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6화 〉 496화 가족과 가족의 사이
* * *
“나 침몽 좀 해주라.”
“엥? 갑자기?”
베아트리체는 예상치 못한 말에 어리둥절했지만, 나는 바로 이유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매번 침몽을 해보기만 해서 궁금해졌어. 예전에 나 침몽해 준 게 베아트리체, 네가 처음이잖아. 오랜만에 경험해보고 싶어서.”
내가 침몽을 배운 건 순전히 베아트리체 덕분이었다.
베아트리체에게 침몽이 걸리고 나서, 그 침몽이라는 스킬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닫고는 배우려고 결심했을 정도였으니까.
베아트리체는 딱히 깊은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알았다냥. 그런데 무슨 꿈 꾸고 싶냐냥?”
“흐음….”
나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냥 네가 들어가서 원하는 걸 해줘. 그러면 돼.”
“흐음… 알았다냥.”
베아트리체는 내 부탁을 흔쾌히 승낙하고는 바로 침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설픈 발걸음.
평소였다만 상큼하고 발랄하게 발걸음을 놀렸을 베아트리체였지만, 지금은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는 순간 베아트리체에게 물었다.
“베아트리체. 나 무릎베개해 줄 수 있어?”
“에엥! 무릎베개? 갑자기 왜….”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처음에 나 침몽할 때 그렇게 해줬잖아. 만약 싫으면 그냥 넘어가도….”
“아! 해, 해주겠다냥!”
“하하….”
무릎베개는 별 이유 없었다.
그냥 처음 베아트리체가 나에게 침몽 해줬을 때를 떠올려서 기분 삼아 부탁한 거였으니까.
진짜 중요한 건 침몽이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있는 베아트리체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는 베아트리체를 빤히 올려다봤다.
베아트리체는 내 눈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고 허공을 보는 듯 동공을 굴리면서 입을 열었다.
“이, 일단 시작하겠다냥.”
“응, 부탁할게.”
“잔다… 잔다….”
“….”
저 허접한 주문은 바뀌지를 않는군.
하지만 저 허접한 자장가는 금세 내 눈을 감기게 만들며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었다.
..
..
나는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배경은 익숙하다 못해 이제는 내 집 같은 그런 곳이었다.
‘묘홍산?’
진짜 묘홍산을 본 건 고작 한 번뿐인데, 꿈에서 너무 많이 보다 보니 지리를 전부 외울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베아트리체의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일단 묘홍산에서 베아트리체의 집은 이정표 같은 곳이니까….
나는 베아트리체의 집으로 향하면서 비아트릭스가 말해준 조언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침몽하면 알아서 일이 진행될 거라고는 했는데….’
비아트릭스의 조언은 간단했다.
그냥 침몽을 유도하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베아트리체의 친모이자, 서큐버스 본인이 한 말이니 분명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베아트리체의 집에 도착하니….
“확실히 망가지기 전에는 사람이 사는 집이었네.”
전쟁 후의 베아트리체의 집은 폐가를 넘어서서 흉가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최악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런 흉가 같은 곳에서 잠을 잔 우리도 대단하긴 하네.
나는 그렇게 감탄하며 천천히 베아트리체의 집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집 안에는….
“와, 왔냐냥?”
“….”
베아트리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옷 뭐야?”
베아트리체는 평소에 입던 고스로리 복이 아닌 가슴이 파이고, 속이 비치는 붉은색 시스루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고스로리 복이 격식이 느껴지는 복장에 가까웠다면 지금 입고 있는 옷은 섹스가 넘치는 그런 옷이었다.
문제는 그 색기가 흘러넘치는 복장이 베아트리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옷은 색기가 넘치는데, 베아트리체 본인은 아직 아이의 천진난만으 분위기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옷과 베아트리체의 이미지가 너무 상충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당황하는 표정을 짓자, 베아트리체는 허겁지겁 변명하기 시작했다.
“그, 그게! 예, 예전에 엄마가 사준 옷이다냥….”
“아하….”
엄마가 그런 옷을 사줬다고? 아무리 엄마가 서큐버스라지만, 딸한테 저런 옷을 사주다니….
나는 개인적으로 고스로리 복을 선호했지만,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해봤자 서로에게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자, 베아트리체가 갑자기 내게 몸을 밀착하더니 헤실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예전 우리 집 어떠냐냥?”
“좋은데?”
형식적인 대답이 아니었다.
전에 봤던 흉가에 비하면 지금 집은 진짜 집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미 전에 베아트리체의 꿈속에서 봤었지만, 그때는 베아트리체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구경시켜주겠다냥! 가자!”
베아트리체는 내 팔짱을 끼더니, 집을 구경시켜주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가 내 팔짱을 끼고 이동하자, 그녀의 가슴 촉감이 팔뚝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오… 가슴은 탄탄하네.’
그동안 베아트리체의 가슴을 보기는커녕 스킨쉽으로 만질 일도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뭐랄까… 스킨쉽을 하더라도 딱히 성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나마 냄새를 맡고 싶다고 해서 킁킁거리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런 범주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힐끗 고개를 내려서 베아트리체의 가슴골을 쳐다봤다.
지금까지 베아트리체가 입고 있던 옷들은 가슴을 전부 가리는 형태였었다.
그러다 보니 가슴골은커녕 가슴의 흔들림도 쉽게 볼 수 없었던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그런 베아트리체의 출렁이는 가슴을 처음 보게 된 것이었다.
