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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여자를 빼앗는 방법-373화 (374/898)

〈 373화 〉 373화 영웅 사관 학교 (4­14)

* * *

아침 일찍 경비과로 출근하고 있을 때, 아르모니아에게 통신이 왔다.

[구슬을 미리 조합해 놓길 잘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만약 연금술 없었으면 불안해서 어떻게 살았을까.’

이제 고충신은 내 기숙사 방의 위치를 대략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평상시에 기숙사에서 쉬고 있을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충신이 아무리 파리의 몸으로 빙의해서 몰래 잠입해도 기질창이 보고 바로 마법으로 태워서 죽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기숙사를 비울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꼭꼭 숨겨놓는다고 해도 결국 내게 뭔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상한 짓을 해올 것이 분명하니까.

‘이제 기숙사 방에 문제가 될 만한 중요한 물건은 없으니까 실컷 보라고 하지… 아냐.’

[…?]

나는 경비과 관리실로 들어가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경비과에 출근하자마자 막 새벽 근무를 마친 직원 한 명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 수고했어.”

고충신이었다.

‘저 더러운 파리 새끼가 내 방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니까 존나 기분 더러워졌어.’

[….]

최대한 빨리 저 녀석이 내 방 안에 털끝 하나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방법을 생각해봐야 했다.

..

..

내가 고충신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하나였다.

기숙사를 비울 때, 구멍이라는 구멍을 죄다 막아놓는 것이었다.

‘출근할 때마다 이 짓 하려니까. 개 빡쎄네….’

[그냥 간단한 트랩을 설치하는 게 어떻습니까?]

‘몸은 파리일지언정 정신은 사람이잖아. 걸릴 리가 없지.’

운 좋게 걸려도 그냥 빙의를 풀면 그만일 것이다.

심지어 파리 상태로 죽어도 자동으로 원래 몸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푸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짜증 나는 작업을 하면서도 마냥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충신아… 니 여자친구 개 쩔더라.’

[….]

윤지아는 내가 시키는 것은 뭐든 다해줬다.

처음에는 거절하는 말로 앙탈을 부리지만, 내 자지가 꽂히면 눈이 풀리며 침을 흘려댔다.

그런 여자친구를 나에게 바쳤는데, 이 정도는 용서해줄 의향이 있었다.

나는 화장실 하수구를 고무마개로 막으면서 입을 열었다.

“씨발, 존나 귀찮네. 고충신, 언젠가 죽여버릴 거야.”

[….]

용서가 다시 살의로 바뀌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기숙사 방에 있는 모든 구멍을 막으면서 살의를 증폭시켰다.

모든 구멍을 막고 나서 크게 기지개를 켠 뒤 창밖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는 태양이 환하게 뜨면서 약속시간을 서서히 알려주고 있었다.

“데이트하기에 좋은 날씨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토요일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주말은 생도든, 보조 교관이든, 교관이든 모두 좋아하는 날이다.

경비원들 빼고….

“다들 열심히 근무 서고 있네.”

내가 영사관을 나서기 위해 교정을 걷고 있으면 경비원들이 꾸벅꾸벅 인사를 해왔다.

“아, 관리자님 안녕하십니까!”

“수고해요.”

다들 주말에 근무를 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대하는 태도에 어떠한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 불만은커녕 굉장히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왔다.

이유는 심플하다.

‘다들 자기한테 기회를 줬으면 하는구만….’

VR 헤드기어.

일전에 교장에게 건의해서 경비원들도 VR 헤드기어를 대여받을 수 있게 허가를 받아놓은 상태였었다.

하지만 허락받은 인원은 스무 명뿐.

나는 고충신에게 미리 하나를 주고, 나머지는 근무 경력이 있는 경비원들에게 대여를 허가해줬다.

그리고 말했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하시면 본인에게 혜택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주세요.)

이 말의 의미는 두 가지였다.

기회와 박탈.

기회를 얻고 싶으면 내게 잘 보이고, 간신히 얻은 기회를 박탈당하고 싶지 않으면 내게 잘 보여라.

즉, 내게 잘 보이라는 의미였다.

[혜택은 주되, 그 혜택에 대한 권한을 계속 쥐고 있는 것. 현명한 운영 방식입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였다.

사람은 혜택을 계속 받으면 그 혜택이 당연히 받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 혜택에 대한 권한이 자기에게 없다는 것을 계속 상기 시켜주면 그 권한을 가진 자에게 굽히게 된다.

교장이 전부 대여해줄 수 없다고 했을 때는 살짝 아쉬웠는데,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가지고 온 셈이 되었다.

