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0화 〉 460화 위그드라실 (48)
* * *
우리는 묘지기의 의뢰를 받고, 사람이 드나든 적이 없는 던전에 들어갔다.
그리고 연습 상대로 최고인 영혼들을 상대로 싸우며 탐색을 진행했다.
하지만 그 이후 다시 등장한 혼령들은 광신도처럼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민하연이 저주에 걸려버렸다.
그리고 그 광신도처럼 달려들던 녀석들은….
[최면 세뇌]
저런 기질을 달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기질….
‘최면… 꼭 그 녀석을 잡아야겠어.’
사람을 홀릴 수 있는 최면…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악령이다 뭐 다 했지만, 결국 사람을 홀리는 능력으로 세뇌한 거였네.’
[그래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상대는 최면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최면 풀려면 에넬 몇 들어?’
[일단 지금 걸려있는 영혼들의 최면을 풀려면 1만 에넬이 듭니다.]
‘생각보다 적네?’
좀 아리송했다.
일단 최면 자체는 대단한 능력이지만, 최면을 푸는 건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큰 걱정이 들지는 않았다.
내가 걸리더라도 바로 풀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세뇌된 혼령들은 점차 우리를 향해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다.
“아저씨… 어떡해요?”
“분위기가 아까랑 다른데요?”
한봄과 손혜은의 말대로 아까까지 우리를 향해서 거침없이 공격하던 녀석들은 무기를 들지 않고 그저 천천히 다가올 뿐이었다.
그리고 혼령 중의 한 명이 선두로 나와서 우리를 향해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곤란한 일을 겪은 거 같은데….”
“….”
“내가 하는 질문에 답만 제대로 해준다면 모두 해결해주겠다.”
선두로 나온 영혼은 우리를 향해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느껴져서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주위에 있는 영혼들도 어디까지나 압박감을 줄 뿐, 흐리멍덩한 눈으로 우리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일단 상황을 넘기기 위해서 대화를 시도했다.
“무슨 질문인데?”
“너희들은 산 자인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보상으로 들어왔다.”
나는 1층에서 있었던 보스전을 적당히 설명해주고, 보스전을 클리어한 보상으로 들어왔다고 사실대로 말했다.
‘일단 장단을 맞춰주자.’
만약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케르베로스의 안구를 사용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한여름을 이용해서 회귀하면 된다.
내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선두에 있던 영혼은 아무런 반응 없이 다시 입을 벌렸다.
“그럼 나가는 방법은?”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을 사용하는 거지. 다만 이건 양도 불가다.”
혼령은 잠시 침묵하더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갈 방법은 그 방법뿐인가?”
“그래, 애초에 죽은 자가 쉽게 나갈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이 개판이 됐겠지.”
“….”
“자, 질문은 끝났지? 이제 내가 질문할 차례다.”
나는 선두에 있는 영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하연이를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말해라. 빨리 말하지 않으면….”
나는 그렇게 선두에 있던 영혼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서 저 멀리 있는 검은색 형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진짜 뒤지는 수가 있다.”
그리고 내 뻗어진 손에 쥐어진 초록색 보석이 광채를 내면서 주변에 있던 영혼들의 눈에 주입되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초록색 빛을 받은 영혼들은 울부짖더니, 바닥에 주저앉거나 쓰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케르베로스의 안구를 들고, 저 멀리서 몰래 지켜보던 녀석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망토를 둘러쓰고, 숨어 있던 녀석은 내가 다가갈 때마다 움찔거리며 익사하는 것처럼 숨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컥… 커어억!”
“쫄래쫄래 잘도 숨더니… 어때? 그동안 재미있었냐?”
“자… 잠깐… 커어어억!”
나는 보석을 쥐고 있는 오른손을 그대로 든 채 왼손으로 녀석의 목을 잡고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망토를 두르고 겉으로 풍기는 기세에 비해서 몸이 작고, 가벼웠다.
키는 크게 잡아도 150에 몸무게도 마른 여자 수준의 몸무게였다.
다만 목소리로 남자라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
내가 목을 잡고 들어 올리자, 녀석은 익사하는 것처럼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혼은 익사하지 않는다.
