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2화 〉 492화 가족과 가족의 사이
* * *
혹시 몰라서 한동안 지켜봤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베아트리체는 부모와 지내면서 어떠한 누구도 등장시키지 않은 채 셋이서 오손도손 사는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꿈의 종족, 서큐버스다.
그런 그녀가 꿈의 상태를 인지 못 한 채 그저 행복한 삶에 빠져서 현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처음에 그 악몽들도 본인이 제어해서 만들어낸 꿈은 아니겠지.’
자기가 제어 가능한데 악몽을 꿨을 리가 없다.
즉, 지금 베아트리체는 다른 사람들처럼 제어를 못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정해졌다.
‘꿈을 깨우면 그만이지. 어떻게 할까.’
제일 간단한 방법은 악몽을 꾸게 해주는 것이었다.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는 이유 중에 대표적인 이유는 바로 악몽이다.
정신이 화들짝 놀라게 만들 정도의 공포가 담겨 있는 악몽….
‘미안하지만, 일단 깨우는 게 중요하니까… 그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몽에서 하던 식으로 꿈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 통하네.’
베아트리체에게 걸려 있는 꿈은 내가 조작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내 침몽의 힘으로는 그녀를 깨우는 게 불가능하니 내가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는 지금 당장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해도 다가갈 수 있는 빈틈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엄마, 아빠… 정말 보고 싶었다냥.”
베아트리체는 꿈속에서 몇 시간 동안 부모의 품에 안긴 채 계속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맞춰서 두 부모가 똑같은 말로 대답했다.
“비체야… 엄마도 네가 보고 싶었어.”
“우리 딸… 나도 보고 싶었다.”
분명 똑같은 말과 똑같은 대사, 똑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어떠한 의심도 하지 않고 그저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두 사람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는 저 세 사람을 보면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아예 깽판을 쳐서 악몽으로 만들어버릴까?’
지금 당장 그것 말고는 도저히 떠오르는 해결책이 없었다.
그렇게 해서 깨어나면 다행이지만….
‘아냐, 만약에 그렇게 했는데 깨어나지 못하면 진짜 곤란해져.’
만약에 깨어나지 못한다면 상황이 꼬여서 더 깨우기 힘들어질 수도 있었다.
나는 일단 인내심을 가지고 세 사람을 지켜보기로 했다.
이미 저렇게 껴안는지 다섯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분명 언젠가는 빈틈을 보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
..
나는 집 밖에서 몸을 축 늘이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 도저히 안 되겠다.’
사흘이 지났다.
사흘 동안 베아트리체가 부모와 떨어져 있는 순간을 노리기 위해서 쉬지 않고 염탐하고, 관찰했다.
하지만 세 사람은 전혀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미치겠네. 이대로는 끝나지 않겠는데….’
뭔가 변화점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계속 똑같은 장면만 연출되고 있었다.
“엄마… 아빠… 너무 좋다냥.”
꿈을 꾸지 못하던 베아트리체는 처음 꿔보는 꿈에서 진정한 행복을 만끽하고 있던 것이었다.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
내가 끼어들 만한 명분을 만들만한 대책이….
‘아! 일단 꿈이라고 해도 있을 건 다 있겠지?’
나는 대책을 떠올린 뒤, 베아트리체의 집을 떠나서 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베아트리체는 천사의 품과 같은 부모의 품에 안긴 채 하염없이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자신을 멸시하던 묘족과 질시하던 마족들과 다르게 자신을 한없이 보듬어주는 두 사람.
세상에 더 없는 자신의 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잠깐… 엄마, 아빠 말고 다른 사람도 있었던 거 같았는데….’
잠깐이지만, 희미하게 자신의 머릿속에 이질감을 불어넣듯 기억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뻗는 존재들….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자상함이 느껴지는 존재들….
하지만….
“비체야.”
“우리 딸.”
그 이질적인 기억은 자신을 품어주던 부모의 포근한 대화로 다시 사르르 녹아서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하지만 한번 남긴 흔적은 베아트리체의 정신을 계속 흔들리게 했다.
‘뭐지… 분명 누가 있었는데….’
한번 남은 머릿속의 흔적은 베아트리체의 온몸의 감각을 조금씩 민감하게 만들었다.
웃으며 떠드는 목소리, 같이 식사할 때 느껴지던 맛, 그리고 부대끼며 놀던 촉감,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던 미소.
그리고….
‘냄새… 이상하다냥. 엄마 냄새가….’
