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9화 〉 469화 위그드라실 (417)
* * *
나는 소우타에게 몇 가지 정보를 얻은 뒤 그를 다시 돌려보낸 뒤, 민하연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민하연도 레벨업 포인트를 인지한 상태였었고, 나를 보면서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200만 포인트… 진짜 눈앞이 깜깜하다.”
“쉽지는 않을 거 같아.”
아무리 레벨 1의 스킬 자체가 사기적이라고 해도 고작 2레벨로 올리는 데 200만이라는 포인트를 요구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도 몰랐으니까.
민하연은 씁쓸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중에 배울 걸 그랬나? 여기는 다시 올 수 있잖아.”
“그것도 좋긴 한데… 이미 늦은 거 같아.”
“아… 나한테도 이미 찾아왔으니까. 수호 너한테도 찾아갔구나?”
나는 민하연의 나지막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줬다.
“아까 보니까 여기저기 막 돌아다니면서 꼬치꼬치 캐묻는 거 같아.”
민하연에게 찾아오기 전에 주변 유령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 이야기가 이미 성 내부에 쫙 퍼진 상황이었다.
한여름은 그 정보를 우연히 듣고, 우리를 찾아온 것이었다.
민하연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며 천장으로 시선이 향하더니 피식 웃었다.
“대놓고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더라.”
한여름은 민하연이 거울 저주를 받았던 사실을 모를 것이다.
그 일을 알고 있는 건 나와 민하연, 한봄, 삼인방, 그리고 소우타뿐이었다.
다른 영혼들은 당시에 최면에 걸려서 기억도 없는 상태였다.
“아마 내 걱정 따위는 전혀 없었을걸? 그냥 전설 직업 얻었다는 거에만 정신이 팔린 거겠지.”
“….”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의 한여름이라면 눈앞에 민하연보다 회귀 후의 민하연을 더 신경쓸 것이다.
거울의 저주를 모른다면 그 녀석이 노리는 건 하나 뿐이다.
전설 직업.
그리고 그 전설 직업을 가진 사람이 두 명 더 있었다.
“하연아, 피곤하지 않으면 지금 세 분 만나러 갈래?”
“혜연 씨네?”
“응. 세 분도 슬슬 포인트에 대해서 알았을 거야.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많이 대화를 나눠보자.”
“그래!”
민하연은 의자에서 덜컥 일어나더니, 내 옆으로 후다닥 다가왔다.
그리고는….
“가자!”
내 팔짱을 끼면서 앞장서기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저주 사건이 있고 나서 유독 더 달라붙는 거 같은데?’
[저는 민하연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만큼 수호 님을 의지하고 있을 겁니다.]
‘흠….’
나는 미소를 숨기지 않고 팔꿈치로 민하연의 가슴을 느끼며 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가자.”
..
..
성에 돌아다니는 유령들에게 물어보니, 삼인방이 있는 위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찾은 삼인방도 우리와 같이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박선희가 대표해서 이야기를 진행했다.
“마침 찾아가려고 했어요.”
“두 분 레벨업도 200만 포인트, 맞아요?”
“네….”
손혜은과 박진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허탈하게 웃었다.
“10만, 20만도 아니고… 200만이라니….”
“순간 벽이 느껴지네요. 앞날이 캄캄하네.”
손혜은과 박진희의 말을 들으며 나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배우신 스킬은 시험해보셨어요?”
“네, 저는 했고. 진희는 못 했어요.”
“강령술사는 시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힝….”
죽은 자들이 판치는 네오 니플헤임…. 여기는 유령은 발에 챌 정도로 돌아다니지만, 시체는 단 한 구도 볼 수 없는 장소였다.
심지어 여기는 무덤도 없었다.
‘무덤이 의미가 없는 존재들이니까….’
나는 박진희에게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준 뒤, 손혜은에게 물었다.
“사용한 스킬들은 어땠어요?”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진짜 대단해요.”
손혜은은 스킬을 활용해서 박진희와 대련을 펼쳤다.
손혜은의 스킬 레벨은 전부 1.
그에 비해서 박선희의 스킬 레벨은 전부 10.
결과는….
“그냥 싸움 자체가 안됐어요. 완패였어요.”
박선희는 허탈하게 웃으며 아까의 대련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혜은이는 환수인 말을 소환해서 타고 싸웠어요. 일단 체급에서 압도적으로 밀렸고, 심지어 창도 전보다 훨씬 더 잘 쓰더라고요.”