녀석이 괴로워하는 건 내게 목이 조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오른손에 있는 케르베로스의 안구 때문이었다.
초록색으로 발산하는 광채가 녀석의 눈에 들어가면서 엄청난 두려움을 주입하고 있는 것이었다.
“크어억! 자, 잠깐! 내, 내 말을!”
“내가 지금 참아줄 인내심이 바닥 나서 말이야. 내가 원하는 대답을 빨리 듣고 싶거든?”
“해, 해줄게! 제발! 그, 그 보석을 치워!”
“치워?”
“치, 치워줘! 제발! 뭐든 다 해줄 테니까!”
나는 망토를 두르고 있는 녀석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노려보기 시작했다.
녀석은 내 손에서 풀려났음에도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떨면서 외쳤다.
“그, 그 눈을 치워줘! 제발!”
“….”
나는 보석을 거두지 않고, 아르모니아에게 말했다.
‘아르모니아, 기질.’
[알겠습니다.]
나는 기질이 뜨기를 기다리며 녀석의 상태를 확인했다.
얼굴은 망토에 가려졌지만, 체형은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150 될까 말까 하는 작은 키에 체형도 말라서 작아 보였다.
목소리가 남자인 것으로 봐서는 제프처럼 난쟁이가 아닐까 싶었다.
[기질창을 띄웠습니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을 듣고 바로 녀석의 기질창을 확인했다.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녀석의 능력이었다.
=====
[혼 최면술], [복수의 화신], [냉혈한], [이기심]….
=====
‘뭐야? [혼 최면술]? 그냥 최면술이랑 다른 건가?’
[나와 있는 설명을 보면… 혼령에게만 걸 수 있는 최면술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뭐? 혼령!? 그럼….’
[평범한 사람에게는 걸 수 없습니다.]
‘이런 쉿!’
똥!
이런 똥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나는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처럼 머릿속에 분노를 가득 채우며 녀석에게 다시 케르베로스 광선을 쏘기 시작했다.
“끄아악! 왜! 그, 그만! 저 여자를 풀어줄 테니까 그만!!”
“그럼 빨리 말해!”
“마, 말한다고! 제발! 그것 좀 치워!!”
내가 그렇게 짜증을 내며 광선을 난사하고 있을 때였다.
[수호 님. 일단 그것보다 기질창을 확인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왜? 어차피 쓸모없는 능력이더구먼….’
[혼 최면술]을 배워서 어디에 쓰겠는가? 어차피 나한테는 훨씬 상위 버전의 아이템인 케르베로스의 안구가 있는데.
하지만 아르모니아는 끝내 다시 한번 보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저자의 이름을 보시길 바랍니다.]
‘이름?’
그제서야 나는 팔을 거두고 녀석의 이름에 눈을 두기 시작했다.
나는 남자의 이름을 기억하는 취미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녀석의 이름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지독하게 써먹은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덜덜 떨고 있는 녀석의 이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타케이치 소우타? 붉은 초승달 전 수장?’
***
“….”
민하연은 어둠 속에서 홀로 의자에 앉은 채 테이블에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고 있었다.
간혹 주머니 바깥에서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흘러들어왔지만,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민하연은 오히려 나락으로 빠지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바깥에 있던 민하연은 자신이 하지 않던 투정을 성수호에게 부리고, 평소에 하지 않던 짜증을 한봄에게 냈다.
민하연은 암흑으로 꽉 찬 방에서 어두운 미래를 떠올리며 한참을 울 수밖에 없었다.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이 어둠을 받아들이라는 속삭임만 들려오던 차에 어느 순간 그런 속삭임도 사라지고 홀로 남게 되었다.
“진짜… 이렇게 끝나는 거야?”
차라리 누군가에게 속아서 지옥에 떨어졌어도 이만큼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자기 몸이 모든 것을 망치는 모습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감에 휩싸인 것이었다.
절망감만큼 죄책감도 들기 시작했다.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성수호와 평생을 친하게 지내오던 한봄에게 하는 행동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스며들어왔다.
자신이 하지 않았음에도 민하연은 어느새 자신의 죄라고 받아들인 것이었다.
고작 몇 시간뿐이었지만, 민하연의 마음은 벌써 모래성처럼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죽을까?”
