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7화 〉 487화 가족과 가족의 사이
* * *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아르모니아가 페르온 공작을 유심히 보더니, 고개를 절레거렸다.
“오래된, 그것도 꽤 깊은 지병입니다. 완벽하게 치료하기에는 저희 에넬로 부족합니다.”
10만 에넬로 부족하다라….
내 회복 스킬은 기본적으로 외부적인 상처를 치료하는 스킬이다.
질병은 상태 이상 해제로 치료할 수 있기도 했지만….
“내 상태 이상 해제 레벨로는 어림도 없네. 진짜 깊은 병인가보네.”
페르온 공작이 가진 지병은 불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오히려 병세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약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편법을 사용해보려고 했지만….
“…리스트에 없네.”
재료 변환 스킬을 사용해봤지만, 리스트에 묘홍화라는 재료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위그드라실에 존재하지 않는 재료라 그런 것 같습니다.”
“무조건 손수 직접 캐내야 한다는 건가?”
“혹시 모릅니다. 나중에 캐내고 나면 리스트에 등록될지….”
“그걸 기대해봐야겠네.”
그리고 진짜 최후의 수단.
“묘홍화 에넬로 만드는 데 얼마 들어?”
“10만입니다.”
“씹….”
아니, 베아트리체의 말에 의하면 묘홍산에 꽃이 지천으로 널렸다는데, 그렇게 많이 든다고?
“구하기 힘들고, 불치성 지병의 치료제라 그런 것 같습니다.”
“10만이면 아슬아슬 커트라인 아닌가? 우리 10만 있잖아.”
“사용하면 저희가 함선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하….”
생각해보면 효율이 지독하게 낮았다.
아무리 공작을 치료하는 것이라고 해도 임시방편을 위해 10만 에넬… 레나와 관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진작에 에넬을 사용한다는 계산조차 넣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아르모니아와 내 수준으로는 지금 당장 페르온 공작을 깨우는 건 불가능했다.
페르온 공작이 지금 기절한 한 건 진짜 죽기 직전이라기보다는 몸이 병환을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이었다.
그야 그 과정이 계속 지속되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겠지만….
일단 묘홍화를 이용해서 병세를 호전시킨다면 다시 의식을 되찾을 것이다.
“그럼 내일 아침에 출발하자.”
“알겠습니다.”
긴급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지금 당장 출발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었다.
일단 워프를 이미 한번 사용한 터라 묘홍산으로 한 번에 가기 위해서는 10시간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
함선에 가서 시차를 이용해서 대기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의미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가는 건 우리지만, 가지고 돌아오는 건 운송병이 해야 할 일이지.’
만마장이 이미 보낸 운송병 마족이 묘홍산에 도착하는 건 6시간가량 소요된다고 설명해줬다.
운송병의 이동시간과 휴식 시간을 고려하면 10시간 후에 출발하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럼 워프와 동시에 운송병을 만날 것이고, 운송병에게 치료에 필요한 최소한의 묘홍화를 넘겨준 뒤 우리는 천천히 돌아가도 그만이니까.
나와 아르모니아의 대화를 마치자, 공작의 방에 레나가 들어왔다.
그런 레나에게 모든 상황과 향후의 계획을 설명해줬다.
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와 아르모니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주인님, 아르모니아.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식구잖아. 당연히 해야지.”
“맞습니다. 레나 씨는 우리 기업에 더없이 훌륭한 인재입니다. 마땅한 절차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후 몇 차례 형식적인 대화를 나눈 후, 나와 아르모니아는 레나를 두고 방을 떠났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공작 곁에서 오래 머무르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아르모니아와 방을 나온 뒤 우리가 배정받은 객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로 인해서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조용히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각자의 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 아르모니아가 내게 몸을 돌려서 차분한 몸짓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럼 내일 워프가 충전되면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응, 쉬어.”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럼….”
아르모니아는 메이드 복을 나풀거리며 자신의 객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아르모니아가 사라지고 침묵이 가라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르모니아는 고향이 어딜까?”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아르모니아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 보면 의문만 한층 더 쌓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어보자니….
“안 가르쳐 줄 거 같단 말이지.”
그리고 진작 말할 것이었다면 벌써 본인 입으로 말했을 것이다.
