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8화 〉 378화 영웅 사관 학교 (419)
* * *
‘예리엘… 나중에 꼭 원래의 몸으로 되돌려서 따먹어주겠어.’
[….]
내가 그렇게 복수심에 불타올라서 한창 암약한 계획을 세우고 있자 전화 너머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흐큼….)
“…?”
(미안,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 일단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일단 어떤 상황인지 보고해주겠니?)
“저희는….”
성수아는 아까 일어났던 전투와 괴한들, 그리고 괴생명체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을 전부 들은 예리엘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나도 너희와 마찬가지로 그런 녀석들을 만났어.)
예리엘의 실력이라면 아까 괴생명체도 여유롭게 해치웠을 것이다.
그 정도의 실력을 갖춘 여자니까.
(일단 두 사람은 빠르게 탈출하는 것을 목표로 해. 아마 지금쯤이면 외부에 연락이 닿아서 탑 측에서 지원을 올 거니까.)
“하지만 던전이 확장 중이라면 지원이 와도….”
성수아가 아까 설명해준 대로라면 던전의 확장은 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해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피해를 고려하더라도 예리엘은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왔다.
(그건 우리가 할 일이야. 너랑 성수호 교관은 영사관 소속이잖아. 최대한 일반인들을 데리고 밖으로 탈출하는 것을 우선으로 해.)
“하지만….”
그녀는 예리엘의 말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성수아는 이런 위험한 상황에서 자기 안위를 위해 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인지한 나는 왜 그녀가 망설이는지 알 수 있었다.
(성수호 교관도 다쳤다면서? 그럼 빨리 탈출하는 게 우선이야.)
성수아는 내 상처 때문에 쉽사리 이곳에 남겠다는 소리를 못 한 것이었다.
나는 성수아에게 다가가서 입을 열었다.
“그… 예리엘 님, 통화 중에 끼어들어서 죄송합니다만…”
(응? 성수호 교관? 팔은 괜찮아요?)
“네, 저는 괜찮습니다. 출혈도 멈췄고, 남은 상처는 흉터 정도예요.”
(그래요. 그건 다행이네요. 그럼 두 사람은 빨리 탈출을….)
“저희도 여기에 남아서 돕고 싶습니다.”
(….)
내 말에 예리엘은 침묵했고, 성수아는 안절부절못하며 입을 열었다.
“성수호 교관님… 아무리 출혈이 멈췄다고 해도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아까 그 녀석들 일반인들도 서슴없이 죽이고, 실험하는 녀석들이잖아요. 거기다 그 녀석들 어린 애들도 서슴없이 죽이려고 하는 녀석들이에요.”
“그… 그건….”
나는 성수아를 바라보며 설득했다.
“그야 제가 돕는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이대로 제 몸만 생각해서 나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
(….)
침묵이 맴돌고 있는 가운데, 예리엘의 목소리가 조그마한 노이즈와 함께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하지만 명심하세요. 본인 몸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움직이세요.)
“알겠습니다.”
(수아야, 너는 괜찮겠어?)
“….”
성수아는 침묵하며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성수호 교관님이 저렇게 말씀하신다면 저도 선택지가 없죠.”
(그래, 그럼 일단 목표를 정하자.)
예리엘은 이미 나와 성수아의 의지를 믿고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일단 인명 구조도 중요하지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코어 파괴야.)
에브리카 본사를 던전화 시킨 코어.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후순으로 두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대로 던전이 확장한다면 피해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만약 확장을 마치게 된다면 지금 이 사건은 사건의 레벨을 넘어서서 재난의 레벨로 올라갈 우려가 있었다.
그리고 구출은 코어를 찾으면서도 가능한 영역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확장하는 규모를 보면 평범한 코어가 아니야.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헤아릴 수 없이 큰 피해를 끼칠 거야.)
“네, 저희도 최대한 찾아볼게요.”
“아마 녀석들도 코어를 무방비하게 놓지 않을 테니, 녀석들을 찾으면 코어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좋아. 그럼 두 사람… 부탁할게. 그리고….)
예리엘의 목소리가 점점 노이즈에 가려지더니,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통신이 종료됐다.
(고마….)
뚝.
나는 끊인 예리엘의 목소리를 듣고, 성수아에게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오지랖을 부려서 성수아 교관님을 곤란하게 한 건지….”
“네, 너무 곤란해서 화가 날 지경이에요.”
성수아는 팔짱을 끼고 새침한 얼굴로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성수호 교관님은 부상자예요. 만약 혼자셨더라도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 같아서 화나요.”
“…죄송합니다.”
“절대… 절대 혼자 있을 때는 그렇게 무모한 행동하지 마세요. 알았죠?”
“네, 알겠습니다.”
“후… 일단 출발하죠.”
성수아는 쓰게 웃으면서 계속 내게 잔소리를 해왔지만, 그녀의 잔소리는 내게 아름다운 선율이 담긴 노래처럼 들려왔다.
..
..
건물 내부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기계들도 전부 먹통이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설상가상 규모도 점점 확장되면서 건물의 내부는 혐오스러운 살덩이들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서 수색이 마냥 쉽지 않았다.
그나마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사실은 적의 숫자였다.
“아마 상대도 대규모로 침입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에브리카 본사는 세계적인 기업인만큼 대형 길드 뺨치는 보안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곳에 몰래 침입했다면 아까 처치한 괴한들도 피해를 받아서 큰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에요. 그 녀석들이 또 이상한 괴물을 만든다면….”
