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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392화 (393/898)

〈 392화 〉 392화 마법 학교 슈트라 (3­3)

* * *

“이제야, 단둘이 됐군요.”

“….”

나는 내가 정확히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실망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정도?

학장은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로 마차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세상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돈으로 안전과 다른 사람의 시간을 구입할 수 있다니….”

“그건 과거랑 다를 게 없지 않나요?”

슈트라만 봐도 이미 내가 아는 중세 시대와 한참 거리가 멀어 보였다.

화폐로 사람을 고용하고, 물건을 사고, 생활을 이루어 가고 있다.

비록 그 슈트라 안에 들어가려면 엄청난 존재의 신뢰를 얻어야 하지만….

심지어 슈트라는 대부분 국가에서 생산되는 화폐를 모두 사용 가능한 유일한 도시라고 들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도시를 만들어 낸 양반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재의 이야기였다.

“제가 한창 세상을 돌아다닐 때는 화폐는 국가의 고유 자산이었고, 개인은 함부로 자기 재산을 축적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오….”

학장은 과거에 있었던 세상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개 전쟁이 주를 이루는 내용이었지만, 내 흥미를 끌 만했다.

말주변도 나름 괜찮아서 이야기 자체도 재미가 있었다.

그는 한창 재미있게 이야기하더니, 한숨을 쉬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가끔 교수들에게 이야기해 주면 이해 못 하는 친구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비효율과 비정상적인 이야기로 듣더군요. 혹시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설마요. 저는 이해해요.”

“오호….”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도 없었다.

세상은 언제나 바뀐다.

문명을 자기중심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건 옳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중심으로 비판하고, 비난하는 건 오히려 미개함을 증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법이다.

내가 조선 시대 사람의 삶을 책으로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과 다를 게 없으니까.

“어차피 지금 누리고 있는 현재도 결국 미래의 후손들에게 평가될 테니까요.”

“호….”

학장은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주를 누비는 분은 달라도 많이 다르군요.”

“하하….”

우주를 누비며 여자 꼬시는 일을 한다고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건 좀 궁금하네.

하지만 궁금한 건 궁금한 거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무슨 용건이 있으신 거죠?”

루나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내 상상을 깬 이유를 물어볼 차례였다.

학장과의 대화는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런 재미도 내 기대감을 깬 보상으로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루나 내놔….

내 모습을 지긋이 보던 학장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너무 방해를 일삼았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방해까지는….”

방해를 넘어서는 훼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너무 쪼잔한 사람이 되니까, 은근슬쩍 다리를 놓아줬다.

방해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넌 내 기분을 망쳤어! 라는 식으로….

[마음을 좀 넓게 가지시는 게 어떻습니까? 루나는 언제든 만날 수 있습니다.]

‘흥!’

[후….]

일단 내 기분이 우선이야!

철없는 동생을 보는 듯한 아르모니아의 한숨을 들으며 학장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학장은 씁쓸하게 미소를 짓더니,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

말이 이상하다.

여행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슈트라에서 출발한 지 5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벌써 여행을 마친 감상을 읊으라는 건가?

하지만 학장의 다음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이번에는 한 달 정도 바쁘게 다니신 거 같은데, 다른 세계는 즐거우셨습니까?”

“아….”

내가 슈트라를 비운 건 고작 몇 시간이지만, 학장은 내게서 느껴지는 괴리감으로 시간을 구분한 것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어느 정도 비웠는지도 알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괴물이네, 괴물….’

하지만 그 의미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저 질문을 하는 의도를 알아야 했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죠.”

“허허허… 그래도 다시 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학장은 나에게 비밀리에 부탁을 해왔다.

자신을 죽여달라고….

그건 조디악도 모르고, 아르모니아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학장은 다급하지 않지만, 불안하기는 할 것이다.

나라는 미지의 존재가 자신의 목숨을 끊어줄 유일한 인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중이니까.

그다음으로 가능성이 엿보이는 게 바로 루이스….

학장은 내가 죽이는 것을 실패하면 오히려 적으로 돌변해서 루이스의 편에 설 수도 있는 인물이다.

어떻게든 슈트라에서 지내는 동안 그를 죽일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뭐…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학장도 불안한 거지, 조급한 건 아닐 것이다.

5백 년 살았던 양반이 이제 와서 3년을 못 기다릴까….

내가 그렇게 침묵하며 고민하자, 내 생각을 읽었는지 흐뭇한 미소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슈트라에 있는 동안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성심성의껏 도와주겠습니다. 말씀만 해주세요.”

지금 대화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필요하면 도움을 요청하라는 의미였다.

‘도움이라… 아!’

생각해보면 학장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마법진에 관해서 제일 조예가 깊다.

마법진에 관해서 그가 모른다면 우주 어디를 뒤져도 해결책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거다….

“한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오호. 설마 이렇게 빨리 덥석 물 줄은 몰랐습니다.”

학장은 살짝 장난기 어린 목소리를 넣었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부탁입니까?”

나는 마법진 구사 팔찌를 이용해서 마차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생각으로 하면 0.1초 만에 튀어나오는 녀석이, 손가락으로 그리려니 한참 걸렸다.

내가 마법진을 그리는 동안 학장은 흐뭇한 미소에서 점차 눈매를 좁히며 진중하게 마법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마법진을 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마법진… 혹시 제대로 조합해주실 수 있나요?”

내가 보여준 마법진은 영사관에서 만들어냈던 랜덤 마기 트랩이었다.

학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겉으로 보면 이상한 마법진을 그린 ‘나’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었다.