그 순간 베아트리체는 미묘했던 기억을 캐치해냈다.
언제나 엄마에게서 나던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던 것이었다.
베아트리체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품에 안아주던 엄마의 체향을 맡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비아트릭스에게서는 어떠한 향도 풍겨오지 않았다.
‘안난다냥. 뭘까냥….’
평생을 맡아왔던 향이 나지 않으니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를 맡는 순간이었다.
“아… 고기?”
너무 생뚱맞았지만, 지금 베아트리체의 콧속에 풍기는 향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강렬한 고기의 향이었다.
베아트리체는 갑자기 풍겨오는 노릇노릇 익어진 고기의 향을 맡으며 오웰과 비아트릭스의 품에서 살며시 떨어지며 입을 열었다.
“엄마? 저거 음식 냄새 아니냐냥?”
“어머… 내가 음식을 했었나?”
의아한 표정을 짓던 비아트릭스를 보면서 베아트리체는 품에서 나온 뒤 1층으로 내려가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와!”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어머… 내가 이런 식사를 차려놨던가?”
“그랬겠지. 당신이 아니면 누가 했겠어.”
“그랬나?”
오웰과 비아트릭스가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식탁 위에 있는 음식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새 고개를 끄덕이며 음식을 바라봤다.
“내가 차린 거였나 봐. 너무 기뻐서 깜박한 듯하네.”
“그럼 이렇게 된 거 빨리 먹자.”
두 사람이 그렇게 식탁에 앉아서 식사하려는 순간이었다.
“엄마, 아빠!”
“응?”
“왜?”
베아트리체는 두 사람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우리 오랜만에 바위에서 먹자냥!”
..
..
“잘 먹겠습니다냥!”
베아트리체는 큰 소리로 말하며 식기 위에 있는 음식들을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접시에 있던 음식을 포크로 찍어서 입에 넣고 나서 맛보는 순간 베아트리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맛있다냥!”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맛이었다.
베아트리체뿐만 아니라, 같이 옆에서 맛보던 오웰과 비아트릭스도 음식에 빠져서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먹다 보니 베아트리체는 한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이렇게 요리를 잘하던가냥?”
비아트릭스의 요리 실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평생을 비아트릭스의 음식으로 배를 채워봤던 베아트리체는 좀체 이 음식과 그녀의 음식을 매칭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상함을 표출하는 것도 곤란한 처지였다.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데, 거기서 음식 엄마가 만든 거 맞냐고 말했다가는 삐진 엄마를 달래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의문을 가지며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돌려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똑같았다.
자신이 살던 묘홍산과 똑같았다.
하지만….
“…응?”
그렇게 주변을 훑어보던 베아트리체의 눈에 이곳 풍경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존개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황색을 뚫고 나온 푸른색의 존재.
사람이었다.
“…어?”
저 멀리 보이는 사람… 분명 어디서 봤던 존재였다.
하지만 그 존재는 베아트리체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갑자기 몸을 돌려서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잠깐!”
베아트리체는 포크를 던지듯 내려놓고는 몸을 일으켜 세운 뒤 묘족처럼 재빠르게 몸을 날려서 그 남자를 쫓기 시작했다.
“비체야! 갑자기 어디 가니!?”
“딸아!”
베아트리체는 뒤에서 들려오는 두 부모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 남자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이상하다냥… 내가 왜 쫓고 있는 거지?”
오웰과 비아트릭스랑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부족한 마당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를 쫓는 일 따위… 원래라면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발을 멈추지 못했다.
하지만 쉽사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베아트리체의 시야에서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안돼… 이대로는 놓친다냥.’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베아트리체의 머릿속에 파고들자, 그 생각이 그녀의 심장을 조이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지금의 감정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웰과 비아트릭스가 전쟁터로 끌려가던 그 순간의 느낌과 같았다.
‘놓치면 안 돼!’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심장이 조여오며 그녀의 다리가 마비가 오듯 저려오는 순간이었다.
“아!?”
남자가 어느 장소에 돌입하자 뛰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간신히 그 남자와 거리를 좁힌 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입을 열었다.
“너… 너 누구냐냥?”
“….”
푸른색 고급스러운 재질의 귀족 옷을 입고 있던 남자는 몸을 돌려서 베아트리체에게 정면을 보여줬다.
그 순간이었다.
“아… 아!”
베아트리체는 그에게 손가락을 내밀며 환한 웃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에게 다가가서 팔짝팔짝 뛰면서 기뻐하기 시작했다.
