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3화 〉 453화 위그드라실 (41)
* * *
아틀러에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함선으로 복귀했다.
여명의 신호인 옅은 태양 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음에도 루이스는 카린의 침대 밑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레나의 말에 의하면 어느 정도 움직임이 감지되는 것을 봐서는 잠을 자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루이스가 도망칠 수 있는 빈틈을 만들어주고자, 카린과 안나를 조심스럽게 재운 뒤 방을 떠났다.
그 이후, 혹시 몰라서 루이스가 카린과 안나에게 허튼짓을 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 은신으로 지켜봤지만….
“그래도 지 엄마랑 누나라서 그런지 허튼짓을 하지 않았네.”
얌전히 자기 방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만 돌아가는 내내 좀비처럼 몸을 절뚝거리는 모습이… 뭔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다친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 정도?
“아마 수호 님께서 자리를 비우는 사이에 큰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좋아!”
예상치 못한 수확을 거두었다.
카린과 안나.
그 두 여자를 내 손아귀에 넣었다.
“루이스… 잘생긴 얼굴만큼 예쁜 엄마와 누나를 뒀구나…. 고맙다.”
나의 흐뭇한 미소에도 불구하고, 아르모니아는 무표정으로 계속 이야기를 진행했다.
“일단 이번에 조디악 측에서 100만 에넬을 보냈습니다.”
“오우… 많이도 줬네.”
1주마다 받던 것에 비해서 훨씬 많은 에넬의 양이었다. 그만큼 아르모니아가 보고를 잘한 모양이었다.
다만 이 이야기는 그만큼 특출난 보고가 없다면 더 줄어들 것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특히 마법을 많이 사용해서 그런지 마법력과 몇몇 속성들의 레벨이 조금씩 올라 있었다.
[마법력 LV 15], [항마력 LV 1], [마법진 구사 LV 43], [화속성 LV 5], [수속성 LV 3], [풍속성 LV 5], [토속성 LV 1], [뇌속성 LV 13]
나는 책상 위에 띄워져 있는 내 기질창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진짜 찔끔찔끔 오르네.”
이번에는 나름 마법을 최대한 활용해서 성장을 목표로 진행했지만, 결국 올라간 건 쥐꼬리만큼의 능력들 뿐이었다.
“원래 성장이라는 게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에넬을 벌어들인 다음 능력을 올리는 것에 중점을 두시는 게 좋습니다.”
결론은 에넬이 짱이다라는 의미였다.
아르모니아는 바로 다음 이야기를 진행했다.
“다음 목적지는 위그드라실입니다.”
“좋아. 아! 맞다!”
“…?”
“위그드라실 갔다 온 다음에 거기 가자.”
“…거기가 어디입니까?”
아르모니아는 순수하게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갸우뚱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아르모니아에게 손가락으로 뻗으며 말했다.
“마왕성!”
..
..
위그드라실에 오면 언제나 하는 행동이 있다.
“흐으으음~”
바로 대자연의 상쾌한 공기를 폐에 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폐에 담긴 건….
“절에서 나는 향초 냄새 같은데?”
죽은 자를 기릴 때 피우는 향냄새가 훅하고 들어왔다.
[아마 죽은 자들이 사는 장소라 그런 것 같습니다.]
‘하긴… 처음에 입장했을 때는 정신이 없어서 냄새 맡은 겨를이 없었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2층, 죽은 자들을 위한 층계였다.
1층에서 보스전을 마치고, 말도 안 되는 성과를 내버리는 바람에 받은 특혜.
사실 특혜라고 요정이 장황하게 설명해줬지만… 크게 와닿는 건 없었다.
처음에나 신기하지, 죽은 자의 도시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상점도 없고, 죽은 자와의 거래도 불가능하다.
그나마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지 않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다들 가호 정하느라 정신없겠네.’
한 명에게 자신만의 독특한 패시브 능력을 부여해주는 가호.
우리 멤버 중에 가호를 이미 정한 인물은 두 명뿐이었다.
나와 한여름이었다.
한여름은 희대의 사기적인 가호를 지녔고, 나는 그런 희대의 사기적인 가호의 발동을 알람으로 받는 가호를 지니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회귀가 만능인 줄 알았는데. 나도 언젠가 한여름처럼 우물 안에 개구리 꼴이 될 수 있겠지?’
[그럼 마음가짐은 좋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언제나 주변을 경계하며 행동에 심사숙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 경험담이야?’
내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르모니아는 낮은 음색으로 즉답했다.