“…정말 대단하군요.”

학장은 순전히 내가 그린 ‘생소한 마법진’을 보며 놀라 하고 있었다.

“한 세상에서 기반으로 탄생한 지식은 그 세상에서만 통용되는 법이죠. 어느 정도 공통분모는 있을 수 있지만, 그건 범주가 보편적일 때만 일어나게 됩니다.”

마법진은 이 대륙의 고유 지식이었다.

그런 지식을 외부 세계의 지식과 융화해서 섞은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게 특히 마법진처럼 특수한 지식이라면 더더욱….

몇 년… 아니, 몇십 년을 넘어서 백 년을 넘게 연구하는 것이 바로 마법진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런데 나는 그런 지식을 섞어서 단시간에, 그것도 간단히 또 하나의 지식을 완벽하게 만들어 낸 것이었다.

학장은 내 마법진을 유심히 보면서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이 마법진을 보니… 저희 세계에서는 사용할 수 없겠군요. 마나를 이용하는 게 아닌, 다른 에너지원을 이용하는데…. 정확한 정체는 저도 모르겠군요.”

아무리 그가 천재더라도 마기의 존재를 본 적이 없으니 그 존재를 마법진을 통해 추상적으로 이해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학장에서 본론으로 들어가 질문했다.

“안되나요?”

“….”

학장은 골똘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됩니다. 아니….”

“…?”

“되게 해보겠습니다.”

학장은 지금까지 보여줬던 느긋한 표정이 아닌, 의욕이 한껏 부푼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하루 이틀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릴 것입니다.”

“시간이 촉박한 일은 아닙니다.”

“그럼….”

학장은 지금까지 들려주지 않았던 열의가 담긴 목소리로 답한 뒤, 내 마법진을 뚫어지게 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저도 시험을 치르는 학생의 기분을 느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 이후에 학장은 내가 그린 마법진을 뚫어지게 바라볼 뿐,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집중하는 것이었다.

‘잘 됐으면 좋겠다.’

[학장은 마법진을 통달한 자입니다. 아마 좋은 결과물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게 됐으면 좋겠다. 마기 트랩… 좋긴 한데, 너무 단점이 커.’

내가 학장에게 부탁한 건 마기 트랩의 분리화였다.

마기 트랩은 독기가 존재하는 던전에서만 사용 가능한 마법진이었다.

분명 마법진 자체는 유용하게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유용한 마법진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바로 랜덤성.

‘만약 마기 트랩에 있는 마법진을 전부 뜯어서 재조립할 수만 있다면….’

[영사관 쪽 던전은 수호 님의 영역이 될 것입니다.]

그야 초강현 같은 새끼가 던전에 있으면 그 장소에 피라미드의 파라오처럼 내 무덤이 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저번에 만났던 괴한들이 무더기로 나타나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조용히 있어 주자.’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마저 하려던 중요한 볼일을 보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자기 시작했다.

..

..

마부들은 마을에 도착해서 각자 맡은 일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고객을 위한 숙박시설을 담당하는 마부, 말을 손질하는 마부, 마차를 관리하는 마부.

그중에서 제일 난감한 일을 맡게 된 마부는 바로….

“어, 어떻게 할까요?”

우리의 안내를 맡은 마부였다.

학장의 집중은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아니, 도착하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내가 부탁한 마법진 재조립을 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집중력이 너무 깊어서 마차에서 내릴 생각도 못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난감해하고 있는 건 마부뿐만이 아니었다.

나머지 일행인 소냐와 칼, 루나와 루이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집중하는 학장의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쉽게 방해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나서야겠네….’

이 상황을 만든 책임은 내게 있다. 내가 풀어야 할 숙제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마차 안에서 집중하고 있는 학장을 불렀다.

“학장님.”

“!?”

나는 그냥 불렀을 뿐인데, 마부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엘리트에서 광신도, 그리고 지금은 쫄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쫄보 마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학장을 바라봤다.

“….”

집중하느라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결국 고개를 절레거리며 학장의 어깨를 흔들기 시작했다.

흔들, 흔들….

“수, 수호 씨!?”

“크헙!?”

마부는 수명이 다했다는 듯이 단말마 같은 목소리를 내뱉었고, 그 옆에 있던 나머지 멤버들도 놀라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특히 제일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루나였다.

놀랐다기보다는 정말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루나의 모습을 개의치 않고 학장의 어깨를 흔들며 그를 불렀다.

“학장님! 정신 차리세요!”

“응?”

학장은 몸이 흔들리며 머리에 울려오는 내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루나와 다른 사람들이 경직된 표정으로 학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장은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보며 물었다.

“여긴…?”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아하….”

학장은 뻘쭘한 표정을 지으며 마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마차에서 내린 뒤 학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내주신 문제… 정말 어렵군요. 하지만 그만큼 오랜만에 즐거운 생각으로 가득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하….”

“저는 좀 더 문제를 풀어봐야겠으니, 일찍 숙소로 들어가고 싶군요.”

“제, 제가 모시겠습니다!”

안내를 담당했던 마부가 학장을 모시고 여관으로 모셔가기 시작했다.

마부와 학장이 사라진 장소.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침묵은 침묵인데, 시선은 모두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침묵 어린 시선을 느끼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도와주려는 건지… 귀찮게 하려는 건지….’

[….]

그 이후 결국 나는 식사를 하는 내내 루나뿐만 아니라, 소냐와 칼에게 붙잡혀서 질문 세례를 받아야만 했다.

이를 갈고 있는 루이스만 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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