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2화 〉 542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
* * *
강렬한 빛.
“흐읏….”
눈꺼풀을 뚫고 오는 하얀색의 빛이 강한나의 잠들었던 뇌를 강제로 깨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깨어난 뇌가 강한나의 몸을 강제로 가동시키기 시작했다.
“끄으읏…!”
강한나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기지개를 켜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연구복을 입은 채 자고 있던 자신과….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은….
“…내가 이런 곳에서 잘도 잤네.”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는 침대였다.
가운데는 이미 처참한 몰골로 젖어 있어서 도저히 사람이 잘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렇게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뒤쪽에서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는 존재가 느껴졌다.
“흐으… 5분만….”
“….”
원래라면 갑자기 남자의 목소리와 남자의 손길을 느꼈다면 화들짝 놀라서 침대를 뛰쳐나갔을 강한나였다.
하지만 강한나는 뛰쳐나가기는커녕 오히려 자연스럽게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는 남자를 확인했다.
샤워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
남자가 입고 있던 샤워 가운은 허리를 좀 매던 끈이 풀려서 양옆으로 벌어져 있었다.
가슴이 훤히 드러나고, 하복부, 그리고 고간까지….
“흐읏!?”
강한나는 남자의 하복부에 솟아오른 물건을 보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돌려서 시선을 피했다.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이성의 몸을 몰래 보는 그런 죄를….
‘이, 일단 씻자.’
강한나는 자신의 허리를 물고 늘어지는 남자의 팔을 풀고는 간신히 침대를 빠져나왔다.
침대 안에서 보던 침대와 침대 밖에서 보는 침대의 모습은 완전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강한나의 기숙사 안에서 최고의 청정구역을 정하라고 하면 단연코 침대였다.
쾌적한 숙면보다 청결이 우선시 되어야 하는 장소.
강한나가 이 기숙사에서 지내고 나서 단 한 번도 더럽혀지지 않은 유일한 장소.
그런 장소가….
“하아, 맙소사….”
자기 애액으로 뒤덮여 있고, 심지어 남자가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몇차례의 한숨을 쉰 강한나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뭐… 이미 저지른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침대에 깨끗한 물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경기를 일으키면서 닦아내야 직성이 풀리는 강한나였다.
그런 결벽증을 가진 강한나가 침대 상태에 신경을 쓰되, 딱히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 것이었다.
저 정도는 괜찮다는 듯이….
강한나는 샤워실 앞에서 연구복을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으으읏…. 아파….”
어제 남자의 손길 때문이 아니었다.
바지와 속옷을 적셨던 애액이 말라서 그녀의 살과 달라붙었고, 옷과 속옷을 벗을 때마다 마치 테이프를 떼어내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흐으… 아으, 아파….”
그렇게 간신히 옷을 벗고 나서 강한나는 샤워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시작했다.
쏴아아악!
샤워기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원래라면 찬물에 씻는 강한나가 아니었지만….
“하아… 시원해.”
몸에서 퍼져나오는 열기에 맞닿아서 오히려 기분 좋은 상쾌함을 맛보여줬다.
짧은 시간 찬물로 씻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열기를 머금은 물줄기가 강한나를 덮치기 시작했다.
강한나는 샴푸와 바디워시에 손대지 않고 그저 물줄기를 맛보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봉긋 솟아 올라온 가슴을 덮는 붉은색 머리카락과 그 밑으로 보이는 자신의 음부.
강한나는 음모가 피어나야 할 장소, 자신의 반들반들한 피부를 내려다보며 남자의 말을 떠올렸다.
와… 백보지!?
하아… 저질스러운 입버릇하고는….
하하, 칭찬이었어요. 저 백보지 좋아하거든요.
그딴 칭찬 듣고 싶지 않아요. 3분 지났어요.
그때 당시에는 남자의 말에 혐오감이 들끓으며 따귀를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강한나는 무모증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청결을 위해서 쉬지 않고 제모로 관리했을 뿐….
하지만 지금은 그런 따귀를 때리고 싶은 앙칼짐은 강한나에게 없었다.
오로지 안도뿐….
“하아… 평소에 제모를 꾸준히 해서 다행이야.”
관리되지 않은 음모를 보여주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강한나는 그렇게 안도하며 천천히 몸을 씻기 시작했다.
그렇게 씻다 보니 자연스럽게 음부 쪽에 손이 갔고, 손이 닿는 것과 동시에 어제 일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 세상이 있었네….”
평생 남녀 관계를 마땅치 않게 보던 강한나였다.
이성을 잃고, 서로의 몸을 탐하는 행위.
강한나는 그런 존재들이 자신과 같은 지성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리고 전적으로 그녀가 이런 성격을 품게 된 건 강한철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의 말을 옳다고 생각했고, 그의 이념이 강한나의 머릿속에 깊숙이 박힌 것이다.
하지만 강한철의 확고한 이념이 오늘부로 완전히 박살 났다.
그것도 만난 지 며칠 되지 않은 남자의 손에 의해서 쉽게….
