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화 〉 411화 마법 학교 슈트라 (322)
* * *
나는 일어나자마자 아침 일찍 통신으로 보고를 받았다.
‘…정말이야?’
[그렇습니다.]
보고를 건넨 건 아르모니아였고, 보고의 내용은 내가 자는 동안 일어났던 일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날, 나는 루나를 다시 방으로 보낸 뒤 별일 하지 않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내가 자는 사이에 신원 불명의 인물들이 주변을 맴돌았다는 것이었다.
그걸 감지한 것이 바로 레나였다.
레나는 확인 즉시, 자고 있던 아르모니아를 호출해서 내 주변을 맴돌고 있던 신원 불명 인물들의 기질을 전부 확인했다.
확인된 인원은 총 7명.
그중에 다섯 명은 염탐하려는 의도가 확실했고, 나머지 두 명은 그저 지나간 수준이라 애매모호했다고 설명해줬다.
[다만 레나 씨의 감각을 벗어난 인물이 있었을 수 있기 때문에 주의도 필요합니다.]
레나는 순수한 은신 자체를 감지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상대가 마법을 사용해서 은신했다면 못 알아차렸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확실한 사실은, 누군가가 나를 미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야… 용의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네.’
루이스, 포츠 백작, 카린 브란트루프, 그리고 모르는 귀족들까지….
나를 염탐할만한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용의선상을 좁힐 수 있는 단서가 필요했다.
‘일단 사절단이 떠나기 전에 도시를 둘러보자.’
사절단은 아침 일찍 출발하겠다고 했지만, 아르모니아가 보고 하기 위해 나를 일찍 깨워서 여유가 있었다.
나는 여관을 나와서 벨루스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탐문하기 시작했다.
‘일단 애매모호한 두 명은 직원이니 제외하고….’
문제는 나머지 다섯 명이었다.
문밖에서 서성이던 녀석들부터 시작해서 3층에 있는 내 숙실 창문에 붙어서 몰래 염탐하던 놈까지….
[도시를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벨루스가 아무리 큰 도시라고 해도 기질창을 띄운 이상 숨는 것 따위는 불가능했다.
염탐하던 본인은 그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를 테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기질창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순간은 금세 찾아왔다.
‘찾았다….’
어젯밤에 띄운 기질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얼굴을 보고 알았냐? 아니다.
그렇다고 몸짓을 봤나? 그것도 아니다.
목소리? 내 귀는 벽 하나를 통과하는 소리도 제대로 못 듣는 막귀다.
내가 보고 있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석조로 이루어진 큰 건물이었다.
‘거참… 점점 더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네.’
건물 간판에는 내가 절대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뢰베 상단="" –벨루스="" 지점=""/>
여행 중에 나에게 증서를 건네며 호의 보여왔던 상단이었다.
상단은 아침부터 바쁜지 외부에서 봐도 어수선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실제 물건들이 오고 가는 것이 아닌, 거래에 관련된 서류가 오고 가는 장소였다.
다른 작고, 큰 상단과의 중요한 계약서나 증명서 같은 서류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오고 가는 중이었다.
‘일단 확인이 됐으니 돌아가 볼까.’
바로 얼굴 들이밀면서 상대방의 목적을 캐낼 생각으로 찾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뭐 하는 녀석들인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뿐이었다.
‘뢰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녀석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었네.’
그런데 내가 대충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수호 님.]
‘응? 왜?’
[다시 한번 기질창을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굳이?’
[확대해드리겠습니다.]
기질창들이 전부 내가 보기 편하게 확대가 됐다.
아침에 보고 받은 기질들은 별것 없었고, 현재는 건물 최상층에 있다 보니 잘 보이지 않아서 대충 넘어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아르모니아가 확대해준 기질창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넘기기 시작했다.
분명 아까 보고 받은 인원은 다섯 명이었지만, 이렇게 보니 총 7명이었다.
다섯 명은 분명 나를 염탐하던 녀석들이 맞았다. 하지만 나머지 두 개는….
