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5화 〉 435화 마법 학교 슈트라 (346)
* * *
“네 왼손으로, 오른손을 잘라라. 그럼 여자는 보내주지.”
“….”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왼손으로 들고, 검날을 오른손으로 향하면서 물었다.
“그 말… 지킬 수 있겠지?”
“잠깐만요!”
그동안 내 뒤에 숨어 있던 카린은 허겁지겁 앞으로 뛰쳐나오더니, 검을 들고 있는 내 손을 잡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그렇다고 우리 둘 다 인질이 되는 건 좋지 않아요. 당신만이라도….”
“안 돼요! 애초에 저 사람들이 약속을 지킬 리가 없잖아요!”
카린의 말을 듣던 마법사는 크게 웃더니, 그녀를 향해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지킬 건데? 왜? 너희들은 설마 약속을 어기고 날 죽이려고 했나?”
“…애초에 우릴 이렇게 속인 사람을 신용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겠죠.”
“크흐흐흐… 아니면 너만 데리고 갈 수도 있지. 내 동료들도 네가 오길 더 원하기도 하고.”
“….”
카린은 내 팔을 잡은 채 살짝 떨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무섭다기보다는 자기가 그동안 쌓아왔던 탑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을 갖는 것이다.
자신이 대신 인질로 잡히면 나중에 안전하게 구출되더라도 평생 꼬리표처럼 달릴 것이다.
도적들의 인질이 되었던 영애로….
그런 소문이 돌게 되면 백작가를 휘두르는 게 아닌, 결혼을 부탁해야 하는 처지에 몰릴 수도 있었다.
브란트루프 가문도, 자신도….
카린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결심한 듯이 외팔이 마법사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제가 가겠어요. 이분은 풀어주세요.”
“오호호….”
도적들은 오히려 지금 상황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카린을 비릿한 미소로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외팔이 마법사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귀족 여자라서 나 몰라라 도망칠 줄 알았는데, 의외군.”
“이분은… 브란트루프 가문의 귀한 손님입니다. 저는 이분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크흐흐흐… 입만 산 귀족은 아니라는 소리군. 하지만 그래도 안 되겠어.”
외팔이 마법사는 내 앞에 서 있는 카린을 증오심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둘 중에 누가 가더라도 저 녀석의 팔 한쪽은 꼭 받아내야겠어.”
“지금 당신의 이기심이 동료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어요.”
“닥쳐!!!”
외팔이 마법사는 왼손으로 자신의 망가진 오른손을 붙잡고 광기가 담긴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기심!? 내 팔을 이 모양으로 만들고 그냥 보내줄 줄 알았어? 웃기지 마! 만약 팔 한쪽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면 둘 다 벌집이 되는 거다. 아니면 너희 둘 다 팔다리만 두 녀석 다 인질로 만들어도 좋겠군. 크흐흐… 그것도 마음에 들겠어.”
“….”
“나는 더 이상 기다려줄 생각 없어. 빨리 결정하는 쪽이….”
카린은 외팔이 마법사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당신이 얼마나 화났는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 제안에는 따를 수 없어요.”
“좋아. 그럼, 여기서 죽어….”
“대신….”
“…?”
카린은 자기 팔을 뻗어서 치켜들고 도적들이 있는 쪽으로 내밀면서 결의가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제 팔을 드리겠어요. 그걸로 대신할 수 없을까요?”
“…뭐?”
도적들뿐만 아니라, 외팔이 마법사도 자기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나를 지켜준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싶었다.
입장의 차이였다.
카린은 이 상황이 체크메이트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어차피 진 게임에서 모든 것을 잃기보다는 나를 지켜서 가문의 위신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나를 구한다면 카린 브란트루프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아마 팔을 내놓으려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지 않으려는 거구나.’
카린은 나를 구한 뒤 인질 상태로 자살하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팔을 내놓겠다는 말까지 한 것이겠지….
지금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레나가 통신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추구하는 길은 저와 다르지만… 인간적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자신이 가진 신념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지키는 여자.
