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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495화 (496/898)

〈 495화 〉 495화 가족과 가족의 사이

* * *

나는 해가 뜨자마자 바로 일어나서 베아트리체를 찾아갔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베아트리체.”

“냥?”

베아트리체는 자고 있는 오웰과 비아트릭스의 영혼 사이에 자리를 잡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녀석들 이름 기억해?”

“그 녀석들?”

고개를 갸우뚱하던 베아트리체를 향해 더 자세하게 물었다.

“꿈에서 너 괴롭혔던 녀석들.”

“아… 기억 난다냥.”

꿈속에서도 자세하게 묘사가 됐을 정도였다면 평소에도 기억을 잘 간직하고 있었을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내 눈치를 보면서 그것을 왜 묻냐는 듯이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이름 다 알려줘.”

“전부…?”

“응, 전부.”

베아트리체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게 이름들을 차근차근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이름을 듣자마자 영혼 소환술 리스트에 차곡차곡 올리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가 불러준 이름은 총 여섯이었다.

“그게 전부다냥.”

“오케이.”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바로 영혼 소환식을 거행했다.

소환한 영혼들은 전부 빠짐없이 내 앞에 소환되었다.

사사삭!

(뭐, 뭐야! 여, 여긴 어디야?)

(뭐지? 이, 이승인 건가?)

나는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바라보는 수인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를 부른 건 나다.”

나는 서두를 생략하고, 최대한 간략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어서 단도직입적으로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사과할 기회를 주마. 지금이라도 사과해.”

“….”

베아트리체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여기서 뻔뻔하게 나온다면 뇌속성 마법으로 지져주면서 베아트리체에게 쌓여 있던 앙갚음을 대신할 요량으로 소환한 것이었다.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본 묘족들은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괜히 허튼소리가 나오기 전에 그냥 보복하는 게 나을까?’

내가 그렇게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미안해!)

묘족 한 마리가 갑자기 머리를 숙이며 큰소리로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 묘족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섯 명도 일제히 허리를 숙이면서 사과의 행렬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미안해 정말….)

(그때 그런 소리를 해서 미안해!)

“….”

강압 때문에 억지로 하는 사과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사과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한껏 사과한 뒤, 허리를 펴면서 베아트리체에게 진심을 전하기 시작했다.

(죽고 나서 알게 됐어. 우리가 했던 짓이 얼마나 병신 같았는지….)

(맞아… 진짜 후회했어.)

그들이 한창 베아트리체에게 사과하고 있을 때, 그녀의 옆에 누워있던 두 사람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어머? 얘들이 왜 여기 있어?)

(설마 네가 소환한 거냐?)

“네.”

내 대답과 함께 한숨을 쉬던 오웰이 나지막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도 죽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이 흘렀어. 다들 이미 반성 중이야.)

오웰과 비아트릭스처럼 저들도 죽어서 사후 세계에 머물고 있다고 설명해줬다.

그곳에는 묘족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죽었던 모든 존재가 옹기종기,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오웰은 침묵하고 있는 베아트리체를 힐끗 보면서 나지막이 속삭였다.

(용서하는 건 네 자유란다.)

“….”

베아트리체는 오웰의 말을 듣고 쓰게 웃으며 묘족들을 향해 말했다.

“용서할 생각없다냥.”

(….)

젊은 묘족들이 전부 씁쓸한 표정으로 침묵하는 그 순간이었다.

“애초에 나는 너희들에게 화낸 적 없다냥.”

(…뭐?)

“나는 그냥….”

베아트리체는 헤실헤실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나랑 친구가 될 운명이 아니어서 아쉽다고 생각했을 뿐이다냥. 지금은 그런 친구를 찾았을 뿐이고….”

(…그래.)

베아트리체의 말에 오웰과 비아트릭스는 미소를 지었고, 나머지 묘족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묘족 중에 제일 리더처럼 보이는 녀석이 대신해서 입을 열었다.

(너랑 친구를 못했던 게… 제일 아쉽네.)

“흐흐…. 이미 늦었다냥. 지금부터라도 다른 좋은 친구를 구해봐라냥.”

(그래, 네 말이 맞아. 부디 지금 사귄 친구와 끝까지 같이하길 빌게.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이야.)

“그래….”