“…정말 손만 썼네.”
강한나는 여러 차례 절정을 맛봤고, 어느 순간 기대하기 시작했다.
남자가 자지로 자신의 깊은 곳을 쑤셔주기를….
하지만 남자는 강한나의 몸에 손을 댈지언정 절대 선을 넘지 않았다.
심지어 약속한 장소를 제외한 부위, 가슴이나 얼굴 등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아쉬움을 넘어선 간절함이 생겼지만, 시간이 지나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냐! 정신 차려, 강한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남자는 내 타입이 아냐.”
아직 몸에는 쾌락이 남아 있었지만, 이성도 같이 되돌아온 상황이었다.
“그래, 정신 차려. 오늘은… 오늘은 어떻게든 버티는 거야.”
강한나는 그렇게 말하며 샤워를 시작했다.
..
..
어제와 마찬가지로 강한나는 의원들과 남자를 데리고 연구소 내부를 안내했다.
그렇게 안내하는 중에 휴식 시간을 가졌고, 따로 떨어져 있던 강한나에게 의원 한 명이 다가와 질문을 했다.
의원의 이름은 조우만.
감사의 참여한 의원 중에 제일 집중력이 뛰어난 자였다.
질문은 연구소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강한나에 관한 것이었다.
“허허… 혹시 기분 좋은 일 있으셨습니까?”
“네?”
강한나는 생뚱맞은 소리에 뭔가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하자 의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이틀간 봐오던 것과 다르게 오늘 기분이 좋아 보여서 물었습니다.”
강한나는 표정을 굳히며 노려보듯 물었다.
“…그렇게 보이셨나요?”
“크흠… 괜한 소리 했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저희가 불편하지 않아져서 그런가 싶어서 그랬습니다….”
조우만은 강한나의 앙칼진 표정을 보고는, 헛기침한 뒤 다른 의원들이 있는 쪽으로 돌아갔다.
강한나는 조우만이 가는 방향을 유심히 바라봤다.
의원들끼리 서로 주제에 맞게 대화를 하는 사이에 침묵하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남자.
그 남자가 강한나의 시선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자, 황급히 시선을 피해서 다른 방향을 바라봤다.
어제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면 직접 다가가서 뭘 보냐고 앙칼진 목소리로 기선 제압을 했을 강한나였다.
하지만 단 하루만에 강한나의 본능이 남자의 위치를 자신의 위로 잡아버린 것이었다.
강한나는 남자의 시선을 피한 채 옆에 있던 전신 거울을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모습이 전부 담긴 거울을 보면서 강한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진짜 개운하네. 이런 기분 진짜 오랜만인데.’
아침에 일어날 때는 숙취로 고생하고, 오전 근무 내내 다른 연구원들에게 트집 잡히지 않기 위해서 정신력을 소모해오던 강한나였다.
언제나 머릿속에 안개가 끼고, 간에 알코올이 들러붙고, 다리가 천근만근의 쇳덩어리가 들러붙던 느낌.
매일 느끼는 당연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아침마다 지옥 유황 길을 걷는 기분이었던 그녀는 오늘 처음으로 천국에 있는 푹신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강한나는 연구소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머릿속이 상쾌한 기분을 맛보며 의문을 가지지 시작했다.
‘그냥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가?’
하지만 컨디션이 좋다기에는 어제 있었던 사건들이 오히려 그녀의 의문점을 가중하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달리던 술자리, 그리고 남자에게 했던 성추행, 그리고 되돌려 받은 성추행.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강한나의 컨디션이 좋아질 이유가 없었다.
강한나는 컨디션이 좋아진 이유를 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그거?’
남자의 손길.
강한나가 평생 맛보지 못했던 여자의 쾌락을 처음 느끼게 해준 손가락.
그것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강한나는 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생각했다.
‘흥… 오히려 머리가 멍청해졌으면 모를까. 그런 걸로 개운해진다는 건 말도 안 되지.’
강한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제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흐읏….”
강한나는 즉시 자리를 이탈해서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녀가 화장실을 직행하는 장면을 보는 건 단 한 명뿐이었다.
‘하아… 신경 쓰여 죽겠네.’
어제 자신의 소중한 곳을 농락하던 남자였다.
강한나는 그런 남자의 시선을 피해서 화장실로 갔고, 바로 변기 칸으로 들어간 뒤 바지를 벗어서 자신의 고간을 확인했다.
바지와 함께 속옷을 동시에 벗자 은색 빛으로 이루어진 실선이 고간과 속옷이 떨어지지 못하게 길게 늘어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쭉 늘어지던 은빛 실은 금세 끊어져서 그녀의 속옷에 젖어 들어갔다.
“하아… 미치겠네.”
강한나는 휴지를 이용해서 회색빛으로 물들어가는 속옷을 닦기 시작했다.
이 행위만 오늘 하루 동안 이미 세 번째였다.
강한나는 휴지로 애액을 조심스럽게 닦아 낸 후 중얼거렸다.