레나와 비슷한 인물이었다.
다만 레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직 망가져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도적에게 인질로 잡혀서 자살을 못 하게 된다면… 그녀도 레나처럼 망가지는 상황에 부닥칠 것이다.
내가 그렇게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때, 외팔이 마법사가 호쾌하게 웃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아주 가관이군. 좋아. 담력은 인정해주지. 자진해서 팔을 자를 필요는 없다. 일단 너만 우리 쪽으로 와라.”
“….”
카린은 나를 힐끗 바라보면서 상대방이 들리지 않게 속삭이듯이 이야기했다.
“어차피 우리 둘 다 잡을 생각일 거예요. 제가 어떻게든 몸으로 막을 테니 도망치세요.”
“…고맙습니다.”
“….”
카린은 살짝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정말 그녀를 놓고 도망치리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카린을 내려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벌어줘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모두 해결할 수 있겠네요.”
“…네?”
카린이 의문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순간이었다.
어둠 너머에서 활을 들고 우리를 겨냥하던 도적들이 힘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털썩, 털썩, 털썩….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야! 너 왜 그래! 아니, 너희들 다 왜 그래!”
외팔이 마법사와 정상인 마법사가 자기 동료들이 한둘씩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카린도 저 멀리 보이는 전부 쓰러진 도적들을 보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무슨…?”
카린이 그렇게 어리둥절하며 상황 파악에 나서는 사이에 나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제가 해결할게요. 뒤에 계세요.”
“네?”
카린은 당황하면서도 내 등 뒤로 빠지면서 내 망토를 꼭 끌어안기 시작했다.
외팔이 마법사는 주변 동료가 전부 쓰러지자 왼팔을 들어 올려서 나를 향해 삿대질하기 시작했다.
“너, 너지! 네가 지금 이 짓을 저지른 거지!?”
“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분명 마법을 사용한 흔적이 없었는데!”
나는 그런 마법사들을 향해서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날렸다.
“마법사가 비장의 수를 갖고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냐? 이래서 못 배운 녀석들은….”
“이… 이 개새끼가!”
내 말에 발끈한 두 명은 마법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펼치는 속도를 보면서 나는 헛웃음을 내면서 보라색 마법진을 신속하게 그려냈다.
“그렇게 느려서야 언제 마법을 발동하겠어?”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두 개의 마법진은 내가 만들어낸 해체술로 인해서 완성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증발해버렸다.
“이런 씨발!”
“자… 그럼….”
나는 웃음기를 싹 지운 채 그들에게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무게감이 담긴 목소리로 그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줄까? 불에 지져줄까? 아니면 어제처럼 뇌속성으로 불구로 만들어줄까? 아니면….”
“….”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내게도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맞춰서 한 발자국 내디디며 미소를 지었다.
“풍속성 마법으로 팔이 붙어 있는 채로 잘게 썰어줄까?”
“이이이익!!”
이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도적들이 날 이길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외팔이 마법사가 갑자기 동굴 너머로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폭파해!!”
동굴에 그의 목소리가 세차게 울려 퍼지더니, 갑자기 동굴 천장 쪽에서 엄청난 굉음이 진동과 함께 퍼져나오기 시작했다.
쿠쿵… 쿠쿠쿵… 쿠쿠쿠쿠쿵!
입구가 폭파되었을 때와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의 충격음이 바닥을 향해 전해져오고 있었다.
외팔이 마법사는 나를 보며 실실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 이렇게 된 거 같이 죽자고.”
하지만 정작 그의 웃음에 분노하는 건 그의 옆에 있던 동료였다.
“너 미쳤어! 너 혼자 죽지 왜 나까지 끌어들이려는 거야!”
“시끄러워! 어차피 저 새끼한테 죽을 운명이야! 이대로는 같이 죽는 게 최고지!”
“씨발! 나… 나는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 않아!”
엄청난 지진 속에서 팔이 온전한 마법사는 헐레벌떡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했다.