[그렇습니다.]
‘….’
농담이었는데, 뭔가 무거운 분위기로 바꿔 버렸다.
주제를 바꾸자.
나는 전에 함선에서 했던 이야기를 마저 진행했다.
‘조디악에서는 연락이 왔어?’
[조만간 준비해놓겠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좋아… 레나한테는 비밀로 해줘.’
[알겠습니다.]
나는 어두컴컴한 안개로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고향으로 데리고 가면 좋아하려나?’
[좋아할 것입니다. 레나 씨께서 생이별한 가족과 그리운 고향을 잊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다시 칙칙한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제 들어가자. 여기 진짜 볼 거 없다….’
죽은 자들이 사는 도시는 하늘도 칙칙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묘지기의 성으로 돌아갔다.
..
..
네오 니플헤임.
이 허접한 이름은 죽은 자들이 모여있는 2층의 지명이었다.
위그드라실은 아주 오래전에 라그나로크라는 황혼의 전쟁으로 줄기 쪽과 뿌리 쪽이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다.
문제는 줄기 쪽인 상층과 죽은 자를 담당하던 하층이 완전히 단절되는 바람에 상층에는 죽은 자들을 수용할 공간이 없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위그드라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2층이라는 구간을 전부 죽은 자들이 수용하는 장소로 바꿔 버린 것이었다.
상층에서 죽은 자들은 육신이 없는 영혼 상태로 2층에서 생활하다가 한이 풀리거나, 소멸하면 영혼이 위그드라실에 흡수되면서 다시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는 밑거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삶의 순환이 잘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진 곳이….
“이곳 네오 니플헤임입니다!”
“그렇군요.”
나를 포함해서 파티원들 전부가 유쾌한 해골 얼굴을 하고 있는 사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신을 묘지기라고 소개한 이 사신 같은 존재는 이곳의 관리인이었다.
죽은 자들도 당연히 문제를 일으키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바로 우리 눈앞에 있는 묘지기의 업무였다.
“흐호호호! 제가 살아 있는 동안 이렇게 산 자를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살아 계신 거 맞나요?”
“푸하하! 죄송합니다! 죽은 동안이라고 말해야 하겠군요!”
“하하하….”
유쾌하다.
경박한 웃음 속에 차분함이 담겨 있었다.
웃을 때는 박터지게 웃으면서, 웃음을 거두더라도 그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는 노련함이 숨 쉬고 있었다.
죽은 자들을 관리할 정도라면 엄청나게 오랜 세월을 보냈을 테니 그만큼 말주변이 뛰어난 것 같았다.
묘지기는 턱뼈를 달그락거리며 내게 말했다.
“케르베로스를 뚫고 이곳에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솔직히 아직도 싱숭생숭하네요. 혹시 케르베로스를 뚫어서 기분이 나쁘거나 하시지 않나요?”
죽은 자를 관리하는 존재라면 2층의 문지기인 케르베로스와 좀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푸하하! 설마요! 저도 그 케르베로스의 눈동자를 보면 오금을 저리면서 주저앉을 겁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이곳의 관리인이지만… 결국 저도 죽은 자니까요.”
죽은 자들이 나가는 것을 막고, 산 자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존재, 케르베로스.
묘지기도 결국 죽은 자이고, 함부로 2층을 떠나려고 하면 케르베로스의 밥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민하연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면서 천장을 바라본 채 한숨을 쉬었다.
“이야… 산채로 봐도 그렇게 무서웠는데, 죽으면 더 무섭다는 이야기 아냐?”
“아저씨는 도대체 그런 괴물을 어떻게 상대한 거예요?”
왼쪽에 앉아 있던 한봄의 말과 함께 주변 동료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흥….”
한여름도 있었다.
‘저 새끼 내가 준 보석으로 자위 좀 해서 머리가 상쾌해졌나? 콧방귀를 끼네….’
[….]
‘나중에 콧방귀가 아니라, 코피 터지게 만들어줘야지.’
나는 그렇게 한여름의 코피가 줄줄 흐르는 것을 상상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뭘 했다고… 다들 열심히 한 거지.”
“수호, 너는 너무 겸손해서 탈이야.”
“맞아, 아저씨. 이럴 때는 좀 허세도 부릴 줄 알아야지.”
민하연과 한봄이 내 옆구리와 어깨를 툭툭 치면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삼인방도 우리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고, 그런 모습을 보던 묘지기가 우리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짓는 거 같았다.
