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화 〉 390화 마법 학교 슈트라 (31)
* * *
함선에 돌아오자마자 아르모니아의 호출을 받은 뒤, 그녀가 주최하는 임원 회의를 진행했다.
“임원 회의?”
“그렇습니다.”
“회의에 참여하는 인물은?”
“저와 수호 님입니다.”
“….”
그냥 평소에 하던 대화랑 뭐가 다른 거지?
심지어 장소도 내 집무실… 그냥 언제나 복귀하면 으레 진행하는 대화의 장이었다.
하지만 아르모니아의 생각은 달랐다.
“이제 저희 함선에는 정식 사원도 존재하고, 실전에 투입 가능한 인재도 늘어났으니 표현 방식을 올바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EO 님의 말씀이라면 따라야지. 하지만 그전에….”
“…?”
“그렇게 중요하다면 함선이라는 표현보다, 사명(?名)을 정식으로 말해야 하지 않겠어?”
“….”
내 짓궂은 미소에 아르모니아는 침묵하더니, 내 귓속에 간신히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NT… L 코퍼레이션의 간부 회의를 진행하겠습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아르모니아가 잠시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볼 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저 그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이 좋은 게 아니라, 그 곤란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장난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번 주제는 뭐야?”
“영사관입니다.”
이제 막 돌아온 곳에 대한 문제라….
사실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초강현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합니다.”
우리가 이동하는 건 기본적으로 임무를 바탕으로 그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임무가 없다면 갈 이유도 없고, 갈 필요도 없다.
그런데 임무 자체는 이미 잘 수행하고 있었다.
왜냐면 내 임무는 초강현의 주변 여자를 꼬시는 거니까.
그리고 그건 오늘부로 사실상 완벽하게 성공했다.
하지만 그건 내 임무가 성공한 거지, 조디악이 원하는 상황이 펼쳐진 건 아니었다.
“조디악 측에서 좀 더 세밀한 조사를 부탁해왔습니다.”
“하긴….”
요구가 아니었다.
부탁이었다.
임무 자체는 성공했지만, 뭔가 부족하니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초강현의 뒤를 캐달라는 거겠지.
그리고 그 부탁은….
“좋아. 이제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자.”
못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나는 성수아와 초서현을 잊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비록 그녀들이 평생 내 옆에 있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 당장 갑자기 뿅 하고 사라질 생각은 없었다.
겸사겸사였다.
성수아와 초서현을 관리하는 김에 초강현의 뒤를 캐는 것.
주객전도일 수 있지만, 그게 내 입장이었다.
“조디악 측에 정식으로 보낼 답변을 작성하겠습니다. 다음은 에넬 지급 방식의 변경에 대해서 입니다.”
“변경?”
에넬은 내가 한 세계에 머무는 시간에 비례해서 받고 있었다.
장기임무에 받고 있긴 하지만, 지금 당장 하는 임무들이 전부 장기 임무라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 자연스럽게 받고 있어서 별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변경 방식은….
“한번 방문했을 때 이뤄냈던 성과를 보고하면, 합당한 결과물에 따른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1주일마다 지급하는 방식에서 방문했던 곳의 성과에 따라 지급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내게 좋은 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성과제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방식이 조디악에게 유리하게 들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자기들 멋대로 줄 수 있다는 거잖아?”
“일단 표면상 그렇지만, 기본급이 존재합니다.”
“얼만데?”
“30만 에넬을 기본으로 책정하고, 성과에 따라서 플러스 @를 지급한다고 했습니다.”
30만+@.
이번에는 반대로 우리 쪽이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한 세계관에 2주일 이상 머물러야 지급해준다고 했습니다.”
“하긴… 그렇겠지. 오케이.”
악용의 소지를 미리 지우는 건 서로를 위해서 현명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로를 믿기 위해서라도 오히려 철저한 게 중요했다.
괜히 좀 더 이득을 챙기려다가 서로 기분 상하면 오히려 개판 날 수 있는 것이 계약 관계다.
사람은 조금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오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흐릿해지기 마련이니까.
“보고서는 제가 임의로 작성해서 보내겠습니다. 당연히 수호 님에게 해가 되는 부분은 전부 생략하고, 구성해서 보내겠습니다.”
“….”
나는 무 답변으로 아르모니아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아르모니아는 무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침묵의 향연이다.
그리고 그 침묵 끝에 내가 내뱉은 말은….
“더 진행할 안건 있어?”
“없습니다.”
“오케이~ 종료!”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예정지는 슈트라입니다. 도착할 때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응, 쉬어.”
그렇게 나와 아르모니아의 간부 회의는 종료되었다.
하지만 나의 일과가 끝난 건 아니었다.
“…레나한테 물어볼까?”
나는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레나를 찾아갔다.
..
..
레나는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되물었다.
“원하는 것… 말씀이십니까?”
“응, 내가 없을 때 혹시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해서.”
내가 물어본 건 레나에 관해서가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아르모니아 님께서는 제게 개인적인 사담을 요청한 적이 없으십니다.”
“아….”
내가 레나에게 물어본 건 별것 아니었다.
