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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518화 (519/898)

〈 518화 〉 518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

* * *

강한철은 의자에 앉은 채 시호가 뚫고 지나간 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

그가 침묵하며 멍하게 바라보는 이유는 시호의 무심한 말과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시호는 촐싹댄 행동을 자주 보여주긴 했지만, 강한철 앞에서 조신하게 행동하던 혼령이었다.

그런 시호가 허둥지둥하며 떠나면서 강한철에게 보여줘서는 안 되는 부위를 보여줘 버린 것이었다.

시호의 치마 속에 있던 새하얀 천이 강한철의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크읍….”

강한철은 자신의 고간에 옅게 퍼져나오는 맥박을 느끼며 얼굴이 새빨개지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생각을….”

그는 재빠르게 의자에 몸을 기댄 뒤 구슬에 손을 올리고 정신을 네트워크 세상으로 이동시켜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하복부에 느껴지던 맥박이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휴우….”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내 몸이지만, 정말 짜증 나네.”

강한철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내면에 피어오르는 혐오감을 더 크게 불태우기 시작했다.

네트워크를 유영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여자의 몸을 봐온 강한철이었다.

하지만 강한철은 눈으로만 요기하는 그런 장면들에 단 한 번도 흥분한 적은 없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흥분을 맛본 것이었다.

“정신 차려, 강한철…. 시호가 알면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는 시호의 치마 속을 봤다는 기억조차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어 했다.

분명 실수는 시호가 한 것이었지만, 강한철은 자신이 죄를 지은 것처럼 자신의 몸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병신 같은 몸뚱이…. 빨리 끝내고, 없애버리고 싶네.”

그렇게 자괴감으로 뒤틀린 속마음을 품은 채 네트워크 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있는 장소에 무수한 화면들을 한꺼번에 띄워놓고 천천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영상뿐만 아니라, 문서들도 빠르게 지나가며 강한철의 동공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번 선거만 이기면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물건만 손에 넣으면 모든 게 끝나.”

강한철은 그렇게 말하며 검은색 빈 화면에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저 새끼는 도대체 뭐지?”

이민수.

카메라에 스티커를 붙여 놓은 건 그러려니 했다.

간혹 정신머리 나간 인간들이 그런 짓을 저지른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집안에서 혼잣말조차 하지 않고, 심지어 잠잘 때도 코 고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마이크는 카메라랑 다르게 가린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닌데….”

강한철은 이민수의 스마트폰 마이크부터 시작해서, 그의 집에 있는 인터폰에서조차 미세한 소리 하나 감지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프로그래머를 하다가 갑자기 퇴직하고… 그다음에 아무런 정보가 없어.”

아무리 강한철이라고 해도 이미 기록에 없는 존재에 대해서 알 길은 없었다.

그리고 이민수처럼 고아 출신에, 특출난 부분이 없다면 주변 지인의 정보를 조합해도 크게 의미가 없었다.

즉, 표면상으로 보면 크게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상해.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거 같단 말이야.”

강한철의 본능이 이민수를 계속 주시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한참 동안 검은 화면을 바라보면 강한철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거렸다.

“나도 예민해졌나 보네. 저런 녀석이 뭐가 있다고…. 시호가 계속 관찰하고 있다면 전혀 문제없겠지.”

그는 검은 화면을 완전히 자신의 눈에서 치우는 것과 동시에 다시 시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설마 두 사람이 엉겨 붙은 거 본 건 아니겠지?”

시호는 엄연히 강한철보다 훨씬 오래 산 여자였다.

그런데도 강한철은 혹여라도 시호의 머릿속에 더러운 기억이 묻을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냐… 뭐가 좋다고 그런 걸 구경하겠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시호잖아. 내가 미리 말해놨으니까 잘 피했겠지.”

강한철은 그렇게 시호를 믿으며 다시 작업을 개시했다.

***

나는 소파에 앉아서, 빌빌대고 있는 이민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영혼이면서 뭘 힘들다고 그래.”

(영혼도 잠은 자거든!? 이틀 넘게 한숨도 자지 못해서 죽을 지경이야….)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던 이민수를 엄한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소파를 팡팡 치면서 그를 다그쳤다.

