에는….
‘그 문제는 치명적인 부분이 있어.’
[어떤 문제가…?]
‘내가 섹스한 상대에 대한 감각도 강한철이 느끼는 거잖아. 그건 기분 더러워서 싫어.’
내가 신경끈을 달고 강한나와 섹스를 하면 그 감각을 강한철도 느끼게 될 것이다.
즉, 강한철이 내가 경험한 신경끈 데이터를 받으면 강한나와 섹스를 하는 경험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여자를 다른 새끼에게 경험시켜주는 것 따위는 절대 허락 못 한다.
[어차피 데이터일 뿐이고, 진짜 성교하는 건 수호 님이지 않습니까?]
‘그래도 싫어. 정을 붙이지 않은 여자면 상관없지만, 강한나는 이제 내 여자야. 다른 놈이 강한나 속살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좆 같아서 못 참겠어.’
[….]
나도 모르게 험한 말이 나와버렸다.
하지만 그만큼 짜증 난다는 이야기였다.
‘화난 게 아니라 그냥 잠깐만 떠올려도 짜증 나서 그랬어. 미안.’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헤아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너는 왜 사과를 해….’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상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혐오감이 피어오르는 형태의 생식기.
남자란 무릇 자기 자지를 제외한 모든 자지를 혐오감을 느끼는 법이다.
게이 빼고….
나는 연구용 비닐장갑을 착용한 뒤, 딜도 모양의 자지와 그 옆에 무선으로 연결된 신경끈을 꺼내서 확인했다.
‘일단 신경끈은 그냥 상자 안에 처박아 놓으면 되겠고… 중요한 건 이건데.’
덜렁거리는 자지.
두꺼운 비닐장갑임에도 불구하고 기분 나쁜 물컹거림이 내 손바닥으로 전달되어왔다.
‘흐끄에에엑!!’
[….]
기분 나쁜 나머지 들고 있던 자지를 상자 안으로 던져넣어 버렸다.
그리고 상자 안에 골인되는 순간….
‘씨발… 신경끈도 부착하지 않았는데, 발기하네.’
혐오감의 극치였다.
보는 것조차 정신력이 소모되는 이 기분….
‘후우… 괜히 만져서 기분만 잡쳤네. 아르모니아, 준비됐어?’
[준비됐습니다. 레나 씨께서 수호 님께서 눈여겨본 여자를 포섭한 상황입니다.]
‘좋아… 워프해줘!’
[알겠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대답과 함께 내 시야는 무지개색 줄기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떤 으스스한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분명 아직 낮인데도 불구하고 건물 자체에 햇볕이 들어오지 않아서 그런지 슬럼가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건물 내부였다.
내가 주변을 둘러보자마자 내 머리 위에 망토가 생성되면서 덮였고, 아르모니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인식 저해 망토입니다. 목적지는 712호 방입니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을 듣자마자 망토를 제대로 착용한 후, 쓰레기들이 널브러진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어두운 복도를 걷고 있자면 지금이 대낮이라는 게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7…12호. 아 여기네.’
애초에 목적지에 맞게 워프를 해서 그런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목적지인 712호의 문을 두드렸고.
똑, 똑, 똑.
내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나처럼 망토를 뒤집어쓴 여자가 나를 맞이해줬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고생했어.”
나는 레나로 추정되는 망토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뒤 같이 712호 집으로 들어갔다.
그나마 집 내부는 복도에 비해서 훨씬 깨끗하고,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장소에….
“도, 도대체 누구세요.”
대략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와 레나를 보며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