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8화 〉 458화 위그드라실 (46)
* * *
민하연은 흐트러진 머리를 좌우로 휘날리며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 여긴 어디야?”
낡아빠진 장식들로 이루어진 허름한 방.
그리고 독특하게 한쪽 벽면이 모두 거울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거울 너머에는….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아냐. 흐흐흐….)
자신의 거대한 얼굴이 거울 너머에서 자신을 보며 비웃고 있었다.
민하연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수호야! 봄아! 혜은 씨!”
민하연은 성수호와 한봄을 포함해서 모든 동료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의 외침에 답해주는 존재가 있었다.
(아까는 장난친 거야.)
거대한 거울 너머에 있는 자신이었다.
그리고 그 거울 너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하울링 처리가 되어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난 또… 화난 줄 알았지.)
거울 너머에 자기 모습뿐만 아니라, 성수호의 모습도 조금씩 비치기 시작했다.
민하연은 거울 너머에 있는 성수호의 모습을 보고는 다급하게 거울로 다가가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수호야! 나야! 수호야!!!”
하지만 거울 너머에 있는 성수호는 자신에게 어떠한 눈길도 주지 않고 거울 너머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한 여자와 대화할 뿐이었다.
(에이… 내가 설마 그런 걸로 화내겠어.)
(다행이다. 일단 정리하고 진행하자. 그런데….)
그제서야 성수호의 눈길이 거울 안에 있는 자신에게 향하기 시작했다.
(그 거울은 뭐야?)
민하연은 성수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발광하듯 거울을 있는 힘껏 두드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수호야!!! 나야!! 나 여기 있다고!!”
하지만 민하연의 절박한 외침과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성수호의 표정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응한 건 거울 너머에 있는 자신의 존재였다.
(전에 상점에서 산 거울이야.)
(거울?)
(그럼… 나도 거울은 보고 살거든?)
(하하… 그래, 그럼 슬슬 다시 출발하자.)
(응.)
거울 너머에 있는 민하연은 평소에 민하연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말과 행동, 모든 것이 자신을 닮아 있었다.
“뭐… 뭐야. 도대체 이게 무슨….”
민하연은 거울 너머에 있는 성수호가 사라지는 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민하연의 눈에는 그제서야 거울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민하연을 볼 수 있었다.
다시 거울을 두드리면서 외치기 시작했다.
“뭐야! 뭐냐고 이게!!!”
답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민하연에게 예상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여기서 사람 몸을 얻을 수 있을 줄은 몰랐네.)
분명 거울 너머에 있는 민하연은 거울을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와 똑같은 목소리가 하울링 처리가 되어서 방에 울리고 있었다.
민하연은 자기 얼굴을 보며 외쳤다.
“뭐, 뭐야! 너 누구야!!”
(누구긴 이 거울, 아니… 그 방의 주인이지.)
“주인…?”
민하연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지금 일어난 상황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거울이야! 거울을 보자마자 이렇게 됐어! 내 몸을 뺏은 저 녀석이 원흉이라는 이야기야!’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침착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를 빨리 꺼내줘! 빨리!”
(흐흐흐… 미쳤어? 진짜 육신을 얻었는데, 그냥 포기하라고? 웃기지 마.)
“….”
다른 사람들이라면 호들갑을 떨면서 난동을 피웠을 상황에서도 민하연은 침착하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면 있다고 가정한 뒤, 침착하게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것이 민하연의 장점이었다.
허둥지둥해봤자 지금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민하연의 모습에 상대방은 그녀를 비웃기 시작했다.
(흐흐흐, 거기서 얌전히 놀고 있어. 나중에 또 상대해줄게.)
거울 너머에 있던 민하연은 괴상한 미소를 짓더니, 화면이 전환되면서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거울이 비추는 장면은… 주머니였다.
그리고 동시에….
“….”
그나마 거울로 빛이 들어오던 방은 새까맣게 어둠에 잠기기 시작했다.
민하연은 새까만 어둠 속에서 불안감을 품으며 손을 꽉 쥐기 시작했다.
‘나가는 방법을 찾아야 해! 빨리….’
..
..
콰당!
“하윽!”
민하연은 넘어진 채 주변에 손을 뻗으며 자신을 넘어뜨린 존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의자? 하아….’