“여기 언제 왔냐냥! 정말 보고 싶었다냥!”
지금 베아트리체의 심장에는 부모님을 만났을 때 느껴졌던 흥분과 똑같은 감정이 혈류를 통해 몰아치듯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아트리체는 부모님과 있으면서 행복을 느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는 참이었다.
그런 부족함이 뭔지 헷갈릴 때 눈앞의 남자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부족한 점이 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애들만 있으면 된다냥! 다른 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냥!’
그녀에게 있어서 가족과 친구들, 그 두 가지 외에는 필요 없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가진 듯이 기뻐하는 순간이었다.
“베아트리체.”
“응? 왜 그러냐냥? 그렇게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베아트리체의 말대로 성수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성수호는 그렇게 지긋이 바라보더니, 베아트리체를 보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베아트리체. 여긴 꿈이야.”
“…냥?”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말도 안 됐다.
“무슨 소리냐냥…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꿈은 못 꾸는….”
“차분히 잘 생각해봐. 아까 용사에게 침몽하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냥? 그거… 어?”
베아트리체는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용사에게 침몽하고 나서의 일들을 정확히 기억해낼 수 없었다.
‘부, 분명… 침몽하고… 어, 엄마랑… 아빠랑 만났는데….’
중간에 있어야 할 무언가가 확하고 빠진 기분이었다.
하지만 성수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엄마랑 아빠랑 만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해?”
“그… 그게… 어… 분명….”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꿈으로 강제로 조종하면서 원래 있었던 일들을 전부 뭉텅이로 잘라서 없애버리고, 희망하던 장면만 흩뿌린 결과였다.
그리고 성수호의 마지막 말이 이어졌다.
“중간 과정이 없는데. 베아트리체, 너는 나를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아….”
베아트리체는 고개를 떨구며 그제서야 머릿속에 차곡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성수호와 비올라, 레나, 아르모니아.
그 사람들은 지금 꿈에서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들은 현실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사실들이 점차 쌓이면서 베아트리체의 마음속에 절망을 끼얹기 시작했다.
“아냐… 아니야… 그, 그럴 리가… 없잖아….”
평소에 보여주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없었다.
하얗게 질려서 절망의 눈으로 성수호를 바라보는 베아트리체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정신을 깨우듯 들려오는 흥분된 목소리들….
“비체야! 저 사람 누구야!”
“인간!? 내 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어!”
베아트리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봤다.
분명했다.
엄마와 아빠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아, 아냐… 아, 아니잖아….”
평소에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사라지고 슬픔이라는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목소리로 성수호에게 매달렸다.
“아니잖아! 우리 엄마야! 우리 아빠잖아! 저기 봐! 분명….”
“아냐. 꿈이야.”
“아, 아냐… 아니라고!”
베아트리체는 인지한 꿈을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부정하기 시작했다.
현실이 꿈이길 바랐고, 꿈이 현실이기를 바랐다.
베아트리체의 발광하는 모습에 성수호는 그녀를 껴안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다 내 잘못이야. 미안….”
“아냐… 아니라고….”
베아트리체는 성수호의 품에 안긴 채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묘족에게 멸시를 받고, 마족에게 괄시받았을 때도 울지 않았던 그녀였다.
하지만 몸속을 대못처럼 쑤시고 들어오는 상실감은 버틸 수 없었다.
그렇게 목놓아 울던 중에 베아트리체는 성수호의 옷을 양손으로 콱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맞아! 그러면 여기서 안 나가면 되잖아! 그럼 되잖아!”
“안돼. 그럼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같이 있자!”
베아트리체는 성수호를 꽉 끌어안으며 울부짖었다.
“같이 있자! 여기서 있으면 평생 행복할 수 있어! 너도 가지 마! 가지 않으면 되잖아!”
“베아트리체….”
“제발! 부탁이야… 제발… 흐아아앙!”
베아트리체는 혹시라도 떠날까 싶은 성수호를 꽉 끌어안으며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합리적이지 않지만, 이해할 수 있는 억지였다.
그렇게 억지를 부리며 울부짖는 베아트리체의 모습에 성수호는 그녀를 꼭 끌어안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베아트리체. 여긴 결국 꿈이야.”
“꿈이라도 괜찮아… 엄마랑 아빠랑… 너희만 있으면….”
“결국 그건 다 가짜야.”
