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8화 〉 538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
* * *
강한나의 조그마한 동공에 네모난 CCTV 화면이 꽉 들어찼다.
그리고 그녀의 귓속으로 희미한 소리와 함께 영상이 재생을 시작했다.
강한철… 나… 고민… 주….
언뜻 보기에는 그저 잠꼬대 같은 중얼거림.
CCTV 영상에 담긴 음성으로는 저 말들을 정확히 캐치해낼 수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안에 있던 다른 존재였다.
….
잠결에 중얼거리던 강한나가 껴안고 있던 남자.
그 남자가 말똥한 눈으로 강한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라면 그녀가 했던 모든 중얼거림을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들었다.
강한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아까 남자가 다가와 속삭였던 말을 떠올렸다.
강한철이 누구예요?
그게 무슨….
아까 잠결에 중얼거리더라고요. 연구소에 잠입하기 싫다고, 빨리 고민태를 죽이고 끝내고 싶다고.
!?
사실 다른 이야기도 계속 읊었는데… 이건 지금 할 이야기가 아닌 거 같네요.
….
그냥 꿈이다.
간혹 원하지 않는 꿈도 꾸는 것이 사람이다.
그리고 꿔서는 안 되는 꿈을 꾸는 것도 사람이고….
그 말을 한 남자는 실실 웃는 것과 동시에 강한나에게 한 마디를 남기고 욕실로 가버렸다.
이따 술자리 기대할게요.
….
강한나에게 거부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보면 거부권을 내세울 방법은 존재했다.
‘다행히 CCTV에는 정확히 음성이 잡히지 않았어. 이것 가지고 확신은 못 하겠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CCTV가 아니었다.
‘이민수… 그 남자가 말한다고 무작정 믿지는 않을 거야.’
이곳은 고민태의 연구실, 외부인이 내뱉는 말에 설득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국회에서 일하는 의원이나 중요한 직책을 맡은 사람도 아니고, 그저 일반인이니까.
하지만 강한나는 확신했다.
‘저 남자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득달같이 달려들겠지….’
남자의 말이 어제 술자리 멤버의 귓속에 들어가는 순간 조사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조사가 한번 진행되면 없던 꼬투리도 잡힐 것이다.
이곳은 그런 곳이니까….
강한나가 이제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두 가지였다.
‘이민수를 죽여?’
이곳은 치외법권.
어떤 식으로든 그 남자를 죽인다면 일단 그의 머릿속에 있는 강한나의 약점을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안돼! 아무리 나라도 몰래 죽이는 건 불가능해.’
강한나가 선택할 수 있는 이민수를 죽이는 방법은 경비 시스템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녀라면 강제로 시스템에 사살 명령을 내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을 갑자기 죽인다?
‘어제 일 때문에 기분 나빴다고 죽여? 아냐… 몰래 침입한 거면 몰라도 의원과 같이 왔다면 분명 조사가 들어갈 거야.’
결국 강한나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나머지 하나였다.
‘일단… 한철이한테 연락해봐야겠어.’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삐끗하는 순간 자신뿐만 아니라, 강한철도 위험한 상황에 몰릴 가능성이 컸다.
강한나는 그렇게 결심하며 헝클어진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CCTV실을 나왔다.
..
..
강한나가 비상 연락망을 통해 강한철에게 연락했을 때, 그에게 들려온 목소리에는 안부나 인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강한나, 마침 잘 됐다.
언제나처럼 자신의 할 말만 내뱉는 남자.
하지만 그의 대사가 강한나의 심장을 철렁하게 했다.
마치 강한철이 자신의 의중을 파악한 듯 목적이었던 남자의 이름을 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혹시 네 연구소에 이민수라는 새끼, 가지 않았어?
“…그 사람은 왜?”
강한나는 남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기대했다.
혹시라도 강한철이 자신의 위태로움을 이미 알아차리고 도와주려는 건가 싶은 그런 기대감.
하지만 그 기대감은 순식간에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이민수 그 새끼한테 접근해서 뭔가 숨기고 있는지 알아봐.
…뭐?
그 새끼, 고민태랑 뭔가 있어 보여.
강한철은 이민수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선이 희박한 후보에게 건넨 고액의 후원금, 그리고 철저히 자신을 숨기는 치밀함, 그리고….