베아트리체의 가슴을 처음 느껴본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하복부에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참자….’
매일 봐도 흥분되는 것이 미인의 가슴이다.
그런데 처음 보기까지 하는 것이라면 더더욱 참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나는 침착하게 참아내면서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서 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의 방을 들어가자마자 놀라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와…. 이게 뭐야.”
“헤헤… 내가 그린 그림들이다냥.”
전에 흉가가 된 방에 왔을 때도 엄청난 종이들이 날렸지만, 지금과는 차원이 달랐다.
뭐랄까… 얀데레가 반한 남자의 사진을 방 곳곳에 붙여 놓은 느낌이네.
‘이야… 인류의 보물이라는 종이를 이렇게 사용하다니….’
종이란 그저 활자를 적어 넣고 정보를 기재하는 용도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었다.
종이 한 장을 이용해서 지휘관들이 움직이지 않고 먼 거리에 있는 지휘관과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는 군사적 도구이기도 했다.
분명 페르온에서는 묘홍화와 종이를 교환했을 때 꽤 경계했을 것이다.
아무리 공작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마족과 거래한 셈이니까.
어쩌면 전쟁의 패배가 저 종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놈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들이 열심히 만든 종이… 졸라맨의 뒤를 잇는 명작으로 남았으니 안심하고 눈을 감으시길….’
아니,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화병으로 영혼이 소멸하려나?
그런 내 생각을 모르는 베아트리체는 계속 흥얼거리며 내 팔짱을 꼭 끼고 있었다.
방을 구경하는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베아트리체 한 명만 지내는 방이다 보니 크기가 큰 것도 아니었고….
이야기를 계속 오고 가다가 어느 순간 할 말이 없어진 우리는 조용히 침묵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어지던 침묵을 깬 건 다름 아닌 베아트리체였다.
“저기….”
“응?”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지만, 말을 쉽사리 잇지 못한 채 내 팔을 꼭 끌어안으면서 가슴을 밀착하기 시작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행동은 의도된 것이었다.
귀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베아트리체가 흥얼거렸다.
“예전에 나한테 했던 말 기억하냐냥?”
“어떤 거?”
“그… 내가 너 좋아하냐고 물었던 말….”
내게 호감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던 베아트리체에게 자신감 넘치게 질문했던 것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야, 너 나 좋아하냐?
…미쳤냥?
패기 넘치게 날린 질문에 미친 놈 취급을 당할 뻔한 일을 떠올렸다.
딱히 기분 나쁜 기억은 아니었다. 애초에 장난으로 던진 말이기도 했고….
그런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것일까?
“기억나지, 그런데 그건 왜?”
“만약… 그때 했던 대답이 달라지면… 어떻게 할 거냐냥?”
“글쎄… 지금이랑 크게 다를 건 없을 거 같은데?”
“….”
베아트리체는 내 퉁명스러운 대답을 듣고는 팔에 힘을 풀면서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는 순간 고양이 귀과 꼬리, 그리고 날개까지 덩달아 축 늘어졌다.
‘귀엽네.’
솔직한 감정이었다.
지금까지 베아트리체를 보면서 언제나 활발한 모습만 봐와서 그런지 기운이 빠진 모습을 보니, 오히려 신선하고 좋았다.
하지만 신선한 모습도 계속 보다 보면 안쓰러워질 뿐이었다.
베아트리체는 내 눈치를 보면서 더 기운이 빠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기분 나빳냐냥?”
“응? 왜 기분이 나빠?”
“응? 기분 나빴던 거 아니냐냥? 내가 그런 소리를 했는데….”
“딱히….”
나는 팔에 힘이 풀려 있는 베아트리체의 손을 깍지를 끼면서 미소를 지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말에 오히려 좋다고 달려들면 오히려 이상한 거 아냐?”
“그, 그런가…?”
베아트리체는 내 손깍지를 꽉 잡으며 다시 헤실헤실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베아트리체를 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야, 너 나 좋아하냐?”
“….”
베아트리체는 멍하니 나를 올려보더니….
내 팔짱을 꽉 끌어안고 싱글벙글 웃으며 웃음보를 날렸다.
“너, 미쳤냥!”
“….”
뭐죠? 전이랑 다른 건 그냥 웃는 모습과 색기가 넘치는 복장뿐인데?
내가 그렇게 멍하니 베아트리체를 내려보자 베아트리체는 양팔로 내 목덜미를 확 감싸더니,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도드라진 덧니를 드러내며 요염하게 미소를 지었다.
“츄으읍….”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말한 뒤 내게 매달려서 키스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덮쳐온 입술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입속에 혀를 넣어서 입속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체온은 인간과 비슷했다.
하지만 맛이 달랐다.
여자와 키스하면 각자의 체액의 맛이 느껴졌지만, 베아트리체의 체액의 맛은 그 궤도를 달리하고 있었다.
달콤함이 느껴지면서 피부를 자극하는 톡 쏘는 페로몬의 맛.
그 맛이 내 혀를 중독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베아트리체와 키스를 하다가 입술을 뗀 뒤 그녀를 천천히 살펴봤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베아트리체는 귀여움이 묻어났던 어린 모습이 아니었다.
“겨우 좋아하는 게 아니다냥….”
베아트리체는 나를 홀릴 듯한 보라색 눈동자로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너는 사랑하는 거 같다냥.”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