베아트리체의 마지막 말과 함께 나는 그들을 보면서 다시 돌려보내 줬다.

위그드라실에 있던 혼령들처럼 삶에 집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쿨하게 떠나서 나를 당황하게 할 정도였다.

(전쟁으로 죽은 아이들이야. 오히려 현실보다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할걸?)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을 살다가 죽은 존재들이다 보니 오히려 사후 세계가 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해줬다.

‘아깝군. 깝치면, 용기병 놀이나 하려고 했는데.’

불러서 번개로 지지고, 영혼 가지고 장난이나 칠까 했는데 너무 쿨하게 사과해서 맥 빠진 채 상황이 종료되어버렸다.

나는 살짝 맥이 빠진 상태로 베아트리체를 향해 말했다.

“베아트리체, 밥은 어떻게 할 거야? 같이 먹을래?”

“아! 그, 그게… 어….”

베아트리체는 나와 부모를 계속 번갈아 보면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베아트리체를 보며 피식 웃고는 말했다.

“여기 있는 동안은 부모님이랑 계속 있어. 밥은 나중에라도 먹을 수 있잖아.”

“응… 고맙다냥.”

“고맙긴….”

나는 피식 웃으며 객실을 나와서 식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발을 멈춰 세우게 만들었다.

(잠깐만요.)

비아트릭스였다.

내가 나오자마자 바로 영혼 상태로 벽을 통과하고 내게 말을 건 것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그게….)

비아트릭스는 자신이 뚫고 나온 벽 쪽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속삭여왔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부탁이요? 말씀하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베아트리체의 모친의 부탁이다. 최선을 다해서 들어줄 생각이 있었다.

(비체를 좀 안아주세요.)

“….”

생각이 바뀌었다.

베아트리체의 모친이 아니라, 이상한 여자의 부탁이 되어버렸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이상한 부탁을 해와서 서큐버스라는 종족에 대한 평가가 확 떨어질 뻔했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나는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비체가 마침 성숙기에 접어든 거 같아요.)

“…성숙기요?”

서큐버스는 몽마라는 타이틀을 지닌 것과 동시에 남성을 유혹하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태어날 때부터 성욕에 물들어서 남자를 유혹하는 능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성인이 되지 않으면 성욕이라는 개념조차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성욕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서큐버스는 성숙기에 접어들기 전에는 오히려 성욕이 없는 종족이에요. 저도 그랬고요.)

베아트리체가 왜 [성 스킬 면역]과 [성욕 조절] 기질이 있었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숙기에 접어들면 첫 성욕이 깃들기 시작해요. 지금이 기회예요.)

즉, 마침 발동한 성숙기이니 기회를 봐서 베아트리체를 덮치라는 의미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야 나도 베아트리체와 자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서로 마음이 맞아서 섹스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발정기 같은 게 걸렸으니 지금을 노리라고 하면 그건 또….

차라리 나중에 성숙기가 지나가면 그때 또 노려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비아트릭스의 다음 말을 듣고 나서 그 허술한 생각을 바로 지울 수밖에 없었다.

(서큐버스는 성숙기에 접어들면 일단 상대방을 고르기 전까지 계속 성욕이 쌓이게 돼요.)

“…네?”

(계속 그 성욕이 쌓이다가 정신 못 차리고 다른 사람에게 달려들면… 좋겠어요?)

그건 아니다.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베아트리체의 처음은 내 꺼다! 아니! 그냥 베아트리체가 내 꺼야!

내 불타는 눈빛을 바라본 비아트릭스는 피식 웃더니, 내 어깨를 툭툭 치면서 이야기해줬다.

(그리고 무엇보다….)

“…?”

(서큐버스의 성숙기는 본인이 원한다고 찾아오는 게 아니에요.)

“그럼요?”

비아트릭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일단 저는 남편 만나고 나서 성숙기에 접어들었어요.)

비아트릭스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예전 일을 떠올리듯 동공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추억에 잠기기 시작했다.

(남편을 봤을 때, 전혀 그런 게 없었는데. 그이가 저를 우연히 구해줬어요. 그때… 그이 머리 위에 휘광이 떠 오르면서 눈부시더군요.)

“하하….”

(이해하셨나요?)

뭘 이해했냐는 거죠? 오웰의 매력을 이해했냐는 이야기인가?