고민태의 연구소에 들어간 것도 왠지 우연이 아닌 거 같아.
“….“
강한나는 강한철의 말을 듣고는 관자놀이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한철이가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어제 마신 술로 인해 몰려오는 숙취와 함께 두통이 세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잠결에 실수로 내뱉은 말이 하필 강한철이 경계하는 인물의 귀에 들어간 것이었다.
강한나는 기다란 손가락으로 양쪽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고민했다.
‘한철이한테 아까 일에 대해서 말할까?’
하지만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아냐. 이민수… 그 사람이 진짜 고민태의 끄나풀이라면 괜히 나를 떠보지 않고, 진작에 나를 잡아들였겠지. 일단 오늘 옆에서 계속 지켜보자.’
강한나는 결심하며 강한철에게 아까 있었던 일을 말하지 않았다.
“알았어. 내가 붙어서 확인해볼게.”
그래, 뭔가 알아내는 게 있으면 다시 연락해.
“한철아, 시호는….”
뚝.
강한철의 연락은 그것으로 종료되어 있었다.
강한나는 끊어진 강한철의 연락과 함께 헛웃음을 냈다.
“시호는… 잘 지내? 말해줘….”
마치 누군가에게 묻는 듯 말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
나와 의원들은 아침을 먹고 나서 바로 안내를 받기 시작했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곳은 신경계 연구소.
강한나가 책임자로 관리하는 연구소였다.
나는 강한나의 안내를 받으며 연구소 내부에 있는 시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살펴보면서 내가 생각한 감상은 하나였다.
‘말이 좋아서 감사지. 진짜 견학이네, 견학.’
선거에서 이긴 순간 이런 감사를 없던 일로 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런 보여주기식 감사, 그것도 견학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건 의원들의 기강을 잡기 위함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초반에 절반을 내쫓아서 기세를 죽이고, 남은 사람들한테 ‘우리가 이런 쩌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라는 걸 증명하는 자리네.’
연구소를 휘어잡으려던 감사가 반대로 정치인들이 휘어 잡힌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휘어 잡힌 정치인들이 강한나의 설명을 들으며 감탄했다.
“오오… 이걸 직접 눈으로 보게 될 줄은….”
“신기하군요.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위험성은… 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걱정이 들어서….”
자기 의견을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의원들….
그리고 그렇게 눈치를 보는 의원들을 휘어잡는 역할을 하는 강한나.
“위험성은 충분히 고려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의원에게 설명한 강한나는 나를 힐끗 쳐다봤다.
눈빛에서부터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의원들은 강한나의 눈치를 봤고, 강한나는 내 눈치를 봤다.
‘일단 허튼짓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나는 아침부터 강한나에게 협박 멘트를 슬며시 흘렸다.
강한나가 CCTV를 확인했다면 자신의 처지를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혹시나 반발심을 가지고 내게 위협을 가할까 싶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한동안 얌전히 지낼 것 같았다.
‘뭐, 허튼짓해도 쉽게 당해줄 나도 아니고….’
오히려 내게 위협을 가했다면 그것을 빌미로 더 강한 협박을 밀고 나갈 계획이었다.
나는 강한나의 꿈속을 살펴봤고, 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기억을 토대로 최면을 걸었다.
최면의 내용은 그저 잠결에 중얼거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 대가로 최면 게이지가 쑥쑥 빨려 나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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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게이지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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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까지 10% 미만이었던 최면 게이지는 점심이 되기 전에 이미 55%까지 복구할 수 있었다.
‘뭐, 매일 이렇게 눈 마주치면 100%는 거저먹기네.’
강한나의 안내를 받으며 최면 게이지를 착실하게 채웠다.
그렇게 견학 같은 감사를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신경계 연구소의 마지막 연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관심이 없던 나도 귀가 쫑긋 세워질 정도로 흥미가 생긴 연구였다.
강한나는 웬 살구색의 마스킹 테이프와 비슷한 끈을 들고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우리 연구소에서 만들어낸 최고의 연구 성과인 원격 조종 신경끈입니다.”
다들 그게 뭔가 싶어서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연구원 한 명을 불렀다.
‘크… 역시 볼수록 마음에 드네.’