“아르모니아는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아르모니아의 기호(??)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 온 뒤 아르모니아와 긴 시간을 보냈고, 어떤 의미에서 아르모니아와 매일 옆에 붙어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좋아하는 걸 모르고 있었다.
뭔가 거창한 선물을 해주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뭘 좋아하는지, 혹시 가고 싶은 곳은 있는지 등등….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했지만, 막상 아르모니아의 침묵을 앞에 두니 선뜻 입이 열리지 않아서 레나에게 온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레나도 몰랐다.
그렇게 허탕인가 싶은 타이밍에 나와 레나 옆에 누군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행인에게 질문을 구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설문 조사 중인데 협조 가능한가요?”
“냥? 설문? 갑자기 무슨 소리냐냥?”
베아트리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짓궂은 표정으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혹시 지금 재채기하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만약 있으시다면 기다려드리겠습니다.”
“….”
“재채기 안 하세요? 아! 혹시 지금 재채기하려는데, 제가 막은 건가요? 이런~”
“우….”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는 베아트리체.
니가 왜 삐졌냐.
네 재채기 때문에 곤란한 건 나였는데.
하지만 생각해보면 베아트리체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도와준 인물이었다.
장난도 적당히 쳐야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농담이고, 한가지 물어보려고. 아르모니아가 뭘 좋아할 거 같아?”
“모르겠다냥.”
“즉답일세….”
기대하지 않았지만, 정말 생각 한 톨 담겨있지 않은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실망하고 있을 때, 베아트리체는 꼬리와 날개를 살랑거리며 내게 말했다.
“하지만 알아낼 방법은 있다냥!”
“응? 방법?”
내 의문에 베아트리체는 양쪽 검지를 쭉 뻗어서 내 머리에 살짝 찍으며 미소를 지었다.
“침몽하면 된다냥!”
..
..
“….”
“….”
지금 내 눈앞에는 곤히 잠들고 있는 아르모니아의 나긋한 표정이 들어오고 있었다.
시작은 그저 그녀에 대한 사소한 것을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간단하게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알고 싶었다.
아르모니아는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흐트러짐 없이 숨을 쉬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흐으….”
“피곤했나 보네.”
막상 이렇게 잠든 모습을 보니, 검은 마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레나가 있어서 무리하지 않겠지만, 레나가 오기 전에 아르모니아는 거의 혹사 수준으로 나를 보좌해줬었다.
도대체 어떤 원동력이 아르모니아를 그렇게 이끄는 것일까.
그녀의 꿈속에 들어가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원래 목적은 그저 좋아하는 음식 정도만 알아내려고 했지만, 실수라는 핑계로 그녀의 과거를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만난 여자 중에서 유일하게 과거가 완전히 어둠 속에 감춰진 여자.
궁금하지 않다면 남자가 아니다.
가상의 여자들에게 허덕이던 나를 현실의 여자에게 눈을 돌리게 한 여자.
‘생각해보면 신기하네….’
나는 아르모니아를 만나기 전에 평생 현실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본 날을 기점으로 모든 게 변하기 시작했다.
다른 현실 여자에게 매력을 느낀 건 비올라를 만나고 나서였지만, 현실 여자 자체에 매력을 느낀 건 아르모니아가 처음이었으니까.
비올라를 만났을 때, 충격이었다면.
아르모니아를 만났을 때는 변화였다.
그녀를 만난 순간 내 모습은 변화하고, 동화되어 있었다.
“…혹시 내가 최면에 걸렸나?”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살짝 그런 기분이 들정도로 아르모니아를 만나고 나서 내 가치관이 전부 변했다.
사실 최면에 걸렸다고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 내 인생이 행복해진 건 이 여자 덕분이라는 건 변함없으니까.
“어떡하지.”
나는 아르모니아의 삐져나온 머리카락 한 올이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길래, 옆으로 살며시 쓸어 넘겨줬다.
살짝 꿈틀거리긴 했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있는 아르모니아를 10여 분간 쳐다보며 고민한 끝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이건 아냐.”
나는 그렇게 거부 의사를 비치며 아르모니아의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빠져나와서 내 집무실로 향하고 있을 때, 문뜩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이 떠올랐다.
‘다른 여자들 꿈속에 들어가는 건 그렇게 쉽게 하는데… 이상하게 아르모니아는 못 하겠단 말이지….’
그리고 아르모니아가 내게 몸을 내어줄 때도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옷을 다시 입혀주면서 거절했었다.
내기 때문에?
아니다… 그냥 본능적이었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집무실을 뚫어지게 보면서 중얼거렸다.
“뭐… 언젠가 본인 입으로 알려주는 날이 오겠지?”
나는 그녀의 잠자는 모습을 본 것으로 만족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서 내 집무실로 들어갔다.
***
촤아악.
기압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닫혔고, 집무실 안에는 새근새근….
“후우….”
자는 척을 하고 있던 아르모니아가 일어나서 문을 멍하니 바라보기 시작했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아르모니아는 다시 침대에 누워서 입술을 오므린 채 중얼거렸다.
“바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