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7화 〉 397화 마법 학교 슈트라 (38)
* * *
여행에 목적지만큼 중요한… 아니, 목적지보다 더 중요한 사항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일행.
누군가와 가는지는 여행에 있어서 목적지 이상으로 중요하다.
기대하던 여행지를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가는 것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이 더 행복한 법이다.
첫날은 루이스 덕분에 전자의 기분을 느꼈다면 둘째 날은 루나 덕분에 후자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같은 장소로 향하는데도 불구하고 어제는 먹구름이 가득한 진흙밭을 걷는 기분이었다면 오늘은 봄바람이 살랑이는 꽃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루나가 마차에 탑승하자 마부가 조그마한 창문을 열고는 우리에게 말했다.
“출발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네.”
루나의 대답과 함께 마치는 출발할 준비를 마쳤고, 선두에 있는 학장의 마차가 출발하면서 우리 마차도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는 마차 소리와 함께 루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소냐 교수님께서 힘드시겠어요.”
“그러게…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있는 게 없어서 안타깝네.”
학장의 갑작스러운 변덕 때문에 슈트라에서 그에게 호위를 붙여주려고 했지만, 그는 강하게 거절하면서 결국 무산되었다.
하지만 마침 학장이 가고 싶어 하는 곳이 소냐의 목적지와 같았고, 학교 측에서는 아마 소냐에게 호위에 준하는 임무를 맡겼을 것이다.
학장 정도의 실력자라면 애초에 문제가 생길 리가 없지만, 학장은 슈트라의 중심이자 그 자체였다.
슈트라의 입장에서 그저 발 뻗고 편히 그를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번에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어요. 슈트라 교수의 위용을….”
한눈에 봐도 대형 상단주로 보이는 자들이 소냐가 교수의 직책을 입 밖으로 내자마자 바로 합죽이가 되었다.
그들 입장에서 학장은 하늘 위에 떠 있는 태양이라면, 소냐는 그들의 곁에 크게 솟아오른 산과 같은 것이다.
태양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언제나 평온하게 세상을 비출 뿐이지만, 거대한 산은 한번 분노하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기 마련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히려 소냐라는 거대한 산이 자신들을 산사태로 깔아뭉갤 수 있는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나와 루나는 슈트라에 대한 위용을 느끼면서 마차 뒤를 바라보면서 헛웃음을 내기 시작했다.
“소냐 교수님의 호통을 먹고도 저렇게 따라오는 걸 보면… 정말 학장님이 정말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네.”
“…저는 오히려 수호 씨가 대단하네요.”
“응 내가?”
소냐에 이어서 학장, 그리고 갑자기 마지막 대상이 나로 바뀌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꿈이 뭔지 아세요?”
‘설마 내가 꿈의 한 축이라는 설명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
왜? 루나가 나 대단하다고 했잖아?
내가 혼자 뻘생각을 하며 침묵하고 있자, 루나가 조용히 답을 해줬다.
“대마법사예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어린이의 우상은 영웅이고, 그 영웅이 가지고 있는 칭호가 곧 아이들의 꿈이 되는 편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입에는 학장이라는 표현보다는 대마법사가 입에 착착 감길 테니까.
“하지만 대마법사를 꿈꾸던 아이는 각박한 세상을 살면서 점차 위축되고, 결국 성인이 되어서 주제를 파악하게 되는 거죠.”
“….”
“자기 같은 인간은 결국 대마법사가 될 수 없고, 그런 대마법사의 옆에 다가서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초라한 어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죠.”
뭐랄까….
루나는 분명 제삼자의 눈으로 보듯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1인칭 시점으로 점차 이야기를 좁혀오기 시작했다.
“결국 현실을 깨닫고 나서 어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하나예요.”
동등한 위치 따위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은 하나다.
“슈트라….”
“네, 슈트라에 들어와서 대마법사의 인정을 받는 거예요.”
루나는 마지막 말과 자신의 표정으로 복잡한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
뛰어넘고 싶은 상대가 아득히 먼 곳에 있다 보니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 것이다.
루나는 분명 학장을 존경하고 있다.
그건 매번 그녀가 내게 학장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내면 깊숙이 숨겨 놓은 질투심은 그저 숨겨 놓고 싶어서 숨겨 놓은 것이 아닐 것이다.
지우는 게 불가능하니, 최소한 보이지 않게 숨겨 놓는 것뿐일 것이다.
[성장에 대한 갈망]
루나는 언제나 성장하기를 갈망하고, 그 갈망의 이끌림 덕분에 나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런 갈망이 있는 여자가 질투심이 없을 리가 없다.
루나는 그렇게 설명하고 나서 나를 지긋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질투심은 나에게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학장님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고, 손을 댈 수 있다는 사실이….”
질투심이 간혹 드러났지만, 루나가 내게 한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아마 철부지 같다는 생각도 좀 하겠지만….
나는 괜히 촐싹대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진중하게 말했다.
“딱히 큰 의미는 없었어. 학장님의 옆에 서서 자만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등하게 생각한 건 더더욱 아니야.”