“와… 정말인가요?”
민하연의 놀란 표정에 손혜은은 쑥스럽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타나토스의 군마인데, 마침 창이랑 어울려서 그런 거 같아요.”
확실히 말을 타는 것이라면 창과 조합이 뛰어났을 것이다.
심지어 죽음의 기병술은 스킬 레벨에 맞춰져서 무기 숙련도가 증가하는 스킬이다.
그런데 레벨 1로 레벨 10을 압도한 것이었다.
박선희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하연 씨는 어땠어요?”
“아… 저도 이제 막 시험해보려고요.”
“그럼 저로 시험해보세요. 하연 씨 능력이 소환술 아니에요?”
“그, 그렇긴 한데….”
민하연은 살짝 미안한 감정이 들었는지 쉽게 승낙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상대방이 연습해준다고 해도 조금 전에 무참히 깨졌다는 말을 들으니, 혹시라도 또 그런 상황이 벌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걱정하는 민하연의 모습에, 박선희는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연 씨,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곳에 왔어요. 전설 직업이 저보다 약하면 제가 오히려 더 불안해질 거 같은데요?”
“아… 미안해요.”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그런데, 저주는 쓰지 말아 주세요. 그건 아직 좀… 무섭네요.”
“그럼요.”
그렇게 민하연의 스킬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박선희가 거리를 벌리고 외쳤다.
“일단 소환해보세요.”
“네.”
민하연은 대답과 함께 소환 의식 스킬을 사용했다.
소환 의식과 동시에 금세 그녀의 근처에 다섯 개의 보라색 원기둥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원기둥 안에서는….
“흐허….”
입에서 입김을 내뱉는 해골들이 등장했다.
두 해골은 검을, 두 해골은 화살을, 그리고 나머지 한 해골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해골을 보며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민하연에게 물었다.
“해골?”
“소환명이 타나토스의 정규병이라고 나와 있어.”
해골이라고 하니까 좀 저렴한 느낌이었지만,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저렴하지 않았다.
검은색 입김을 내뱉으며 동공에는 보라색 안광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갑옷도 정규병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검은색과 붉은색, 보라색을 뒤섞어 놓은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명령 가능해?”
“아… 응. 가능해.”
“그럼 일단 검을 쓰는 해골 한 명부터 시작해보자.”
내 말과 동시에 민하연은 검을 든 해골 한 명에게 눈빛으로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해골은 천천히 박선희에게 다가가서 공격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박선희는 그런 해골을 보면서 침을 삼킨 뒤 민하연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부탁했다.
“하연 씨… 살살해달라고 꼭 말해주세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바로 나설게요.”
박선희는 민하연과 내 말을 듣고는 살짝 긴장을 풀고는 고개를 끄덕인 뒤 검을 들어 올렸다.
선공은….
“하아앗!”
박선희였다.
챙!
그렇게 검과 검이 부딪히면서 전투가 시작됐음을 알렸다.
엄청난 격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박선희의 검과 해골의 검이 서로 부딪히면서 엄청난 불꽃을 사방으로 내뱉고 있었다.
하지만….
‘와… 정말 저 정도라고?’
분명 서로 대치하며 싸웠지만, 전투라고 보기에는 압도적인 실력차를 보여주고 있었다.
박선희가 미친 듯이 맹공을 퍼부었지만, 해골은 유유히 그 공격을 흘려보내며 한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었다.
일단 이로써 알 수 있었다.
정규병의 실력이 웬만한 검사 레벨 10급은 여유롭게 넘긴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로 인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소환수가 다섯… 미쳤네.’
처음에는 고작 해골 다섯 소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괴물 같은 녀석들이 다섯이나? 라고 생각이 될 정도로 엄청난 능력이었다.
심지어 타나토스 무녀의 능력은 두 개나 더 있었다.
저주 해제, 저주 부여.
저주 부여는 심지어 아직 궁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민하연의 활에 부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소환수를 이용해서 싸움시키고, 화살로 엄호를 한다면 1층에서 만났던 녀석들은 가볍게 학살하고 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능력만큼 단점도 존재했다.
“하아… 하아… 자, 잠깐….”
지금 목소리의 주인은 박선희가 아니었다.
“모, 몸에 힘이….”
민하연이었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갑자기 주변에 있던 정규병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건 박선희와 격전을 벌이던 해골도 마찬가지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바로 쓰러지려는 민하연을 부축하며 물었다.
