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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528화 (529/898)

〈 528화 〉 528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

* * *

(어…?)

시호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혼령으로 지내면서 평범한 인간과 시선을 마주치는 경우는 자주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뚫어지게 바라보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듯이….

시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한 남자의 모습에 옆에 있던 유시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오빠, 왜 그래요? 뭐 있어요?”

“뭔가 바라보는 거 같아서….”

두근두근!

(흐읏!?)

아까 시선으로 덜컥 내려앉았던 시호의 심장이 터질 듯 박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몰래 흠모하는 남자의 성관계를 보다가 걸린 것처럼….

‘(모, 못 움직이겠어….)’

아까 강한철의 모습에는 충격 때문에 석화처럼 굳어버렸다면 지금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뇌에 피가 쏠려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시호가 굳어 있자, 이불 안에 있던 유시아가 남자에게 꼭 끌어안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호, 혹시 몰카!?”

“에이, 여기 내 방이야. 여기에 무슨 몰카가 있어….”

“히히, 장난, 장난~”

여자는 호들갑을 지우면서도 남자의 품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중얼거렸다.

“혹시 벌레인가?”

“그건 아닌 거 같고… 다만….”

“…?”

“내가 신기가 있어서 그런지 가끔 귀신이 느껴지는 경우가….”

“꺄악! 그, 그만! 나 그런 거 질색이란 말이야!!”

아까까지 장난기로 가득했던 유시아는 귀신 이야기가 나오자, 정말 겁먹은 듯이 남자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그런 유시아의 호들갑에도 시호는 그녀에게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저… 정말인가? 정말? 정말?)

시호는 떨리는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거짓말이지? 지금까지 계속 옆에 있었는데, 내가 느껴졌다면 진작에….)

시호가 두려워하는 건 남자가 자신을 못 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품고 있는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질까 봐 두려운 것이었다.

시호가 천천히 움직이자….

“….”

반응이 느리긴 했지만, 남자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가며 자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서, 설마….)

시호는 떨리는 마음에 다시 이동하면서 남자의 반응을 살피려고 했지만….

퍽! 퍽!

“오빠! 나 놀리지 마! 무섭다고!”

“컥!”

유시아가 남자의 가슴팍을 때리면서 상황은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남자는 결국 시호 쪽을 힐끗 본 다음, 시선을 거두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가끔 자다 보면 유체 이탈 같은 것도 경험하거든. 그런데… 요새 내 주변에 누가 돌아다니는 거 같아서.”

“에이… 그냥 가위눌린 거네! 푸하하! 우리 오빠 기가 허한 모양인 듯?”

“아냐. 귀신이라는 단어를 쓰니까 무서운 느낌이지. 사실 전혀 무서운 느낌은 아냐. 내 주변을 돌아다니는 여자가….”

남자의 다음 말이 시호를 충격에 빠뜨렸다.

“여우 귀랑 꼬리를 달고 있어서 오히려 신기했지.”

..

..

남자가 침대에 드러누운 채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심심하네.”

(….)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백수처럼 누워서 툴툴대는 모양새라 눈살이 찌푸려질 만한 행동이었지만, 시호는 전혀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로 흥분할 뿐이었다.

(빨리 자… 빨리….)

시호는 지금 눈앞에 둔 남자와 만날 때마다 다른 여자에게 빙의한 상태로 만났었다.

심지어 빙의하지 않은 상태일 때는 남자의 곁에 있기보다는 여자를 관찰하는 쪽에 주목하고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본다고 해도 동화율이 100%가 아니라면 감정까지 전부 들춰보는 건 시호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시호는 자신이 빙의한 여자들이 이 남자에게 어울리는지 확인하는 것도 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이미 자는 모습은 봤어도, 잠자리에 드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네.)

시호는 빙의한 상태로 남자와 관계를 가질 때마다 절정에 도달한 뒤, 먼저 잠이 드는 편이었다.

지금까지 자기만족에만 신경 썼던 시호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끄응… 생각해보면 나만 만족한 거 같아. 다음에는 꼭 일어나 있어야지.)

시호는 그렇게 반성하면서 남자를 유심히 지켜봤다.

“하암… 졸리네. 잘까?”

시호는 남자의 졸린 모습을 보자마자, 튀어나올 듯이 박동하는 심장을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진짜? 진짜 유체 이탈이 되나?)