아침에는 내 눈치를 보던 강한나는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어제처럼 침착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성격.
정말 마음에 들었다.
“착용하세요.”
강한나는 불러온 연구원의 팔을 걷게 만들고 그의 팔목에 신경끈을 붙였다.
연구원의 팔목에 그저 끈으로 감쌌을 뿐인데, 신경끈이 손목에 착하고 붙어버렸다.
강한나는 이름 모를 연구원의 팔목에 신경끈을 부착하고, 다른 곳에 장식된 손 모형을 손에 올리며 보여줬다.
손은 마치….
“모형이 아니라, 손이 진짜처럼 생기가 있군요.”
조우만의 말대로 진짜 같은 느낌을 주는 정교한 손이었다.
강한나는 그런 조우만의 말을 듣고는 미소를 지어주며 대답했다.
“진짜 손입니다.”
“…네?”
“저희 연구소, 그것도 신체 복제 연구소에서 개발한 미래에 쓰일 진짜 인간의 신체입니다.”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손 모형 하나 놓고 진짜 손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말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게 좋겠네요.”
강한나는 팔목에 신경끈을 부착한 연구원에게 눈짓했다.
그리고 연구원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주물, 주물.
모형이었던 손이 갑자기 자기 마음대로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언뜻 보면 그냥 손 모형안에 기계가 장치되어 있어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손 모형의 움직임은 그럼 범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주물, 주물, 주물.
진짜 사람의 손처럼 정교하고, 생기있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몇차례 움직임을 선보이고, 강한나가 연구원에게 눈짓하자 손이 멈췄다.
그런 멈춘 손을 보고는 강한나가 설명을 다시 시작했다.
“저희의 최종 목표는 인류의 새로운 진화이지만, 그 전에 첫 번째 난관이 있습니다. 바로 신체 결손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이유로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런 상처는 인간의 신체가 가진 재생 기능으로 차츰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결손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손이 잘리거나, 다리가 잘려서 잃게 되면 그 부위는 절대 수복할 수 없다.
즉, 그것을 위해 개발한 것이 바로 신경끈과 분리 신체였다.
“이처럼 분리 신체를 개발하고, 그 분리 신체에 신경끈으로 연결하는 겁니다. 그것으로 잃어버린 신체를 대체하는 기술입니다.”
우리 눈 앞에 있는 손 모형의 분리 신체는 뛰어난 인간의 유전자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즉, 타인의 완벽한 유전자를 매개로 자기 신체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첫 단계이고, 어디까지나 수복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훗날 인간은 모든 신체를 자신이 원하는 우월한 몸으로 개조하는 날이 올 수 있을 겁니다.”
사이버 펑크 같은 기계 인간이 아닌, 진짜 신체를 이용한 개조 인간.
타인의 신체이기 때문에 거부감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것도 잠시일 것이다.
강한나가 말하는 미래의 개조 인간은 그저 키가 크고, 화려한 외모를 지닌 우월한 인간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질병에도 걸리지 않고, 영생을 꿈꿀 수 있는 그런 신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윤리적인 부분에서 꽤 저항성이 생기겠지만, 여기에 그런 것에 토를 달 인간은 없었다.
“오오… 정말 대단하군요!”
다들 신경끈과 분리 신체를 보며 감탄을 할 뿐이었다.
애초에 고민태에게 호의만 가득한 녀석들이니까….
나도 흥미가 생기긴 했다.
‘젊어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네. 결과적으로 완전한 신체를 얻는 게 목표라는 거고….’
우월한 유전자만 쏙쏙 뽑아서 만들어낸 완벽한 신체.
하지만 나는 그 미래가 마냥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야 질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살면 좋긴 하겠지만….’
나는 연구원의 신경끈과 연결된 팔 모형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나는 나니까 좋은 거야. 잠깐 다른 녀석 몸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내 몸을 아예 버리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어.’
[….]
하지만 그런 것과 별개로 저 연구를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
고민태가 원하는 최종적인 인간의 형태는 완전무결이었으니까.
그렇게 신경끈과 분리 신체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그날 견학과 같은 감사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마무리하는 것과 동시에 강한나가 내게 다가와서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다.
“잠깐 이야기 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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