“뭐… 말하지 않는 건 이유가 있겠지.”
신뢰가 떨어지냐 하면…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숨기는 것과 꺼리는 건 별개의 문제니까.
나는 조금 전에 내 옆에 서 있던 메이드 복을 입고 있던 아르모니아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복장을 입은 거지? 언제나 생각하지만… 뭘 입어도 다 어울리네.”
나는 아르모니아의 모습을 떠올리며 실실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
..
나와 비올라는 눈 앞에 펼쳐진 기이하고 신비한 산을 보면서 깊은숨을 들이키며 감탄사를 힘껏 내뱉었다.
“와!”
“오!”
묘홍산.
그저 두 봉우리가 나란히 붙어 있는 평범한 산이 아니었다.
베아트리체의 귀를 빼닮았을 정도로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크기로 나란히 서 있는 산.
모든 것이 주황색으로 펼쳐진 묘홍산은 그저 지나가지만 해도 한껏 시선을 잡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웃긴 건 산의 밑 경계에서부터 정확하게 잘라낸 듯 주황색이 지워지고, 평범한 초록색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위험한 것은 둘째치고 지나가다 보면 한 번쯤은 발을 내디뎌 보고 싶을 정도로 강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산이었다.
나와 비올라뿐만 아니라, 레나도 진귀한 풍경을 바라보듯 멍하니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이름과 명성으로만 들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정신이 뺏길 듯이 아름답습니다.”
“그런가냥…?”
베아트리체는 이곳에서 일생을 살아왔다고 했으니 우리가 하는 반응이 오히려 더 이상해 보일 것이다.
내가 일생을 살아왔던 집에 친구가 와서 ‘와! 대단해!’라고 해봤자 내게는 어떠한 감흥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베아트리체는 갸우뚱하던 고개를 바로 잡고 다부지게 말했다.
“자, 그럼 찾으러 가보자냥!”
베아트리체의 말에 따르면 묘홍화는 이곳에서 흔한 꽃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뽑아서도 안 된다고 설명해줬다.
이유는, 아직 미성숙한 묘홍화는 뽑자마자 바로 시들어 버려서 그 가치와 효력이 하락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미성숙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약효도 그렇게 좋지 않으리라는 것이… 베아트리체의 생각이었다.
“아빠는 그런 작은 꽃을 캐면 혼내곤 했다냥. 애들은 건드리는 거 아니라면서….”
“하긴 약초는 대부분 땅에 오래 묶을수록 효과가 더 좋아지니까.”
베아트리체가 뽑아낸 묘홍화는 전부 그녀의 아버지가 팔아줬다고 했다.
당연하게도 상품성이 떨어지는 거 받아봤자 팔아줄 수 없으니 그렇게 말했겠지.
그리고 이제는 생계를 위해서가 아닌 공작의 지병을 완화 시키기 위해서 묘홍화를 구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약효가 뛰어날 법한 성숙한 묘홍화를 뽑는 것이 중요했다.
“빨리 캐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것을 캐는 것도 중요하다냥. 꽃이 나는 곳 중에 나만 알고 있는 좋은 장소가 았다냥. 거기로 가자냥.”
그렇게 우리는, 베아트리체의 뒤를 따르며 산행하기 시작했다.
다들 분위기는 소풍을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비올라는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봤고, 레나는 산의 풍경을 보면서 침울했던 마음의 안식을 되찾고 있었다.
아르모니아도 진귀한 광경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눈을 돌리며 산의 장면을 공동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그 분위기에 편승하지 못하는 존재가 있었다.
“….”
베아트리체는 평소에 보여주던 촐싹대는 모습을 싹 감추고 복잡한 심경의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꽃을 찾는 것에 집중하느라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곰곰이 보니 좀 다른 분위기였다.
‘향수병은 없어 보여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네.”
베아트리체는 함선에 오고 나서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심심하지 않다고 좋아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추억까지 싸그리 잊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잊을 수밖에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잊은 척을 하는 거겠지.’
그나마 자신과 연관된 묘족과 서큐버스족이 전부 멸족했다.
오랜 시간 마음속에 쌓아 놓고 끙끙거려봤자 본인만 손해다.
그래도 신기했다.
분명 베아트리체의 기준에서 부모가 죽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는 인간에게 죽었다.