‘와… 진짜 사람 미치도록 궁금하게 만드는 여자일세.’
정말 의외의 인물의 기질창이 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
카린 브란트루프
[정치력], [인재 집착],[심리 간파], [완벽주의], [대담함]….
=====
=====
릭 호프
[상재], [재빠른 눈치], [말재주], [강약약강]…
=====
..
..
드디어 여정의 마지막을 장식할 날이 다가왔다.
사절단 행렬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토록 기대했던 레빈 왕국에 도착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전혀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실눈을 뜬 채 뒤에 행렬에 보이는 카린의 기질창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와… 진짜 말 걸고 싶어서 미치겠네.’
카린 브란트루프… 그 여자가 뢰베 상단 건물에 있는 것도 모자라서 상단주와 같은 장소에 있었다.
나를 염탐하던 녀석들과 같은 건물에 있기는 했지만, 카린이 그들과 같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철두철미한 성격을 지닌 만큼 상단주와만 알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좋은 걸 알아냈네.’
카린 브란트루프가 뢰베 상단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알수록,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계속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독특한 여자였다.
뭐… 정작 본인은 내게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신기한 건 그동안 가만히 있던 뢰베가 벨루스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염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국경 넘기 전에는 그런 움직임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었다.
‘레빈 국경 넘기 전에는 없었지?’
[그동안 감지된 존재는 없었습니다. 아마 레빈 왕국 자체가 본진이라 슬슬 감시를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아오, 그 여자… 침몽 타이밍만 잡히면 바로 알아낼 수 있을 텐데.’
카린은 다방면으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지만, 마법에 관해서는 티끌의 재능도 없었다.
침몽을 걸 수 있는 환경만 주어진다면 여유롭게 꿈속을 헤집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대화도 제대로 못 나눠본 사이….
그나마 다행인 점은 공작가에서 지내는 동안 빈틈을 찾을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정도이다.
나는 카린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기 위해 주변 경치를 보며 머리를 식히기 시작했다.
‘이야… 이런 시대에 이런 도로를 만들어 놨다는 게 대단하네.’
레빈 왕국과 포츠 백작령을 직통으로 뚫어 놓은 실크로드.
무수한 물품을 실어 나르는 마차들조차도 이틀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다져놓은 땅과 무수한 행렬의 마차가 서로 지나가더라도 방해가 되지 않게 펴져 있는 넓은 도로.
그런 도로를 감탄하면서 보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 황금빛의 태양을 흡수하는 도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레빈 왕국에 도착한 것이었다.
포츠 백작령에 도착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환영이었다.
왕국 입구부터 시작해서 왕궁 쪽까지 이어지는 기다란 두 줄로 이루어진 인파는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목놓아 외치며 환영하고 있었다.
노을이 비추는 도로를 거닐을 때마다 휘날려오는 꽃잎들은 설원에 내리는 눈처럼 쉴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여러 가지 단어가 나왔지만, 그걸 지칭하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었다.
“대마법사님 환영합니다!”
“슈트라의 학장님! 만세~”
“저희 나라에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도시의 모든 사람이 분명 어느 정도 강제로 끌려온 것이겠지만, 그들은 전혀 불만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진심으로 학장을 환영하고 존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을 환영하는 인파를 보는 학장의 눈은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시끄러워서 그런가 싶었지만, 수심이 가득한 표정을 보아하니 딱히 싫어해서 짓는 표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밖을 보면서 물었다.
“너무 어수선해서 그러신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학장은 얕은 한숨과 함께 의자에 기대면서 눈을 차분히 감았다.
“제가 저렇게 환영을 받아도 되는 인물인지 의아해서 말입니다.”
“….”
저들은 학장이 이 세상을 평정했던 과정 따위는 모를 것이다.
그저 그가 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었다는 결과를 알고 있을 뿐….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댄 학장은 무수한 꽃과 사람들로 이루어진 환영을 몸으로 느끼는 듯 보였다.