누가 들으면 어처구니없어할 이야기였지만, 민하연은 진심이었다.
지금 민하연이 떠올릴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회귀뿐이었다.
“내가 죽으면… 어쩌면 두 사람이 한여름을….”
하지만 무작정 자살을 시도할 수도 없었다.
만약 자살했는데, 자기 몸을 빼앗은 거울이 그대로라면?
거울이 오히려 자신의 기억을 완전히 흡수해버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민하연은 간지러운 볼을 슬며시 손으로 훑기 시작했다.
물기가 또 흐르고 있었다.
어둠 때문에 눈물이 나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감각이 무뎌져 가고 있었다.
민하연은 손으로 눈물의 촉감을 느껴지자 다시 감정이 올라오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수호야… 구해줘….”
그렇게 흐느끼는 순간, 그동안 조용하던 방 안에 귀를 찢을 듯한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뭐야!)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거울의 목소리는 민하연의 의문을 해결해주기도 전에 고통에 울부짖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싫어! 싫다고!!)
아까까지 자신만만하게 민하연을 조롱하던 거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거울은 누가 들어도 무슨 일을 당하는 것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서, 설마 그 악령이라는 녀석한테 잡힌 건가? 아, 안돼….’
민하연은 마지막에 성수호에게 짜증을 부리던 거울의 목소리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한숨을 쉬는 성수호의 목소리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동안 보여주던 다정한 모습이 아닌, 답답함이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민하연은 자신이 버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두려움을 가속하는 거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놔! 내 몸이야! 내 몸이라고!)
그렇게 울부짖는 거울의 목소리 다음에는….
(개소리하지 마. 그건 네 몸이 아냐.)
“어…?”
민하연은 또렷이 들리는 성수호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고 점차 빛이 새어 나오는 거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거울 바깥에서는 그토록 기다리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연이 내놔. 개 좆같은 새끼야.)
그 목소리와 함께 거울에서 하얀빛이 온 방을 뒤덮으며 그녀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
“흐으….”
민하연의 신음과 함께 나는 그녀를 비추던 거울을 옆으로 던지고는 말을 걸었다.
“하연아!? 괜찮아?”
“어…. 수, 수호야?”
“언니, 맞아? 언니 맞지!?”
“보, 봄아… 여, 여긴….”
민하연은 허리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며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삼인방과 한봄… 그리고 나를 보던 민하연은….
“여, 여기… 다, 다시 돌아온 거야? 나 다시 원래 몸으로 온 거야?”
“휴우… 다행이다. 하연이 맞나보네. 헉!”
“흐으윽… 흐아아앙!”
민하연은 갑자기 내게 달려들어서 와락 끌어안고는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수호야! 나! 나… 나 정말… 흐아앙!”
“빨리 못 구해줘서 미안해….”
“아냐! 미안해… 내가 너무 못나서… 흐으윽!”
나는 나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민하연의 얼굴을 양손으로 끌어안으며 사과했다.
“아냐, 내가 못나서 그랬어. 내가 좀 더 능력이 있었으면 빨리 구했을 텐데.”
“아냐! 내가 잘못했다니까! 내가… 내가 얼간이 같이 조심하지 않아서… 흐으윽….”
“아냐. 내가….”
“아니라니까! 내가 잘못을….”
나와 민하연은 끊임없이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투닥거림 사이에 있던 한봄은….
“그… 감동적인 상황이라는 건 이해하는데, 슬슬 다른 사람들 눈치도 생각해줘.”
우리와 같이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면서도 투덜거렸다.
“그래… 하연아. 일단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응… 그래도 내 책임이야.”
“하하….”
민하연은 울면서도 끝까지 지지 않고 마지막 응수를 두면서 내 품에 안긴 채 일어섰다.
그렇게 일어서고 나서 한봄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휴… 일단 언니도 찾았네! 그럼….”
그렇게 말하던 중에 한봄은 고개를 돌려서 누군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망토를 두르고 있던 남자는 한봄의 시선을 받자, 몸을 움찔거리며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언니를 이 꼴로 만든 저 새끼를… 어떻게 해줘야 할까?”
타케이치 소우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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