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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514화 (515/898)

〈 514화 〉 514화 정신과 육체, 그리고 영혼

* * *

“시….”

(….)

“시호….”

(….)

“시호!”

(흐어어엉!)

공중에 앉아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시호는 남자의 목소리에 천둥소리를 들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그리고 후다닥 몸을 돌려서 자신이 바라보던 모니터를 가렸다.

그녀가 하는 행동은 마치 야한 동영상을 보는 중에 부모님이 들이닥쳤을 때의 중학생 남자의 행동과 비슷했다.

시호의 몸이 모니터를 가렸지만, 그녀의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여과 없이 모니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츄읍… 츄르읍….="" 하읍….=""/>

달콤한 사탕을 핥듯 신음을 내뱉는 여성의 교성.

시호의 몸이 모니터를 가리는 바람에 오히려 더 이상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부른 강한철은 딱히 모니터에 관심을 주지 않고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철은 의자에 앉은 채 허둥지둥하는 시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시호.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 아무것도 아니야! 부, 부를 거면 조용히 불러주지….)

“나 10번 넘게 불렀는데?”

(아… 미안.)

“….”

강한철은 어린 시절부터 시호를 봐온 인물이었다.

어린 시절 잃었던 가족보다도 훨씬 더 잘 안다고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시호에 대해서 잘 꿰차고 있는 강한철이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시호가 과거에 살던 보수적인 여자라고 해도 지금은 현대의 흐름에 편승한 여자였다.

고작 남녀 간의 키스에 저렇게 당황할 이유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시호, 왜 그렇게 화면을 가리고 있어?”

시호는 몸으로 화면을 가린 채 허둥지둥하며 변명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 이런 건 너 같은 애가 보기에는 아직 일러서 그래. 일러서!)

“애는 무슨….”

강한철은 당황하는 시호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평소의 시호와 다른 모습이었지만, 한편으로 재미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아직도 애 취급이네.’

시호의 사정을 모르는 강한철은 그녀의 반응을 오해하면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강한철은 그렇게 좋아진 기분에 편승하며 그녀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일단 그 이민수라는 녀석은 별거 없어 보여.”

구준병과 대립하고 있는 후보자에게 고액의 후원금을 건넨 남자.

하지만 그 이후 별다른 행보 없이 그저 여자와 시시껄렁한 연애 놀음만 할 뿐이었다.

“더 이상 감시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어차피 집 안에서만 내가 못 보는 거지. 집 밖으로 나서는 순간에는 내 시야에서 절대 못 벗어날 테니까.”

(그, 그래도 내가 감시는 해볼게.)

“…굳이?”

의문이 담긴 강한철의 대사에 시호는 또 평소와 다르게 허둥지둥 대답하기 시작했다.

(혹시 모르잖아! 집 안에서 무슨 짓을 벌일지….)

“그렇긴 하지만….”

(무엇보다 네가 닿지 않는 곳이 있다면 내가 도와주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

“…고마워.”

강한철은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귀찮음을 감수하는 시호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띄워졌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녀석 하는 짓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걱정이네.”

(하, 하는 짓?)

“이렇게 여자에 환장한 녀석들 말이야. 시호, 너도 싫어했잖아.”

(그… 그렇지! 하하하….)

강한철은 시호가 그런 남자를 감시해야 하는 사실이 못마땅했다.

강한철에게 시호라는 존재는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순수함을 간직해야 하는 존재였다.

지금도 세상의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때가 묻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거기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수라는 남자는 달랐다.

‘시호한테 저런 발정 난 녀석까지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만 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시호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하… 내가 애도 아니고. 괜찮아!)

“…알았어. 혹시라도 그 얼간이가 기분 나쁜 행위를 하고 있으면 그냥 무시하고 떠나도 돼.”

(….)

기분 나쁜 행위….

시호의 등 뒤에서 다시 한번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츄읍… 츄릅…="" 좋아…="" 하아…="" 하읍….=""/>

시호가 살아생전 처음 한 입맞춤… 강한철은 그것을 기분 나쁜 행위로 규정한 것이었다.

“저 여자도 겉으로는 친절한 척 행동하더니, 결국 저급한 여자 티를 벗지 못한 거 봐.”

(저… 저급….)

“아! 미안해. 이상한 표현 써서… 그냥 잊어줘.”