‘충신아. 내가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고 있단다. 더 분발해서 날 즐겁게 해줘라.’

나는 그렇게 속으로 흥얼거리며 마과 건물을 들어갔다.

주말 아침인 만큼 교정도 한산했고, 더욱더 들어가서 교실이 밀집된 건물 안은 한산을 넘어서서 한적했다.

그리고 그렇게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거닐다가 내가 담당하는 교실을 앞두고 생각했다.

‘일단 저녁 식사는 괜찮은 곳을 잡긴 했는데…. 중간에 영화관 괜찮겠지?’

[무난합니다. 성수아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평범한 코스가 최고입니다.]

나는 아르모니아의 조언을 믿으며 그대로 교실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 성수호 교관님.”

물결치듯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그레이색의 플레어스커트, 그리고 새하얀 블라우스와 대조되는 옅은 카키색의 마이.

무엇보다 평소와 다르게 선글라스와 스타킹을 착용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단정하고 깔끔한 복장을 유지하던 성수아는 진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게 꾸민 채 싱그러운 미소를 내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

..

성수아와의 데이트를 무난히 흘러갔다.

하지만 무난히 흘러간 것에 비해서 느껴지는 행복은 무한했다는 것이었다.

분명 평범하게 영화 보고 파스타 먹고, 카페 가서 대화를 나눴을 뿐이지만, 그녀와 같이 있는 내내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이유는 심플했다.

‘역시 예쁜 여자는 옳아.’

[….]

성수아 같은 여자랑 있는데, 지루할 틈이 있을 리가 없었다.

특히 즐거웠던 건 바로 주변의 시선이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꾸민 성수아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의 시선도 휘어잡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작 이 시선을 부담스러워한 건 성수아가 아닌 나였다.

성수아는 나름 유명한 편에 속했다.

아무리 선글라스를 끼고 있더라도 남자가 같이 다니는 장면을 보이면 논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나와 다르게 정작 성수아는 평온하게 나와 데이트를 즐겨줬다.

그녀의 모습이 왜 이렇게 평온한지는 아르모니아의 설명을 듣고 알 수 있었다.

‘영웅이 진짜 귀한 대접을 받긴 하는구나. 얼굴 공개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니….’

[특히 성수아처럼 유명세를 띈 영웅들일수록 더욱더 사생활 노출이 통제되는 것 같습니다.]

성수아는 사색의 정령술사라는 이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얼굴은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아무리 검색해도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영웅들의 사진이 올라가면 확인되는 즉시 바로 삭제되고, 올린 사람도 노출도에 따라서 엄벌에 처해질 수 있다고 한다.

‘이야… 영웅이 진짜 대접 하나는 끝내주네.’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로 이주했던 영웅들이 생각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최고의 인재 자원인 영웅.

당연히 국가에서 영웅이 이주하는 것을 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기껏 힘들게 투자해서 키워놨는데, 국외로 빠져나간다면 보통 손실이 아닐 테니까.

하지만 결국 법도 그 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수단이었다.

결국 계속되는 불법 이주로 인해서 백기를 든 건 국가였고, 대부분 국가는 영웅들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의 기사를 올리는 것조차 불법으로 막아놓았다.

그야, 영웅들이 이뤄낸 업적에 관해서는 자유롭게 공개할 수는 있다.

시민을 구출했다든지, 던전을 공략했다든지 등등….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수아의 이름은 알아도, 성수아의 외모를 보고 누구도 성수아라고 유추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될 수 있으면 너무 눈에 띄는 장소는 좋지 않습니다.]

아르모니아의 말대로 아무리 언론 통제가 되어서 대부분 얼굴을 모르지만, 분명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탑과 영사관에 소속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지나가다가 우리를 보게 된다면 우리 둘 다 곤란해진다.

그 때문에 혹시 몰라서 음식점과 카페에서는 될 수 있으면 사람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구석에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정작 성수아는 내 걱정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까 봤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신나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숨이 넘어갈 듯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하던 성수아는 숨을 고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영화관 가서 영화 본 지 정말 오래됐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성수아 교관님 영화 별로 안 좋아하세요?”

“아뇨. 좋아해요. 그런데….”

“…?”

성수아는 애써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못 갔어요.”

“성수아 교관님이 같이 갈 사람이 없다고요?”

“…네.”

성수아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런 성수아를 보면서 사과를 했다.

“제가 괜한 말을 해서 분위기를 흐렸네요.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이상한 쪽으로 말을 돌려서 그렇죠.”

성수아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며 도리어 나를 위로했다.