“쓸데없이 하얀색 옷이라 티가 너무 나잖아…. 내일은 패드라도 따로 붙여야겠어.”
강한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뒤처리를 한 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서 투덜거렸다.
“어제는 처음이라 정신 못 차렸지만, 오늘은 아니야. 오늘은 꼭….”
강한나의 다짐은 중간에 흐려졌고, 결국 그 이후에 입 밖으로 따로 내뱉지는 않았다.
마치 그 상황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
..
남자가 강한나와 같이 그녀의 방에 들어가면서 흥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와, 하루만에 깔끔하게 정리했네요.”
“그쪽이 이상한 거예요. 왜 그걸 그대로 뒀어요?”
강한나는 한숨과 함께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잔소리의 내용은 청소에 관한 것이었다.
강한나는 기상과 동시에 침대보와 이불을 동시에 세탁기에 넣고 돌렸고, 방도 깔끔하게 치웠다.
하지만 어제 자신의 고간을 농락한 남자는 정액 범벅이 된 침대를 그대로 버려둔 채 하루를 보낸 것이었다.
“그런 좋은 기숙사를 무상으로 받았으면 최소한의 도리는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에이, 제가 원해서 정액을 내뱉은 게 아니잖아요? 한나 씨가 한 거지.”
“큿… 그, 그래도 빨래 정도는 돌릴 줄은 아실 거 아니에요.”
고급 기숙사에 놓인 세탁기는 침대 이불 정도는 거뜬히 넣고 돌릴 수 있을 정도로 크기와 내구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저 넣고 돌리기만 했어도 남자가 강한나의 방에 방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저는 한나 씨 방에 들어오는 게 좋아서 상관없어요.”
“그런 식으로 말 돌리… 흐읏! 자, 잠깐만요!”
“에이, 분위기 깨게 왜 그래요.”
남자는 강한나의 말을 끊고 그녀의 몸을 뒤에서 껴안은 뒤, 서서히 더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남자가 먼저 손을 댄 곳은 다름 아닌 강한나의 하복부였다.
강한나의 옷 안으로 남자의 손에 담긴 뜨거운 온기가 점차 파고들기 시작했다.
“흐읏… 당장… 손 떼세요. 아직 준비 안 됐잖아요….”
“준비가 안 되긴요. 저는 이미 달아올라서 미칠 거 같은데?”
“….”
강한나는 내심 남자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의 이성은 남자의 손길을 거부하려고 노력했지만, 본능이 그녀의 희열이라는 불꽃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남자는 강한나의 미소를 캐치하며 그녀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오늘 술자리도 빼고 온 거 보면 한나 씨도 바란 거 아닌가요?”
“…웃기지 마세요. 오늘은 집중하려고 빠진 것뿐이에요.”
강한나는 연구원들의 무수한 도발에도 불구하고 술자리를 거절했다.
그리고 그녀가 술자리를 거절하자, 남자도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피했고.
남자는 강한나의 말에 웃으며 하복부를 만지다가 점차 손의 위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여성의 자존심이 쏠린 부위.
강한나는 남자의 손을 확 낚아챈 뒤 중얼거렸다.
“거긴… 안 돼요.”
“아래는 허락했으면서 위는 안된다고요?”
“…하여튼 안 돼요.”
강한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속으로 짜증을 부렸다.
‘그럼 만지게 하고 싶겠냐! 이런 가슴을….’
강한나는 작은 가슴에 언제나 불만을 품고 있었다.
언젠가 연구소의 기술이 발전한다면 완벽한 형태로 가슴을 키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금은 아니었다.
“하여튼 안 돼요.”
“그럼 이번에도 내기 어때요?”
“….”
남자가 거는 내기는 뻔했다.
어제처럼 손을 이용하고, 10분 동안 버티면 강한나의 승리.
만약 못 버티면….
“가슴 만지게 해줘요….”
남자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강한나의 가슴 쪽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 남자의 모습에 강한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애도 아니고….’
강한나는 남자의 행동에 미소가 드리웠지만, 금세 미소를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싫어요. 거긴 안 돼요….”
“….”
강한나는 남자에게 가슴만큼은 허용할 수 없었다.
남자는 침묵과 함께 손의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어지자 오히려 애간장이 타는 건 강한나 쪽이었다.
‘…설마 삐졌나? 그걸로? 그냥… 좀 만지게 해줄까? 정말 만지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강한나가 단단하게 쌓아온 경계심이 남자의 침묵으로 점점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경계심이 무너지기 전에 남자의 손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랫배를 살며시 만지던 남자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대신… 다, 다른 곳은… 상황에 따라서 허락할게요. 뭐, 이겨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르겠지만요.”
강한나는 자신이 배려한다는 듯이 웃으며 분위기를 다시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그런 강한나의 모습을 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강한나의 시선이 그의 손으로 향했다.
“…?”
남자의 손에 든 물건은 뭔가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저….
“그럼 내기에서 이기면 이거 이용해도 되나요?”
검은색 안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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