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6화 〉 456화 위그드라실 (44)
* * *
사람은 자고로 심장이나 뇌가 뚫리면 사망한다.
심지어 그런 치명상 아래 등급에 있는 장기들이 손상당해도 죽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출혈이 심해서 죽기도 하고, 더 한참을 나아가서 가벼운 상처에 파상풍으로 죽기도 한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 인간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난 영혼들은 어떻게 죽을까?
묘지기의 말에 의하면 잊혀짐이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다 보면 자연스레 본인의 기억도 잊고, 나아가서 자기 내면에 품었던 억울함도 사라져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즉, 영혼은 그저 칼과 화살, 마법에 맞는다고 죽지 않는다.
하지만….
“히익! 크악!!”
“크억… 사, 살려줘….”
죽지는 않지만, 죽는 기분을 다시 맛보여줄 수는 있었다.
영혼 상태에서도 공격받으면 그 감각은 온전히 혼으로 전해진다.
오히려 살아있을 때보다 더 크게 고통을 느낀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뼈가 아린 고통을 느끼더라도 기절만 하지 않는다면 무한히 싸울 수 있는 것이 혼령이라고 설명해줬다.
‘신성 계통의 마법에는 소멸하지만, 아직 한봄은 그런 능력이 없기도 하고….’
나는 잡생각을 하면서 파티원들을 한 번씩 훑어봤다.
근거리에 특화된 박선희와 박진희가 방어하며 버티고, 그 사이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적을 창을 쓰는 손혜은과 활을 쏘는 민하연이 요격한다.
그리고 한봄은 박선희와 박진희가 상처를 입는 즉시 그녀들에게 힐을 퍼붓고 있었다.
나는 치열하게 싸우는 다섯 명의 여자를 보면서 감탄했다.
‘와… 생각보다 잘하는데?’
[능력치를 올린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능력치를 올리지 않고, 왔다면 시작하자마자 바로 박선희와 박진희가 밀려서 전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능력치가 만능이었을까?
저 유령 패거리들의 능력치 레벨은 대강 8~10을 지니고 있었다.
레벨만 따지면 여기 있는 여자들과 비슷한 수준들이었다.
사실 레벨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
[1층 보스전에서 겪었던 디펜스 덕분에 서로 합을 완벽하게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디펜스에서 대규모 전투를 겪었던 다섯은 완벽하게 합을 맞추며 싸우고 있었다.
다인 전에서는 절대 혼자의 실력만으로 승리를 거머쥘 수 없다.
특히 아무리 물량이 많아도 오합지졸이라면….
“뭐해! 빨리 죽여! 아니… 아니! 빨리 제압해! 죽이면 안 돼!!”
혼자 싸우는 것만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저 멀리서 화살을 맞고 낑낑거리는 벤 크래쉬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한 발을 머리에 맞고 죽을 만큼 고통을 느끼며 도망쳤던 녀석이 입만 살아서 계속 혼령들을 타박하고 있었다.
화살 한 방 더 쏴서 죽을 만큼 아픈 고통을 더 느끼게 해줄까 했지만….
“너도 나가서 싸워! 지금 뭐 하는 거야!”
“나, 머리에 화살 맞은 거 안 보여!”
“화살 빼고 싸우라고 멍청아!”
“환자야! 환자!”
벤 크래쉬는 오히려 오합지졸인 혼령들의 사기를 장작 패듯이 신나게 두드려 패주고 있었다.
놔두는 편이 우리를 위해서 더 낫다고 판단했다.
‘통로형이라 다행이네. 만약 방사형이나 평지였으면 절대 이렇게 못 싸웠을 텐데.’
기다란 통로형 덕분에 커버해야 할 적의 숫자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었다.
전투 환경과 스타일은 지금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하지만 그런 압도적인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전투가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혼령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을지언정 죽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기절하거나 도망친 혼령들이 꽤 됐지만, 아직 어둠 너머에서 많은 혼령이 우리를 노리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몸에 상처가 나면 한봄이 치료해주고, 서로의 합이 완벽하게 맞는다고 해도 결국 체력적인 한계가 존재했다.
“하아, 하아, 하아!”
1층 디펜스의 경우에는 전투 중간마다 휴식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체력을 보충할 시간이 충분했었다.
하지만 지금 전투는 상대방이 쉴 틈을 주지 않고 있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혼령들도 멀리 빠져서 회복하고 다시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우리 파티원들은 단 1초도 쉬지 못하고 무기를 휘두르고, 능력을 난사하고 있었다.
아직은 버틸 수 있겠지만, 분명 무너지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읏!”