그런 인간인 비올라와 레나에게 저렇게 친근한 모습을 보인다는 건… 의문이긴 했다.
마족이라 다른가?
그렇게 조용히 딴생각하면서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다냥!”
“와!”
비올라는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은 곳을 황홀하게 바라보더니, 금세 방방 뛰기 시작했다.
“꽃밭이에요! 그것도 주황색 꽃밭!”
광활하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작고, 아담하다기에는 큰 정원과 같은 주황색 꽃밭이었다.
꽃밭이라고 하면 다색으로 어우러져서 사람들의 눈을 확 잡아끄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페르온 성에 있는 화원이었다.
다채로운 꽃들이 주변을 뒤덮고 있는 화원.
내가 지금까지 본 최고로 아름다운 화원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부로 하나 더 추가해도 될 것 같았다.
주황색 단색으로 뒤덮인 꽃밭도 절대 뒤처지지 않은 깊은 매력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꽃밭에서 폴짝폴짝 뛰는 비올라를 보며 피식 웃으며 허리를 숙이고 꽃에 코를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이미 강하게 피어오른 향 때문에 꽃의 향인지 숲의 향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베아트리체는 최대한 집중하며 향을 맡아가며 꽃밭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 좋다냥!”
꽃 하나를 조심스럽게 뿌리째 뽑아서 들고 왔다.
“이정도면 정말 괜찮을 거다냥. 몇 송이 캐내고 운송병에게 건네주자냥.”
“그래.”
내 대답과 함께 옆에 서 있던 레나가 베아트리체에게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베아트리체 씨… 정말 감사합니다.”
“히히… 조금만 기다려라냥.”
베아트리체는 천진난만하게 대답한 뒤 다시 꽃밭에 들어가서 추가로 다섯 송이를 뽑아서 가지고 왔다.
“일단 하산해서 운송병에게 주자냥.”
그렇게 우리는 꽃밭을 뒤로 하고 하산했다.
산 아래에는 만마장이 말했던 운송병이 이미 우리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다.
운송병의 모습은 날개가 달린 작은 임프들이었다.
‘하긴… 저 정도 크기라면 우리를 옮기는 건 불가능하겠네.’
사람 하나 들어 올리려면 최소한 5마리가 달라붙어야 할 것처럼 작은 녀석들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달라붙으면 속도도 나오지 않겠지….
운송병들은 베아트리체의 꽃을 덜덜 떨며 신줏단지 받들듯 받아들고는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그거 꽃에 있는 분말 하나라도 날아가면 안된다냥!”
“히, 히익! 부, 분말 말씀이십니까? 그, 그렇게 하면 가지고 갈 수가….”
“히히 농담이다냥. 그냥 최대한 빠르게, 꽃이 손상되지 않게 가지고 가면 된다냥.”
농담 좀 하지 말라고… 네 농담에 쟤들은 정신이 갈려 나가잖아.
“며,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운송병들은 허겁지겁 꽃을 천 주머니에 넣더니, 후다닥 날아가 버렸다.
나는 그렇게 운송병의 모습이 금세 사라지는 것을 본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일단 좀 쉴까?”
레나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워프를 두 번 연속으로 쓰려면 최소한 24시간 대기해야 했다.
그렇다고 뛰어서 돌아가자니… 효율이 떨어지고….
어찌 되었든 여기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셈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내 말에 반응하는 건 다름 아닌 베아트리체였다.
“아! 그럼 나 집에 들러봐도 되냐냥?”
“집? 아, 전에 살던 집?”
“응. 오랜만에 가보고 싶다냥.”
“좋아. 가자.”
내 대답과 함께 우리는 다시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서 묘홍산으로 다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와 다르게 산을 오르는 게 아닌, 산의 하단을 끼고 쭉 뒤편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숨겨져 있는 마을이라도 있나?’
지금은 멸족했더라도 이곳에서 묘족이 살았다고 했으니, 분명 그들이 기거하고 있던 마을이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베아트리체가 도착한 곳에는 마을이 없었다.
그저 집 한 채가 전부였다.
그것도 매우 낡고, 헤지고… 심지어 반파되어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그런 나무집.
베아트리체는 그런 나무집을 보며 쓰게 웃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가… 내가 예전에 살던 집이다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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