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1화 〉 491화 가족과 가족의 사이
* * *
(꿈속에 들어가서 다시 데리고 오면 돼요.)
다행 중에 천만다행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안도가 되는 말이었다.
서큐버스가 멸족한 이 일루니아 대륙에서 침몽을 쓸 수 있는 존재는 나와 베아트리체밖에 없었다.
내가 원흉이기는 했지만, 베아트리체가 만약 내가 없는 상황에서 저런 상황에 부닥쳤다면 그녀를 구해줄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제가 듣기로는 저희 서큐버스는 이렇게 꿈에 빠지게 되면 절대 못 빠져나오니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비아트릭스의 말을 들은 비올라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의문을 묻기 시작했다.
“왜요? 꿈의 종족이면 오히려 수월하게 빠져나와야 하는 게 아닌가요?”
(그건… 저도 모르겠네요.)
무책임한 게 아니었다.
정말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저 과거 서큐버스들의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해줄 뿐이었다.
(서큐버스는 원래 집단성이 아닌, 각자 욕망에 지배된 개인성을 지닌 종족이에요.)
그런데도 서큐버스가 소수더라도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이유가 바로 과거부터 내려오던 몽침 때문이라고 설명해줬다.
(저도 솔직히 그런 허황한 이야기를 무시했지만… 비체가 직접 겪으니 당황스럽네요.)
“비체요?”
(딸의 애칭이에요.)
“아하… 베아베아체보다 좋은 거 같아요! 나중에 나오면 나도 그렇게 부를래요!”
(…? 베아베아체는 뭐야?)
오웰이 눈치 없이 끼어드니, 비아트릭스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말했다.
(친구한테 하는 애칭이잖아요. 눈치 좀 차려요.)
(그, 그렇군…. 어쨌든….)
오웰은 당황하던 표정을 풀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 일의 원흉은 너다. 그것만큼은 인정하겠지?)
“그럼요.”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제가 꼭 구해오겠습니다.”
(….)
험상궂게 인상을 쓰던 오웰은 갑자기 고개를 팍 숙이더니, 내게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탁이다. 너를 탓할 생각은 없다. 그저… 다시 딸과 만날 수 있게 해다오. 저번에 했던 내 무례를 용서해다오.)
“…알겠습니다.”
꿀밤 마려운 고양이에서 어엿한 수인으로 바뀌게 되었다.
내가 침대에 있는 베아트리체에게 다가가며 침몽을 시전하려고 하자 뒤에서 두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이러면 됐어?)
(후후후~ 잘했어요. 우리 남편.)
(크흠…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당신이 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
“….”
다시 꿀밤 마려운 고양이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변경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꿀밤 마렵던, 마렵지 않던… 다시 만나게 해줘야지.’
나는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면서 베아트리체가 누워있는 침대에 나란히 눕고 말했다.
“그럼… 갔다 올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바로 베아트리체의 꿈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
..
꿈속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장면은 한눈에 딱 봐도 어딘지 바로 알 수 있는 장소였다.
‘묘홍산.’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내가 아는 베아트리체는 거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왔으니까.
나는 저번에 들렀던 베아트리체의 집 위치를 떠올리며 발걸음을 서둘러서 옮기기 시작했다.
다행히 집에 도착하기 전에 베아트리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베아트리체는….
“꽃을 캐자~ 아니… 뽑자… 아니! 수집하자!”
“….”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묘홍화를 채집하고 있었다.
나는 감탄한 표정으로 베아트리체를 몰래 관찰하기 시작했다.
‘진짜 빼닮았네.’
어린 시절의 베아트리체는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입고 있는 옷도 평소에 입던 고스로리 복장이었다.
그저 어린 모습이 되었다 뿐이지, 행동거지는 지금과 크게 다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예쁜데, 이때는 또 귀여웠네.’
그렇게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야! 병신!”
“….”
작은 몸을 하고 있던 베아트리체가 큰 목소리에 움찔하며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고개를 뻣뻣하게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숨긴 채 그녀의 시선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서 바라봤다.
그곳에는 카멜레온 같이 주변에 있는 주황색에 물든 작은 묘족들이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갑자기 하나가 떠올랐다.
‘수인이라… 난 불가능….’
나는 처음에 묘족이라고 하길래 베아트리체처럼 그냥 꼬리와 귀만 있는 줄 알았는데, 묘족은 진짜 수인에 가까웠다.