외팔이 마법사는 나와 카린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크크크… 내 팔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그냥 갈 수 있을 줄 알았냐? 이렇게 된 거… 죽어서도 같이 치고받고 싸워보자고!
“….”
엄청난 지진이 몰려오기 시작하고, 철광석들이 위협적으로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발음이 들려오는 곳이 위쪽인 것을 보면 위쪽 공간이 점차 꺼지면서 우리가 있는 곳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철광석 더미에 파묻히게 될 것이다.
카린은 내 팔을 강하게 끌면서 외쳤다.
“빨리 도망가야 해요! 통로를 따라가다 보면 분명!”
하지만 카린의 외침은 오래가지 않았다.
“빠져나갈… 흐으….”
“….”
나는 수면에 빠진 카린을 팔로 안아서 그녀가 쓰러지지 않게 부축했다.
나와 카린의 모습을 본 외팔이 마법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크크크… 어차피 죽을 거 고통 없이 죽게 하겠다는 거냐? 푸하하하! 그래, 굉장한 자비심이군! 어차피 죽을 거 나한테도 그 마법 좀 알여주지….”
“휴우….”
“…웃어?”
나는 외팔이 마법사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너 같은 놈은 아까 마법 이해하지도 못해 얼간아. 여기서 동료들이랑 사이좋게 유언이나 주고받아라.”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아르모니아에게 말했다.
‘워프~ 플리즈~’
***
“너 같은 놈은 아까 마법 이해하지도 못해 얼간아. 여기서 동료들이랑 사이좋게 유언이나 주고받아라.”
스르르르릇!
카린을 안고 있던 성수호는 무지갯빛에 감싸지더니, 조그마한 빛들을 남기고 감촉같이 사라져버렸다.
“뭐… 뭐야?”
성수호와 카린이 사라지고 주변에 남아 있는 건 쓰러져 있던 동료들과 주변을 밝히는 자신의 랜턴뿐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쿠쿠쿠쿠쿠쿠쿵!!
그저 머리 위에서 철광석이 점차 위협적으로 떨어지고 있을 뿐이었다.
쾅! 콰콰쾅! 콰콰콰콰쾅!
갱도의 빈공간이 철광석으로 점차 채워지고, 그 공간이 갑자기 채워지는 무게로 또 무너지는 갱도.
그리고 도적과 외팔이 마법사만 남은 갱도에는….
“이… 이게 뭐야… 사, 살려줘… 나, 나도….”
떨리는 목소리로 사태 파악을 한 외팔이 마법사는 성수호가 사라진 장소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무지갯빛을 향해 달려가면서 외쳤다.
“살려줘!! 나, 나도 살려줘!!!”
쾅! 콰콰콰콰콰쾅!!
외팔이 마법사의 마지막 간곡한 부탁만이 마지막으로 울려 퍼지면서 그의 동료와 같이 철광석에 집어삼켜졌다.
***
눈을 감고 떴을 때, 내 눈에 보이는 건 푸른색으로 뒤덮인 워프실 이였다.
나는 카린을 업고 캡슐에서 나오면서 아르모니아와 레나에게 말했다.
“휴… 고마워.”
“고생하셨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주인님.”
“응, 나는 괜찮아.”
나는 양팔로 업고 있던 카린을 바닥에 살며시 눕혀 놓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기계로 뒤덮인 함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갑옷을 입고 있는 카린.
수면이 걸려 있으므로 아마 그녀가 일어나서 함선 내부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카린을 조심스럽게 눕히자, 아르모니아가 내게 묻기 시작했다.
“바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아니, 좀 만 쉬고 갈게. 혹시 모르니까 마나 좀 비축해 놓게.”
“알겠습니다. 그럼 카린 브란트루프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아르모니아의 질문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대강 느낄 수 있었다.
자고 있는 카린과 관계를 가질 것이냐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그래도 카린한테 그럴 수는 없지. 무엇보다 좋은 계획이 떠올랐거든.”
“무슨 계획입니까?”
나는 카린의 황금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린을 우리 편으로 만들면 브란트루프… 내가 먹을 수 있지 않을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