어제까지 그와 직접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시호였다.

하지만 시호도 현대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사람이 말하는 유체 이탈이라는 게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것을….

(대부분 그런 건 착각인 경우가 많았어. 하지만….)

남자가 했던 마지막 말이 모든 착각을 깨고, 현실로 받아들이게 했다.

­여우 귀랑 꼬리를 달고 있어서 오히려 신기했지.­

남자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만약… 진짜면 어떡하지?)

기대감?

지금 시호에게 있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녀의 가슴이 터질 듯이 심장을 뛰게 하는 감정은 기대감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진짜 나왔는데 날 보고 싫어하면 어떡하지?)

시호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과거에 삼백 살까지 먹고, 심지어 외형은 사람들이 말하는 요괴라고 불리는 형태였다.

시호는 창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여우 귀와 여우 꼬리를 보면서 눈을 감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도 나가자.)

남자의 곁을 평생 떠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최소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몰래 옆에서 도와주는 것도 충분해. 만약… 나를 보고 싫어한다면 도저히 못 버틸 거 같아.)

더 큰 행복을 갈망하다가 옆에 있는 행복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다.

시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창밖으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아… 이번에도 됐네.)

(!?)

시호는 등 뒤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날아가던 몸을 우뚝 멈춰 세웠다.

아니, 본인이 원해서 세운 것이 아니었다.

몸에 있는 신경이 전부 마비가 된 듯 그녀를 멈춰 세운 것이었다.

하지만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마자….

(아, 저기요!)

(!!)

시호는 온 힘을 다해서 창을 뚫고 쏜살같이 날아가기 시작했다.

날아가는 내내 시호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진짜였어!? 진짜였냐고!!)

시호는 환호와 비명이 섞인 감탄사를 내뱉으며 미친 듯이 날아갔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감탄과 함께….

(저기요! 잠깐만요!)

(!?)

시호의 뒤에서 남자도 그녀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었다.

시호는 남자의 목소리에 잠시 멈칫했지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모습에 다시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지, 지금 안돼!)’

기쁨도 잠시였다.

두려움이 다시 그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시호는 남자가 매정한 말을 내뱉는다면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추격전이 이어지는 중에….

(하아… 하아… 좀 멈춰봐요.)

(…?)

남자와의 거리가 꽤 멀어지자 시호는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선 뒤 남자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남자의 상태가….

(하아… 하아… 주, 죽겠네.)

진짜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맥없이 땅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안돼!!!)

시호는 그런 남자의 모습에 놀라서 아까 도망치는 속도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남자를 향해 날아갔다.

땅으로 추락하던 남자의 몸은….

(잡았다!)

땅에 닿기 전에 시호가 낚아채서 간신히 땅에 곤두박질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시호는 낚아챈 남자를 자신의 품에 안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 어차피 이 상태면 떨어져도 크게 문제는 없었겠지.)’

시호는 그렇게 안심하며 남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하아… 하아….)

남자는 눈을 감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진짜 혼령이면 이렇게 지치지 않을 텐데…. 몸을 떠나서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어! 빨리 데리고 가자.)’

시호는 현재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남자를 걱정하는 마음뿐이었다.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남자의 가슴팍을 양손으로 끌어안고 속삭였다.

(다시 데려다줄게요. 얌전히 있어요.)

(후우….)

그렇게 남자를 껴안고 날아가다 보니 남자의 숨소리에서 차분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호는 그런 남자를 보면서 애틋한 미소를 지어줬다.

(괜찮아요?)

(그… 네, 괜찮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그러길래 왜 그렇게 따라와서는….)

시호는 예전 강한철에게 하듯 애정이 담긴 잔소리를 남자에게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렇게 잔소리를 듣던 남자는 변명했다.

(그게….)

(…?)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왠지… 놓치면 다시 못 보지 않을까 싶어서….)

(….)

그런 남자의 말에 시호는 얼굴을 붉히며 침묵했다.

그리고 그녀의 침묵으로 어색함이 감돌 때쯤 남자의 집에 도착했다.

시호는 남자를 품에 안은 채 조심스럽게 남자의 육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호는 집 안으로 들어가서 남자의 육체로 향하는 내내 마음속으로 평생을 걸쳐왔던 고민만큼 수많은 고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 정체를 말할까? 안돼… 하지만… 그래도 말하면… 안돼, 그래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고민.