오웰의 경우에는 영혼 상태여서 흐릿하게 보였고, 느긋하게 감상할 시간이 없어서 별로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꼬마들을 보니, 형태와 색감이 눈에 확 들어오고 있었다.
온몸에 털이 있고, 손은 인간과 비슷한 형태였지만 날카로운 송곳 같은 손톱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귀여움보다는 날카로움이 더 인상에 새겨지는 그럼 종족이었다.
‘베아트리체 엄마도 참 취향이….’
뭐, 애초에 서큐버스는 남자가 없으니까….
내가 그렇게 묘족을 보며 감상하는 사이에 날카로움의 눈빛을 가진 묘족들이 베아트리체를 둘러싸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병신! 우리가 오늘까지 떠나라고 했어, 안 했어!?”
주된 내용은 묘홍산에서 꺼지라면서 윽박지르는 내용이었다.
‘거참… 마족도 인간이랑 다를 건 없구나.’
차라리 아예 다른 종이면 모를까 형태가 비슷한 종은 자연스럽게 경계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종이 자신들보다 약자라는 확신이 들면 본능적으로 공격성을 띠게 된다.
작은 베아트리체는 한참을 위협받다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로 인해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야! 너희들 거기서 뭐 해!”
“윽! 또 나타났다 튀어!”
“내일까지 안 떠나면 너 진짜 죽는다!”
“….”
베아트리체를 노려보던 작은 묘족들은 순식간에 숲 안으로 짐승처럼 어디론가 튀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놓치지 않고 마법진을 생성했다.
‘뒤져라. 수인들아!’
파지지직!
“끄아아악!”
묘족 꼬마들은 내 마법을 맞더니, 갑자기 연기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엥? 뭐야? 꿈이라 그런가?’
그냥 따끔하게 혼이나 내주려고 했던 마법에 죽어버리니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죽는 모습이 꼭 질럿같네. 베아트리체의 꿈에서 나오면 영혼 소환술로 소환해주마.’
그리고 용기병으로 만들어주마.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아까 목소리의 주인이 베아트리체에게 다가간 상태였었다.
“비체야. 괜찮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는 비아트릭스였다.
비아트릭스는 위축된 베아트리체를 들어 올려서 품에 안기 시작했다.
그렇게 품에 안긴 베아트리체는 비아트릭스에게 시무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 애들은 왜 나 싫어할까?”
“….”
진실과 거짓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진실을 말하기에는 상처가 생길 것이고… 거짓을 말하자니 지금은 괜찮지만, 훗날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었다.
‘부모란 어렵네.’
특히 베아트리체의 부모는 더 했을 것이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도 결국 나중에는 다 깨달은 거겠지.’
이런 장면이 꿈에 나오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전부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따.
“….”
비아트릭스는 잠시 침묵하더니, 베아트리체를 안은 채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와! 엄마! 여기 꽃 진짜 많아!”
“그렇지? 엄마가 찾은 곳이야.”
전에 베아트리체가 우리를 안내해줬던 그 꽃밭이었다.
참 신기한 장소였다.
크기에 비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런 장소였었다.
“엄마가 날아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장소야.”
“와… 진짜 예뻐!”
“비체야.”
“응?”
비아트릭스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베아트리체를 안은 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입을 열었다.
“나중에… 진짜 친구가 나타나면 여길 알려줘.”
“…응! 꼭 그럴게!”
베아트리체는 그렇게 환한 웃음과 함께 대답하면서 다시 주변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진짜 친구라.’
베아트리체는 우리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 꽃밭으로 안내한 것이었다.
그 이후 꿈속 상황은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묘족이 전부 전쟁터로 끌려간 것이었다.
심지어 개인 성향이 짙은 종족인 서큐버스도 전부 전쟁에 소집되었다.
베아트리체가 소식을 들은 건 결국 두 사람이 죽었을 것이라는 소식뿐이었다.
심지어 그 이야기도 소문에 소문을 거듭하다가 들은 소식이었다.
대륙을 뒤흔들 정도의 전쟁이 일어나는 와중에 종족도 구분이 안 되는 여자아이 가족의 생사를 신경 써주는 마족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그녀도 마족의 신분이라는 이유로 마왕성에서 안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위안이라는 위안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패배의 연속이었다.
우연히 한번 승기를 잡으면 다음 날 바로 그 승기의 원인인 군대가 용사의 활약으로 증발해서 사라져버렸다.
베아트리체의 꿈은 그 당시 상황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전쟁이 무섭긴 진짜 무섭네.’