팡! 팡! 팡!

“앙!? 복수가 뭐 그렇게 쉬운 줄 알았어! 복수하고 싶잖아! 그럼 열심히 뛰어야지!”

(이씨… 내가 일하는 동안 자기는 여자랑 실컷 놀았으면서….)

“뭐… 일단 넘어가 주지.”

(넘어가지 마….)

나는 헛기침을 하면서 소파 위에서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비실비실 서 있는 이민수를 향해 물었다.

“내가 시킨 일은 잘했어?”

이민수는 내 물음을 듣자마자 축 늘어지던 몸을 바로 세우고 눈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응, 최대한 알아봤어. 수도권 지역에 있는 후보들부터 설명해줄게.”

만담은 만담이고, 복수는 복수인 모양이었다.

눈에서 다시 광채를 뿜기 시작했다.

그는 장장 한 시간가량, 임원에게 프레젠테이션하는 신입처럼 열과 성의를 다해서 알아낸 것들을 내게 모조리 보고했다.

그가 내게 해준 말들은 전부 강한철과 관계된 선거 후보들에 대한 비리였다.

이틀 전, 이민수에게 사후 세계에 가서 최대한 그들에 대한 비리를 알아내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그리고 죽은 자들답게 비밀이 의미가 없어졌는지 이민수에게 모조리 말해준 것이었다.

모든 설명을 끝마친 이민수가 나를 바라보며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어때?”

“….”

설마 칭찬해달라는 건 아니겠지?

사실 칭찬할만한 부분은 꽤 많았다.

그 많은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에 정리해서 내게 빠짐없이 알려준 것이니까.

나는 그를 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잘했어. 일단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 한숨 자고, 이번에는 알아낸 비리를 그쪽 정당 윗선 녀석들 이야기 몰래 엿들어봐.”

내 말에 이민수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괜찮을까? 저번에 그 여우 귀신 만날까 봐 무서운데….)

이민수가 걱정하는 건 다름 아닌 시호였다.

이민수는 저번에 구준병의 집에서 시호에게 신원을 들켜서 곤욕을 치를뻔했다.

내가 사후 세계로 바로 보내서 다행히 정체를 들키지 않았지만, 계속 돌아다니다 보면 또 마주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방법이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백지수표가 담긴 호언장담을 하고, 이민수에게 명령조로 이야기했다.

“그럼 가라! 이민수! 우리의 복수가 너의 손에 달렸어!”

(우리…? 내가 가고, 너는 뭐 할 건데?)

나를 향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민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 좀 있으면 데이트 나가야 해서 미리 자둬야 해. 빨리 가.”

(….)

이민수는 혐오스러운 벌레를 보듯 나를 보더니, 조용히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이민수의 뒤통수를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감히 은인에게 저런 표정을 짓다니… 나중에 두고 보자.’

[….]

나는 복수를 위해 열심히 뛰는 이민수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주변을 바라봤다.

4인 가족이 살아도 너무 넓어서 허전할 것 같은 집에 아무것도 없이 혼자 있으니 진짜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심지어 평소보다 더 허전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진짜 혼자였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시호가 와서 계속 혼잣말해서 좋았는데. 오늘은 안 오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한 이틀 정도 들으니 시호의 혼잣말만 한 ASMR이 없었다.

‘벌써 촐싹대는 목소리가 그립네….’

[아마 수호 님의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여우 혼령은 한미소에게 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빙의에서 풀린 한미소는 나와 호텔에서 나온 뒤 바로 산부인과로 향했을 것이다.

그걸 왜 아냐면, 내가 종속을 통해 명령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내가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갔을 애지만….’

그리고 혹시라도 시호가 그녀에게 빙의할 것을 고려해서 성벽까지 잘 작성해 놓았다.

다만….

[걱정입니다. 한미소의 성벽이 과연 그 여우 혼령에게 먹힐지….]

‘그러게… 애초에 시호한테 종속을 걸 수 있었으면 이 고생도 하지 않는데.’

나는 호텔에서 나온 뒤 빙의를 푼 시호에게 바로 종속을 시전했다.

결과는 실패.

최면술이 잘 먹히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강인한 정신력]좋더라. 그 기질 배우는 데 에넬 몇 들어?’

