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화 〉 404화 마법 학교 슈트라 (315)
* * *
길게 늘어뜨린 황금색 물결의 머리카락과 뚜렷한 이목구비.
160 중반의 키에 가운데로 잘 모여져 있는 C컵 가슴.
붉은색과 하얀색이 잘 어우러진 화려한 드레스.
루나가 밤하늘에 뜬 은은한 달이라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여자는 푸른 하늘에 떠 있는 찬란한 태양과 같았다.
도저히 평범한 귀족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그런 분위기는 풍기는 여자.
나는 바로 그녀의 머리 위에 있는 기질창을 확인했다.
=====
카린 브란트루프
[정치력], [상재(??)], [인재 집착], [심리 간파], [완벽주의], [대담함]….
=====
당장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그녀의 기질이 아니었다.
‘브란트루프?’
그녀가 지닌 이름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분명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내가 머리 위를 빤히 보고 있지, 금발의 여성은 나를 보며 한쪽 입가를 올리며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혹시 갑자기 방문해서 실례가 된건가요?”
“죄송합니다. 원래 방문하시기로 한 분이 오실 줄 알고 제가 실례를 했습니다.”
메이드들만 들어올 줄 알고 기다렸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이 들어오니 내가 한 말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내뱉은 합리적인 변명에도 불구하고, 금발의 여인은 내 마음속을 간파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방문해서 죄송해요. 하지만 전부터 너무 뵙고 싶었던 분이라 이렇게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어요.”
“…저를요?”
“슈트라의 자랑이라고 소문이 자자하던걸요?”
“하하….”
우리가 이렇게 여행을 시작한 건 시험 등수가 발표하고, 이틀 후의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졌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런 의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딱히 상대방을 경계하지는 않았다.
‘섹스….’
[….]
속으로 어떤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나중에 알아보면 그만이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이 여자가 존나 예쁘다는 사실이다.
[루이스와 연관이 있는 인물입니다. 경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르모니아 입장에서는 그녀가 달고 있는 기질창도 걱정이 될 것이다.
외모가 너무 특출나서 신경을 쓰지 못했는데, 저 기질을 달고 있는 인물이 적이라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
‘너무 경계하면 오히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힘들잖아. 일단 대화를 나누면서 차근차근 알아보자..’
[….]
‘왜 조용해? 설마 내가 저 여자 따먹고 싶어서 이렇게 밑밥 까는 줄 알아? 아무리 나라고 해도 무작정 여자를 먹고 싶어 하는 인간인 줄 아냐고!’
[본인께서 벌써 모든 속마음을 털어놓으신 거 같습니다만….]
‘….’
카이저 소제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나는 그저 발을 저리는 좀도둑 신세가 되어버렸다.
아르모니아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을 회피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현실에서 당당해질 필요가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차분하게 일어난 뒤에 금발의 여인에게 격식을 차리며 테이블 쪽으로 팔을 뻗었다.
“이왕 오신 거 차라도 한잔….”
어차피 나를 찾아온 여자다.
일단 대화하면서 속마음이나 좀 떠볼까 싶은 마음에 예의를 차린 순간이었다.
“아뇨. 괜찮아요.”
“…네?”
“그냥 궁금해서 찾아온 거였어요. 그럼 쉬세요.”
금발의 여인이 방을 나가자 메이드들도 그녀를 따라 나간 뒤,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방안에 고요함만 가득할 뿐이었다.
‘감히 나를 뻘쭘하게 만들어? 두고 보자….’
[….]
그렇게 복수의 대상이 하나 더 늘어 났다.
..
..
나는 메이드들이 입혀주는 옷을 입으면서 아르모니아에게 물었다.
‘누나?’
[그렇습니다. 다만… 누나가 있다는 정보 말고는 따로 받은 게 없습니다.]
그리고 아르모니아가 그 사실을 굳이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심플했다.
=====
카린 브란트루프
[정치력], [상재(??)], [인재 집착], [심리 간파], [완벽주의], [대담함]….
=====
마법적 재능이 단 1도 없는 여자.
그녀는 슈트라에 들어올 기본적인 자격조차 없는 여자였다.
즉, 내가 이렇게 루이스의 초대를 받지 않았다면 만날 일도 없었을 여자였다는 것이다.
‘하긴 루이스 부모가 누군지도 내 알 바가 아닌데….’
매번 루이스가 가문을 들먹이면서 공작의 자제이다 어쩌고저쩌고했지만, 나는 공작이 뭘 하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그런 마당에 슈트라에 올 수도 없는 여자의 정보를 알아낼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한번 접근했다면 필시 다시 접근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겠지? 그런데….’