차라리 무력이라도 세면 화끈하게 달려들겠지만, 무력이 없는 자들은 그저 무기력하게 간절히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위치에는 베아트리체도 있었다.
부모님이 죽었다는 소식을 그저 우연히 듣고, 아무런 위로도 받지 못했던 그녀.
“엄마… 아빠….”
베아트리체에게는 지금 그 상황이 지옥이었다.
차라리 억지로 전쟁터에 끌려가서 빨리 모든 것이 끝났으면 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바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바란 것처럼 극단적인 상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용사가 있는 군대에 침투해서 그에게 침몽하라는 명령.
너무 말도 안 되는 명령이었다.
그게 얼마나 말도 안 됐는지 증명하는 상황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 명령을 내린 것은 다름 아닌 마왕 가르디아였다.
평생 곁눈질로도 볼 수 없었던 마왕이 직접 베아트리체를 불러들여서 명령한 것이었다.
“이건 명령과 동시에 부탁이다. 조금이라도 좋다! 단 하나라도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아오도록 해라!”
말도 안 되는 명령.
하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인간군은 용사를 필두로 전쟁에서 연승을 거듭하면서 사기가 하늘을 넘어서서 우주까지 치달은 상태였다.
오히려 높은 사기 때문에 경계가 해이해진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그런 틈을 비집고 베아트리체 혼자 용사가 있다는 부대를 몰래 침투한 것이었다.
예전에 마왕에게 베아트리체가 몰래 용사의 꿈으로 침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과정을 듣지 못했었다.
그냥 잘 침입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으니까.
하지만….
“히… 으… 무, 무서워… 히익….”
매번 활짝 웃으면서 우리에게 헤실헤실하던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없었다.
공포에 잠식되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베아트리체만 보일 뿐이었다.
‘그래… 안 무서우면 그게 이상한 거지.’
잠입하던 베아트리체는 사람의 발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흠칫거리면서 눈물을 찔끔찔끔 보석처럼 떨구고 있었다.
안쓰러웠다.
생각 같아서는 지금 당장 그녀의 팔을 붙잡고 꿈 밖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다.
‘아냐, 비아트릭스의 말처럼 베아트리체의 상태라 희귀한 거라면 조심해야지.’
나는 베아트리체의 생소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려왔지만 참아냈다.
베아트리체는 벌벌 떨리는 몸으로 간신히 용사의 숙소까지 잠입해서 그의 꿈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운이었다.
‘…아무리 경계가 허술하다고 해도 이건 진짜 운이 좋았다.’
비올라의 오빠인 용사는 대륙을 휩쓴 전쟁의 영웅이었다.
아무리 경계가 허술하다고 해도 그의 잠자리의 경계까지 허술할 리가 없었다.
무수한 경계병이 오가는 사이에 베아트리체는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꿈에 파고들어서 빠르게 정보를 빼낸 것이었다.
“사, 살았다냥… 엄마… 아빠….”
전쟁 내내 베아트리체는 죽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공포의 두려움 앞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그녀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욕망 덕분에 그녀를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희망의 실마리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전쟁이 끝났다.
그래… 끝났다.
‘그럼 슬슬 우리가 나올 차례인가?’
나는 그 틈을 노려서 베아트리체를 꿈 밖으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베아트리체의 꿈속에 나오는 나를 제압하고 나인척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뭐야?’
갑자기 화면이 확 전환되더니, 주변이 묘홍산으로 바뀌었다.
분명 베아트리체는 전쟁이 끝나고 나서 따로 묘홍산에 들른 적이 없다고 말했었다.
‘설마 아까 그 장면부터 다시 시작인가?’
내가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베아트리체가 목소리를 내면서 누군가를 불렀다.
“엄마! 아빠!”
“…?”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것치고는 베아트리체의 목소리가 현재의 목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리고 내가 보는 베아트리체의 모습도 현재와 다르지 않았다.
“비체야!”
“딸아!”
베아트리체의 목소리와 함께 집 안에 있던 그녀의 부모들이 뛰쳐나와서 그녀를 껴안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아트리체가 그런 두 사람을 껴안으며 목 놓아 울면서 외치기 시작했다.
“진짜 보고 싶었다냥! 엄마! 아빠!”
나는 황망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다.
‘뭐야? 왜 내용이 달라져?’
베아트리체는 만났어야 할 우리를 만나지 않고, 이미 죽어 있는 가족을 만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