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9화 〉 459화 위그드라실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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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해결책을 찾느라 정신이 없어서 더디게 진행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빨리 진행하자.’
내 선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나는 성급하게 발걸음을 놀리기 시작했다.
진행 자체가 빠른 건 크게 문제가 없었다.
덤벼드는 녀석들은 전부 뇌속성에 증발되어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탐색 속도가 빨라질수록 민하연의 투덜거림은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하아… 가기 싫어.”
“….”
다들 투정을 부리는 민하연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갑자기 성격이 변한 듯한 민하연의 행동에 다들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녀를 쉽게 타박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현재 내가 이 파티의 리더가 된 건 어디까지나 실력 부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민하연이 이 맡았을 것이다.
실력과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여자들을 충분히 잘 이끌었을 것이다.
저주만 걸리지 않았다면….
“수호야, 돌아가면 안 될까? 나 너무 힘들어….”
“….”
그런 위치에 있는 민하연이 투덜거리니 다들 쉽사리 그녀를 타박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다른 멤버들도 민하연과 내가 깊은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 말하기 힘들 것이다.
서열이 정리되고, 굳어지면 사람들은 거기에 순응하기 마련이다.
그건 작은 단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나는 어떨까?
사실 나는 투덜거리는 민하연에게 한 소리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민하연에게 한소리를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저 거울이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답답하네….’
민하연의 몸에 들러붙은 거울이 그녀의 몸을 가지고 무슨 짓을 걱정이 되어서 얌전히 맞춰주고 있던 것이었다.
일단 단순하지는 않지만, 해결책을 알아낸 이상 조용히 말에 맞춰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회귀를….]
‘아냐. 그건 최후야. 당연하다는 듯이 회귀를 해결책으로 내세워서는 안 돼.’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회귀를 하면 민하연은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분명 확실한 해결책이었지만, 정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회귀를 이용하는 건 한여름으로 족해. 민하연이랑 한봄은… 최대한 회귀에 휩쓸리지 않게 해주자.’
[…알겠습니다.]
아르모니아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만큼은 최후의… 최후였다.
그저 한여름을 이용하기 위해 회귀를 이용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이렇게 거울 속에 갇힌 민하연을 놓고 회귀를 한다?
그렇게 가버린다면 평생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민하연을 보면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것 같았다.
나는 계속 투덜거리는 민하연을 보면서 말했다.
“그럼 잠시 쉬자. 하연아, 너는 텐트 펴고 자도 돼.”
“흐음… 정말 그래도 돼?”
“응. 아까 고생했으니까, 잠깐 눈 좀 붙여도 돼.”
“그러면….”
민하연은 내 허락에도 불구하고 따로 텐트를 만들지 않고 내게 다가와서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나랑 같이 쉬자.”
“아냐. 나는 경계 서야지.”
“에이… 싸우는 건 너 말고도 다들 잘하잖아. 응?”
“…그래.”
나는 그렇게 대답한 뒤, 다른 멤버들을 향해서 양해를 구했다.
당연하게도 삼인방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쉬세요. 경계 정도는 저희도 충분해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뛰쳐나올게요.”
“네.”
그 와중에 한봄이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눈을 몇 번 껌벅이는 것으로 대충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줬다.
한봄은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살며시 끄덕거리더니, 삼인방 곁으로 이동했다.
민하연은 텐트를 설치하자마자 내 팔을 잡아당기면서 웃었다.
“자, 들어가서 쉬자~”
“….”
그렇게 민하연의 손에 이끌려 텐트로 들어가고 있을 때, 채팅창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야… 너 이상한 거 못 느껴?
나는 게꼬수의 채팅을 보며 채팅 대화로 입을 열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려고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아하, 너도 알고 있긴 하구나?
“그럼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에이씨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입 닫고 볼걸.
나는 게꼬수의 채팅을 보면서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요? 말해주면 재미가 덜해서 그래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그런 게 뭐가 재미있다고? 십만 포인트 날려서 그렇지.
“십만 포인트요?”
갑자기 의문의 십만 포인트 증발설을 발표하니 어리둥절했다.
지금 이 대화랑 십만 포인트가 뭔 상관인가 싶었지만….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아까 너한테 넌지시 힌트 알려주는 조건으로 십만 포인트 차감 당했음
“헐… 그런 거로 뺏어가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ㅇㅇ 미친놈들이야. 보안 유지다 뭐다 하면서 죄다 뺏어감
생각해보면 보스전에서도 함부로 정보를 알려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모든 소환사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정보도 미리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채팅의 존재들의 규칙이라고 했다.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뭐, 네 덕분에 포인트 쏠쏠하게 벌어서 괜찮긴 해. 그래도 허투루 날려서 그런지 아깝네….
채널의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보고 있는 소환사의 실적에 따라서 포인트를 받는다.
특히 나는 0층과 1층을 그냥 통과도 아닌, 보스전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올라온 소환사였다.
꽤 많은 포인트를 받았을 테니 10만 정도는 버려도 되는 셈 쳤다는 것이었다.
“오… 진짜 고마워요.”
빈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고마움이 느껴졌다.
언제나 내가 죽는 걸 보기 싫다면서 보스전 나가던 양반의 진심이 좀 더 깊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진심 속에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그럼 딸 좀….
“….”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딸딸이… 제발… 플리즈….
그놈의 딸딸이라는 목적의식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신화 속에 딸딸이 치다가 죽은 영웅이나 신이 있었나?’
[일단 저는 못 들어봤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게꼬수의 채팅을 바라봤다.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해결책까지는 나도 알려줄 수 없어. 그거 알려주면 포인트 차감이 아니라, 자칫 이번 시즌 채널 입장 금지 걸릴 수도 있어….
