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9화 〉 449화 마법 학교 슈트라 (360)
* * *
루이스는 제프가 혹시나 깨어났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고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루이스가 향한 곳은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지하 감옥이 아닌, 자신이 지내는 객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객실이었다.
그가 도착한 객실 문 앞에는 두 명의 병사가 창을 들고 엄중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루이스를 보자마자 바로 경례하며 용무를 묻기 시작했다.
“루이스 님, 무슨 일이십니까?”
“잠깐 들어가 보고 싶어서 왔어.”
“알겠습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제가 같이….”
“아니, 나 혼자 들어가겠어. 어차피 병자잖아. 깨어난들 나한테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어?”
“아, 알겠습니다. 그럼….”
“…?”
루이스는 병사가 열어준 문을 통해 들어오면서 그의 표정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뭐야? 내가 무섭나? 나를 보면서 왜 저렇게 벌벌 떠는 거지?’
루이스가 예전에 아틀러에 방문했을 때도 병사들의 긴장감이 엿보이긴 했었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느끼는 그들의 반응은 전과 사뭇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긴장이 아닌 두려움처럼 보인 것이었다.
‘훗… 슈트라에 들어가서 그런 건가?’
루이스는 자신을 대하는 병사들의 태도에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루이스가 생각하는 귀족이란, 평민들의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군림과 정복을 하는 존재로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절대 넘을 수 없는 그런 차원의 존재처럼….
그런 의미에서 병사들이 루이스에게 대하는 태도는 오히려 두려움이 바람직하다고 느낀 것이었다.
“저런 녀석들은 지금 당장 중요하지 않아. 일단….”
루이스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있는 제프에게 향했다.
그는 온몸에 하얀 붕대를 둘둘 감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보다 짜증과 분노가 먼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머니를 덮쳤다는 분노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그에게 중요한 건 그의 입을 제대로 막는 것이었다.
‘이 새끼 때문에 내가 왜 이런 고생을….’
루이스가 제프에게 잘해준 건 어디까지나 포츠 백작이라는 돈줄과 카린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루이스는 제프를 그저 돈과 복수를 위한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소모품 때문에 돈과 복수 전부를 잃고, 심지어 자신의 입지까지 엉망이 될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일단 입만 막으면 되는데….’
루이스가 할 수 있는 수단은 그가 모라민 가루에 대해서만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었다.
그것만 해결한다면 일단 모든 상황을 정리할 여지가 충분히 남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가 일어났을 때, 가능한 수단이었다.
‘이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거 아냐? 아니지… 오히려 좋으려나? 일어나지 않으면 이 녀석을 팬 성수호 책임으로 돌리면… 만사 오케이잖아?’
아무리 영웅으로 환대를 받더라도 귀족을 살해한 인물로 낙인찍힌다면 더 이상 레빈에 머무르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걸 핑계로 슈트라로 보내버리면 나랑 루나랑….’
그는 그렇게 루나와 단둘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며 흐뭇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끄으으….”
“….”
루이스는 신음을 내면서 뒤척이는 제프를 보면서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씨발 새끼… 도움이 되는 게 하나도 없군.’
제프의 신음은 지금 당장 그가 깨어나지 않더라도 그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담고 있는 신호였다.
그리고 가능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로 현상화되었다.
“크으으… 여, 여긴?”
“….”
루이스는 당장 마법을 사용해서 제프의 숨을 끊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사태가 더 악화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참고 그의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했다.
“깨어났습니까? 제프 경?”
“루, 루이스 경!?”
“….”
제프의 상태는 이미 아까 방문해서 의사들에게 전부 들은 상태였었다.
한동안,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간단한 식사부터 시작해서 소변도 혼자 누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일단 침착하자. 흥분해봤자 소용없어. 대화로 살살 꼬드겨야 해. 일단 일어난 것을 들키지 않게 하는 게 좋겠어.’
루이스는 빠르게 차음 마법을 펼친 뒤, 제프를 향해서 짙은 실망감이 담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프 경, 실망입니다. 당신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니….”
“그, 그게 무슨?”
루이스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현재 성에서 돌아다니는 제프의 추문에 관한 이야기를 전부 그에게 말해줬다.
그리고 루이스의 설명을 들은 제프는 온몸에 붕대가 감겨 있음에도 발작하면서 부정하기 시작했다.
“저, 저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
제프는 항변하면서 최대한 간략하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카린과 술자리를 가진 뒤, 안나의 옷장에서 깨어났을 뿐이라고….
“결국 당신이 옷장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군요.”
“저,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프 경을 믿겠습니다.”