방어에 치중하던 박진희가 공격당하면서 한쪽이 빈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혼령들이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그들도 상황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잡아!”
“일단 한 명만 잡으면! 끄아아악!”
박진희에게 달려들던 혼령 두 명의 머리에 창이 연쇄로 꽂히면서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친 박진희를 뒤로 끌면서 그녀의 자리를 대신한 손혜은이 외쳤다.
“일단 치료해주세요!”
“네!”
한봄은 뒤로 빠진 박진희의 깊은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들을 보면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와… 아슬아슬했네. 손혜은이 확실히 행동파네.’
예전 쇼크 비 때도 제일 먼저 덤볐다가 팔이 물어 뜯겼던 여자가 바로 손혜은이었다.
막무가내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용기가 있다는 측면이 강했다.
그리고 그 용기 덕분에 지금 상황도 모면한 것이고.
하지만….
[슬슬 체력적인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멤버들의 체력이 한계라는 것이 대충 눈으로 봐도 인지할 수 있었다.
평소에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민하연조차도 서서히 땀을 흘리며 화살을 난사하고 있었다.
원거리에서 서포터하는 민하연이 그 정도였다.
다른 멤버들은 훨씬 상황이 심각했다.
흘리는 땀이 그녀들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는 건지 눈가로 흐르는 땀을 훔치는 데에 시간을 소모하기도 했다.
심지어 평소에 땀을 많이 흘리는 한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무리 몸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능력을 사용하면 그만큼의 집중력을 소모하기 마련이다.
한봄은 폭포수 같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슬슬 진압해볼까.’
[안구를 사용하실 겁니까?]
‘아니~’
사실 아까까지는 케르베로스의 안구를 이용해서 편하게 굴복 시킬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활시위를 당기면서 생각했다.
‘마법 사용하자.’
[마법… 말씀이십니까?]
‘응, 역시 나도 레벨을 올려야겠어.’
모든 능력은 재능으로 일단 발현이 되면 노력으로 레벨을 올리는 게 가능하다.
에넬이 있다면 그런 것조차 순식간에 뚫어버리겠지만, 에넬은 무한하지 않다.
‘이왕이면 계속 사용하면서 레벨 1이라도 올리면 에넬을 덜 쓸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
[현명한 판단입니다.]
에넬은 만능이다.
그만큼 아껴 쓰고, 비축해놓는 것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영혼이라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저 멀리서 쉬고 있는 혼령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외쳤다.
“역시 뇌속성도 잘 먹히겠지!?”
내가 외치는 순간, 저 멀리 어둠 너머에서 노란 불빛이 섬광이 내려치듯 혼령들을 감전시키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파지지지직!!
“끼에에에엑!!”
“꾸아아아악!!”
안심하고 쉬고 있던 영혼들은 노란 전류를 맛보더니, 연기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
그리고 이어지는 정적….
전투가 갑자기 멈췄고, 영혼들뿐만 아니라 파티원들도 나를 조심스럽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잘못 봤나 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영혼들은 분명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내 뇌속성 마법을 맞은 녀석들은 연기가 되어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시 한번 손을 뻗어서 바로 눈앞에서 손혜은과 대치하던 영혼에게 뇌속성 마법을 갈겼다.
파지직!
“끼에에엑!!”
그 녀석도 내 마법을 맞더니,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정적 속에서 더 깊은 정적으로 빠지는 분위기.
심연 속으로 빠지듯 침묵하던 혼령들은….
“사….”
“사…?”
“살려줘!! 도망쳐!!!”
다들 갑자기 서로 밀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동료애나, 전의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생존을 위해 발악하는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흡사 좀비 무리에 쫓기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밀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굴은 어느새 다시 침묵만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침묵의 중앙에는 내가 있었다.
나는 그 중앙에 서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면 여자들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 일일까?”
..
..
다들 지쳐서 쓰러진 와중에도 내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는 않았다.
나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삼인방을 향해 말했다.
“저야말로 너무 혹독하게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어서 죄송합니다.”
다른 여자들도 충분히 감사하며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그중에 손혜은이 유독 적극적으로 내게 감사하고 있었다.
“설마요! 오히려 고맙죠. 저희가 이렇게 싸울 수 있게 된 건 전적으로 수호 씨 덕분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습니다. 일단 쉬세요.”
“네.”
다들 내 말과 함께 주저앉거나, 바닥에 드러누워서 쉬기 시작했다.