해골이라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엄청난 동료애로군요. 저도 살아생전에 당신들 같은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어…? 묘지기님은 살아있을 때는 어떤 분이셨나요?”
“호호호! 아쉽지만, 기억이 안 납니다.”
죽은 지 오래됐다면 까먹을 만했다.
살아 있을 때의 기억 정도는 할만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명체가 가진 기억의 한도는 결국 우리가 사는 몇십 년이 전부였다.
그 이상 살아가는 존재의 기억까지 우리 기준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묘지기의 말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영혼은 에너지입니다.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가 아니죠.”
“네? 그럼, 말도 안 되잖아요.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면 애초에 이 마을에서 지내는 죽은 사람들도 결국 자기 기억이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호호… 죽은 자들의 기억은… 모두 산 자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알던 귀신이나 영혼.
그런 존재들은 실존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의로 기억을 축적하지 못한다고 한다는 것이 묘지기의 설명이었다.
“죽은 자는…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죠? 그겁니다. 죽은 자가,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살아생전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기억시켜놔야 합니다.”
“즉… 살아생전에 이룬 게 적을수록….”
“영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속도도 빨라집니다.”
“허….”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영혼의 기억과 성격은 살아생전 자신을 봐준 생물체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자신의 시신이 자연에서 썩기 전에는 어느 정도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육체가 완전히 흙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영혼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하는 방향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악인으로 살았다면 악한 영혼이 되고, 선인으로 살았다면 선한 영혼이 된다.
하지만 다른 예도 존재했다.
“평범한 인간들의 영혼으로서의 삶은 그렇지만, 유명한 자들의 영혼의 삶은 또 달라집니다.”
아무리 선한 마음을 지녔어도 역사에 악인으로 남으면 악령으로, 아무리 속이 시꺼멓더라도 역사 속에 선인으로 자리매김을 했다면 선한 영혼으로 지내게 된다.
그리고 역사에 한 줄을 장식할 정도로 유명한 자는 타인의 의지로 인해서 오랜 시간 영혼을 유지하게 된다.
“유명할수록 영혼 상태로 오래 살아남겠네요?”
“그렇습니다. 다만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은 잊고 사는 것이죠.”
“묘지기님은 굉장히 유명하셨나 보네요? 오래 사시는 것을 보면?”
“….”
묘지기는 잠시 딴생각하듯 고개를 기울이며 창밖을 한참을 쳐다보더니….
“호호호! 생각해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겠군요! 저도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말 유명했나 봅니다! 호호호!!”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자기가 설명해주고도 자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 존재라….
유쾌하게 웃던 묘지기는 웃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살아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정말 유쾌하군요.”
“성에도 영혼들이 있지 않나요? 친하게 잘 지내실 거 같은데….”
“호호호… 좋은 친구들이지만, 다들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할 뿐입니다.”
살고 싶다.
살아생전 못해본 것을 해보고 싶다.
그 두 가지뿐이라고 한다.
“아마 여러분을 봤던 이곳 주민들은 여러분들을 보고 어제 일을 까먹고, 어제처럼 또 달려들 것입니다.”
“아이고… 최대한 빨리 나가봐야겠네요.”
어차피 2층에는 얻을 게 없었다.
가호를 정하는 즉시 올라가는 편이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잠깐… 그런데 어떻게 나가나요?”
통행권은 1층 출구에서 사용하면 2층으로 오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2층은 입구와 출구가 없었다.
그렇다면 3층으로 어떻게 가야 할까?
묘지기는 내 말을 듣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턱을 달그락거렸다.
“저도 이번에 요정에게 들어서 알았습니다. 3층으로 가는 방법은 어디서든 자유롭게 통행권을 사용하시면 된다는군요.”
2층 전역에서 그냥 통행권을 꺼내서 1층이나 3층, 원하는 층을 떠올리면 그곳으로 향하는 개념이었다.
“아하… 우리는 이른 시일 안에 정비하고 떠나는 게 좋겠네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래, 가호만 정하는 즉시 가자.”
“맞아. 계속 여기에 있어봤자, 귀신들한테 민폐만 끼칠 거 같으니까.””
민하연과 한봄의 말에 다들 끄덕이며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식탁에서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툭… 툭… 툭….
하지만 식탁을 두드리는 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려 그 장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곳은 묘지기의 손이었다.
그는 뼈로 된 손가락으로 식탁을 두드리더니, 우리의 시선이 다 모인 것을 확인한 순간 일어나서 어색하게 턱을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떠나시기 전에 곤란한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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