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2화 〉 422화 마법 학교 슈트라 (333)
* * *
아틀러로 향하는 출발 당일, 루이스는 루나에게 달라붙어서 이야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정확히 무슨 말이 오고 가는 지는 내가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면서 내용을 추론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루나가 떠나지 않게 막고 싶은 것이다.
루이스는 전날 제프에게 당부하긴 했지만, 그건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것뿐이었다.
루나가 나와 동행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있다면 루이스의 입장에서 베스트일테니까.
하지만 베스트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 드디어 포기인가.’
루이스는 결국 루나의 강경한 태도를 꺾지 못하고,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물러나는 순간에도 나를 노려보는 눈은 살기가 한가득 실려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다른 사람들과 동행하는 게 편해 보입니다.]
‘그러게, 생각해보면 루나랑 나랑 단둘이 간다고 하면 게거품 물면서 막았겠지?’
[외부인원을 동원했을 가능성도 큽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나와 루나 단둘이 간다면, 루이스가 브란트루프 가문의 힘을 빌려서라도 어떻게든 방해하려고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상황만 보면 나와 루나는 어디까지나 학장을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무엇보다 공작부인과 카린도 동행하니, 루나를 막을만한 뚜렷한 이유를 생각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루이스는 나를 노려볼 뿐, 내게 단 한마디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예전의 루이스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일단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득달같이 달라붙어서 내게 시비를 걸던 루이스의 모습이 어느덧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약자로 바라보던 눈빛은 어느새 움츠러들고, 경계심을 잔뜩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루이스의 표정을 보면서도 내 감상평은 하나뿐이었다.
‘귀찮게 굴지 않아서 편하네.’
완전히 나가떨어지는 게 아닌 한 축포를 터트리는 멍청한 짓을 저지르면 안 된다.
기뻐하는 건 완전히 굴복시키고 나서 해야 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루나는 루이스를 치운 뒤, 한숨을 내쉬면서 내게 다가왔다.
“준비됐어요. 출발해요.”
..
..
처음에 학장이 아틀러로 향하겠다고 말을 하자, 왕궁 전체가 뒤집혔다.
다들 학장이 떠나는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여름학기가 한참 남은 시점에서 고작 일주일 지내고 돌아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그들의 입장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학장은 국왕에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해서 간신히 그들의 야단법석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일행은 성대한 배웅을 받으며 출발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왕국에서 제공한 마차를 타고 아틀러로 향하기 시작했다.
마차의 루트는 포츠 백작령의 위성 도시인 벨루스를 경유한 다음 북쪽으로 쭉 이동하는 것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는데, 벨루스를 지난 다음에는 중간에 경유할 수 있는 마을 수가 적어서 노숙이 불가피하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레빈 왕국과 아틀러 도시의 사이에는 교류가 활발한 만큼 도적이나 불한당이 출몰했다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없다고 했다.
즉, 안전은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안전에 문제는 없지만….
‘도적도 없는 안전한 지역이라면서 왜 저렇게 사람을 붙여준 걸까?’
[안전이란 상대적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학장에게 생채기 하나라도 나면, 나라가 뒤집힐만한 일이니 그만큼 신경 쓰는 것입니다.
왕가에서 병사들과 궁정 마법사들까지 대동시켜서 우리를 호위하고 있었다.
‘와… 사람들 쳐다보는 거 봐라.’
우리는 실크로드를 지나는 동안에도 무수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실크로드가 별의별 상단이 돌아다니는 곳이라고 해도 초호화 마차와 병사들이 호위하고 있으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줄인 게 이 모양이라니….’
처음에는 왕궁에 무수한 행렬을 준비하려던 것을 간신히 막고 막아서 이렇게 줄인 것이라고 했다.
덕분에 여행 첫날부터 편안하게 벨루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사람들 모두 숙소를 안내받고 벨루스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안내받은 숙소에 들어와서 침대에 벌러덩 눕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가볼까? 뢰베 상단에?’
초저녁의 시간.
오전에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바쁜 곳이 상단이라면 또 오후부터는 점차 조용해지는 곳도 상단이었다.
저번처럼 방을 염탐하면 또 귀찮아질 것 같았다.
‘이참에 카린에 대해서 찔러보는 것도 좋겠다.’