[50만 에넬이 필요합니다.]

‘씁, 역시 비싸네…. 이번에 임무 성공하면 그거부터 배우자. 항마력보다 좋아 보이더라.’

시호가 가지고 있는 [강인한 정신력] 기질은 술식형 스킬을 무효로 하거나 효력을 대폭 약화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마법에만 영향을 미치는 [항마력] 기질에 비해서 [강인한 정신력] 기질은 대부분 마법이나 술식 계통에도 두루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1레벨짜리라서 레벨을 올릴 수 없는 것이 흠이었지만… 일단 배워둔다면 요긴하게 사용할 것이 분명했다.

‘천만 에넬 받으면 스킬 레벨업이나 할까나.’

[이번 임무에 성공한다면 함선 시설을 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르모니아도 차분하게 이야기했지만, 에넬이 필요했다는 것을 은연중에 돌려서 말한 것이었다.

아르모니아와 처음 만날 때만 해도 고작 2천 에넬 가지고 임무를 시작했던 것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좋아. 에넬 쓸 생각이 드니, 의욕이 솟아나네.’

[….]

이럴 때는 침묵하지 마.

자기도 나랑 똑같이 생각했으면서….

‘자, 그럼 일단 한미소한테 연락해보자.’

나는 차음 마법을 해제하고, 핸드폰을 들어서 한미소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통화음만 길게 이어지더니, 결국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다시 걸어….­

한미소 쪽에서 고의로 수신 거부를 한 내용이었다.

이것으로 알 수 있었다.

‘일단 아직 산부 인과에 있나 보네.’

일단 한미소에게는 받기 거북한 상황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게 종속 명령을 걸어 놓은 상황이었다.

아마 산부인과에 있어서 전화를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 시호가 빙의했다면 내 전화를 진작에 받았겠지.’

종속의 명령은 시호가 빙의를 풀고 나서 이루어진 것이니까 아마도… 시호는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럼 한동안 연락도 없겠고,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까….’

나는 침대에 차분하게 누운 뒤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강한철… 이제 찾으러 간다. 기다리고 있어라.’

나는 눈을 감고 저번에 50만 에넬을 주고 배운 스킬을 전개했다.

..

..

나는 눈앞에 보이는 제단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미친… 드디어 찾았다.’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산 하나에 숨겨져 있는 동굴.

제단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요란한 느낌은 아니었다.

동굴 안에 마련되어 있는 제단은 몇몇 가지 과일이나 음식을 올릴 수 있는 식탁과 그 위에 뭔가 중요한 물건이 올려져 있을법한 나무 받침대가 있었다.

나무 받침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저기에 여의주가 있었다는 거네.’

이곳이 최초에 시호와 여의주가 봉인되어 있던 제단이었다.

이곳에서 강한철과 그의 사촌이 제단을 발견하고, 의도치 않게 시호의 봉인을 풀어준 것이었다.

내가 왜 이 제단에 왔느냐….

‘단단히 미친놈일세. 여기에 은신처를 만들어 놓다니….’

[…분명히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의심하지 않을 장소 같습니다.]

강한철은 첩첩산중으로 뒤덮인 이곳에, 십 년을 걸쳐서 은거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저 허접하게 땅굴을 판 게 아닌, 고민태의 연구소 못지않은 시설로 이루어진 은거지를….

내가 이곳을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꿈속에서 보지 못했다면 절대 못 찾았겠네.’

시호의 꿈을 통해서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혀를 내두르며 제단 뒤편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제단 뒤편은 돌로 된 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벽은 마치 이곳이 이 동굴의 끝이라고, 더 이상 들어갈 길이 없다고 알려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벽에 손을 짚었다.

원래라면 지금 이 동굴에 누군가가 침입하면 센서가 감지해서 강한철에게 신호를 보내고, 만약 제단 뒤로 넘어오면 사람을 일격사 시킬만한 함정이 발동되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벽에 손을 짚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나는 그런 벽을 자연스럽게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혼령이 된 것처럼….

나는 벽을 뚫고 들어가서 무한히 뻗은 긴 통로의 연구소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유령의 시간], 이거 개사기 스킬이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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