동굴이 더럽거나 혐오스러운 장소는 아니었지만, 편하게 누워서 쉬기에는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저렇게 누워서 쉰다는 건 이곳 생활에 적응한 것도 있겠지만, 아까의 전투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힘들어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 건 단연코 한봄이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서 한봄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바로 손사래를 치며 후다닥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오, 오지 마요!”
“…?”
설마 아까 마법 때문에 겁을 먹은 건가 싶어서 갸우뚱하는 중에 한봄이 얼굴을 붉히며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그… 그게… 나 지금 땀 많이 흘렸어요.”
“…? 그건 대충 봐도 알아.”
그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충 눈에 보였다.
한봄 특성상 핫팬츠에 하얀 티셔츠를 입는 편인데, 그녀의 몸은 모두 비쳐질 정도로 옷이 젖어 있었다.
심지어 뒤로 크게 묶은 포니테일조차 물기에 젖어서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였었다.
확실히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보다 훨씬 많은 땀에 젖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봄은 눈을 꽉 감으며 손을 파닥파닥 흔들었다.
“그, 그러니까 오지 마요.”
“에이,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나는 호들갑을 떠는 한봄을 보며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접근했지만….
한봄은 살짝 정색하면서 나를 뚱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진짜 오지 마요. 제발….”
“….”
진짜 싫은 것 같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거기에 있어. 바람이라도 쐐줄게.”
“흐어어… 고마워요.”
한봄은 내 바람 마법에 몸을 으스스 떨더니, 폴짝거리며 기쁘게 춤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한봄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여유 되면 바람 마법 가르쳐줘야겠다. 선풍기 대용으로는 딱 맞겠지.’
아직은 나와 동행하니까 문제는 없겠지만, 훗날 나와 떨어져 있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최소한 더위에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그렇게 멀찍이 한봄에게 바람 마법을 사용하고 있을 때, 민하연이 내게 다가와서 허탈하게 입을 열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결국 마법 한 방에 다 해결해버렸네.”
“에이… 그냥 상성이 맞았을 뿐이지.”
나는 아까 뇌속성 마법을 사용하면서 내가 모르는 뇌속성 마법에 대해서 하나 더 알 수 있었다.
혼령에게 뇌속성 마법은 엄청 치명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전격 계통과 신성 계통은 같지는 않지만, 뿌리는 같습니다. 그래서 혼령에게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그래도 설마 소멸시킬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네.’
[아마 출력을 낮추면 큰 충격을 주는 선에서 멈출 것입니다.]
일부러 출격을 강하게 잡고 쏘기는 했었다.
애초에 레벨업을 목표로 잡고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으니까.
아마 죽기 전에 항마력이 강했던 혼령이라면 훨씬 더 오래 버틸 것이다.
민하연은 나를 나지막이 바라보며 조용히 침묵하기 시작했다.
뭔가… 굉장히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래? 혹시 아까 다쳤어?”
“그런 건 아냐… 그냥… 나도 너처럼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었어.”
처음에는 질투심을 가져서 한 말인가 싶었지만, 민하연의 고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좋았어. 너한테 도움받는 게. 그런데… 계속 도움만 받으니까 이제 모르겠어. 이게 정말 괜찮은 건지.”
질투가 아닌 부담감이었다.
생명체는 자신의 생명이 걸려 있다면 어떠한 도움에도 절대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하지만 그 목숨이 걸린 상황이 점차 익숙해지면 자기가 받아내던 부담감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아마 민하연도 슬슬 그런 단계에 접어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내게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민하연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중얼거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제 막 시작이잖아. 분명 기회가 많이 올 거야.”
“…그럴까?”
“그럼. 오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 잡아끌어서라도 데리고 올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치… 결국 도움받는 거네.”
민하연은 내게 안긴 상태로 고개를 팽 돌리며 다른 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연이 너 아니었으면 나도 0층에서 죽었을 거야.”
“네가? 잘 헤쳐 나왔을 거 같은데?”
나는 민하연의 투덜거림에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말했다.
“회귀한 한여름한테 속아서 된통 당했겠지.”
“아….”
민하연의 입장에서 나는 회귀를 인지 못 하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0층에서 나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나를 쫓아 와준 경험이 있었다.
나는 우물쭈물하는 민하연을 뒤에서 끌어안으며 그녀의 귀속에 입술을 파묻고 속삭였다.
“너는 나한테 생명의 은인이야. 그러니까 나를 한동안 부려 먹어도 돼.”
“…너는, 정말이지.”
민하연은 그제서야 우울함이 풀렸는지 나를 보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있던 한봄이 투덜거리며 나와 민하연이 들리게 입을 열었다.
“이제는 아예 숨길 생각도 안 하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