“하연아! 괜찮아?”
“괘, 괜찮아… 그런데 갑자기 왜 몸에서 힘이 빠지는 건지….”
“아마 마나 부족 때문인 거 같아.”
“아….”
민하연은 지금까지 마나라는 것을 운용해본 적이 없었다.
마나를 처음 이용하자마자 마나 탈진을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민하연에게 마법력 기질이 개화되었습니다.]
‘좋아. 그건 포인트로 못 올리니까 나중에 상황봐서 에넬로 올려주자.’
엄청 많이 올릴 필요 없었다.
전투 시간은 대략 1분.
애초에 소환 의식 스킬은 마나 통이 크다는 전제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소환수가 죽인 숫자만큼 소환사의 마나가 차오르는 개념이었다.
“아마 박선희 씨랑 대련만 해서 마나를 채우지 못해서 그런 거 같아. 만약 몬스터랑 싸웠다면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쓸 때는 그만큼 신중해야 할 거 같… 흐앗!”
민하연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몸에 힘을 주고 일어나려고 했지만, 금세 비틀거리다가 내 품에 안겨 버렸다.
민하연은 내 품에 안긴 뒤에도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런 민하연의 모습을 보면서 삼인방에게 말했다.
“저는 하연이 데려다줄게요. 오자마자 가버려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빨리 데려다주세요.”
삼인방은 나와 민하연의 모습을 보면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렇게 미소를 짓는 삼인방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혹시라도 한여름이 던전에 가서 있었던 일을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주세요.”
“아… 혹시 몰라서 아까 피하긴 했는데. 너무 따돌리는 것도 좋지 않을 거 같은데….”
박선희의 말을 들으며 하마터면 웃음보가 터질 뻔했다.
역시 여자다.
겉과 속의 경계를 확실히 그으면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박선희에게 설명해줬다.
“따돌림이 아니에요. 이참에 한여름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주려는 거죠.”
“좋은 경험이요?”
나는 민하연을 등에 업으며 말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
..
삼인방은 굳이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한여름에게 접근하지 않을 것이다.
‘종속이 걸려 있으니까 문제없겠지.’
삼인방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회차에 나와 잠자리를 가지지 않았음에도 종속에 걸려 있었다.
종속의 주체인 내가 회귀에 휩쓸리지 않으면 종속은 영원히 지속할 수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정말 사기적인 능력이었다.
나는 민하연을 업고 가면서 수많은 영혼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혼령들도 남자가 여자를 업고 가는 모습은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쓰이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영혼의 시선을 받으며 이동한 곳은 민하연의 방이었다.
나는 민하연을 업은 상태로 그녀를 방안으로 데리고 가서 침대에 눕혔다.
“괜찮아?”
“응… 좀 진정됐어.”
아까까지 식은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했던 민하연은 내게 업혀 오는 동안 진정이 됐는지 표정과 피부색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민하연은 그렇게 침대 위에서 숨을 고르며 진정한 뒤,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진짜 무서웠어.”
“응? 아까 일 때문에?”
갑자기 마나를 한꺼번에 사용하느라 탈진에 걸리긴 했지만, 그게 두려움을 줄 정도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는 두려움은 다른 곳에 있던 일을 의미하는 거였다.
“거울에 갇혔을 때… 정말 무서웠어.”
“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민하연은 한동안 그 일을 쉽사리 잊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 평생 불안함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런 불안함을 지울 방법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 회귀할 때, 하연이는 제외할까….’
회귀할 때, 민하연을 워프하지 않으면 그녀의 기억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었다.
비록 지금 얻은 능력은 사라지겠지만, 능력은 회귀 후에 다시 얻으면 그만이었다.
내가 고민하는 모습으로 민하연을 바라보자, 민하연이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나를 침대로 확 끌어당긴 뒤 눕혔다.
민하연은 나를 강제로 침대에 눕힌 뒤, 나를 올라타고는 내려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무서웠지만… 정말 행복했어.”
“응? 행복?”
“수호, 네가 나를 구해줬을 때… 정말 행복했어. 그러니까….”
민하연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으로 뭔가 조작했고, 그녀의 복장이 순식간에 바뀌어 있었다.
아까까지 흰색 블라우스에, 청바지를 입고 있던 민하연은….
“나는 평생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야. 내 모든 것을 바쳐서….”
보라색의 신녀복을 입고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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