카린 브란트루프… 그녀가 가진 다른 기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법에는 재능이 없지만, 그 외의 분야에서 꽤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으로 그 재능과 더불어서 뒤에 보이는 기질들을 보니, 그녀가 어떤 인간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재능 집착], [열등감], [다급함], [불안함]….
재능 부재로 인한 열등감에서 우러나오는 집착성 기질들이다.
웃기는 일이었다.
정치 재능, 상재 등등… 분명 인간적으로 굉장한 수완을 낼 수 있는 여자임에도 열등감과 불안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집착하는 성격… 그렇다면….
‘마법 재능이 없는 것에 굉장히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는 소리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이쪽 세계에서 마법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이곳은 마법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마법을 중시하는 세상이었다.
마법적 재능이 특출나면 평민이더라도 귀족 이상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반대의 상황도 성립이 된다는 의미가 된다.
‘귀족이라고 해도 마법적 재능이 없으면 점점 쇠퇴하는 꼴이 된다는 의미네.’
돈과 권력이 빈 곳을 메꿔주겠지만, 명예라는 구멍을 완벽하게 메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카린의 기질창을 보면서 감탄했다.
‘햐… 에넬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저렇게 유능한 사람도 그저 기질창을 띄워서 이것저것 확인한 것뿐인데, 어떤 인간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유능하다는 건 자기 자신을 잘 숨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런 유능한 여자가 이렇게 쉽게 까발려진 것을 보면 에넬이 정말 대단하긴 했다.
[기질창을 보는 건 사기적인 능력이지만, 생각을 읽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정도 대책이 마련되려면 상대의 의도를 알아내야 합니다.]
‘음… 좋아.’
나는 메이드들이 옷을 다 갈아입혀 준 것을 확인한 뒤 천천히 방을 나서기 시작했다.
‘루나한테 직접 물어보자.’
루나는 루이스 가문과 친분이 있고, 분명 루이스의 누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테니까.
..
..
“카린… 님이요?”
“…님?”
의외였다.
친분이 섞인 목소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루나의 표정에는 난감한 기색이 드러날 뿐이었다.
그녀는 한껏 꾸민 드레스를 내게 자랑하다가 의외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나를 근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모를 리가 없죠. 루이스의… 누님이시니까요. 그런데 카린 님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
“아까 나한테 찾아왔어.”
“아….”
루나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머리를 감싸며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곳은 루나의 개인 객실이었지만, 그녀는 혹시라도 누가 우리의 대화를 들을까봐 전전긍긍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렇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건 카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설마 사절단으로 찾아온 줄 몰랐어요.”
“응? 아까 소냐 교수님이랑 사절단 귀족들 만난 거 아니었어?”
루나는 고개를 절레거리며 말했다.
“모든 사람을 다 만나지는 못했어요. 이곳 백작님부터 시작해서 고위층에 머무시는 귀족분들만 뵌 거였어요.”
“오….”
루나가 아무리 몰락 귀족이라고 해도 귀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사절단을 대표하는 귀족들과의 만남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슈트라의 대표인 소냐와 레빈의 귀족인 루나와 루이스가 그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었다.
참고로 지금 슈트라의 대표는 소냐였다.
학장은 그 많은 인파를 보면서도 별 감흥 없이 조용히 자신의 객실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사절단의 귀족들은 학장과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학장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침묵할 뿐이었다.
‘학장이 왜 밖을 안 나오는지 알 거 같아.’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학장 같아도 밖에 외출하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귀찮게 하니까….
내가 학장에 대해 생각하는 사이에 루나는 다시 대화를 원점으로 돌렸다.
“카린 님이… 수호 씨를…..”
“왜? 안 좋은 사람이야?”
“아뇨. 저랑 친하지 않지만, 평판에 있어서는 굉장히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하긴… 기질만 대충 봐도 적당히 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 뛰어난 인재라는 게 뭔지 알 수 있는 여자였으니까.
‘진짜 요주의 인물이네.’
루이스가 학교에서 멍청한 짓을 해서 그렇지, 레빈 왕국에서는 평판이 굉장히 좋을 것이다.
공작의 자제부터 시작해서 슈트라에 수석 입학과 그리고 비록 2등이지만, 우수한 성적을 지닌 마법사라는 타이틀까지….
거기다 놈팽이의 누나라는 인물은 마법에 재능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평판까지 좋다고 하면… 둘이 뭔 계략을 꾸밀지 모르니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가족이란 한쪽이 당한 상처를 자신의 상처로 여기며 같이 복수를 해주는 존재이니까.
“후… 루이스 녀석이 누나랑 또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겠네. 몸조심해야겠다.”
“그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뭐?”
루나는 나를 보면서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카린 님께서는… 루이스를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증오하고 계시니까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