루이스의 말에 제프는 붕대를 감은 채 흔들거리며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여, 역시 루이스 경이군요! 역시 제 편은 루이스 경 밖에 없습니다!”
“제프 경을 믿습니다. 대신 제프 경께서 해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
“모라민 가루의 출처를 최대한 숨기세요.”
루이스는 제프에게 좋은 사람 얼굴을 하고는 자신이 줬던 모라민 가루에 대해서 최대한 함구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제프는 루이스의 명령에 가까운 부탁에도 불구하고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 그렇게 되면… 자칫 제가 진짜 이상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차라리 루이스 경께서 주셨다고 하면….”
“오히려 저까지 묶이면 당신을 변호할 사람이 없어지잖아요. 저는 당신을 위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 그렇군요! 그런 깊은 뜻이… 알겠습니다!”
루이스는 제프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우… 얼간이 새끼. 일단 한 번만 부정하면 그다음은 어렵지 않아. 증언이 오락가락하면 사람들이 그때부터는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
죄와 관련된 변호나 증언을 할 때, 이야기가 계속 바뀌게 되면 언행의 신빙성을 잃기 마련이다.
루이스는 제프의 말이 일관성이 없게 만듦으로써 그의 발언의 진정성을 없애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훗날 루이스에게 버림받은 제프가 뒤늦게 진실을 내뱉더라도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대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만약 이 녀석이 나중에 일어나서 카린이나 아버지의 압박을 받고, 나불거렸으면 위험했을 텐데….’
루이스는 안도하며 제프를 뒤로하고 방을 떠나려는 순간이었다.
“그럼 저는 나가서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내일 또 찾아오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루이스 경! 하, 할 말이 있습니다!”
“…?”
루이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제프에게 다가가서 그를 바라봤다.
귀찮았지만, 일단 제프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에 루이스는 그의 말에 경청하기 시작했다.
“루, 루이스 경…. 제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믿어주시겠죠?”
“그럼요.”
루이스는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쓰디쓴 마음을 품고 있었다.
‘네 녀석 때문에 일이 다 꼬였어. 믿든, 안 믿든 넌 아웃이야.’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제프를 바라봤다.
계속 우물쭈물하는 제프의 행동이 답답했던 루이스는 먼저 입을 열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나, 나중에 사람이 모이면 말하려고 했지만… 일단 제 편인 루이스 경에게만 모든 사실을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모든 사실?”
“루, 루이스 경…. 성수호… 그 녀석을 완전히 무덤으로 보낼 수 있는 약점을 알아냈습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루이스는 그동안 제프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흥분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붕대로 돌돌 말려있는 제프의 얼굴로 다가갔다.
“뭡니까! 그게 뭔지 말해주세요!”
“그, 그게… 너무 황당무계해서 믿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믿겠습니다! 빨리! 알아낸 것이 뭡니까!?”
“그… 그게….”
제프는 안나의 옷장에서 깨어난 부분부터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 설명에는 자신의 치부를 넣지 않았다.
오로지 방 안에서 울려 퍼졌던 세 사람의 난교에 관한 이야기만 담겨 있었다.
성수호를 완전히 매장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졌던 루이스는 제프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밝아지는 게 아닌, 점점 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공작부인과 카린 영애…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남자 한 명에게 허덕여서….”
“그, 그만….”
“여자 둘이서 어찌 남자에게 그렇게 천박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프는 루이스의 차디찬 음성을 듣지 못한 채 흥분하며 두 여자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저를 정신이상자로 만들어서 아예 귀족 사회에서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고작 평민에게 엉덩이를 흔들면서 자지를 애원하는 여자들 주제에 감히! 매춘부 같은 년들….”
“매… 매춘….”
제프의 마지막 단어가 루이스의 이성을 지우는 스위치로 작용해버렸다.
루이스는 그 즉시….
“이 개새끼가 감히 우리 어머니를 모욕해!!!”
침대 위에 누워있는 제프의 몸을 탄 뒤,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사정없이 가격하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커억! 루, 루이스 경! 자, 잠시만! 그게 아니라! 크에엑!”
“죽이겠다! 죽이겠어!! 죽여버리겠어!!!”
“커억! 자, 잠깐! 크에에엑! 그, 그만!”
루이스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고, 그의 이성을 잃은 주먹 덕분에 주변에 펼쳐져 있던 차음 마법은 사라져 버렸다.
그로 인해서 루이스의 흥분한 목소리가 바깥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경비원에게 졌고….
“무, 무슨 소란이… 루, 루이스 님!”
“죽여 버리겠어! 감히 어머니를 그런 식으로 모욕해!”