두려웠다.

말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하지만 그와 반대로….

‘(…지금이 기회 아닐까?)’

꼭 끌어안고 있는 남자의 온기가 시호에게 크나큰 용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시호는 남자를 침대 쪽에 앉힌 다음 그를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말을 흘렸다.

(언제부터 이렇게 유체 이탈을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시호는 남자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잠시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내가 근처에 있었다는 건 언제부터 알았어요?)

(이상함을 느꼈던 건 미소랑 만나는 도중이었어요.)

(….)

시호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녀가 이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한미소와 썸을 타는 사이였었다.

시기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셈.

‘(그래봤자 근처에 맴도는 것을 느낀 게 전부겠지. 빙의한 사실은 모를 거야. 여기서 대충 핑계를 대고 일단 빠져나가자.)’

시호가 그렇게 변명거리를 생각하며 그에게 말하려는 순간이었다.

남자가 일어난 뒤, 시호에게 다가와서 묻기 시작했다.

(맞죠?)

(…?)

두서없는 질문.

하지만 그 질문은 날카로운 서슬을 품고 시호를 향해 날아왔다.

(계속 다른 여자들을 이용해서 내게 접근한 게 당신 맞죠?)

***

(계속 다른 여자들을 이용해서 내게 접근한 게 당신 맞죠?)

(그….)

내 말 한마디에 시호의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아까까지 평온한 표정을 짓던 시호는 두려움이 엄습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래는 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천천히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세월아 네월아 걸리겠다.’

그녀가 먼저 솔직히 말해주는 것이 베스트지만, 그거 기다리다간 몇 달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타이밍을 놓치면 오히려 시간이 몇 배는 더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타이밍을 놓치는 것도 고려해야 했다.

한번 거짓말을 하면 더 큰 거짓말로 얼버무리는 게 인간이니까.

아, 인간이 아니었지. 하여튼….

나는 입을 어버버 거리는 시호를 보며 한 발짝 다가가며 다시 압박했다.

(솔직히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여자들이 그렇게 조건 없이 달려드는 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요.)

(그, 그게….)

(저한테 뭔가 캐내려는 게 있으셨던 거겠죠.)

(…네?)

시호는 내 말에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미간을 찌푸리고 바라봤다.

그런 그녀를 향해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저 같은 놈에게 그렇게 달라붙지 않았을 테니까요. 제가 이용 가치가 있으니까 이렇게 접근을….)

(아, 아냐!)

시호는 내 말에 버럭 화를 내며 성큼성큼 다가온 다음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당신에게 접근한 건….)

(…?)

(처음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시호는 한번 터트린 고백과 함께 봇물 터지듯 말을 술술 내뱉기 시작했다.

(계속 옆에 있다 보니 당신이 좋아졌어요. 그건 진심이에요. 당신이 정말 좋아져서 그랬어요.)

(….)

(그러다 보니까 나도 욕심이 생겼어요. 다른 여자를 이용해서라도 당신과 있고 싶다고….)

시호는 그렇게 혼자 고백을 쏟아내더니, 울상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동안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요. 이제… 근처에서… 맴돌지 않을게요.)

시호는 눈물과 함께 귀를 축 누리면서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방 밖으로 통과하려는 순간….

(흐읏!?)

그녀를 끌어당겼다.

무지개를 품은 듯한 그녀의 한복이 휘날리며 내게 날라왔고, 나는….

(흐으읍!?)

시호를 끌어안고 바로 그녀의 입술을 뺏었다.

내가 시호를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 안에 혀를 넣자, 어떠한 저항도 없이 내 혀를 받아냈다.

침을 흘리며 키스를 하던 나는 입술을 떼고 시호를 내려다봤다.

나를 보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호를 보며 명령하듯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이 한 말은 결국 제가 지금까지 좋아했던 여자들이 전부 당신이었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그…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유령이고….)

(그런 거 상관없어요.)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뚫어지게 시호를 쳐다보면서 명령조로 말했다.

(제가 결국 사랑한 건 당신이에요. 그러니까… 내 곁에 있어 줘요.)

(아….)

시호는 축 늘어뜨리던 귀를 쫑긋 세우며 눈물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평생… 평생 당신을 떠나지 않을게요….)

그녀의 대답과 함께 내 눈앞에 있던 상태창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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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 게이지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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