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화 〉 416화 마법 학교 슈트라 (327)
* * *
[루이스 브란트루프가 루나 슈타트펠트에게 접근했습니다.]
‘….’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루나가 있는 장소를 보니,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루이스는 정말 루나가 포함되어 있는 무리에 같이 껴 있었다.
지금 연회장은 마법으로 상대방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놨다.
심지어 옷도 가면에 맞춰져서 변경되고, 더 나아가서 액세서리들도 모두 변경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루이스를 루나와 대화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주변에 딱 붙어 있었다.
‘우연인가?’
우연일 수 있다.
하지만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꺼림칙했다.
[이상합니다. 아까 루이스의 행동은 정확히 루나는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루이스는 지금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하긴… 저번에 내가 사용한 마법조차 전혀 먹히지 않았던 녀석이다.
성전이 꾸준히 성장시켰다면 궁정 마법사들의 마법도 슬슬 먹히지 않을 시기일 가능성도 컸다.
‘쓰레기 같은 녀석… 비겁하게 치트키를 써?’
[….]
나는 정의로운 내로남불의 불씨를 터트리며 루나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다행히 루이스와 루나, 단둘만 있는 건 아니었다. 루나가 있던 무리에 루이스가 조심스럽게 들어간 모양새였다.
다만 루이스의 행동만 보면 전혀 의심 없이 루나라는 것을 확신하듯 그녀에게 달라붙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그렇게 루나와 루이스가 있는 무리에 거의 다다를 때쯤이었다.
“…흥.”
독수리 얼굴을 하고 있는 루이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보며 콧방귀를 뀌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멀리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확실하게 보이나 보네.’
만약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면 굳이 주변을 그렇게 둘러보면서 루나를 찾으러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초반의 루이스는 영락없이 제프와 같은 꼴을 하고 있었으니까.
대부분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만큼 중간에 몰래 끼어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루이스 혼자만 나를 보며 경계할 뿐이었다.
루나가 포함된 귀족들의 이야기 주제는 당연하게도 이번에 방문한 학장에 관한 것이었다.
“설마 학장님께서 레빈에 방문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맞아요. 정말 영광스러운 날이죠.”
“다른 옆의 나라에서도 이번 기회에 학장님이 전 대륙을 순회하는 것 아니냐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하하하! 하긴… 그렇게 기대라도 해야 마음이 놓일 겁니다.”
다들 자신의 나라에 학장이 방문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슬슬 이 시기쯤 되면 다른 나라에서도 학장이 레빈으로 여행을 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것이다.
다음 학기에 자신들의 나라에 방문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뭐… 이참에 여행에 재미를 붙이시면 또 갈 수 있겠지.’
빈말이 아니라, 워낙 심심하게 사는 양반이라 그런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이야기는 점차 흘러가면서 어느새 학장과 동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레빈이 참 복이 많습니다. 설마 슈트라의 1, 2등이 동시에 나올 줄이야.”
“심지어 루이스 경은 수석 입학이셨죠. 졸업했을 때의 모습이 정말 기대가 됩니다.”
“루나 영애도 재능을 꽃피워서 다행입니다.”
다들 레빈 출신의 루나와 루이스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가면 연회 특성상 칭찬은 하면 할수록 무조건 이득이다.
그 후에 가면을 벗었는데, 자신이 칭찬하던 존재가 옆에 있다면 그것만큼 횡재한 일이 없으니까.
루이스는 독수리 얼굴로 자신의 칭찬을 눈감고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루나는 정작 자신의 칭찬이 돌아다니자 쑥스러운지 쓰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앵무새 얼굴이라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캐치하지는 못한 모양이지만….
그리고 이야기는 또 흘러서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성수호 학생이라는 분이 그렇게 대단하다면서요?”
“이번에 같이 온 학생이요? 성적은 좋다고 듣기 했는데….”
“학장님의 신임이 엄청 두텁다고 하더군요.”
“신임?”
“학장님께서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무조건 그 학생을 불러서 같이 대화를 나눈다고 하더군요.”
“맙소사….”
젠장… 막상 내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루나가 왜 저렇게 쑥스러워했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정작 앵무새 얼굴의 루나는 내 칭찬이 나오자 미소를 지으며 대화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번에 방문하신 교수님과도 친분이 두텁다고 들었어요.”