“…저는 수호 씨를 부러워하면서도 불안해요.”
루나는 자신도 나처럼 학장을 서슴없이 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정말 내가 하는 행동처럼 그저 필요한 말을 건넬 때는 부담 없이 건네고, 마주 보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그게 꿈이었으니까….
“전… 슈트라가 인생의 마지막 기회예요.”
“….”
가문이 몰락한 루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
모든 인간에게 욕심은 하얀 눈동자 안에 동공과 같은 존재이다.
욕심이 없으면 목표가 생기지 않고, 목표가 없으면 인생을 나아갈 길을 볼 수 없게 된다.
나는 인생의 시야를 담당하는 게 바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루나에게 그 욕심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만약 슈트라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그저 평범하게 졸업하게 된다면 루나는 슈트라 학생이라는 신분이 그녀의 인생의 마지막 꽃길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나처럼 행동하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학장의 심기를 혹시라도 건드리면 그야말로 슈트라의 생활은 막을 내릴 테니까.
“한편으로 제가 수호 씨를 정말 사랑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에요.”
“응? 나?”
“제 마지막 기회가 끊어질 뻔한 걸 잡아주셨잖아요.”
“아….”
생각해보면 루나가 그 조교수에게 험한 꼴을 당했으면 지금 같은 학교생활은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사실 그걸로 학교생활 자체가 끝날 수도 있었다.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톱니바퀴는 시계 전체를 망가트릴 테니까.
루나는 그때 생각을 지우려는 듯 다시 미소를 찾으며 분위기를 전환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수호 씨는… 본인 할 말은 일단 다 하시는 성격인 거 같아요.”
“그런가? 나름 가려서 말하는 거라고 하는 건데….”
“그게 가려서 말하는 거라고요? 저는 아직도 그때 일을 떠올리면 가슴이 철렁하는데….”
“그때 일? 내가 뭐 실수했어? 말해줘.”
내가 근래에 루나한테 실수했던가?
설마 어제 섹스하면서 뭘 잘못 말했나 싶었다. 특히 어제는 루나가 루이스의 험담을 하며 내 골반 위에서 춤을 추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거친 말을 수없이 내뱉었으니까.
내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자, 루나가 나를 보며 피식 웃고는 한마디를 했다.
“싫은데?”
“…? 뭐야? 갑자기?”
내가 알던 루나가 할만한 대사가 아니었다.
그것도 반말로….
루나는 짓궂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게 힌트예요.”
“…아!”
나는 순간 떠오른 옛 기억을 되새기며 이마를 손으로 가리며 중얼거렸다.
“그건… 사정이 있었어.”
“어머? 무슨 사정이 있으셨길래. 그저 식사하자는 말에 그렇게 예민하게 나오셨어요?”
루나와 아직 친하지 않았을 때.
나는 루나가 같이 밥을 먹자는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싫은데?)
(….)
그때 루나가 지었던 표정은 예술이었다.
아마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을 보는 루나의 심정이 그 당시 내 심정이었으리….
사랑하는 사람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건 생각보다 연애의 즐거움 중의 하나일 테니까.
하지만….
“네? 말씀해주세요. 그때 얼마나 제가 싫으셨어요? 그저 악수를 거절한 것뿐인데…?”
“끙….”
이대로는 루나의 짓궂음에 레벤에 도착할 때까지 농락당할 것 같았다.
탈출… 탈출로를… 아!
떠올랐다. 루나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그녀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는 비장의 수가….
“그러고 보니까, 내가 마법진을 구사하는 걸 그 전날 본 거였지?”
“그렇…죠?”
누구에게도 관심을 주지 않던 루나가 나에게 식사 제안을 했던 건 바로 마법진 구사 때문이었다.
머릿속에 떠올린 것만으로 현실에 마법진을 구현하는 능력.
그걸 루나에게 들켰고, 루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내게 호의를 베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호의의 첫 시작이 식사 제안이었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마법진이었지.”
“…?”
나는 이 상황을 빠져나갈 수 있는 필살의 한 수를 내질렀다.
“마법진… 연습 잘하고 있어?”
루나는 똑똑한 여자다. 내 질문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것쯤은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잠깐만요! 설마 여기서 그렇게 빠져나가시려고요!?”
“어허! 빠져나가다니… 우리 둘을 이어준 중요한 존재잖아.”
근래에 시험이다 뭐다 해서 바빠서 신경을 못 썼지만, 루나에게 마법진 구사는 학교 성적보다 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다고 해도 막상 궁지에 몰린 내가 버그를 쓴 것처럼 빠져나가니 약이 오르는 듯 보였다.
“치, 치사해요!”
“어허! 치사하긴. 자, 루나 학생… 마법진 테스트 좀 해봅시다.”
“으으….”
루나는 불만이 푸릇푸릇 가라앉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허공에 마법진을 구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만을 속에 쌓고 있을 수는 없었는지 가끔 나를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아으… 약 올라.”
“하하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여행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법이고, 나는 그 사실을 지금 이 순간 또 느낄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