성수아가 걱정하는 부분은 괴한이 아니라, 괴한들이 만들어내는 괴생명체였다.
성수아와 괴생명체의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정 안되면 상태 이상 해제를 몰래 쓰면 되지만… 들키지 않게 주의는 해야겠네.’
괴생물체의 약점을 알아냈다고 해도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걸 설명하려면 그 전에 내가 상태 이상 해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상태 이상 해제는 눈에 띄는 능력이 아닙니다. 몰래 사용하셔도 성수아는 쉽게 눈치채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건 다행이네. 나중에 여유 되면 그것도 마법진 만들어봐야겠다.’
거기다 마법진으로 만들어서 사용한다면 더욱더 알아차리기 힘들 것이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연금술이 짱이다.
그렇게 향후의 계획을 세우며 성수아와 같이 조심스럽게 탐색하고 있을 때였다.
바스락….
기둥 뒤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
“….”
내 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성수아도 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성수아가 경계 태세를 갖춘 것을 확인한 뒤, 기둥 쪽을 보면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지금 나와서 투항하는 쪽이 서로를 위해 좋다고 생각되는데?”
“사….”
“…?”
내가 의문을 가지며 기둥을 노려보고 있을 때, 기둥 뒤에서 흐느끼는 목소리를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살려주세요. 흐윽….”
아까 일반인들 사이에서 첫 번째 희생양이 될 뻔한 여자아이였다.
..
..
나와 성수아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혼자 떨어진 경위를 듣게 되었다.
나와 성수아가 갑자기 기습한 덕분에 살 수 있었고, 간신히 부모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탈출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 때문에 탈출구를 찾는 건 불가능했고, 아이의 부모도 독기에 점점 취해서 맥을 못 추는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엄마, 아빠는… 너무 아프다고… 그러다가 또 그 나쁜 사람들이 나타나서….”
가뜩이나 독기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괴한을 만난 부모들의 선택은 하나였다.
자신들이 유인해서 아이를 피신 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아이는 다행히 괴한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성수아는 아이를 보듬어주면서 상냥한 목소리로 아이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괜찮아. 두 분 다 무사하실 거야. 우리가 구해줄게.”
“엄마… 아빠….”
성수아의 말에 안도한 아이를 그녀의 품에 안겨서 서서히 잠들기 시작했다.
“굉장히 지친 모양이에요.”
“정말 대단하네요. 어린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독기에서 버티다니….”
솔직히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영사관 생도들조차도 처음에는 최하급 던전에서 맥을 못 추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그런 곳에서 두려움에 떨지언정 독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테스트를 거쳐야 하겠지만, 잠재력이 있는 아이일 가능성이 커요.”
사실 테스트 따위는 필요 없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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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민
[회복 LV 8], [상태 이상 해제 LV12], [상태 이상 면역 LV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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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상태 이상 해제… 얼씨구? 상태 이상 면역 능력도 있네?’
[그저 재능이 있다는 레벨의 수준이 아닙니다. 가히 천재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입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나이가 되어 보이는 아이가 영사관에 입학한 생도들과 비슷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상태 이상 면역은 본 적도 없는 능력이었다.
‘상태 이상 면역…. 저거 괜찮겠는데?’
독기에 침심될 때마다 상태 이상 해제를 하는 것도 일이었다.
[무조건 배워놓기를 권장합니다.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도 굉장히 유용할 것입니다.]
‘좋아! 일단 대충 레벨 10까지 올려줘.’
[알겠습니다.]
천재를 만난 것만으로 천재의 능력을 이어받을 수 있다니, 에넬… 최고다.
그렇게 상태 이상 면역을 배우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오… 바로 머릿속이 상쾌해지는군. 좋아!’
[성수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음….’
성수아에게 걸린 상태 이상.
[발정 LV 10]
일단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성수아가 발정이 걸렸다고 시도 때도 없이 날 덮치는 여자가 된다는 건 아니었다.
다만 아까부터 느껴졌지만, 집중력이 떨어진 것이 내 눈에도 들어오고 있었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을 어떻게 아냐?
성수아의 시선이 내 고간에 향해있는데, 모를 리가 있나….
“….”
“성수아 교관님?”
“흐잇! 아! 빠, 빨리 아이의 부모님을 찾아야….”
성수아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횡설수설하며 갑자기 시선을 돌려버렸다.
신선하다 못해 진짜 신비로웠다.
저 풋풋하고, 싱그러운 미소로 청순한 미모를 발산하던 성수아가 내 고간을 뚫어지게 보다니….
‘이야… 여자들이 자기 가슴 뚫어지게 보는 남자의 시선을 느끼는 게 이런 걸까?’
진짜 모를 거 같았는데, 막상 내가 이렇게 경험해보니까 티가 나도 너무 나고 있다.
하지만 좀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성수아는 던전에 들어간 적 많아서 발정도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상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상대?’
[성수아가 그만큼 수호 님을 이성으로 관심이 있으니 본인이 절제가 안 될 가능성이 큽니다.]
발정이 걸린다고 무작정 동물처럼 교미를 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원하지도 않는 상대를 앞두고 있으면 저 정도의 낮은 레벨의 발정은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아르모니아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아까 침몽에서 끊겼던 행위가 더욱더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같은 여자의 말이니 신뢰가 갔다.
‘그럼 좀 더 지켜보자.’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도….
“….”
“….”
성수아는 내 시선을 인식하지 못한 채 계속 내 고간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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