내가 의문이 담긴 표정을 짓자 비아트릭스는 한숨을 쉬면서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비체가 지금 그런 상태예요.)

“…네?”

베아트리체는 밤새 두 부모와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그런데 그 대화 과정에서 비아트릭스는 딸의 성숙기를 간파할 수 있었다고 했다.

(비체가 당신 이야기를 할 때 얼마나 눈을 번쩍였는지 아세요?)

“아….”

(그건 성숙기의 표시예요. 서큐버스는 성숙기에 접어들지 않았으면 절대 그런 표정을 짓지 않아요.)

일단 이해는 했다.

성숙기에 접어든 베아트리체와 자지 않으면 자칫 쌓인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덮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본능이란 위험하구만….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하고 싶다고 해서 섹스를 할 수 있으면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번식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지 않았을 것이다.

비아트릭스는 내가 대충 이해한 듯한 표정을 짓자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오늘 밤.)

“…?”

(오늘 밤에는 저랑 남편을 잠깐 원래 세계로 보내주세요. 그리고 단둘이 남아 있을 때….)

비아트릭스는 내게 서큐버스로서의 경험을 조언해주기 시작했다.

..

..

의외의 사실을 하나 말해주겠다.

그것은 바로 영혼도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혼령들도 가끔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먹을 것과 잠자리 걱정은 없어서 대부분 현실에서 불면증을 얻었더라도 죽어서 불면증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의외로 죽으면 많은 것들이 해결된다는 것이 죽은 자들의 설명이었다.

(괜히 유령들이 산 사람을 끌고 가려는 게 아니라니까.)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요? 악령 같은 녀석들이나 그렇지 않나요?”

(에이, 오히려 악령은 죽지 않길 빌걸? 살아 있는 녀석의 겁먹는 모습 보는 재미로 사는 녀석들인데….)

오웰과 이야기하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전 우주의 사후 세계를 이 대륙의 사후 세계로 기준을 잡고 보편화하는 건 에러겠지만, 그래도 알아둬서 나쁠 건 없었다.

그렇게 오웰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마침 비아트릭스가 오웰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자, 여보. 슬슬 가요.)

(끙… 그냥 여기서 자면 안 될까? 딸이랑 자고 싶은데….)

(비체는 어차피 잠 못 자잖아요. 차라리 건설적인 일을 하는 게 낫지.)

비아트릭스는 그렇게 말하며 내 쪽으로 몰래 윙크를 날렸다.

베아트리체는 나와 부모를 번갈아 보면서 살짝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엄마, 아빠… 또 불러줄거냥?”

“부르는 거 어렵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흐흐… 알았다냥.”

베아트리체는 어젯밤부터 시작해서 종일 부모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질릴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차피 밤에는 두 사람도 자야 하니 혼자 쓸쓸한 시간을 보내는 건 마찬가지였다.

(비체야, 이따 또 보자.)

(딸아… 혹시라도 저 녀석이 이상한 짓 하면 바로 나한테….)

(당신은 쓸데없는 이야기 좀 하지 말아요! 가요!)

(자, 잠깐 이별의 시간을…!)

(어차피 이따 올 거면서 무슨!)

비아트릭스는 그렇게 오웰의 기다란 귀를 잡아당기더니, 나를 보며 살며시 윙크를 날리고 사후 세계로 사라져버렸다.

“….”

“….”

그렇게 방에는 나와 베아트리체만 남게 되었다.

평소라면 말괄량이처럼 조잘조잘 떠들던 베아트리체는 시선을 정하지 못하고 동공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호읏!”

“….”

화들짝 놀라면서 토끼 눈을 뜨며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왜 혼자 놀라고 그래? 누가 보면 밀린 월세 받으러 온 집주인인 줄 알겠네.

‘…확실히 평소랑 많이 다르네.’

그냥 쑥스러워하는 것치고는 반응이 너무 과하다는 게 내게도 느껴지고 있었다.

‘정말 성숙기인가 보네. 그럼….’

나는 비아트릭스의 조언을 떠올리며 베아트리체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베아트리체.”

“호헉! 무, 무슨 일이냐냥!?”

“나 한 가지 부탁해도 돼?”

“…부탁?”

베아트리체의 의문이 담긴 표정을 보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나 침몽 좀 해주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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