이번 여행이 카린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나는 숙실을 나온 뒤, 여관을 나가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여인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레빈의 궁정 마법사였다.
얼굴을 보고 알아차린 것이 아닌, 그녀가 입고 있는 복장을 보고 궁정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검은색과 보라색의 실크로 된 외투를 입고, 발복까지 덮는 기다란 치마로 기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귀족들의 드레스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화려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입는 데 개고생하는 옷이라는 이야기지.’
원래 나름 괜찮은 외모 같았는데, 화장해서 그런지 화려함이 눈에 돋보였다.
‘얼굴도 나름 괜찮네.’
하지만 괜찮은 것과 별개로 관심은 없었다. 지금 나의 관심사는 카린과 뢰베였다.
궁정 마법사는 내 생각을 읽지 못한 채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발걸음을 보니, 굉장히 바빠 일이 있으신가 보군요. 붙잡아서 죄송해요.”
“무슨 일이시죠?”
“후후…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혹시… 한스 밀버그라는 자를 아시나요?”
“…?”
그게 누군데?
내가 의문을 가지며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르모니아가 알려줬다.
[루나 슈타트펠트에게 험한 짓을 하려고 했던 조교수입니다.]
‘아, 그 벌레 교수?’
오래돼서 이름을 까먹고 있었는데, 벌레 취급했던 것 때문에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인간 이름이 여기서 나오는 걸까?
“알고 있습니다. 조교수… 셨죠?”
“네, 맞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어요. 그자가 죽었을 때… 옆에 계셨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죽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
알려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인간을 죽인 건 결과적으로 내가 사용한 마나 드레인 마법 때문이다.
학장 그냥 넘어가 준 덕분에 살아나긴 했지만, 그 사실을 어디에 까발리는 짓을 해서 내 목을 조를 필요는 없었다.
“그 장소에 있긴 했지만,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만, 불순한 행위를 하시다가 죽었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에요.”
“…네, 알겠어요.”
순순히 넘어갔다. 넘어가긴 했는데….
‘응? 갑자기 왜 웃지?’
미소가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무섭다는 느낌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조커라는 캐릭터가 빙의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을 쫙 찢으며 웃고 있었다.
궁정 마법사는 한껏 웃더니, 내 시선을 깨닫고는 순식간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자와 안 좋은 일이 많아서….”
“아… 네. 그럼 이만….”
이제 볼일이 끝난 것으로 간주하고, 다시 뢰베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볼일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닌 모양인지 궁정 마법사는 나를 막아서고는 좀 더 이야기를 진행했다.
“정말 급하신 모양이군요. 제가 당신을 찾아뵌 이유는 하나였지만, 지금 하나가 더 생겼어요. 금방 끝낼게요.”
“….”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제게 도움을 요청해주세요.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들어드릴게요.”
“…?”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내가 의문을 가진 눈빛으로 바라는 와중에도 궁정 마법사는 미소를 가린 채 설명해줬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말했다시피 한스 밀버그와는… 악연이었어요. 그자가 죽은 기념으로 당신을 도와주는 거예요.”
“허….”
“그럼 바쁘신 거 같으니, 붙잡지 않을게요. 그럼….”
자리를 떠나는 그녀의 웃음이 내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흐흐흐… 죽었어. 돼지 새끼… 드디어 죽었어.)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궁정 마법사의 호의를 받은 뒤, 뢰베로 향하면서 아르모니아와 대화를 나눴다.
‘뭐였을까? 저 여자는….’
[아마….]
‘…?’
[조교수의 피해자 중의 한 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나는 아르모니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조교수가 했던 말들이 내 뇌를 번뜩이며 스쳐 지나갔다.
(레빈… 그곳 궁정 마법사가 나와 친분이 있지.)
‘미친… 친분이라는 게 자기가 따먹은 여자라는 의미였을 줄이야.’
함부로 사람의 관계를 의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조교수가 했던 행동과 궁정 마법사의 태도를 보면 그쪽 말고는 따로 집히는 것이 없었다.
고맙소. 한스 밀버그… 당신 덕분에 루나와도 이어지고, 연줄도 하나 얻을 수 있었어.