강한철은 어색하게 웃으며 잊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강한철이 내뱉은 말은 이미 말뚝이 되어서 시호의 명치에 파고들어 왔다.

‘(저급….)’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시호를 덮치기 시작했다.

‘(하, 한철이가 알면 안 돼. 내가 저 여자한테 빙의됐다는 걸….)’

그리고 동시에 강한철과 이어져 있던 신뢰의 끈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시호는 남자와 키스할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속으로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저 분위기에 타서 입맞춤한 게 저급하다는 표현이 될 정도야? 분위기에 취하면 그럴 수 있잖아?)’

당사자가 아니라면 절대 이해 못 하겠지만, 시호는 그 상황을 직접 경험했고, 그 분위기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알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입맞춤.

그때 당시를 떠올리면서 시호는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입술을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저급… 내가?)’

그렇게 시호가 침묵하며 조용히 있자. 강한철이 묘한 분위기를 감지하며 입을 열었다.

“여튼, 별로 내키지 않으면 나한테 허심탄회하게 말해줘. 괜히 끙끙 앓지 말고.”

(…응, 알았어. 그럼 나는 다시 가볼게.)

시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전선과 모니터가 무수하게 깔린 강한철의 방을 떠났다.

강한철은 시호가 가리고 있던 모니터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지…? 아까 표정이 심상치 않던데.”

강한철은 평소에 보지 못했던 시호의 반응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매번 쾌활하고, 호쾌하게 웃던 시호가 허둥지둥하다가 어느 순간 차갑게 식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봉인에서 풀리고,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골똘히 생각하던 강한철의 시선이 시호가 가리고 있던 모니터로 향했다.

모니터 안에서는….

<츄읍… 츄으읍…="" 더…="" 좀="" 더….=""/>

한미소라는 여자가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그의 입 안에 혀를 마구잡이로 집어넣는 모습이 재생되고 있었다.

강한철은 남자에게 달라붙어서 혀를 집어넣는 여자를 보면서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저런 여자의 모습을 보면 시호가 기분 나빠할 만하지.”

강한철은 의자에 편히 누워서 팔걸이에 있는 거대한 구슬에 손을 올린 뒤 중얼거렸다.

“저런 머저리 같은 녀석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네트워크 안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

호텔 룸에는 나와 시호의 혀가 마찰하는 소리만 희미하게 퍼져나갔다.

“츄읍… 츄릅….”

나와 시호는 같은 소파에 앉아서 서로 껴안고 입술에 담겨 있는 체액을 서로의 입 안으로 넘겨주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시호와 키스를 하다가 그녀를 살며시 떼어 놓고, 조심스럽게 묻기 시작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네? 무슨 일이라뇨?”

“뭐랄까….”

나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으며 걱정되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그냥… 힘든 일 있었나 싶어서.”

“….”

시호는 대답하는 것을 망설이면서 고개를 돌려서 내 시선을 피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몸을 살며시 덮쳐서 소파에 눕히고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오빠….”

“대신 나중에 정말 힘들어서 지치면 그때는 절대 망설이지 말고 말해줘.”

“…고마워요.”

시호는 그렇게 대답하며 나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아까는 나란히 앉아서 키스했다면 이번에는 내가 누워있는 시호의 몸을 덮친 뒤, 고개를 내려다보며 키스를 시작했다.

내가 키스를 시작하자, 아르모니아가 질문을 해왔다.

[여우 혼령에게서 뭔가 감지하신 게 있으십니까?]

‘감지라….’

시호와 정식으로 키스를 한 건 어제가 처음이었다.

비록 한미소의 몸을 통해서 키스한 거였지만….

나는 혹시 몰라서 시호에게 헤어지기 전에 간단한 명령을 해놓았다.

내가 내린 최면 명령은 그저 생각나면 찾아오게 하는 간단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오늘 시호는 내 앞에 혼령 상태로 나타나기 전에 한미소의 몸을 탈취해서 내게 다급히 접근했다.

그리고 데이트를 생략하고 이렇게 호텔에 와서 바로 나를 껴안으며 키스를 시도한 것이었다.

‘뭐랄까… 느낌상 어디서 상처받은 것 같았거든.’

[….]