“허허… 원래 슈트라에 입학하면 교수님들과 그렇게 친하게 지냅니까?”
“그분이 좀 유독 독특하다고 들었어요.”
“부럽군요… 한번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서 친분을 쌓고 싶군요.”
“….”
루이스 녀석… 아무리 다른 사람이 캐치 못한다고 해도 너무 적나라하게 불편한 기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루나가 내 칭찬으로 웃으며 주변에 동화되어 있을 때였다.
갑자기 루이스가 입을 열면서 운을 떼기 시작했다.
“성수호 씨를 잡으려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좋은 방법? 말씀 좀 해주시죠.”
근처에 있던 모든 귀족이 루이스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시선은 나뿐만 아니라, 루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이스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한 것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자를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여… 여자요?”
당황한 건 다름 아닌 루나였다.
루나는 찔리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여자라고 하면 자신이 1순위이니까.
“허허… 그렇다면 더욱더 잘 됐군요. 이참에 레빈 왕국에서 어울리는 동반자를 구하는 것도 좋겠군요.”
“저희 레빈 왕국이 미남, 미녀가 넘쳐나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이참에 저희 여식… 아니, 주변에 어울리는 분을 소개해드리면 좋아하겠군요.”
다들 그렇게 나에게 뭔가 어필할 만한 것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들의 즐거운 대화를 계속 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가 폭탄 발언을 한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묶여서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혼인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어디까지나 저도 상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루이스는 연회장임에도 다른 무리에 소리가 가지 않게 조용히 속삭였다.
“매춘부들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네?”
루이스의 말에 당황하며 대답한 건 루나였다.
하지만 그 당황함은 우리가 있던 무리의 귀족들 전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
가면 연회 특성상 누군가의 험담을 하지 않는 건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 그렇군요. 하긴… 다른 나라 출신이라면… 그런 걸 좋아할 수도 있겠군요.”
“레빈도… 좋은 장소가 있다고 들었으니, 소개해주면 좋겠군요.”
다른 사람들이 당황하는 와중에도 루나는 미간을 심히 찌푸리면서 루이스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런 소문이 어디서 들으신 건가요?”
“…상인들에게 들었습니다.”
“어떤 상인이길래….”
루나가 열심히 상대방에 대해서 정보를 캐내려고 했지만, 상대방은 무표정으로 루나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 게 문제가 있습니까?”
“네?”
“남자 중에는 한 여자에 만족 못 해서 여색을 밝히는 경우가 상당수 있습니다. 여색을 좋아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금 그쪽의 말씀은….”
“생각해보니….”
루이스는 루나의 말을 끊고 무표정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성 분을 앞에 두고 너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드린 거 같습니다. 사과드리겠습니다.”
“….”
“하하하. 하긴… 아직 미혼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꺼리실 만하군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죠.”
그렇게 내 여색에 관한 이야기가 종료되었다.
‘…매춘부는 몰라도 여색을 밝히는 건 사실이라 쑥스럽군.’
[칭찬이 아닙니다.]
‘….’
알아, 이 가스나야….
그렇다고 내 욕하는데, 내가 참전해서 변호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내심 루이스와의 말싸움에서 루나가 이기길 바랬지만, 루나의 입장에서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는데 함부로 밀어붙이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서 루이스는 주변에 있는 인물들을 전부 파악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파악한 것이었다.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른 것이다.
무리에 있던 귀족 중에 한 명이 어색한 분위기를 지우기 위해 운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학장님과 동행한 세 사람 모두, 이번 학기 최상위권이라고 했죠?”
“네, 1등과 2등을 거머쥐었다고 하더군요.”
“그럼 3등은 누구인가요?”
“그게 들어보니, 루나 영애와 성수호 학생이 공동 1등, 루이스 경이 2등을 했다는군요.”
“루나 영애는 필기 1등, 실기 3등을 했고, 성수호 학생은 실기 1등, 필기 3등을 해서 공동 1등이 되었다는군요.”
“그럼 루이스 경은 필기와 실기를 2등을 해서 전체 2등이 된 거겠군요.”