지금 우울함을 느끼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를 위로하는 것을 보면 정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저… 성수아 교관님.”

“네?”

“혹시 혹시 몰라서 제가 저녁같이 먹을까 해서 식당 예약해 놨는데…. 같이 드실래요? 혹시라도 부담스러우시면….”

성수아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좋아요! 어차피 저녁까지 같이 놀 생각이었는데, 정말 잘됐네요.”

“다행이네요.”

“예약은 몇 시로 잡으셨나요?”

“일단 오후 8시로 잡았습니다.”

“아하.”

지금 시간은 3시.

아직 예약 시간이 되려면 한참 남은 상황이었다.

내 말에 성수아가 잠시 고민하더니, 눈치를 보면서 저기 창밖으로 손가락을 향했다.

성수아가 가리킨 방향에는 랜드마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높은 빌딩 두 채가 있었다.

그녀는 그 빌딩을 조심스레 가리키면서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저기 마침… 에브리카 본사가 있는데. 같이 구경해보실래요?”

“하하…. 가, 가시죠.”

성수아… VR에 정말 진심인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수 앞을 보고 나와 데이트했던 걸까 하는 생각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음흉한 여자.]

‘….’

이번에는 나도 쉽사리 반박하지 못했다.

***

에브리카의 본사.

두 개의 건물은 나란히 서 있고, 중간 중간 다리가 설치되어 있어서 건물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었다.

그럼 두 건물은 주변 건물들을 압도하며 하늘을 뚫을 기세로 높게 올라서 있었다.

화려한 주변 건물들도 지금은 에브리카 본사를 위한 들러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런 초대형 건물 입구에 도와줘야할 것 같은 어린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못 만난다고?”

그녀의 이름은 예리엘.

탑의 수장이었다.

예리엘은 에브리카 본사 입구에 서서 한 여자를 올려다 보면서 의문을 표했다.

상대는 예리엘보다 한참 나이가 있어 보이는 40대 여성이었다.

깐깐한 안경과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여성은 누가 봐도 까탈스러운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런 까탈스러워 보이는 여성은 되려 어려 보이는 예리엘에게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께서… 당분간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예외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예리엘의 침묵을 하면서도 표정으로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오로지 의아함뿐….

“혹시 몸이 안 좋은 거야?”

“그건 아닙니다. 의료진이 상시 대기하며 진찰하고 있지만,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

“최근에 깊은 고뇌에 빠지신 것 같습니다.”

“…고뇌?”

예리엘이 에브리카 본사를 찾아온 것은 회장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에브리카의 회장은 예리엘과 어린 시절부터 쭉 함께해 온 절친이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바빠도 친분이 사라지지 않는 그런 관계였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찾아오면 어떤 식으로든 반기며 환영하던 자가 바로 에브리카의 회장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만남을 거부하니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예리엘은 잠시 고민에 빠지다가 아쉬운 표정으로 바꾸며 나이가 지긋한 여성에게 말했다.

“정말 중요한 일인가 보네. 어쩔 수 없지….”

“죄송합니다. 회장님에게는 제가 꼭 안부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그 애 좀 잘 보살펴줘.”

에브리카 회장을 보좌하는 비서.

그녀는 예리엘이 믿고 있는 몇 되지 않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다시 탑으로 가려는 순간이었다. 비서가 다시 입을 열며 그녀의 발을 멈춰 세웠다.

“예리엘 님.”

“응?”

비서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최근 회장님을 찾아온 자가 있었습니다.”

“….”

“그자는….”

“그만.”

예리엘의 다그침에 비서는 순간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회장과 누군가의 비밀 만남.

그걸 외부 사람에게 말하는 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지만, 비서는 예리엘이 그만큼 회장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고 말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리엘은 고개를 귀엽게 도리도리 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 이야기는 본인이 직접 하면 들을게. 나를 믿어줘서 이야기하려는 건 고맙지만, 너도 너 자신을 좀 생각해.”

“…쓸데없는 말씀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후후… 나중에는 미리 연락하고 올게. 그 애… 잘 부탁할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리엘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비서를 보낸 뒤 고민하기 시작했다.

“간만에 큰맘 먹고 외출했더니, 이대로 집으로 가야 하나? …응?”

그렇게 예리엘이 고민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동공이 왼쪽 끝을 향하고, 점차 중앙으로 향하고, 점차 오른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동공이 끝에 도달해 멈추자, 예리엘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면서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예리엘은 자신의 시선을 빼앗은 인물들을 올려다보며 나긋한 목소리를 내보냈다.

“두 사람, 여기서 뭐 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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