그녀의 키스에서 다급함이 느껴졌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빨리 키스를 해서 자신의 상처를 아물게 하고 싶다는 다급함이….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그녀의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기질 중에 강인한 정신력이 있잖아? 생각보다 여린 거 같은데?’

[강인한 정신력 기질은 그녀가 가진 순수한 인내심이나 자제력이 아닌, 외부적인 술식을 방어하는 능력입니다.]

‘아… 최면 게이지 같은 거?’

[맞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인한 정신력은 혼령 상태일 때만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시호가 한미소의 몸에 빙의하고 나서는 최면 게이지도 쭉쭉 차오르는 것을 보면 빙의 중에는 강인한 정신력이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결국 내가 시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강한철과 친하고, 그녀가 영혼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나는 그녀를 눕힌 채 키스를 하면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침몽 가능할까?’

지금 시호는 한미소의 몸에 빙의된 상태였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침몽을 한다면 누구의 꿈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궁금해졌다.

아르모니아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자신의 추측을 내세웠다.

[일단 수면을 걸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수면이 시호에게도 걸리고, 심지어 그녀의 빙의가 풀리지 않는다면 시호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였다.

‘오… 그거 좋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입술 안에 들어 있던 시호의 혀를 빼낸 뒤, 그녀를 내려다봤다.

어느새 정신을 못 차리고 혀를 내밀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여자.

비록 몸의 주인은 한미소였지만, 그녀의 행동은 모두 시호의 의지가 담긴 행동이었다.

저 혀를 내밀고 나를 올려다보는 행동이 말이지….

나는 혀를 추하게 내밀고 있는 시호를 가슴 품에 살며시 안았다.

“오… 오빠…?”

“잠깐만 이렇게 있자.”

“….”

키스에 대해 아쉬움도 있겠지만, 키스만 몇 시간 동안 할 게 아니라면 이런 분위기도 충분히 좋았다.

나는 그렇게 시호를 껴안고 그녀가 최면으로 살며시 눈을 감게 만들었다.

지금 당장 잠이 든 건 아니다.

최면술로 잠을 재우는 건 게이지 소모가 너무 커서 별로 효용성이 없었다.

나는 시호의 눈이 완벽히 감긴 것을 확인하고 수면을 시전했다.

그리고….

“스으… 스으….”

한미소의 몸을 빼앗은 시호가 새근새근하며 잠에 빠져버렸다.

‘좋아. 일단 육체에 수면을 걸면 빙의 대상자도 수면에 걸리네.’

[보면 볼수록 탐나는 인재입니다.]

빙의 대상과 같이 자는 게 뭐가 좋냐고 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본인의 의지가 아니더라도 빙의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동화율만 높다면 원하는 상대에게 무한히 빙의할 수 있는 능력.

아르모니아뿐만 아니라, 나도 슬슬 탐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먹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

왜? 내 일이 섹스하는 거잖아. 문제 있어!?

나는 그렇게 속으로 투덜거린 뒤, 시호를 바라보며 침몽을 시전했다.

..

..

시호가 눈을 뜨더니, 비몽사몽 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으으… 여긴…?”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시호는 자신의 품에 있는 이불을 발견하고는 꼭 끌어안으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시호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일어났어?”

“아!? 오, 오빠….”

시호는 갑자기 헐레벌떡 일어나더니, 자신의 상태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덮고 있는 이불과 잘 입혀져 있는 복장.

그녀의 옷은 살짝 흐트러져 있을 뿐, 강제로 벗겨진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시호는 자신의 복장을 몇차례 체크하고는 나를 보며 물었다.

“오빠… 혹시 제가 중간에 자서…?”

“응, 곤히 자길래 깨우지 못하겠더라.”

“아!”

시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을 한탄하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괜히 제가 오자고 해놓고….”

“괜찮아. 오늘 정말 피곤했나 보다. 지금 시간 굉장히 늦었다. 그만 돌아가자.”

“…네.”

나는 시호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 마.”

“네?”

“나는 그냥 너랑 같이 있는 게 즐거운 거니까.”

“…고마워요.”

나는 시호의 미소를 보며 같이 호텔 방을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호와 팔짱을 끼고 방을 나오는 것과 동시에 통신으로 말했다.

‘아르모니아. 조디악한테 연락해. 성전 녀석 찾았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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