조금 전까지 웃던 루이스의 얼굴에는 다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소 자체는 그대로였지만, 경직된 표정이 고스란히 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쯤 되니 궁금하군요.”
“어떤 거 말입니까?”
“시험이 아닌, 세 사람의 순수한 실력의 순위 말입니다.”
다들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시끌벅적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역시 루이스 경이 1등 아니겠습니까? 수석 입학을 하셨을 정도로 뛰어난 분이시니까요.”
“저는 루나 영애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독학으로 마법을 배워서 입학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까… 성수호 학생분은 입학 등수가 어떻게 되는지…”
내 입학 순위를 알 리가 없었다.
나는 이번 계기로 알려진 인물이었고, 내 과거까지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 과거를 알고 있는 사람이 무려 두 사람이나 있었다.
“175등이라고 들었습니다.”
루이스가 쓰게 웃으며 내뱉은 대사였다.
“허허… 그럼 입학생 숫자가…?”
“글쎄요… 아마 200명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하하….”
“그, 그것도 대단한 거 아니겠습니까? 평범하게 입학했지만, 결국 1등을 거머쥔 것이니 말입니다.”
다들 가면 연회라 그런지 쓸데없는 뒷담화보다는 좋은 말로 치장해주기 바빠 보였다.
무엇보다 학장과 친분이 있다고 알려졌으니, 쉽게 내 뒷담화를 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차차 술을 마시고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다.
‘아르모니아, 혹시라도 내 뒷담화 까는 놈 있으면 체크해놔.’
[알았습니다.]
원래라면 실수하고 그냥 퇴장하면 되지만, 나는 기질창이 있다.
이상한 말하다가 걸리면 나중에 포츠 백작이랑 나란히 제거해줄 생각도 있었다.
“흐흐….”
루이스는 내 바로 앞에서 내 험담을 하며 대화를 즐기고 있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고의로 저 짓거리를 하는 거겠지….
그런데 신기했다.
‘설마 연회 끝나기 전에 퇴장하려는 건가?’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험담을 하고 그대로 정체를 밝히면 루이스의 평판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소문만 퍼트린 뒤에 빠르게 퇴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거참… 쓰레기 같은 생각은 참 잘하네.’
초반에 루이스 녀석을 만났을 때는 몰랐지만, 첫날 억지로 동아리로 끌고 가려고 했을 때 녀석의 성격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주변의 동경을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자신의 곁에 받침대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혼자의 힘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누군가를 체크판의 말처럼 이용해서 해결하는 것을 중시하는 인간.
그게 바로 루이스였다.
‘아마 제프 녀석도 그런 체스 말 중의 하나겠지.’
제프가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라, 카린을 몰락 시키고 싶은 것이다.
아마 제프가 지금 카린과 혼인할 수 있는 관계까지 갈 수 있던 건, 분명 루이스의 암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루이스는 제프를 이용하기 쉬운 폰(체스 말) 정도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폰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이고….
비웃으며 나를 보던 루이스는 갑자기 내게 다가와서 공손하게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계속 조용히 경청만 하시던데. 그쪽 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들 내게 시선이 고정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성수호라고 대답하면 나중에 개 쪽 당하겠지?’
부엉이 얼굴을 하고 있던 터라 너무 눈에 띄어서 나중에 가면을 벗으면 다들 나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그렇다고 연회 중간에 나가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나는 애초에 내 입으로 내 칭찬 따위는 안 한다. 그것이 상남자.’
[….]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그런 짓은 못 하겠다.
나는 다른 한 사람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루나 영애가 제일 뛰어난 것 같습니다.”
“호오… 그럼, 아가씨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루이스는 모르는 척하며 루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은 것이었다.
루이스는 루나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와줄 것이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루나의 입에서는 당연히 다른 인물의 이름이 나왔다.
“성수호 학생이 우수한 것 같아요.”
“….”