성수호를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몸을 돌려서 꽃밭 바깥에서 지켜보던 오웰과 비아트릭스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오웰과 비아트릭스는 멍하니 베아트리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 봐봐. 네가 보는 순간에는 진짜 부모님 같겠지만, 결국 네가 보지 않는 순간은 그저 너의 꿈속을 꾸며주는 인형에 불과해.”
“흐으윽….”
성수호는 꿈 안에서 지독한 현실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현실 안에 중요한 사실도 포함되어 있었다.
“밖에서 비올라랑 레나, 아르모니아가 기다리고 있어.”
“….”
“걔들까지 전부 꿈으로 만들고 싶어?”
비아냥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묻는 표정이었다.
베아트리체는 저 멀리 보이는 멍하니 서 있는 부모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낸 뒤 말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냥.”
행복한 꿈.
하지만 더 행복한 현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짜 가족이 아닌… 진짜 가족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올라… 많이 기다렸겠지냥?”
“아마 화낼지도 몰라. 며칠 동안 혼자 뒀다고.”
“흥! 걔는 그런 거로 화내지 않는다냥.”
“하하… 나보다 더 잘 아네.”
“….”
베아트리체는 붉어진 눈으로 다시 오웰과 비아트릭스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 예전에 인간과 마족이 꿈을 꾸는 걸 보고 비웃었다냥.”
서큐버스에게 제일 큰 의미가 담긴 행위인 꿈.
하지만 그런데도 서큐버스들은 그 꿈이라는 존재를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조종하는 꿈 안에서 현실과 분간을 못 하는 존재들을 매번 보다 보니 꿈에 빠지는 존재들이 얼간이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냥… 왜 다들 그토록 꿈을 꾸고 싶어 하는지….”
평생 이룰 수 없을 일이 꿈 안에서는 이루어진다.
베아트리체는 살면서 처음 꾼 꿈에서 평생 이룰 수 없는 소원을 이룬 것이었다.
베아트리체는 나를 살며시 껴안으며 다소곳이 내게 속삭였다.
“정말… 고맙다냥.”
“오히려 미안하지….”
“아니다냥… 네가 아니었다면 난 평생 두 사람을 못 봤을 거다냥.”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말하며 내게 살며시 떨어진 뒤, 행복한 미소로 저 멀리 있는 오웰과 비아트릭스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 아빠! 나… 갈게!”
베아트리체는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을 붙잡을까? 아니면 그저 멍하니 바라볼까? 어느 것이든 좋았다.
그저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웠기 때문이었다.
성수호가 손을 흔드는 베아트리체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으며 말했다.
“그럼 나가자.”
“응….”
베아트리체가 그렇게 성수호의 손을 붙잡고 꿈을 빠져나가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비체야.”
“!!”
베아트리체는 놀란 나머지 황급히 눈을 떠서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하얀 빛이 감싸지면서 눈앞에는 그저 하얀 빛이 가득할 뿐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목소리만큼은 베아트리체의 귓속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잘 가렴.”
“몸조심하거라.”
베아트리체는 어떠한 말이라도 내뱉어서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그녀의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모든 것이 다시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
..
“….”
베아트리체는 천천히 눈을 떠서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검게 물든 방과 아늑한 침대, 그리고….
“일어났어?”
“…응.”
베아트리체는 헤실헤실 웃으며 자신의 옆에 누워있던 성수호의 팔을 껴안으며 말했다.
“고맙다냥.”
“뭐랄까… 지금 그렇게 껴안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냥?”
베아트리체가 그렇게 의문을 표하는 순간이었다.
(야 이 새끼야! 내 딸에게서 떨어져!)
“…어?”
베아트리체에게는 익숙하다 못해 뇌리에서 놓칠 수 없을 정도로 박힌 목소리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참! 당신은 분위기 파악을 못 해요!?)
(아니, 당신! 지금 딸이 남자랑 뒤엉켜 있는데, 분위기 파악이라니!)
(비체도 이제 어엿한 여성이에요!)
(나, 나한테는 아직 일러!)
(당신이 이른 게 뭔 상관이에요….)
목소리의 주인들이 점차 다가왔고….
“아… 아아!”
바로 앞까지 다가온 두 사람은 울먹이는 베아트리체를 향해서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비체야…. 엄마, 아빠가 혼자 놓고 가서 정말 미안해.)
(크흠… 혼자 외로웠지? 미안하다.)
“어, 엄마… 아빠!”
꿈을 벗어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인 베아트리체가 보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