민하연은 자신과 나란히 쓰러져 있는 의자를 손으로 느끼며 조심스럽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을 넘어뜨린 의자를 다시 제대로 세운 뒤, 그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민하연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나도 안 보여… 이래서는….’
어둠이 짙게 깔린 방은 그저 밤이 드리운 수준이 아니었다.
어둠 그 자체였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손을 쭉 뻗어서 모든 감각을 촉각에 곤두세우며 주변 물체를 확인하며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빛줄기 하나 없는 이곳은 민하연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민하연은 의자 앞에 있는 식탁을 느끼고는 홧김에 주먹으로 내려찍었다.
쾅!
그 순간이었다.
(가구를 소중히 해주지 않겠어? 이제 네가 평생 살아야 할 장소인데? 흐흐흐….)
“…빨리 내보내 줘.”
(하하하! 내가 왜? 이런 좋은 몸을 가지고 돌려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지금 내보내 주면 용서해줄게. 빨리….”
민하연의 제안에 방 안에는 큰 웃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매번 갇히는 녀석들은 꼭 그 말을 하더라? 좀 다른 레퍼토리는 없어?)
거울이 도발하듯 비웃음 소리를 방 안에 퍼트려도 민하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수호가 분명 알아차릴 거야.”
민하연은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 수 있겠지만, 성수호라면 분명 금방 알아차릴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민하연에게 성수호는 그정도로 신뢰감이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흐흐흐… 네 기억을 보니까 정말 그 정도로 재능이 있어 보이네. 그렇다면….)
“…? 흐읏.”
아까까지 어두웠던 방이 다시 환한 빛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동굴 안에서 비치는 랜턴에 의한 빛이었기 때문에 환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어둠에 익숙해진 민하연의 동공이 고통받기에는 충분한 광량이었다.
민하연은 눈을 가리며 간신히 빛에 적응하며 시야를 조절할 수 있었다.
거울 너머에 있는 몸을 빼앗은 민하연이 자연스럽게 거울을 꺼내서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알아차리기 전에 손을 써야겠네.)
“손?”
민하연이 의아한 틈을 타서 거울 밖에 있던 민하연은 성수호에게 다가가서 갑자기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수호야, 이거 빨리 끝내면 안 돼?)
(그럼 좀 더 빨리 진행해볼게.)
(그게 아니라… 수호, 네가 확 끝내버릴 수 있잖아? 나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어서 그래.)
(음….)
(아니면 일단 돌아가는 거 어때? 아까 고생했잖아. 나 쉬고 싶어….)
거울 밖에 있는 성수호의 표정은 평소에 보여주는 것과 다르게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민하연에게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그럼 표정이었다.
“아, 아냐! 수호야! 저 녀석 나 아냐!!”
(흐흐흐….)
민하연의 절박한 외침은 성수호에게 닿지 않았다.
그리고 성수호와 민하연의 사이에 끼어든 건 다름 아닌 한봄이었다.
한봄은 쓰게 미소를 지으며 거울 밖에 있는 민하연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언니, 좀만 참자. 이런 경험도 해봐야지.)
한봄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웃으며 민하연에게 설득과 위로를 동시에 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거울 밖의 민하연은….
(이미 꽤 고생했잖아. 어차피 수호가 밀면 다 끝나는데, 굳이 어렵게 갈 필요 없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한봄은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민하연의 모습에 당황하며 쉽게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 한봄의 모습에….
“봄아! 아냐!! 너 나 알잖아!! 그런 말 하지 않는 거 알잖아!!”
하지만 민하연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한봄은 삐질삐질 거리며 쓰게 웃을 뿐이었다.
(하, 하긴… 사실 나도 좀 힘들었어. 아저씨, 하연이 언니 말처럼… 좀 더 빨리 진행해주면 안 될까요?)
(흠… 그래, 좀 더 빨리 진행할게.)
민하연은 알고 있었다.
한봄은 자기 할 말이 있으면 속에 쌓지 않고 그대로 내뱉는 성격이라는 것을….
하지만 없는 생각을 일부러 만들어내서 내뱉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런 한봄이 민하연도 아닌, 민하연의 몸을 빼앗고 속이는 녀석의 눈치를 보며 속에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다.