루이스는 부리를 씰룩이면서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루나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혹시라도 루이스의 정체가 탄로 날 것을 염려해서 루나에게 대신 질문했다.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입학 성적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학기 1등을 하신 거잖아요. 고작 1학기 만에 역전시킨 건 어마어마한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내 칭찬에 기쁘면서도 루나에게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루나 영애가 더 대단한 게 아닐까요? 기복이 없는 건 마법사가 갖춰야 할 소양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도 맞지만, 먼 이국땅에서 시험을 보기 위해 오셨으면 그만큼 집중력이 소모됐을 가능성이 커요. 그게 입학시험에 영향을….”
“그런데 지금 하신 말씀을 적용하면 성수호 학생은 결국 급격한 성취를 이룬 재능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군요. 역시 루나 영애 쪽이 우위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크윽…. 성수호 학생께서는 짧은 기간에 성장을 이뤄냈어요. 그 점이 훨씬….”
어느새 루나와 나는 주변을 신경을 쓰지 않고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은 황당하게도 자기 자신이 잘났다는 게 아닌, 상대방이 더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토론했다.
목소리가 크지 않기 때문에 연회에 방해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있던 귀족들은 뭔가 싸움 비스름한 느낌이 드니까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이런 중요한 연회장에서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어느새 주변에 있던 귀족들은 모두 떠나고, 티격태격하는 나와 루나, 그리고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는 루이스만 있을 뿐이었다.
루이스는 그저 불만을 넘어서서 짜증이 한가득 쌓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루이스의 입장에서 보면 나와 루나는 서로 모르는 상태임에도 상대방을 위해 열심히 언변을 하는 것이다.
루나는 더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지 씩씩거리면서 나를 바라만 봤고, 나는 조용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루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입을 열었다.
“하아, 하아… 말씀을 잘하시네요. 계속 실수를 잡아내서 물고 늘어지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면 능력이겠네요.”
“감사합니다.”
“…흥.”
나중에 사과해야겠다.
사실 싸우려고 말을 물고 늘어진 것이 아니었다.
루나가 자신을 낮추고 계속 내 칭찬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울컥해서 그녀의 칭찬을 위해 나를 낮춘 것이었다.
그렇게 한차례의 말싸움이 끝나고 나니, 단상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부터 분위기를 좀 더 즐겁게 만들고자, 남녀 간에 춤을 출 수 있는 댄스 타임을 마련했습니다. 부디 마음에 맞는 파트너를 찾아 춤을 즐겨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아까 춤을 추는 시간이 있다고 들은 던 것 같았다.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냥 넘겨버렸지만….
그렇게 잠시 딴생각에 빠진 사이에 재빠르게 루이스가 나와 루나의 사이로 파고 들어간 뒤, 루나에게 손을 내밀며 요청하기 시작했다.
“아가씨… 혹시 저와 함께 춤을 춰 주시겠습니까?”
이런… 망했다.
“저는….”
사실 망했다고 생각한 건 루이스가 루나와 춤을 출 것 같아서라는 이유가 아니었다.
루나는….
“죄송해요.”
내 생각대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
루나의 거절 의사를 들은 루이스는 검은 독수리의 얼굴을 부들부들 떨며 입을 열었다.
“루… 제… 제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루이스 녀석… 지금 실수로 루나라고 부를 뻔했지만, 간신히 참고 넘긴 것 같았다.
루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이유는 아니에요. 죄송해요.”
“크읏… 아, 알겠습니다.”
루이스는 부리를 꾹 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루나는 그렇게 루이스의 춤 요청을 거절하고는 연회장 중앙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연회장 중앙에는 어느새 테이블들이 치워졌고, 이성과 춤을 추는 귀족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루나를 힐끗 본 뒤,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망했네.’
[한번 루나 슈타트펠트에게 파트너를 제안해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루나한테 정체를 드러내고 춤추자고 할 수는 없으니까. 포기하자.’
정체를 밝힐 수 없다면 파트너 제안을 받아줄 리가 없었다.
아까까지 투덕거리면서 말싸움을 한 상대와 댄스 파트너가 되고 싶은 여자는 없을 테니까.
그렇게 아쉬움을 속으로 묵히고 있을 때, 앵무새의 얼굴을 한 루나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오더니 도발적인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같이 춤을 출 사람이 없으신가 봐요?”
“아… 지금은 딱히 없습니다.”
“훗….”
루나는 피식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아까 언변이 뛰어나시던데… 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네요. 같이 추실래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