“빨리 말려! 빨리!”
방으로 들이닥친 경비원들이 루이스를 말리면서 제프의 두 번째 구타가 중지될 수 있었다.
..
..
다음 날.
루이스는 해가 지는 저녁노을을 보면서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분을 토했다.
“개 같은 새끼가… 감히 어머니를 모욕해?”
전날 있었던 루이스의 구타로 인해서 제프는 다시 의식을 잃었고, 루이스는 공작의 훈계와 함께 객실에 연금(??) 명령을 받게 되었다.
다만 그가 연금된 이유는 범죄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닌, 어디까지나 흥분을 가라앉히라는 공작의 명령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공작의 명령을 받은 루이스는 명령에 따라 종일 방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얌전히 대기하고 있었다.
창밖을 보던 루이스는 어제 제프가 했던 말들을 다시 떠올렸다.
(성수호, 그 새끼가 공작부인과 카린 영애의 몸을 마음껏 탐했습니다!)
(두 여자가 성수호에게 애교를 부리면서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이….)
(매춘부 같은 여자들….)
으드득!
루이스는 마지막 말을 다시 떠올리며 이빨을 세게 갈기 시작했다.
한참을 갈던 이빨을 다시 진정시킨 뒤 속으로 붕대를 감고 있던 제프를 떠올렸다.
‘쓰레기 같은 새끼… 분명 나를 도발한 게 분명해.’
루이스의 입장에서 안나가 성수호에게 안겼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는 수준이 아닌, 애초에 그런 문장이 만들어져서도 안 되는 그런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제프는 심지어 안나 혼자뿐만 아니라, 카린도 같이 있었다고 말했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공작부인과 공작의 영애가 따로도 아닌, 같이 평민에게 안겨서 허우적거렸다?
국적도 없는 화전민조차 미친놈 취급을 할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평민들의 가십거리로도 쓰일 수 없는 이야기를 루이스가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개자식… 내가 꼬리 자르려고 하는 걸 눈치채고, 나를 도발해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던 게 분명해. 가만두지 않겠어.’
루이스가 제프에 대한 처분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려왔다.
똑, 똑, 똑.
“응?”
방에 연금되고 나서 자신을 찾아온 건 식사를 가지고 오는 시종들 뿐이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루나까지 그를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섭섭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면 누군가에게 이런 흥분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침묵하자 다시 방문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똑, 똑, 똑.
(성수호의 시종입니다.)
“들어와.”
루이스는 정체를 알자마자 바로 그녀를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공작가에 시종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 많은 시종 중에 손님을 접대하는 시종은 특히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일을 맡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루이스에게 눈앞에 있는 시종은 그냥 집안을 돌아다니는 시종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성수호의 시종이라는 말에 즉각 반응 한 건 시종에게 해놓은 명령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뭔가 보고할 게 있어서 왔어?”
“네, 성수호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말해봐.”
“최근 카린 아가씨와 잦은 만남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틀러에 도착하기 전에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던 두 사람이 자작을 구출하는 임무에 동행한 뒤, 돌아오고 나서는 급격하게 친분을 쌓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 밤에는 카린의 방에서 밀회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루이스는 시종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하며 되물었다.
“정말이야?”
“네, 다만 밀회 중에는 저를 물렸기 때문에 그 이상 알아낸 것은 없었습니다.”
“그 녀석 지금 어디 있어?”
“아까 카린 아가씨와 같이 산책하러 가셨습니다. 아마…”
“…?”
시종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눈에 힘을 주면서 루이스를 깊은 안광으로 바라봤다.
“오늘 밤에도 카린 아가씨의 방에서 밀회를 나눌 것 같습니다.”
“….”
“그리고 현재 성수호와 카린 아가씨의 방에는 따로 경계병을 배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흐음….”
루이스는 궁금했다.
카린의 방에서 밀회를 나눈다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그의 흥미를 끌고 있었다.
루이스는 지금까지 살면서 카린의 방문턱조차 넘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방은 언제나 함정으로 가득했고, 심지어 부모님조차 안에 들이지 않는 건 저택 내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무리 그년이라고 해도… 아틀러에 와서 함정을 설치하지는 않았겠지?’
루이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종에게 다시 명령하기 시작했다.
“이 틈에 너는 성수호의 방 내부에 중요한 게 있는지 뒤져봐.”
“알겠습니다.”
“뭔가 알아내면 내일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루이스는 대답과 함께 나가는 시종의 사라지는 모습을 전부 본 뒤 일어나면서 비릿하게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그 틈에 그년의 방을 좀 뒤져봐야겠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