부디 저승에 가서는 고자로서 충실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나는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한스 밀버그의 미래에 축복을 내려주면서 뢰베 상단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뭐… 의도치 않게 인연 하나 얻었다면 좋은 거지.’
[저 여자에게는 관심 없으십니까?]
‘….’
내가 무슨 여자에 환장하는 놈인 줄 알겠네….
‘내 타입 아냐.’
[다행입니다.]
‘….’
뭐가 다행인데요?
나는 잔뜩 불만을 품은 채 뢰베 상단을 앞에 두고 건물을 쭉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기질창이 하나 보였다.
‘오늘도 계시는구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카린 브란트루프가 뢰베 상단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벨루스에 도착한 지 30분도 되지 않은 상황임에도 카린은 뢰베 상단 건물에 방문한 상태였었다.
그것도 상단주가 있는 꼭대기 층에….
‘나를 만나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들어가 보자.’
나는 뢰베 상단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전에 봤을 때와 다르게 저녁이라 그런지 상단 내부는 한산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안내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내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용무를 묻기 시작했다.
“무슨 용무로 방문하신 건가요?”
“혹시 상단주와 만날 수 있을까요?”
“…혹시 따로 약속을 잡으셨나요?”
“아뇨.”
“….”
안내원은 친절한 표정과 진상을 보는 시선을 동시에 품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대뜸 약속도 없이 상단주를 만나고 싶다고 하면 저런 표정을 짓는 건 당연할 것이다.
나는 진상이라는 누명을 벗어나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던 서류를 꺼내서 안내원에게 보여줬다.
뢰베 상단주가 내게 건네준 증서.
그것 보던 안내원은 갑자기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하더니, 상큼한 미소로 나를 대하기 시작했다.
“응접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딱, 딱!
안내원의 손가락 튕김과 함께 갑자기 몇몇이 나타나서는 나를 어디론가 안내해주기 시작했다.
도착한 곳은 고급 응접실이었고, 내게 원하는 것을 묻기 시작했다.
“다과를 준비하겠습니다. 혹시 술을 원하시면 당장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아니. 그건 괜찮아요.”
“네, 이곳에서 기다리시는 동안 상단주님에게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안내원은 눈빛으로 직원들에게 명령하기 시작했다.
‘이욜… 수준만 따지면 공작가나 왕실에 있는 시종들보다 훨씬 유능해 보이는데?’
[자본으로 높은 수준의 인재를 모으고, 그 자본으로 인재를 키운 결과인 것 같습니다.]
오버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내가 보는 상단 직원들의 모습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시종이나 집사보다 훨씬 뛰어났다.
대화 하나 없이, 모든 일을 눈빛으로 서로의 명령과 소통을 완벽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응접실에 다과가 전부 마련되자 직원들이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응접실을 나갔다.
조용한 응접실.
조용한 응접실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내 눈은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건물 내부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기질창들이 내 눈을 즐겁게 해줬다.
‘카린…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 확실하네.’
꼭대기 층에 있던 그녀의 기질창이 응접실 옆 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걸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아마 옆 방에서 응접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좋아.’
원하는 그림이었다.
카린 쪽이 전부 준비를 마치자, 그녀와 같이 있던 상단주의 기질창이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응접실의 문이 열리자마자 안내원의 시중을 받으며 상단주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오…. 저희 상단에 직접 행차해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이렇게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일단 예의상 일어나서 상단주에게 예의를 차렸고, 상단주는 그런 내 모습에 흡족해하며 내 건너편에 자리에 서서 내게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일단 편히 앉으시죠.”
“네.”
악수를 한 뒤, 나와 상단주는 자리에 차분히 앉아서 서로를 바라봤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내원에게 시선이 갔고, 상단주는 바로 내 의도를 눈치채고 안내원에게 눈짓을 보내기 시작했다.
안내원은 고개를 숙인 뒤 응접실에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기질에 나와 있는 대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바로 캐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내원이 나갔음에도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고요함을 넘어서는 침묵이 응접실을 뒤덮었다.
상단주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으며 내 다음 말을 기다릴 뿐이었다.
나는 그런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상단주를 보면서 조용히 입을 열어서 물었다.
“혹시 오늘도 제 방에 사람을 보내실 겁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