“에이, 그렇게는 저도 바라지 않아요. 고마워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고마우면….
“일단 나중에 이야기해요~”
└게이 같은 꼬추의 수호자: 꼬추 새끼들 죽어라….
꼬추의 수호자가 자꾸 꼬추 새끼들 죽으라고 하네….
어차피 딸딸이 해달라고 투정 부릴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로 말을 돌리며 민하연과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민하연은 나를 껴안으며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흐흐… 드디어 이렇게 단둘이 시간을 갖게 됐네?”
“그러게.”
“…왜 그래? 화났어?”
나는 일단 모르는 척하면서 퉁명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화난 거 아냐. 다만 아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식의 말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화난 거 맞는 거 같은데?”
내 눈앞에 있는 민하연은 평소의 민하연이 아니었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툴툴거리는 모습은… 도저히 내가 알던 민하연과 매칭이 되지 않았다.
가끔 비슷한 표정을 짓더라도 거기에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던 그녀였는데… 지금은 완전 다른 사람처럼 짜증을 진심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마치 한여름에게 대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나갈래… 귀찮아졌어.”
몸을 획 돌려서 텐트를 나가려던 민하연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하연아, 미안해.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야.”
“나 이제 던전 나갈 거야. 놔줘.”
“일단 진정하고 내 말 들어, 어차피 혼자 돌아갈 수도 없잖아.”
내 말대로 민하연이 뛰어난 궁사라고 해도 달려드는 여러 마리의 혼령들을 혼자서 제압하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민하연은 내 말을 듣지 않고 억지를 부리기 시작했다.
“나 혼자 갈 수 있어. 너랑 이렇게 있는 것도 싫어졌어.”
“…이 일만 해결하면 바로 돌아가자.”
“싫은데? 나 지금 당장 갈 거야.”
이제는 아예 캐릭터 붕괴까지 넘어서는 민하연의 모습을 보면서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 쌍둥이 거울인가 뭔가를 구하는 거야 어떻게든 구한다 쳐도… 이대로 계속 휘둘리면 나중에 하연이가 더 힘들어할 거 같은데….’
지금 눈앞에 있는 민하연의 투정이나 짜증을 받는 건 전혀 화나지 않았다.
다만 걱정이 되는 건 진짜 민하연이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가 죄책감을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걱정되었다.
내가 아는 민하연은 분명 지금 일을 간직하고 죄책감을 가질 테니까….
결단을 내려야 했다.
‘안 되겠다.’
[…?]
나는 내 팔을 거칠게 뿌리치려는 민하연을 향해 마법진을 구사했다.
..
..
텐트를 나오자마자, 주변에 있던 여자들이 내게 시선을 쏟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눈동자는 내 얼굴에서 점차 올라가더니, 내 머리 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두 당황하는 와중에 제일 당황해 보이는 한봄이 내게 다가와서 당황하며 내게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아, 아저씨….”
나는 한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보면서 말했다.
“빨리 출발하죠.”
“아… 아저씨… 그거 머리 위에….”
한봄이 가리키는 손가락을 응시한 나는 천천히 그녀의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머리 위로 향했다.
내 머리 위에는….
“괜찮아. 일단 빨리 진행하자.”
주황색 보석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
..
처음 내 모습에 한봄이 안절부절못하며 횡설수설 입을 열었지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녀를 진정시켰다.
일단 이 일에 관해서 한동안 이야기를 담지 말 것을 경고하듯 말했다.
만약 잠재운 민하연의 몸을 빼앗은 거울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흉계를 꾸밀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인방도 내 말을 듣고 뭔가 좋지 않은 상황에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의 말도 없이 내 말을 순순히 따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잠든 민하연을 업은 채 다른 멤버들을 이끌고 빠르게 동굴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민하연을 업는 도중에 적의 습격을 받았고, 이번에도 손쉽게 내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번의 습격을 해결하고 나서….
“하연 씨는 제가 업고 갈게요.”
손혜은이 직접 나서서 자신이 민하연을 업고 가겠다고 한 것이었다.
“괜찮은데….”
“아니에요. 지금 주력은 수호 씨잖아요. 제가 하연 씨를 업고 갈 테니, 최대한 빨리 진행해주세요.”
“…네.”
이미 모든 멤버가 민하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빨리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나는 손혜은에게 민하연을 넘겨준 뒤, 다시 던전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도시?”
드넓게 펼쳐진 어두운 도시이었다.
지금까지 거쳐온 동굴과 같은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장소가 등장한 것이었다.
으리으리한 석조 건물들과 화려하게 세공된 바닥….
그동안 지나온 동굴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해가 비치지 않아서 어둡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동굴에 비해서 그나마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는 이유는 곳곳에 설치된 횃불 덕분이었다.
그 횃불에서는….
“으스스하네요. 보라색 불이라니….”
보라색 불꽃이 계속 피어오르면서 주변을 보라색으로 물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도시를 이동하던 우리는 어느새 큰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한봄이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며 내게 말했다.
“아저씨… 여기 너무 위험한 거 아닐까요?”
삼인방도 한봄의 말에 동의하듯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봄과 삼인방은 합을 맞추며 싸워왔고, 그만큼 주변 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거쳐온 기다란 동굴은 그녀들이 싸우기에 적합했지만, 지금 있는 장소는 너무 탁 틔어서 다수의 공격을 감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이 광장에 들어선 이유는 단순했다.
“걱정하지 마. 일부러 온 거니까.”
“….”
내 말과 함께 숨어 있던 기질창이 점차 드러나면서 우리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질창에는 한결같이 모두 똑같은 기질들이 적혀 있었다.
[최면 세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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