결국 한봄의 설득으로 일행은 더 빠르게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냐! 봄아! 아니라고!! 수호야! 그 녀석, 나 아냐!!”
(흐흐흐….)
민하연의 몸을 빼앗은 거울은 외부에서 입을 열지 않고 방에 웃음소리만 낼뿐이었다.
민하연은 거울을 두드리면서 격한 외침을 내뱉었다.
“하지 마!!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왜? 이유가 따로 있어? 그냥 네 몸이 너무 좋아서 그렇지.)
“그럼 오히려 잘 해야 할 거 아냐! 왜 이런 짓을….”
(흐흐흐… 잘해? 아니지… 이런 몸을 가지고 이런 던전에 다시 올 거 같아?)
“…뭐?”
민하연의 몸을 빼앗은 거울은 앞으로 할 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던전에서 평생을 살아왔어. 그리고 간신히 얻은 게 너의 몸이지. 이걸로 평생 즐겁게 살아줄 테니 걱정하지 마.)
“웃기지 마! 어차피 다른 곳을 가더라도 던전은 들락날락해야 해! 그렇게 고생하기 싫으면….”
(굳이 던전 따위는 들어갈 필요 없지.)
“…뭐?”
(이런 훌륭한 몸을 가지고 그 고생을 왜 해? 여기 있는 녀석들 부려 먹다가 나가떨어지면 적당히 능력 좋거나, 돈 많은 남자들 골라서 즐기고 다니면 되지.)
“…뭐?”
민하연은 거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저… 정말 그런 짓을 한다고? 내 몸으로?’
몸이 빼앗겼다는 것에 정신이 팔렸던 민하연은 암담한 미래가 펼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진정한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보니까… 남친이 엄청나게 잘 생겼네? 능력은 좆도 없는 거 같지만….)
“…?”
두려움에 떨던 민하연은 의아함이 들었다.
‘내 기억을 모두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의 머릿속에 기억하는 한여름이 한심하긴 했지만, 그의 능력을 누가 들어도 기겁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회귀 사실… 그걸 거울은 모르고 있는 듯 보였다.
민하연의 기억을 알고 있다면 회귀도 인지했을 것인데 모르는 것이, 의아함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의아함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 정떨어지게 하려면 그 남친이 필요하겠네. 돌아가자마자 그 한여름이라는 녀석 이용해서 성수호의 정이나 떨어뜨려 볼까?)
“웃기지 마!! 내 몸이야!”
(내 몸? 흐흐흐… 맞아, 내 몸이지. 이제부터 실컷 써줄게!)
거울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민하연의 시야는 다시 어둠 속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이게….’
아까까지 성수호와 대화를 나누며 더 열심히 노력하고, 성장하겠다고 다짐했던 민하연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차라리 싸우다가 죽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허무하게 자신의 몸을 빼앗겨서 그 몸이 희롱당하는 모습을 평생 봐야 한다는 생각이 민하연에게 극심한 공포심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자와 동생에게 버림받고, 망가지는 자기 모습을 봐야 하는 상황.
어둠으로 잠기는 거울의 너머에 있는 성수호의 얼굴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수호야… 구해줘….”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말과 함께 방은 다시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
나는 민하연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거울을 유심히 보면서 통신으로 물었다.
‘아르모니아, 지금 당장 해제할 방법은 없어?’
[없습니다. 일단 한봄의 말대로 빨리 진행해서 이곳의 악령이라고 불리는 자를 찾아서 추궁하는 것이 해결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래, 빨리 진행하자.’
나는 투덜거리는 민하연의 모습을 보면서 기질창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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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민하연
기질
[무술], [타나토스의 거울], [영혼 탈취 상태], [침착함], [정신집중], [신중함], [신뢰 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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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스의 거울]
타나토스의 영혼 조각이 깃든 거울.
타나토스의 신전을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거울로, 거울을 바라본 자의 영혼과 교환해서 육체를 조종할 수 있다.
파괴 불가 속성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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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급 상태 이상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빼곡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 눈에 거울의 설명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마지막 문장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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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방법은 신화 급의 상태 이상 해제를 하거나, 같이 만들어진 쌍둥이 거울을 이용해서 다시 영혼을 교체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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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하연의 주머니 속에 완전히 자취를 감춘 거울에서 시선을 뗀 뒤,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빨리 구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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