그렇게 기나긴 행렬을 지나다 보니 작아 보이던 왕궁이 점차 동공을 꽉 채우기 시작했다.
왕궁에 다가갈수록 인파는 점점 줄어들고, 무장한 경비대의 숫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의 그림자가 우리를 전부 뒤덮은 순간 마차가 멈추고, 마차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차의 문밖에 펼쳐진 광경은 지금 내가 있는 장소와 다른 차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화려한 복장들로 무장한 인원들과 그 중앙에 서서 학장을 바라보는 노인.
붉은색 바탕으로 황금색 실선들이 수선을 이룬 망토와 노인을 지탱해주는 각종 보석이 박혀 있는 지팡이.
몸은 쇠약해 보일지언정 기품과 강성을 풍기는 노인은 머리에 쓴 왕관이 기울어지게 고개를 숙이며 크게 외쳤다.
“대마법사, 루트비히 리펜슈타인이시여…. 레빈에 방문해 주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
환영 인사는 생각보다 길게 끌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로 환영회 같은 것을 열까 싶었지만, 먼 길을 이동한 학장을 고려해서 제대로 된 환영회는 차후에 열릴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학장도 왕을 앞에 두고, 그의 말을 흘려듣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한 나라의 대표인 만큼 예우를 갖추고 그에게 환영을 감사한다는 표현을 해줬다.
그렇게 환영 인사가 끝나고 나서, 내가 당분간 지내게 될 장소에 도착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깔끔하네.”
“…정말 여기로 괜찮겠어요?”
루나는 내가 감상하는 것조차 불만이 있다는 듯이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삐친 표정으로 다른 곳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들어온 저택은 브란트루프 가문의 별채였다.
그리고 이 별채에는 어마어마한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곳은 바로….
“충분하다 못해 오히려 기대되는걸?”
“하아… 그렇다고 해도 왕실에서 제공해주는 객실을 놓고 왜….”
루나가 살아왔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슈타트펠트 가문 사람들이 전부 죽고, 혼자 남은 루나는 브란트루프 공작가에서 거둬줬다.
그렇게 거둬진 루나는 이 별채에서 지내면서 어린 시절부터 성장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그런 점이 특별하다고 여겨졌지만, 루나는 그 특별함을 부정하고 있었다.
루나는 계속 투덜거렸지만, 나는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여기가 좋아.”
“하아… 알았어요. 저도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는 않을게요…. 그런데….”
루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별채 밖에서 투덜거리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분은 왜 여기로 데리고 오신 거예요?”
제프였다. 그는 현재 우리가 묶게 될 별채의 앞마당에서 우리 짐들을 바닥에 내팽개친 채 숨을 몰아쉬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제프는 원래 학장의 여행 보조를 위해 내가 데리고 온 것이었다.
원래라면 학장이 지내고 있는 왕궁에 같이 거주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저는 저분이 불편하군요.)
라는 말과 함께 제프를 떼어 놓은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녀석을 데리고 가는 건 내 몫이 된 것이었다.
‘아주 좋아….’
사실 학장이 제프를 내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
애초에 모르는 인간과 이야기하는 것도 꺼리는데,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 인간이 주변을 맴도는 게 마음에 들 리가 없으니까.
나는 투덜거리는 제프에게 다간 뒤, 루나에게 들리지 않게 조용히 말했다.
“야, 너는 여행 끝날 때까지 별채 1층에서 지내는 거야. 알았지?”
“이씨… 너 머리가 돈 거 아냐? 왕실에서 객실까지 제공해줬는데, 이런 병신 같은 곳에서 자겠다고?”
“….”
별채 자체를 욕하는 건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지만, 루나가 지내던 곳을 욕하는 기분이 들어서 속이 드글드글 끓기 시작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아니면 노숙할래? 밖에 잠자리 정도는 마련해줄 테니까.”
“이런 씨….”
제프는 내 말에 결국 백기를 들고 더 이상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제프를 보면서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이 녀석을 이용해서 카린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봐야겠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